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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현병을 모른다
배용진 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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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7  09:4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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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 묶인 병

폭탄을 몸에 매단 남자가 지하철에서 여자를 인질로 잡고 난동을 부린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신속한 조사로 남자가 조현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러고는 특공대에게 남자가 최근 약을 먹지 않아 망상이 심해졌다고 전한다. 남자는 폭탄 버튼을 누르지만, 선 하나가 제대로 연결돼 있지 않아 범행은 미수에 그친다.

지난달 11일 방영한 OCN 드라마 <보이스2> 1화 내용이다. 정신장애 당사자 언론 <마인드포스트> 박종언 기자는 다음날 기사에서 “조현병 증상이 심하면 간단한 계산도 하기 어렵다. 급성기엔 두려움으로 방 안에서 몸을 벌벌 떨기도 하고 환청에 귀를 막는다”며 급성기 상태인 사람이 폭탄을 만들고 지하철에 뛰어들어 인질극을 벌인다는 설정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보이스2> 제작진은 8월 16일 “극중 묘사가 자칫 조현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보이스2> 제작진이 사과문을 올린 다음날, 한국일보 등 여러 언론에서 ‘조현병이 있는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내용을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 정작 기사 본문에는 범인의 장애유형을 ‘정신지체장애 2급’으로 밝힌다. ‘정신지체장애’는 지적장애의 과거 이름으로 조현병과 다르다. 명백한 오보다.

작가는 테러범을 구상하며 조현병을 떠올렸다. 기자는 살인 사건 범인이 지적장애가 있다는 내용을 보고도 조현병을 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지난달 일주일 간격을 두고 나온 이 드라마와 기사는 무엇을 알려주는가. 우리 사회는 조현병이 있는 사람을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고, 가족을 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조현병과 범죄는 하나로 묶였다.

 

밝혀지지 않아 낯선 존재

조현(調絃)이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이다. 조현병은 신경계의 조율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은 걸 조현에 비유한 병명이다. 이전 명칭은 ‘정신분열병’이었으나 여러 인격이 존재하는 병으로 오해하거나 타인을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하자 2011년 조현병으로 대체됐다. 병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뇌나 유전자 문제로도 여기지만, 아직 조현병을 특징짓는 단일 뇌 이상이나 단일 유전자는 찾지 못했다.

서울시공공보건의료재단 이영문 대표이사는 “지난 20년간 선·후진국 관계없이 평생 유병률은 1% 정도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 말은 조현병이 사회 환경적 요인보다는 인간의 보편적인 생물학적 원인이 사회 환경과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원인이 분명할 때 ‘병’이라고 부른다. 조현병은 엄연히 말해 원인을 모르며 양상 자체가 매우 다양하다. 편의상 병으로 부르더라도 하나의 반응(reaction)이나 증후군(syndrome)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련 수업 때 총기 분해하는 법을 모르는 친구에게 알려줬다. 그런데 막상 내가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 이후로 다른 사람과 밥을 먹으면 내 능력을 그 사람에게 빼앗긴다는 망상이 시작됐다.” (김진구, 54세, 15세에 발병)

“즐겨듣던 라디오 디제이가 그만둔다는 소식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즈음 시작된 것 같다. 모두가 나를 욕하고 비웃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부모님을 조종해 나를 해치려는 것 같았다. 가족도 믿을 수가 없었다. 늦게까지 거리를 배회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김미현, 43세, 24세에 발병)

“열아홉 살 겨울 처음 환청이 들렸다. 환청은 나에게 ‘미친년’이라고 욕했다. 욕을 들으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지쳐갔다. 가슴이 답답하고 피곤하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됐다.” (박민경, 41세, 19세에 발병)

조현병은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처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주요 증상은 망상과 환각이다. 망상은 객관적 증거가 없는 믿음이다.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증거가 나와도 바꾸려고 하지 않는 신념이다. 그 신념은 같은 문화권이나 동시대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한다. 대표적인 망상 종류로는 누군가 자기를 비난하고 헤치려 한다는 식의 피해망상과 자신을 신의 아들과 같이 대단한 인물이라고 믿는 과대망상이 있다.

