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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베스트 선택, 첼로(2)소수장애인
글과 사진. 박관찬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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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20  1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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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런 사실 아시나요? 이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악기 중에 연주자의 심장에 가장 가까이 닿아서 연주하는 악기가 바로 첼로라는 것을요. 그래서인지 첼로 선생님의 말씀처럼 첼로는 연주자의 마음과 영혼을 담아 연주하는 악기인 것 같아요. 그렇기에 아무리 소리를 듣기 어렵고, 진동에만 의지한다고 해도 연주할 수 있어요.

 

악기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요

저는 하루 일과 중 첼로 켜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레슨을 위해서도 꾸준히 연습을 해야 했기에 집에서 틈만 나면 첼로를 켰습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죠. 집 안처럼 막혀있는 공간에서는 첼로의 진동이 좀 경직된 느낌이 들어서 항상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켰습니다. 그러면 첼로의 선율이 퍼져나가는 느낌이 왔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마음껏 연습을 하고 외출을 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문에 무언가가 붙어 있었어요. 광고 전단지인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손글씨로 적은 포스트잇이었습니다. 저시력 때문에 그자리에서 바로 읽기는 쉽지 않으니까 찰나의 순간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누가 나한테 작업을 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오더라고요. 일단 메모지를 떼어 다시 집으로 들어와 내용을 읽어보았습니다. “악기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요. 여기서는 자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죠. 그동안 제가 아주 커다란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거죠. 저만 좋아서 첼로를 켜는 거지만, 그 소리가 주민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전혀 고려도 해보지 않았어요. 이전에 살던 건물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거든요. 나중에 알게 됐지만 지금 거주하는 건물은 방음장치가 제대로 돼있지 않았어요. 아무리 제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지만 다른 사람들은 첼로의 소리가 저음이고 크니까 그만큼 많이 시끄러웠을 거예요.

그 후 집 안에서 첼로를 켜기 엄청 망설여졌습니다. 아니, 죄책감이 들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아요. 더 이상 집 안에서는 연습하면 안 될 것 같았죠. 많은 고민 끝에 밖으로 나갔습니다. 캠퍼스의 한적한 어느 벤치에 앉아서 연습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지나가던 사람의 시선도 신경 쓰이고 부끄러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연습에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탁 트인 공간에서 어떠한 막힘없이 울리는 첼로의 웅장한 진동은 그렇게 밖에서 연주할 때 훨씬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아 충분히 만족스러웠어요.

 

정말 필요했던 용기

겨울이 되니 더 이상 밖에서 연습을 할 수가 없었어요. 날씨가 추운 것도 큰 이유였지만 현악기인 첼로는 주변 기온의 영향을 크게 받거든요.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까 자연스럽게 레슨도 중단됐어요. 제가 좋아하는 첼로를 켤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어요. 이대로라면 다음해 봄, 날씨가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요. 평소 레슨 받던 곳은 버스를 타야 해서 연습하러 매번 가기 부담스러웠어요. 혼자 맨몸으로 가는 건 괜찮지만 첼로는 잘못 부딪치고 하면 음정 조율로 적잖은 부담이 들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흐를수록 첼로를 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럴 여건이 되지 않으니 너무 힘들었어요. 결코 날씨가 따뜻해질 봄까지 기다리지 못할 것 같았죠.

여러 고민 끝에 제가 거주하는 건물의 주민들 모두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어요. 시청각장애가 있어서 그동안 피해주는지 몰랐다고, 죄송하다고. 하지만 첼로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첼로가 주는 의미가 정말 크다고. 매일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딱한 시간 동안만 집 안에서 연습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는 내용과 저의 연락처를 남겼습니다. 4층짜리 건물의 집집마다 줄 편지를 준비하면서 마음속에서 두방망이질이 무한히 반복됐습니다. ‘과연 이래도 될까? 괜히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건 아닐까? 이러다 잘못하면 여기서 쫓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

준비한 편지들을 들고 한밤중에 2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서 가장 가까운 집 문틈에 편지를 꼽는데 손이 덜덜 떨렸어요. 그리곤 수많은 생각을 합니다. ‘다시 집으로 갈까?’ ‘내년 봄까지 기다릴 자신 있어?’ ‘누가 치킨 받으려고 불쑥 나오면 어쩌지?’ ‘그래도 용기를 내보자.’ 자동조명 시스템 때문에 복도 조명이 켜졌다 꺼졌다 바뀔 때마다 괜히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어요. 그렇게 4층, 3층, 2층으로 내려오면서 각 층의 문틈마다 꾸역꾸역 편지를 꽂아두고 후다닥 도망치듯 집 안으로 들어왔네요.

