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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가 분명하다면, 길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사회연대은행 (사)함께만드는세상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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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6  10: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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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돈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은행들은 부자들에게는 돈을 쉽게 빌려 주고, 정작 가난한 사람들은 외면할까요?” 짧은 인용이지만, 실제 현실 속에서 이것 이상 가슴에 와 닿는 절박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OO은행, OO카드, OO보증기금, OO신용보증재단 등등, 개인사업자들에게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대출을 해주겠다는 홍보 또한 넘쳐나는데, 정작 그 문턱에 서면 ‘당신은 안 돼!’로 끝나버리는 게 자본금융 앞에서 겪는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한 시사프로그램의 상징적인 멘트 하나로 뒤집기를 시도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소시민들의 갈증해소를 위한 기관이 따로 있음을 확인하게 됐다. 독자 여러분한테 숨통이 트일 정보가 되리라 기대한다. 사회연대은행(사)함께만드는세상을 만났다.

 

   
 

사회적 약자들의 미래를 책임진다

서문에 새긴 “돈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의 인용 문장은 전 세계적으로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 Credit, 무담보자립기금대출) 운동을 펼치며, 지난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라민(Grameen)은행 설립자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박사가 한 말이다. 유누스 박사는 미국 벤더빌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방글라데시 치타공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경제학 전공자이고 기금대출운동을 펼쳤다면 노벨경제학상이 정확할 텐데, 그가 받은 건 노벨평화상이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유누스 박사는 돈이 가장 필요한 저소득층이 가장 먼저 외면 받는 부조리한 현실에 주목했다. 그래서 일할 의지는 분명히 있는데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빈민층들 중심으로, 150달러 안팎의 소액을 담보나 보증인 없이 빌려줬다. 무조건 아무한테나 빌려준 게 아니라, 자립의지와 충실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빈곤층 여성들이 주된 대출 대상이었다.

처음엔 42가구에 27달러씩 빌려줬던 게 시작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유누스 박사 자신의 돈으로 빌려주기도 했고 나중엔 본인 스스로 은행 대출을 받아 빌려주기도 했기 때문에, 담보나 보증도 없는 그의 대출행위가 사회적으로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모하다던 우려와 달리 상환율이 90%를 넘겼고, 대출자의 상당수가 절대적 빈곤상태에서 벗어나는 큰 성과를 일궈냈다. 그 성과에 주목한 방글라데시 정부 법령에 따라 1983년 그라민은행은 독립은행으로 전환됐고, 세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방식의 소액대출제도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자활의지를 가지고 있는 빈민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무담보 소액대출제도를 의미한다. 기존의 금융기관과는 거래가 어려운 사회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보증이나 담보 없이 창업자금을 대출해 주고 경영지원 등 사후관리를 통해 자활을 지원한다. 대출로 수익을 얻으려는 일반 금융기관과 달리,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이익의 사회 환원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대출자에게 유리한 금리와 대출조건이 설정된다.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기존의 금융기관과는 거래가 어려운 사회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바로 그 대목이다.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기본 정신은 사회연대은행의 핵심가치이기도 합니다. 취약계층 중에서도 저소득인 분, 신용등급이 낮은 분들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니까요. ‘무지개가게’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브랜드화(化)한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저희가 지원한 업체들을 통틀어서 저희 내부적으로 부르는 이름인데요. 지금까지 총 420억 원 정도 지원이 됐고, 전국에 2,600개소의 개인창업지원을 그동안 진행했습니다.”

자세한 사업 소개를 맡아준 사회연대은행(사)함께만드는세상 지원본부 안준상 본부장의 인상 자체가 사회연대은행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금융기관을 찾아가 대출신청을 해본 사람들은 동감할 것이다. 금융기관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그 앞에서 얼마만큼 스스로가 초라해져야 하는지, 승인 여부에 얼마나 가슴 졸여야 하는지를 말이다. 그런데 사회연대은행의 사무 공간 분위기는 일반 시민사회단체의 실내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위계나 격식 같은 건 아예 보이지 않았고, 각자의 활력으로 실내 전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안 본부장의 스타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희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꼭 필요한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지원업체 대표님들의 창업기를 직접 듣거나 읽어보면, 실패와 성공에 이르는 모든 과정 속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어요. 진정으로 삶의 한가운데서 희망을 일구어 가시는 분들입니다. 어쩌면 저희들한테 사후관리를 더욱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 분들이 바로 지원업체 대표님들이 아닐까 실감하게 됩니다.”