환각은 환청·환시·환촉 등 외부 자극 없이 소리나 형상 등을 지각하는 것이다. 조현병 증상으로 가장 일반적인 건 환청이다. 그러나 망상과 환각이 있다고 모두 조현병은 아니다. 코카인에 중독되면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환촉을 느끼고, 중환자실 입원으로 망상과 환각 등을 겪기도 한다. 조현병이라고 같은 망상과 환각을 겪는 것도 아니다. 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증상은 다양하고, 그로 겪은 경험은 각자 다르다.

 

   
 

강제 입원, 또 다른 트라우마

“열 번 넘게 입원했다. 자의로 간 적은 없다. 면담 없이 바로 폐쇄 병동에 입원시킨 적도 있다. 한번은 수면제를 먹인 다음 잠든 사이에 옷을 갈아입혔다. 옷은 나 혼자 갈아입을 수 있다. 굳이 왜 그런 건지 납득이 가지 않았고 불합리함에 화가 났다.” (박연홍, 49세, 34세에 발병)

“한번 가면 1~2주 있는 게 아니라 몇 개월, 몇 년을 있게 될 수도 있다. 그 안에서는 우리의 모든 게 지워진다. 일반 사람도 병원에 가기 싫어하지 않나. 강제로 입원하면 좋은 병원이든 아니든 어쩔 수 없이 트라우마가 생긴다.” (안창수, 49세, 24세에 발병)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신요양시설 실태 조사를 했다. 전국 정신요양시설 59개소 중 30개소를 무작위로 추출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7%는 다른 사람이 안 보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없었고, 58.3%는 타인에게 노출된 상태로 목욕해야 했다. 응답자 65% 이상이 입소한 지 10년이 넘었으며, 36.2%는 1997년 이전 입소해 20년 이상 병원에 머물고 있었다.

 

언론이 만든 잠재적 범죄자

“TV에서 조현병을 보도할 때면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위험한 사람인가?’ 인생을 떳떳하게 살고 싶은데, 잘못한 게 없는데도 쉬쉬하며 살아야 한다. 천형(天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김나미, 38세, 29세에 발병)

‘정신분열’이 부정적 의미로 사용돼 ‘조현’으로 용어를 바꿨지만, 얄궂게도 조현병은 범죄와 한 쌍이 됐다. 2016년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한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언론은 범죄자에게 조현병이 있기만 하면 빼놓지 않고 그 사실을 가장 중요한 정보로 전달했다. 이런 방식으로 보도하면 어떤 집단이든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조현병이 있는 사람 8천 명과 일반 인구 8만 명을 대상으로 한 스웨덴 연구에 따르면, 조현병이 있는 참가자가 폭력 범죄와 관계된 비율은 일반 참가자의 약 1.2배였다. 연구진은 조현병이 아니라 술이나 마약 등의 약물 남용이 범죄와 관련 있는 유의미한 변수라고 결론지었다. 총기 난사와 정신 건강 관련성에 관한 미국 연구에서도 총기 난사자 대부분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연구자는 “폭력 범죄 원인을 정신 질환으로 몰아갈 때 정작 중요한 사회적 요인은 가려진다”고 지적했다.

 

약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히포크라테스는 ‘환자에게 어떤 병이 있느냐보다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언론은 대체로 조현병이 약을 잘 먹고 관리하면 문제없이 지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울시공공보건의료재단 이영문 대표이사는 “약물 치료가 만능인 것처럼 여기는 건 한국 정신과에서 지나치게 약물 위주로 치료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과하고 다를 바가 없다. 생물학적·심리학적·사회학적 측면을 모두 결합해서 봐야 한다.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심리 상담과 주변의 지지도 필수다.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복지도 필요하다. 조현병은 주로 젊은 나이에 발병하기 때문에 학업을 놓치고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등 사회적으로 낙오되기 쉽다. 가장 중요한 건 인권 존중이다. 자유만을 보장해도 많은 증상이 호전된다”고 말했다.

조현병 당사자인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교(USC) 법대 교수 엘린 삭스(Elyn Saks)는 테드(TED) 강연에서 자신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훌륭한 치료. 둘째, 그와 그의 병을 알고 이해하는 가족과 친구들. 셋째, 그를 지지해 주는 직장. 강연을 끝내며 그는 언론에게 부탁한다. “우리를 병의 한 종류가 아니라 깊이 있는 인간으로 그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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