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2018 아시아 장애인 국제교류대회
배용진 기자  |  cowalk1004@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8.03  11:23:4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2018년 제7회 아시아 장애인 국제교류대회가 지난달 25, 26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열렸다. 아시아 장애인 국제교류대회는 1995년 한국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일본 장애인차별과싸우는전국공동연합(이하 공동련)이 서울에서 처음 만난 이래로 2004년 필리핀, 2007년 베트남, 2010년 중국, 2013년 대만, 2016년 일본을 거쳐 올해 몽골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참가국을 확대하며 이어지고 있다. 교류대회의 목적은 각국의 장애인 민간단체가 자기 나라의 장애인 현황과 문제 등을 공유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몽골과 필리핀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도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다. 그중 장애인 노동을 중심으로 대회 내용을 정리했다.

 

   
 

우리 문제는 우리 손으로

각국 대표의 인사말로 대회가 시작했다. 각국 대표는 교류의 중요성과 대회가 지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특히 공동련 대표 호리 도시카즈는 “우리 문제는 우리 손으로, 우리가 납득할 수 있게 풀어가야 한다. 남 일인 듯 정부에게 맡겨버리거나 사회의 동정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보호해 주리라 기대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생각과 요구를 사회에 전해야 한다. 그것은 혼자 할 수 없다. 교류하고 연대해야 한다. 각자 갖지 못한 것을 서로에게 배우자”며 ‘우리 문제를 우리 없이 정하지 마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는 구호를 덧붙였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

장애인 고용을 늘리려고 몽골과 한국, 일본은 모두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몽골에서 25명 이상이 일하는 사업체는 노동자의 4%를 장애인으로 뽑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달 한 명당 최저임금의 30~50%를 노동 지원 기금으로 내야 한다. 이 돈은 장애인 노동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한국에서 5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는 2018년 기준 2.9%(공공기관 및 준정부기관 3.2%)를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미달하면 인원수마다 대략 95만 원에서 157만 원까지 부담금이 매달 부과되고, 반대로 초과하면 초과한 인원당 최대 60만 원의 장려금이 지급된다. 일본의 경우 현재 의무고용률은 민간기업이 2.2%, 공공기업은 2.5%다.

그럼에도 세 나라 모두 실제 장애인 고용률이 의무고용률에 못 미친다. 한국과 몽골에서는 큰기업일수록 장애인을 고용하는 대신 벌금을 내는 경향이 있다. 몽골 국립재활센터 정책시행 사회참여 부서장 바야르바트(Bayarbat)는 “벌금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고용주의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또 장애인이 능력을 향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비장애인 동료들이 좋지 않은 시선을 거두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어렵게 구한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을 막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16년 일본 민간 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2%고 실제 고용률은 1.92%다. 몽골, 한국과 달리 일본은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이 중소기업보다 높다. 50~100명이 일하는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이 1.55%로 제일 낮고 규모가 커질수록 고용률도 높아져, 가장 큰 규모(인원 1,000명 이상)로 분류된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2.12%다. 공동련 사이토 겐조는 “과거에는 두 나라와 같은 상황이었다. 10년 전부터 일본 정부에서 의무고용률 미달 기업에 벌금과 별도로 행정지도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일본 대기업이 행정지도를 받지 않으려고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지키고 있다”라고 원인을 설명했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노동은 권리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노동해서 돈을 벌고, 이상적으로 노동하며 자아를 실현한다. 한국에서 노동은 의무기도 하지만, 지난 3월 청와대가 공개한 개헌안에는 ‘노동의 의무’가 삭제돼 있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는 보고서에서 “근로 의무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도덕적 의무로 봐야 하고, 헌법적 의무로 규정하는 것은 강제근로금지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다. 모든 국민이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지 국민의 의무로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노동이 의무보다 권리라면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장애 정도가 심할수록 선택지는 줄어든다. 중증 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은 경증 장애인의 절반 수준이다. 노동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과 선택지가 없어서 못 하는 것은 다르다.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황상연 실장은 “갑질 폭로와 미투 운동은 인간을 인간답게 다루지 않았다는 고발이다. 노동을 다룰 때 ‘인간’은 어디 있나. 노동을 상품으로 본다면 중증 장애인의 가치가 얼마나 되겠으며 과연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며 노동을 상품으로 보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일본 공동련의 시라스기 시게오는 “노동을 상품으로 평가했을 때 중증 장애인은 상품 가치가 없다. 그런데 몽골과 일본, 한국 모두 노동을 상품화하는 인식이 많아 보인다. 공동련은 능력주의를 지양한다. 우리 가치관을 보다 넓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낮은 생산성은 공적 지원 등을 확대해 보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의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에 따르면 노동, 토지, 화폐는 원래 판매를 위해 생산된 상품이 아니다. 산업 혁명 이후 공업이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공장에 계속해서 공급해야 하는 생산 요소가 많아졌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게 노동과 토지, 화폐다. 시장 경제는 이것들을 상품으로 취급해야만 작동한다. 따라서 ‘노동’을 인간의 다른 활동과 구분하고, ‘토지’를 자연에서 분리해 취급하고, 매개물인 ‘화폐’를 상품 자체로 다루었다. 노동시장, 부동산 시장, 금융시장 등에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된 노동·토지·화폐를 폴라니는 ‘허구적 상품’이라고 불렀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그래서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시장 경제는, 애초에 노동·토지·화폐를 상품으로 취급하도록 국가가 인위적으로 개입했기에 작동할 수 있었다.