 

   
 

좋은 이웃

그날 밤부터 속속 문자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몇 호라고 밝히면서 마음껏 연습하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동안 예쁜 첼로소리를 엿듣고 있었다고 하는 분도 있고, 오히려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저를 정말 감동시킨 내용의 문자가 있었어요. “인생의 한 부분인 첼로를 마음껏 즐기지 못해 속상하시겠어요. 편지 잘 받았고요, 예쁜 첼로연주 잘 감상할 테니 열심히 연습하세요.”

쫓겨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연습하지 말라고 반대하는 분이 없어서 더 다행이었죠. 그때부터 매일 오후 1시부터 2시까지는 첼로를 연습하는 시간으로 정하고, 그 시간을 꼭 지켰습니다. 물론 하루에 1시간 연습은 너무 적고, 매일 그 시간대에 제가 집에 있는 것도 아니죠. 그래도 첼로를 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뻤어요. 조금만 참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밖에서 더 열심히 연습하자고 다짐하면서.

그런데 집 안에서 연습을 하며 문득 궁금해졌어요. ‘다른 집에 첼로 소리가 얼마나 크게 전달될까?’ 문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던 기억 때문에 연습 중에도 누가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린 건 아닌지 착각이 들어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기도 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한 번 더 냈습니다. 감동적인 문자를 보내준 분의 문자를 찾아서 여쭤보았어요. 첼로의 소리가 얼마만큼 큰지 등 제가 궁금한 점을요. 3층에 거주하시는 그 이웃 말로는 제가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 다 알 정도로 들린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부끄러웠어요. 그러면서 예전에 누군가 포스트잇을 문에 붙여놓은 이야기를 하며 조금 트라우마가 있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그 감동적인 문자를 보내준 이웃이 포스트잇을 붙였던 그분이라는 겁니다.

그분이 제 편지를 받고 많이 미안해했다고 하더라고요. 첼로가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시끄럽다고 말해서. 그렇지만 그분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줄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시도 때도 없이 연습했을 거예요. 그 이웃과의 진솔한 대화 덕분에, 그 뒤로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마음껏 연습할 수 있게 되었지요. 정말 라디오에 보내야 하는 사연 같지 않나요?

 

첼로를 통한 장애인식개선

영화를 통해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첼로는 단순히 취미를 넘어 제 인생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의 다양한 활동에 함께하며 소중한 추억을 많이 만들었어요. 학교에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러 가면 첼로를 가져가서 연주하기도 합니다. 첼로를 가져가지 않을 때는 연주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잘 보지도 잘 듣지도 못하는데 첼로를 연주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학생들에게 충분히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줄 수 있겠죠?

첼로와 함께하며 하이라이트로 기억하고 있는 순간도 있어요. 대학 내 합창동아리 정기공연 때 스페셜게스트로 초청돼 연주한 적이 있어요. 피아노 반주와 함께였는데, 첼로를 배우면서 다른 악기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었어요. 제가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로지 저의 연주에 피아노 반주자가 맞춰줘야만 해서 연습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정말 열심히 연습했고, 공연 날 단골 미용실에서 멋지게 머리 손질도 받고 연주했어요.

이렇게 첼로가 스스로에게 행복, 그리고 힐링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결혼식 축가 연주 등으로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도 감동과 그 어떤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할 때가 많아요. 예전에 누군가 그랬어요. 약간 떨리는 저의 첼로 소리가 마치 제 굴곡진 인생을 표현하는 듯하다고요.

진동에만 의지하는 제가 느끼기에도 연주할 때 첼로의 풍성한 소리가 잘 나진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풍성한 진동을 가득히 느끼며 마음껏 연주해보고 싶어요. 그만큼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악기인 첼로를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배우고 연습할 것이니 언젠가 지금보다 더 풍성한,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겠죠?

음정을 짚고 스스로 악보를 보면서(사실은 외우면서)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해바라기의 곡 ‘사랑으로’에 도전한 적이 있어요. 제가 비장애인이었을 때 접했던 곡이라 멜로디를 아는 만큼 충분히 금방 마스터해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멜로디만으로 되지 않고 쉼표가 있는 부분과 박자를 맞추는 등, 연주곡 자체에 ‘스토리’를 넣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이 곡을 마스터하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렸지만, 해냈을 때의 그 성취감과 뿌듯함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도 늘 그때의 그 느낌과 열정을 잃지 않으려고 초심의 자세로 첼로를 대하고 있어요.

요즘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특히 청년들에게 첼로를 추천하고 싶어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심장에 담긴 뜨거운 열정을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악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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