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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거리를 누비던 민철 씨의 옥상달빛학대 피해 장애인, 그 후
글과 사진. 김은정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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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6  1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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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에서 자란 지적장애인 민철(가명. 56세) 씨는 고물상에서만 약 20년의 세월을 보냈다. 타고난 근면함으로 주변에서 늘 인정받아 왔지만 임금은 친누나에게 갈취당하고 길거리에서 뺨을 맞는 등 무자비한 폭행도 일상이었다. 그렇게 리어카 하나 끌고 거리 이곳저곳을 누비던 그는 이제 한 다가구주택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고 서울 시내를 바라본다. 그곳에는 평상과 맞닿은 파란 하늘과 달빛도 있다.

 

민철 씨의 옥상

“아는 분이 옥상에 세 들어 살았는데 잠깐 머문 적이 있어요. 그때 탐났죠. 나도 여유가 생기면 옥상 얻어서 (농작물을) 심고 먹어야겠다. 그래서 (자립할 때) 옥탑 방을 원했고 그 집을 얻게 됐어요. 어제도 밤에 달 보며 여기서 잤는데… 상추고 뭐고 심었는데 오늘 점심에도 (이웃사람과) 고기 구워먹고 심어놓은 상추를 따서 먹었어요.”

민철 씨의 옥상 예찬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가뜩이나 옥탑 방에 대한 철부지 같은 로망이 있었던 기자였기에, 도저히 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쉼터에서 인터뷰를 하다 말고 도보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그곳을 찾았다. 옥탑 방은 협소했지만 영등포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옥상에는 그가 공수해 놓은 테이블과 평상 그리고 상추, 고추, 방울토마토 등의 모종이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자그마한 텃밭이 있었다.

“탁자며 의자며 선풍기며 다 다니다 주워온 거예요. 요새는 (사람들이) 멀쩡한 것들도 다 내다버리고 하니까.”

특히 민철 씨는 아침나절 반지르르하게 닦아다 비치해 놓은 3단 미니 서랍장을 마음에 쏙 들어 하는 눈치였다. 그가 의자니, 휴대용 히터니 깨끗하니까 필요하면 가져다 쓰라고 인심을 써서 대신 어디서 버려진 자전거 고쳐서 쓸 만한 게 있으면 저렴한 가격에 사고 싶다고 요청했다. 기자도 영국에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게 지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쩍 중고물품에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철 씨는 비할 수없는 고수였다.

   
 

“미우나 고우나 누나니까…….”

“누나네 구멍가게에서 일 도울 때 어떤 여학생이 과자를 훔쳐가는 것을 봤어요. 그래서 나가서 붙잡고 아무리 작은 돈이었지만 (혼내줘야겠다 싶어서) 파출소 가자니까 무릎 꿇고 봐 달라고 해요. 그럼 부모님 데리고 오라고 했더니 엄마는 있는데 아빠는 없대요. (그 말 들으니) 불쌍하더라고. 그래서 이제 그러지 말라고 (주의 주고) 하고 과자 싸주고 보냈어요. 나도 아버지 없이 자랐으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가 하시고 여동생이랑 고아원에 있다가 나와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신문배달, 중국집 설거지, 노가다도 하고….”

민철 씨는 그렇게 고물상에서 약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낸다. 처음에는 파지를 줍고 다녔지만 일을 잘해 고물상에 취업했고 두 곳 정도 옮겨 다닌 모양이다. 하지만 임금은 친누나에게 갈취당하고 폭행은 일상이었다. 한 통의 제보 전화로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와 면담 진행 후 가해자로부터 긴급 분리 됐으며,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위기거주홈으로 입소했다. 그러나 가해자인 친누나에 대해 민철 씨는 처벌을 원치 않아 경찰 고발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 누나가 (최근에) 병원에 입원했는데 머리 안에 혹(종양)이 났대요. 나한테 (누나가) 안 좋게 했어도 불쌍하기도 하고. 같은 핏줄이라 어쩔 수 없고. 미우나 고우나 우리 누나니까.”

민철 씨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다. 특히 요양원에 계신 모친은 삶의 원동력으로 보였다. 여자 친구가 생기면 가고 싶은 곳도, 장차 키우고 싶은 동물 중에 오리가 포함된 이유도, 때때로 ‘승질’대로 살 수 없는 이유도 어머니의 영향이 큰 듯 보였다.

“(연세는) 잘 모르겠어요. 어릴 때 헤어지고 만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절에 계시다 몸이 안 좋아 입원을 하신 건데 (어릴 때는) 원망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부모 심정도 이해하고…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오리고기를 (병원에) 사갔는데 (모친이) 다리 아픈데 뭐 하러 왔냐고 (안쓰러워)하셔서 끌어안고 함께 울었어요.”

 

“편하게 살아도 오만 잡생각만 다 들고.”

