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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거주홈 제주도 여행기, 혼저옵서예
글. 장명훈/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위기거주홈 간사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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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4  09: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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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거주홈은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학대피해장애인의 쉼터입니다. 함께걸음은 348호부터 위기거주홈의 생생한 일상이 담긴 ‘위기거주홈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우리도 제주도 한번 가봤으면….” “간사님 비행기 타 봤어요?” 작년 4월에 그룹 홈으로 가신 당사자분이 거기서 단체로 제주도 여행을 가셨다고 소소한 먹거리를 사 들고 위기거주홈에 계신 분들에게 엄청나게 자랑을 하신 모양이었다. 그 이야기 나온 게 작년 여름이었는데, 올해가 되어서야 5월 14일부터 17일까지 위기거주홈 식구들과 제주도를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사람에게 여가가 필요한 이유

군 복무하던 시절 초등학생에게 위문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아니, 그게 말이 좋아 위문편지였지 대충 기억나는 내용은 이렇다. “군인 아저씨 군대가 좋지요?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잖아요. 저는 게임 속에서밖에 못 쏴봤지만 실제 총도 빵빵 쏘고 심심하지는 않을 거 같네요.” 끝으로 당돌하게도 군대에 말뚝 박으면 요즘 같이 취업하기 힘든 시대에 부모님 걱정도 덜 수 있을 거라는 귀여운 막말(?)도 잊지 않았다. 어린 친구가 모르고 분위기에 이끌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썼던 편지려니 하고 천진난만한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선임병 후임병 할 거 없이 모두 돌려본 후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초등학생의 눈에 비친 군대는 뭔가 낭만이 넘치고 의식주가 다 해결되는 꿈의 직장처럼 보였지만, 그게 그렇게 좋은 거였다면 대한민국 남자들이 전부 간부로 말뚝박아서 군대에서 지출하는 인건비 걱정할 처지라고 저녁 9시 뉴스에 나왔을 것이다. 요즘 어른들 나라 안보 걱정은 덤이다. 예전에 고생하던 시절에 비해 요즘 군대가 좋아졌다고 늘 먼저 갔다 온 예비역들은 투덜투덜 대지만, 이제는 일과 후 핸드폰 사용까지 추진한다니 솔직히 말해 부럽기까지 하다. 물론 그렇다고 군대 다시 가고 싶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일단 즐겁게 못 노니까! 대한민국 군대에도 사병들의 스트레스 관리와 여가생활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살피는 의식 있는 지휘관과 간부들이 많아져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기도 하다.

위기거주홈 역시 여태껏 길게 놀아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여기가 군대처럼 엄격하게 통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분들에게는 여기 일과가 너무 빡빡했다. 일상생활훈련이니, 취업이니, 기타 여러 가지 필요한 지원을 하기 위해 당사자와 같이 관공서, 은행 등 늘 어딘가를 바삐 뛰어 다니는 일상이었고, 가끔가다 영화 한 편씩 재밌는 거 있으면 자비부담해서 주말에 보러 가는 게 고작이었다.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이나 의식주만 갖춰진다고 해서 사람 삶의 질이 결코 높아질 수는 없는 법이다. 먹고 자는 것만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능사는 아니다. 위기거주홈 당사자들 역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우리와 힘들게 달려왔다.

 

그동안 왜 못 갔는가?

위 질문에 대답하면서 기분이 씁쓸하기는 했다. 월급 도둑이 아닌 이상, 남들 하는 거, 다른 곳에서 연례행사처럼 다 하는 거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위기거주홈 근무하면서 장거리 여행 원하는 당사자분들을 보며 나도 속상한 건 매한가지였다. 위기거주홈은 퇴소보다는 신규입소로 인한 인원의 변동과 그로 인한 변수가 높다. 숙박과 교통편 예약이 필수인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고 싶어도 기존 분들만 모시고 갔을 때 신규 입소하신 분들이 갖게 될 소외감과 서운함을 감안하면 섣불리 추진하지 못하고 당일치기가 가능한 근교에 다녀오는 것이 현실이었다.