사회연대은행의 한쪽 공간에는 그동안 진행했던 모든 창업지원업체들의 관련 자료가 벽면 가득 보관되고 있다. 지원자가 직접 작성했던 첫 지원서부터, 심사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한 서류들이 지원업체별로 제각기 한데 묶여 있다. 승인 이후에 기록되는 서류들이 더 많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 직접 방문하며 뛰어다니는 컨설턴트의 전문적인 의견들이 시기별로 정리돼 있다. 지원업체 대표와의 인간적인 면담도 포함돼 있다. 사업의 성공으로 가는 길에 빈틈없이 동반하는 것이다.

 

   
 

당신이 다음 무지개의 주인공입니다

‘손찌검이 잦은 남편과 이혼’, ‘안정된 직장을 잃고 과중채무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돼서’, ‘큰 아이 세 살 때 사업의 실패로 찾아든 가정의 위기’, ‘시간선택제로 입사한 대기업에서 더 이상 근무할 수 없음을 통보받고’, ‘사고로 남편은 하늘나라로 가고 세상 물정 모르던 저는’, ‘처음에 100만 원으로 시작했다가 돌려막기를 하며 결국 제3금융권의 고금리대출에다가 일수까지 손을 댄 결과로 채무가 1억 원까지’, ‘정말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를 준다면’….

창업 신청자들이 처음에 제출했던 신청사유를 살펴보면,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져 나갔던 절망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무지개가게’ 창업자들의 성공담은 모두가 머나먼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도 주인공이 될 만한 생생한 인생 도전기임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된다. 그들이 진솔하게 털어놓은 스스로의 고백만 듣는다 해도, 남의 얘기가 절대 아님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아빠를 보여 주고 싶다’, ‘백 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해낼 것이다’, ‘자존심은 버리고 아주 작게 시작하겠다’, ‘먼저 간 남편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한테 수고했다고 한마디만 해 달라’, ‘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찾지는 않았지만 희망은 꼭 있다고 믿는다’, ‘최악의 상황이야말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때다’, ‘내 아내에겐 내가 유일한 희망이다.’

“사회연대은행을 설립하신 이종수 전 대표님의 역할이 크셨죠. 금융에서조차 소외되는 이들의 지원을 위해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셨어요. 그라민은행과 같은 취지의 은행을 만들고 싶어 하셨는데, IMF사태가 터지면서 아래로부터의 변혁을 설계하고 실천하시게 됐죠. 2002년 말에 연구모임을 확대해서 단체로 조직화했고, 사회연대은행이 공식 출범하면서 2003년부터 ‘여성가장창업지원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회연대은행의 가치는 기금을 후원하는 수많은 대기업과 대표적인 금융, 정부 기관 단체들의 명단만 살펴봐도 그 무게감을 알 수 있다. 일반서민 입장에서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사회연대은행을 신용하게 만드는 건 현 이사장의 성명을 밝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마을’의 촌장이자 전임 대한성공회 대주교가 사회연대은행의 현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바로 김성수 이사장이 사회연대은행의 정신적 지주로 굳건히 자리를 잡아주는 것이다.

“유누스 박사의 조국인 방글라데시는 경제적으로 최빈국이었죠. 국민 대부분이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그들을 괴롭히는 건 대부업체들의 살인적인 이자율이었고,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에도 힘겨운 이들한테 돈을 못 갚는다는 건 죽음을 의미했어요. 게다가 무슬림 사회였죠. 그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시작할 최소한의 시드머니(seed money, 착수금)조차 없는 빈곤층의 현실을 직시했어요. 그래서 마이크로 크레디트 운동을 시작하게 된 거죠. ‘가난하다고 돈을 못 갚는 건 아니다. 가난과 상황능력은 다른 거다. 최소한의 대출과 지원은 인권을 위한 것이다.’”

