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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뻥 뚫릴 듯 시원한 ‘슈퍼 도우미 할아버지’ 뉴스오사카에서 온 편지
글과 사진. 변미양/지체장애인. 오사카 거주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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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0  1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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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를 경신했다는 올여름 무더위, 잘 넘기고 계십니까? 오사카도 정말 더웠어요. 더우니 시원한 에어컨 틀어놓고 가만히 있는 게 최고라지만 전기세 걱정이며, 꽉 막혀 답답하니 에어컨에만 의지하고 살라는 건 해결책이 못되겠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삼복더위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지만, 일본에서는 여름에는 역시 시원한 음식을 즐기고 그중에서 ‘히야소멘(冷そうめん)’은 정평이 나 있어요. 우리식으로 말하면 소면인데요, 한국에서는 김치도 좀 썰어 놓고 비빔국수로 잘 먹잖아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멘쯔유’라는 맛간장이 있는데 거기에 시원히 얼음을 띄워 소면을 찍어 먹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풍유를 즐기면서 재미나게 먹는 방법이 바로 ‘나가시 소멘(流しそうめん)’이에요. 원래는 시원한 계곡이나 강가 주변에서 대나무를 갈라 만든 수로를 설치하고 삶은 소면을 흘려보내면 물 따라 내려 오는 소면을 건져 먹는 거라고 하네요. 자연 속에서 즐긴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리 멀리 나서지 않고도 여름철이면 재미 삼아 ‘나가시소멘’ 행사를 벌이는 곳이 꽤 많아요. 가정에서도 물론 즐기고요.

얼마 전 동네 시장통에서 아이들을 위한 여름방학 이벤트로 ‘나가시소면’ 가게가 열렸는데요. 약간 허술하지만 의자 등을 연결해 받쳐 논 대나무통 수로에 수돗물을 흘려보내면서 소면을 띄워 보내면 아이들이 건져 먹는 거예요. 가정에서는 진짜 대나무 통을 연결하는 건 큰일이니까 플라스틱으로 만든 ‘나가시 소멘’용 기구도 팔고 있어요. 저도 전에 먹어본 적이 있는데 국수 맛보다는 재미더라고요. 덥다고 탓하고 짜증만 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슬기롭게 넘어가려고 하는 재치에서 오랜 삶의 고수들에게 한 수 배우는 감마저 듭니다.

최근 일본에서 사람들을 가장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감 넘치는 화제는요, 지난 8월 15일 아침 뉴스의 주인공이랍니다. 일본에게 그날은 73년 전 패전의 날이니까 이런 저런 전쟁과 평화, 일본의 현재 좌표를 되묻는 특집이 많이 다뤄지죠. 거기에다 1945년 8월 15일 항복을 국민에게 알리던 일왕의 라디오 방송이 빠지지 않고 등장해요. 그런데 이번 아침에는 68시간 전 실종됐던 두 돌이 막 지난 남자 아이를 무사히 찾아냈다는 뉴스가 전 채널을 장식했어요. 사흘 전, 아이가 외할아버지랑 4살 형이랑 같이 집 근처 해수욕장을 향해 걸어가다가 안 가겠다고 집으로 혼자 돌아갔는데 실종돼 경찰 등이 찾고 있다는 뉴스를 안타깝게 봤어요.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도 난감한 점이 많았지만, 일단은 여름휴가로 외갓집에 놀러 갔다가 그런 불의의 일을 당하다니 말도 겨우 한다는 두 살배기 아이와 가족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남일 같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무사히 찾았다는 뉴스가 정말 반가웠어요.

2살 아이를 구한 사람은 그날 아침 수색단에 참가한 78세 할아버지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슈퍼 도우미’였대요. 65세를 맞이하며 경영하던 생선가게 일을 정리하고, 이제는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결심했대요. 그래서 지진이며 쓰나미며 폭우피해며 전국 각지로 이재민들을 찾아가 복구 작업을 도와주는 일을 10여 년간 꾸준히, 묵묵히, 작은 경자동차에서 먹고 자며 자비로 해왔다는 거예요. 이번에도 얼마 전 큰 비로 수해를 입은 히로시마 구레라는 지역에서 복구 작업을 돕고 있다가 아이가 실종됐다는 신문기사를 보며 마음에 걸려는데, 사흘이 돼도 못 찾았다는 기사를 보고 자동차를 네다섯 시간 운전해 아이의 외갓집 근처로 찾아왔대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6시 실종 수색대에 아이를 찾아보겠다고 보고하고, 아이의 집을 방문하여 인사한 후 외갓집 뒤편 산길로 방향을 잡아 수색을 시작했대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니기를 30분, 집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산길 아래 개울 옆에서 아이가 “나 여기”라고 대답하는 목소리를 듣고 달려가 “장하다, 잘 견뎌냈다” 말하며 허기진 아이에게 사탕을 건네주었다고 하네요. 곧바로 아이를 타월에 감싸 안고 산을 내려와 아이 엄마의 품에 안겨 주었대요. 경찰을 비롯해 전문수색대가 사흘을 찾아도 못 찾던 아이를 단 30분 만에 찾아내다니 정말 기적 같은 이야기 아니에요?

그런데 나중에 이 할아버지가 그간 해온 여러 봉사활동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건 단지 우연한 기적이 아니더라고요. 여러 재해 지역을 다니면서 쌓아온 상황 판단력과 이전에 실종된 아이의 수색 활동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감각. 그리고 가장 곤란한 환경 속에서도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된 도구와 장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다치거나 아파서 봉사를 하기는커녕 신세를 지면 안 되니까 78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체력을 단련해 왔다는 겁니다. 날마다 8킬로미터의 러닝 운동을 빠뜨리지 않는다고요. 이렇게 준비된 몸과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기에 그 뜻이 하늘에 통하지 않았을까요?

매스컴에서는 ‘슈퍼 도우미’라고 이 할아버지를 부르지만, ‘얼짱’, ‘몸짱’, 스펙을 겸비한 슈퍼맨과는 거리가 멀어요. 할아버지 스스로 자신을 소개할 때 배운 것 없고, 얼굴 달리고, 피부 거무스레하고, 다리가 짧아 내세울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 할아버지의 뉴스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수줍게 말하는 그 분, 세상에 잘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슈퍼 도우미들에게 갈수록 이상해진다고 하는 지구도, 세상도 지켜주십사 희망을 걸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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