올해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작년에는 아예 프로그램 예산도 없어서, 근무자들도 당사자분들과 무언가를 할 때 필요할 때마다 사비를 갹출해서 해결하고는 했었다. 그래서 돈 안 드는 종이접기 같은 활동을 해봤는데 반응이 심하게 별로였다. 그렇다. 재밌는 건 돈을 들여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기도 하다. 농한기에 할머니들이 마을회관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소일거리로 화투 치실 때 점당 10원이라도 걸고 하시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 돈을 걷어서 여행경비를 만들면 되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신규 입소한 당사자에게는 일부라고는 하지만 자부담을 해 다녀오는 여행도 상당히 부담스럽다. 기존에 계신 분들이야 취업을 하신 분은 당연히 금전적인 여유가 있고 혹여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분들도 어느 정도 저축을 하여 금전적인 여유가 있지만 막 학대피해 현장에서 분리되어 오신 분들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

더군다나 신규 입소하신 분은 당장 해결해야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아 위기거주홈의 모든 근무자들이 한동안은 그분에게 집중해야 해서 세워놓은 계획이나 일정들은 없던 것이 되곤 했었다. 마음을 치유하는 좋은 여행, 경험이 되는 여행 한번 훌쩍 떠나고 싶어도 현실이안 도와주었다. 그래도 당사자분들이 그렇게 원하는데 왜 안 갔어요? 라고 물어본다면 우리 당사자분들만큼이나 위기거주홈 근무자들도 서럽다!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겁니다.

   
 

떠나기까지의 구구절절한 사연들

이런 어려움을 딛고 우여곡절 끝에 참가자 모두 여행경비 일부를 자부담하는 조건으로 3박 4일간의 제주도 계획이 잡혔다. 내 기억으로는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소파에 모여 앉아서 제주도 이야기만 하셨던 것 같다. 다들 너무 기대가 컸다. 심지어 한 분은 떠나기 전날 낮에 가방 싸는 걸 도와드렸었는데 그날 이 분께 시달렸던 야간근무자 말에 의하면 설레셨던 모양인지 여기저기 배회하시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또 짐을 새로 싸셨다가 풀었다가 하시면서 잠을 못 자셨다고 한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가 긴장되셨던 건지 목소리 크고 말 많아서 다른 분들께 항상 타박받던 분도 말수가 적어지시고 창만 보시더라. 물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그런 거 없었다. 어찌나 목소리가 크시던지 날개 쪽 좌석 비행기 엔진음을 뚫고 목소리가 들렸다. 욕심 많은 분들이 서로 구름이 보이는 창가 쪽 좌석에 앉으시겠다고 다투면 어쩌나 했는데 그러시진 않아서 그나마 다행 중 다행이었다.

 

풍경도 사람도 아름다웠던 제주도

제주 하면 내게 생각나는 건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이전에 가던 부모님 세대의 신혼 여행지, 사극에서 조선시대 관리들이 임금님한테 밉보이면 소달구지 타고 유배 가는 곳, 고등학생들의 단골 수학 여행지 정도가 되겠다. 학대피해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곳일까?

말로만 들어보았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TV 속에서나 보던 낯선 곳이다. 너무나도 흔하고 마음만 먹으면 훌쩍 갔다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무척이나 멀게 느껴지는 외국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비록 당사자 개인 보호를 위해 사진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카메라 너머로 보이던 당사자들의 모습은 억지로 연출해서 나올 수가 없는 너무나도 밝고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여태껏 위기거주홈에서 해왔던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만족도가 높았노라고 나는 확신한다. 언젠가 우리 당사자분들을 만나게 되신다면 제주도 이야기를 한번 꺼내 보시라. 함박웃음을 지으리라 확신한다.

   
 

에필로그, 여행 그 후의 이야기

원래도 사람이 많이 모이면 평소에 시끄러웠지만, 한동안 또 누가 제주도 이야기 꺼내시면 그 즐거웠던 얘기 하시느라 더 시끄러워질 듯하다. 처음 보시는 풍경, 처음 드셔 보는 음식들 하며, 처음 체험해 보시는 것들,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것들로만 가득했던 여행의 여운은 여행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아직까지도 당사자분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근무자와 다소 서먹했던 당사자분도 여행 도중 함께 나눴던 치킨과 맥주 한잔에 서운한 마음을 다 그곳에 훌훌 털어내고 왔다. 이번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들은 이 여행을 기념하고 추억할 수 있도록 조그만 액자를 만들어서 당사자분들께 선물할 예정이다. 언젠가 우리 당사자분들에게 좀 더 많은 즐거운 기회가 주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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