유누스 박사의 모든 지원에는 절대적인 전제조건 하나가 있다. 반드시 직접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연대은행의 기본지침도 이와 같다. 지원대상과 지원가능 업종, 지원한도와 지원금리, 상환방법 등의 세세한 대출 안내까지 이 지면에 정리할 필요는 없지만, 안 본부장이 분명하게 밝힌 건 신청서류심사가 상당히 엄격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직무능력평가 과정은 말 그대로 실전 그 자체였다.

“사실 1차 서류심사는 대부분 통과됩니다. 대신 2차 현장심사와 직무능력평가, 최종심사는 실제 능력과 일하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하게 확인합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하소연만 하는 것과, 실제 일을 할 수 있고 반드시 해내겠다는 준비가 확실하게 갖춰진 걸 구분하고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최종 결론을 내리는 거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신청자들의 일할 능력을 직접 확인합니다. 단적인 예로 말씀드린다면, 미용사 자격증을 며칠 전에 취득해서 당장 미용실을 창업하겠다고 한다면, 오랜 경력의 전문 미용사들 앞에서 미용기술능력을 실제로 증명해야 합니다. 실제 능력을 있는 그대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거죠. 이와 같이 창업에 정말로 준비된 신청자들만 엄선합니다.”

그렇게 준비된 이들마저도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게 이 사회 속의 ‘창업’이라는 도전이다. 그렇게 까다롭게 선정하는 대신, 최종 선정된 지원업체 대표들한테는 분명한 지원을 약속하고 책임진다. 성공에 다다를 때까지 함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지개가게’ 대표들은 사회연대은행 입장에선 가족과 같은 존재들이라고 한다. 안준상 본부장은 자신이 자주 찾는 단골집 몇 군데를 언급했다. 서울 곳곳마다 마음 편하게 향하는 ‘아지트’들이 있는데, 그 모든 곳들이 바로 ‘무지개가게’들이라는 것이다. 곱창이 먹고 싶으면 ‘어디’, ‘치맥’이 그리운 날에는 ‘어디’, 차 한 잔의 여유가 필요할 때는 ‘어디’, 그 모두가 반가운 얼굴과 마주할 공간들이다. 창업 성공담의 주인공들을 마음 편하게 만나는 나날이 지속되는 셈이다.

“2005년에 저희는 일반 시중은행들의 휴면예금, 그러니까 잠자고 있는 예금들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어요. 당시 야당의 끈질긴 반대로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대통령의 의지와 함께하면서 휴면예금관리에 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됐습니다. 사회적기업육성법도 그 무렵 통과가 됐죠. 어떤 면에서는 2007년이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경제의 변곡점을 이뤄낸 시기로 기록될 겁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숨통이 트이게 만드는 법제도를 완성했으니까요. 하지만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휴면예금을 ‘서민금융’이라고, ‘미소금융’이라고, ‘휴면예금관리공단’과 ‘소액서민금융재단’이라고, 지난 정권에선 ‘서민금융진흥원’이라고 명칭만 계속 바꾸면서, 민간주도로 시작했던 서민 취약층 지원사업을 정부 주도로 완전히 뒤바꿔놓았어요.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전 세계적인 합의가 분명한 선언으로 공인돼 있습니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입니다. 우리나라만 그 선언을 유일하게 어기고 있는 거죠. 하지만 사회연대은행은 초심 그대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단법인이니까요.”

“창업에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준비를 마친 <함께걸음> 독자님들이 계시다면, 저희도 적극 환영하며 의견을 경청하겠습니다. 신청의 문을 더 활짝 열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만, 어떤 경우라도 미리 닫아놓는 일은 절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준비된 예비 창업자분들이 계시다면, 분명한 성취의 길을 함께 걷겠다고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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