 

   
 

장애인 노동의 대안, 사회적 경제

“사회적 경제”란 양극화 해소,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 서비스 제공, 지역공동체 재생과 지역순환경제,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통합 등 공동체 구성원의 공동 이익과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하여 사회적 경제조직이 호혜협력과 사회연대를 바탕으로 사업체를 통해 수행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말한다.

-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대표발의 윤호중) 3조 1항

 

사회적 경제는 어려운 시기에 발전해 왔다. 19세기 자본주의가 가난한 사람을 전혀 챙기지 않을 때협동조합이 생겼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이탈리아는 협동조합을 국가를 운용하는 기본 조직으로 검토하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가 사회적 경제 관련 법률을 만들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를 포함한 여러 국제기구는 사회적 경제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2009년 UN(United Nations, 국제연합)은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했다.

한국에서는 전해에 발생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998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만들어졌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자활센터가 법적 근거를 가지고 지역별로 생겼다는 점에서 이 법에 큰 의미를 두었다. 이후 2007년에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2012년에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됐다. 개별적으로 제도가 생기다 보니 담당 부처가 사회적 기업은 고용노동부, 협동조합은 기획재정부, 마을기업은 행정안전부, 자활기업은 보건복지부로 각각 다르다.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 서동운 관장은 “사회적 경제 제도가 개별 정책으로 수립돼 서로 연계 없이 부처별 사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각각 지향하는 바도 다르고 구심점이 없다”라며 한국 사회적 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애인과 관련한 대표 사회적 기업으로는 주소비자가 장애인인 딜라이트와 주 노동자가 장애인인 베어베터가 있다. 대학 연합 동아리에서 시작한 딜라이트는 청각장애인 판정을 받으면 보청기를 구매할 때 27만 2,000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34만 원짜리 맞춤형 보청기를 만들었다. 베어베터는 장애인 일자리 창출형 사회적 기업이다. 일반 기업은 직무에 맞는 사람을 고용하는데 반해 베어베터는 사람에 맞춰 직무를 만들었다. 발달장애인이 일할 수 있도록 작업 과정을 세밀히 나누고 자동 설비를 갖추어 단순 작업이 가능하게 했다.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이 일에 적응하는 데 상대적으로 많은 연습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충분히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일에 능숙해진 직원은 다른 곳으로 이직하도록 돕고 그만큼 새 직원을 뽑는다. 인쇄, 커피, 꽃 배달 등의 사업을 하며 현재 200여 명의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일본 공동련은 장애가 있건 없건 대등한 관계로 일하는 ‘사회적 사업소’를 추구한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 들어 기존 제도의 틀에서 벗어난 소규모 공동작업장 만들기 운동이 활발했다. ‘삶터 만들기’라고 불린 이 운동으로 생긴 작업장은 노동보다는 작업 훈련을 하는 곳이었고, 구성원은 선생님(직원)과 훈련생(장애인)으로 나뉘었다. 이러한 차별적 상하 관계에 문제의식을 느끼며 1984년 공동련이 생겼다. 공동련은 전국 연합 조직이다. 평등을 지향하기에 수직적 조직 형태가 아닌 사업소 각각 자주성을 갖고 운영한다. 경영자가 월급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수익을 대등하게 나눈다.

공동련 사이토 겐조는 “우리는 능력주의가 차별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주의에 따르면 중증장애인의 경쟁력은 없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이라도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공동련에서는 일반적인 사회 기준에 맞추어 일하지 않는다. 생산성을 확보하고자 훈련시키는 게 아니라 장애인의 모습 그대로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 한다. 장애가 아주 심하면 사업소에 나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그 사람 나름의 일을 찾고자 고민한다. 그렇게 같이 현장에 있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참가할 수있는 일이 생긴다. 공동련의 노동자는 누구에게 지도나 지시를 받지 않고, 장애가 있는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참고 도서]

<지금 다시, 칼 폴라니>, 와카모리 미도리, 생각의힘, 2017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우석훈, 문예출판사, 2017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를 추천하시면 "오늘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2018 제주도 1박 3일 | 깜짝 생일 파티를 해 준 친구들
2
키 작은 꼬마 이야기(feat. 유토)
3
하개월의 병원투어_건강검진편
4
너 이게 얼만지는 아니? | 보청기, 인공와우의 가격
5
2018 제주도 1박 3일 | 15년 친구와 비행기 타고 첫 여행
6
[혐주의]농인(청각장애인)의 병원투어_피부과편
7
히피펌 드디어 하다 | 농인(청각장애인)의 미용실 체험기
8
인공와우 사용자들과의 인터뷰
9
하그래의 미생 | 나의 첫 직장
10
당신의 번개 천둥 소리는?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rss home back top
함께걸음 제호: 디지털 함께걸음  |  우)07236 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서울아00388 | 등록연월일 2007년6월26일 | 발행인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성재 | 편집인 겸 편집국장 김성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태곤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선스 2.0:영리금지ㆍ개작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