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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기어가는 시기가 필요하다”<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김원영 인터뷰
배용진 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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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0  09: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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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기 어려운 세상이다. 장애인은 존재 자체가 잘못됐다고도 여겨진다. 잘못된 존재는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개별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다. 잘못된 존재는 매력을 드러내지 못해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 이는 실격당한 삶이다. 실격당한 자들을 변론하기 위해 변호사 김원영이 책을 썼다. 실격당한 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1. 우아하지 않기

휠체어에 앉아서도 우아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 못한 순간도 많다. 예컨대 수동휠체어를 타고 다닐 때는 방석을 많이 깔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 최대한 편안한 척 앉아 있지만, 오후쯤 되면 힘들어서 점점 자세가 흐트러진다. 또 화장실을 갈 수 없는 장소에서는 생리 현상이나 통증을 참느라 우아함을 유지하기 어렵다.

 

지난 4월, 신체 다섯 곳을 땅에 대고 절하는 오체투지 행진에 참가했다. 땅을 기는 행위는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 집회에서 전하는 메시지나 달성하려는 정치적 목적에 동의해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렇지만 투쟁 형식이 달랐다면 참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바닥을 긴다는 행위는 어떤 물리적 기구에도 의존하지 않고 내 몸 자체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이 내겐 자연스러운 동작이다. 사회에는 어떤 몸이 아름답고, 어떤 동작이 자연스럽고 매너 있다는 신체에 관한 규범이 있다. 장애인은 자기 몸을 움직이는 것에도 많은 사회적 억압을 받는다. 거기서 자유로워 질 필요가 있다.

 

그런 시도를 자주 해 왔는가.

연극에 관심이 많다. 직접 참여한 적도 있는데, 연습에서 신체훈련을 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도 휠체어에서 내려왔다. 자연스럽게 내 몸을 움직이는 데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일상에서는 수영장에 간 것 외에 그런 시도를 한 기억은 없다. 생각은 해봤다. 20대에는 남의 시선이 무척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창피해도 그냥 한번 학교에 기어가볼까 생각한 적은 많다.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2. 연극 그만두기

“사람들 대부분이 보는 것은 몸짓의 어색함, 말의 어눌함,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거동 등이다. 그 뒤에 감춰진 것을 그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 숱한 시선 속에서 이뤄지는 이런 식의 축소는 무거운 중압감으로 그 사람을 짓누르고, 그의 개별성을 말살하고, 은밀한 상처를 벌려놓아 아물지 못하게 한다.” (알렉상드르 졸리앵, <인간이라는 직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재인용)

 

타인의 시선을 견디기 위해 자아를 둘로 분리해 ‘보이는 나’를 내세운 전략이 책에 나온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은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이 연극, 즉 퍼포먼스의 일종이라고 했다. ‘보이는 나’는 사회적 퍼포먼스를 하는 주체로, 세상이 자신을 바라보는 대로 연기해 주고 모욕으로부터 진짜 자신을 지키는 자아다.

 

자아를 철저히 분리하며 평생 살 수 있는가.

책에서 그 이야기를 한 건 그것이 효과적인 자기방어 수단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진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권력자는 남한테 어떻게 보일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사회적 눈치를 봐야 하는 소수자들이 ‘보이는 나’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데, 계속되면 삶 자체가 실존에서 멀어진다.

 

장애는 죽는 순간까지 연기하게 만드는가. 장애를 비관했다고 오해할까봐 나체로 투신자살하려는 연극 인물을 소개했다.

그만큼 장애가 자존감에 큰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온갖 이유로 연애에 실패해도 ‘쿨’한 자의식 강한 사람도, 연애를 못하는 이유가 장애라면 그러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애로 자신이 무력한 상황에 놓임을, 장애 있는 자기 신체가 아름답지 않음을 인정하기는 굉장히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푸른잔디회’는 파괴력이 있었다.

 

   
 

3. 부정하고 ‘나’ 드러내기

푸른잔디회는 1970년대 초반 주로 활동한 일본 뇌성마비 장애인단체다. 이들은 장애인을 소외시킨 비장애인의 문명을 부정하고 장애인을 억압하는 현실을 감추는 사랑 또한 부정했다. 이들의 목표는 ‘장애인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관념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었다. 김원영은 어떠한 연극적 요소 없이 모든 것을 철저히 부정하는 푸른잔디회의 강령을 처음 봤을 때 ‘완전한 문장’을 만났다고 느꼈다.

 

푸른잔디회를 긍정하는가.

그들은 사회적 규범과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을 포기했다. 쉽게 말해서 모든 눈치 보기를 부정했다. 사회적 소수자가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자기를 있는 그대로 선언하는 시도는 역사적으로 필요하다. 워낙 급진적인 운동 방식이라 오래가지 못했지만 푸른잔디회가 뿌려놓은 씨앗은 80년대 일본 장애 운동에 영향을 줬고, 한국의 장애인 자립생활 운동과도 연결된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고상함과 우아함을 유지하며 자아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한번쯤 바닥을 기어가는 시기가 필요하다.

 

강인한 투사는 되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계속 그렇게 살기는 너무 힘들다. 근래에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을 하다가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본다. 여성도, 장애인도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다. 푸른잔디회와 같은 선언이 어떤 시기에는 개인과 사회에 필요하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4. 서사를 정체성 삼기

장애를 개인의 스타일로 보는가.

당연히 스타일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내 캐릭터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장애가 없었다면 나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됐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장애인이 장애를 스타일로 여겨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아직은 장애를 ‘결여’로만 보는 인식이 많아서 그렇지 않다고 책에 길게 썼다.

 

‘김원영’은 그대로 있고 장애만 빼낼 수 있다면.

명확히 대답하지는 못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모든 것이 똑같고 장애만 없앨 수 있다면 제거할 것 같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가서 장애를 없앤다면 그 ‘김원영’은 다른 사람이다. 지금보다 훨씬 색깔 없고 재미없는 인간일 것이다. 추정컨대 세상에 피해를 주는 안 좋은 인간이 돼 있을 것 같다. (웃음)

 

한 강연에서 강한 ‘장애정체성주의자’는 아니라고 했다.

비슷한 맥락의 말을 했다. 장애인 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는 장애가 인종이나 성별 같은 정체성이기 때문에 이것을 바꾸거나 없애는 걸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장애는 단순히 중립적인 속성으로 볼 수 없다. 장애로 인해 개인이 처하는 상황은 너무 다양하다. 어떤 장애는 일상적인 고통이나 통증을 수반한다. 무조건 장애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길 강요한다면 그건 폭력이 될 수 있다.

 

장애 정체성 운동가가 장애를 없애면 모순인가.

장애를 없앤다고, 또 장애가 있는 아이를 안 낳는다고 쉽게 장애 정체성이 없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장애 자체가 정체성이기보다는 장애를 가진 개개인의 서사가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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