민철 씨를 만난 날은 6.13지방선거가 있던 임시공휴일이었다. 민철 씨는 인터뷰 전 투표소를 들렀다 오던 참이었고, 그의 투표는 생애 두 번째였다. 현재 민철 씨는 서울 시내의 한 대학 병원 구내식당에서 일요일을 제외하고 3시간씩 설거지 등 주방 보조 업무를, 저녁시간은 주원이(6월호 주인공)의 목욕 보조 등 활동보조를 맡고 있다. 설거지 일이 쉬울 리 없지만 그는 일을 야무지게 곧 잘해 할당된 시간도 늘고 평판도 좋다고 한다. 그날만 해도 민철 씨는 아침나절 집 안 청소를 하고 점심에 옥상에서 이웃과 삼겹살에 소주를 기울인 후 투표를 마치고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이후에는 주원이를 만나러 갈 참이다. 주말이면 가끔 고물상에 하루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고 한다. 민철 씨는 입소 당시 오랜 노동으로 어깨와 무릎 건강이 좋지 않아 지속적인 치료가 요구됐다. 위기거주홈의 지원을 받아 인공관절 수술을 했지만 완치는 불가능했다. 설거지 일은 힘에 부치지 않는지, 바쁜 일상은 부담이 없는지 안부를 묻자 그는 손을 내저었다.

“(설거지에 비하면) 고물상은 더 힘들어요. 성질이 급해서 고물상에서 일할 때 많이 뛰어 내리곤 했으니까. 그래도 그 전에는 아픈지도 몰랐어요. 현재 (무릎이) 안으로 완전하게 굽혀지지 않지만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어요. 편하게 살아도 오만 잡생각만 다 들고…….”

야무지게 일을 해치우는 민철 씨지만 처음에는 되레 정규직에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오랜 기간 고물상 일이나, 공사장 잡부 일처럼 일당을 받는 환경에 익숙해진 탓이었다. 현재는 가끔 충동적인 지출로 주변의 우려를 낳기도 한다. 위기거주홈 강성묵 담당간사는 민철 씨가 경제적 자립을 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철 씨가 임금 착취에 대한 소송을 원치 않아 자립하는 데 경제적 어려움이 있으셨어요. 게다가 위기거주홈에 함께 계시다 자립하신 당사자 분과 가끔 유흥을 즐기며 큰돈을 지출하기도 했죠. 그러나 충동적인 유흥은 결국 외로움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해요. 자립하신 분들 상당수가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죠.”

민철 씨도 인터뷰 간간이 여자 친구가 있으면 하는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위기거주홈은 영등포사회복지관과 함께 민철 씨 등 장애인 당사자들을 위한 금전관리 교육을 준비 중이다. 통장 개설과 돈에 대한 개념 등 그 첫걸음부터 올바른 금전관리를 목적으로 두고 있다. 또한 다른 기관과 함께 건전한 이성교제를 도모할 수 있도록 미팅 프로그램 등을 논의하고 있다.

   
 

“아쉬우면 다 하게 돼 있어!”

민철 씨가 길을 다니다가도 쓸 만한 물건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가 알뜰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민철 씨는 눈썰미가 좋아보였고 그 감각은 최근 담근 열무김치에서 빛을 발했다.

“김치 한 번 담가 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래서 (자립하면) 나가서 해봐야지 했죠. 누나들이 하는 거 눈대중으로 배운 게 다지만, 열무 사다가 다듬어서 닦고 소금에 불리고 (절이고) 양념해서 (완성)했어요. 한 (열무) 6단 했는데 작은 공간에서 닦다가 허리 부러지는 줄…. 그래도 열무에 고추장, 참기름 넣고 비벼 먹었더니 사다먹는 것보다 맛있더라고요.”

위기거주홈 식구들과 나눠 먹었기 때문에 흔적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오이소박이도 했다고 했고 조만간 배추김치가 목표라고 했다. 과년한 나이에 김치 한 번 담가보지 않았던 터라 민철 씨가 김장 레시피를 줄줄이 나열할 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는데 그는 이른바 ‘팩트 폭격’으로 기자를 머쓱하게 했다. “대단한 게 아니라 본인이 아쉬우면 다 하게 돼 있어!”

민철 씨의 18번은 ‘사랑으로’이다. 구슬픈 노래가 좋고 노래방에 가면 눈물이 흔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까막눈이기 때문에 그는 혼자 그 곡을 찾을 수는 없다. 민철 씨는 글씨를 배워서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훗날 여자 친구와 어머니를 찾아뵙고 싶다고 했다. 옥상도 좋지만 더 넓은 텃밭이 있고 오리, 강아지, 염소 등을 키울 수 있는 보금자리를 꿈꾼다고도 했다. 민철 씨가 하늘과 달을 접한 옥상을 바랐던 것은 그간 허리를 굽히고 땅만 연신 살피며 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곳을 바랐던 지도 모르겠다. 그의 더 큰 도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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