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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는 어떻게 장애인을 옥죄었는가
배용진 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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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2  14: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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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7월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 1988년 처음 시행되고 약 30년 만이다.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삶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장애인이 복지 서비스를 받으려면 일단 장애인으로 등록해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이 여섯 등급으로 장애인을 구분하면 신청할 수 있는 서비스와 복지 정도가 정해진다. 한국의 등록 장애인 약 255만 명이 매겨진 등급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 장애인은 등급에 가로막혀 자주 인간적인 삶을 포기해야 했고, 때로 목숨도 잃었다. 이제 장애인이 등급 때문에 죽는 일은 사라질까. 이제 장애인은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직접 보고 판단해 주세요”

“내내 1급으로 살았는데 갑자기 2급을 받았습니다. 다리 길이는 유치원생 정도밖에 안 되고, 척추는 s자로 휘어 골반과 갈비뼈가 맞닿아 살가죽이 만날 찢어집니다. 도움 없이는 절대 휠체어에 앉지 못합니다. 누군가 일으켜 세워 줘야 하고, 앉힌 다음 균형까지 잡아 줘야 합니다. 앉으면 휜 척추 탓에 점점 숨이 가빠오고 가슴에 통증이 와서 오래 앉지도 못합니다. 낮에는 활동도우미 분들께 의지하고 밤에는 85세 노모에게 의지합니다. 제게 두 다리는 평생 끌고 다녀야 하는 짐일 뿐입니다. 오죽하면 어머니께서 다리를 잘라내고 윗몸으로만 살면 더 편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온몸이 기형인 채로 40년 넘게 살면서 이렇게 깊은 좌절감은 처음입니다. 저를 직접 본 의사들은 1급을 줬습니다. 복지부에서는 서류랑 사진만 보지 마시고 저를 직접 보고 판단해 주세요. 심사 때 제가 참석하면 안 될까요? 앞으로도 몇십 년은 이 몸으로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더 이상 좌절감에 빠져 이 세상을 엉망으로 살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눈물로 호소합니다.”

- 김정화 씨가 2010년 국민연금공단에 보낸 글 요약

2010년 당시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 1급만 신청할 수 있었다. 월 100시간 활동지원을 받던 김정화 씨는 추가 시간을 신청하며 ‘장애등급심사’를 받았다가 급수가 내려갔다. 기존에 받던 활동지원이 취소됐다.

 

장애등급심사로 복지가 확대된다?

‘장애등급심사’는 의사가 판정한 등급이 정확한지 국민연금공단에서 다시 한번 심사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생기기 전에는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의사에게 장애 등급을 판정받아 진단서를 제출하면 별도의 심사 없이 장애인으로 등록됐다. 2007년 중증장애수당 신규 신청자를 대상으로 처음 장애등급심사를 시행했다. 2009년 활동지원서비스 신규 신청자로 심사 대상이 확대됐다. 2010년부터는 새로 등록하는 1~3급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재판정 대상자로 선정된 장애인이 장애등급심사를 받았다.

심사받은 약 9만 명 중 36.7%의 등급이 내려갔다. 등급이 올라간 건 0.4%였다. 당시 복지부는 이 같은 결과를 발표하면서 “그동안 의료기관에서 등급을 후하게 매겨왔다”며 “장애등급심사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장애 등급을 부여할 수 있었고, 장애인 복지를 확대·강화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고 평가했다. “서비스가 꼭 필요한 장애인이 좀 더 지원받으려면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한 복지부는 2011년 애초의 등급 판정 자체를 국민연금공단에서 하게 했다.

   
2010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5일간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사무실을 점거하며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했다.

“왜 장애인이 직접 말하게 하지 않는가”

장애인 복지 서비스가 생기며 공교롭게 심사는 까다로워졌다. 발가락 하나만 겨우 움직일 수 있던 김정화 씨는 2급 장애인이 됐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장애가 심한지, 그래서 생활은 어느 정도 불편하고 삶이 얼마만큼 힘든지를 드러내야 했다. 그런데도 ‘두 다리는 완전히 마비된 게 아니라 겨우 움직일 수 있다’는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복지 서비스 심사 과정은 어떨까. 발달장애인인 동생 장혜정 씨와 활동지원서비스 심사를 받으러 국민연금공단에 다녀온 장혜영 씨는 이렇게 말했다.

“공단 직원은 단 한 번도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만큼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 손에 든 종이철과 우리를 번갈아 보며 우스운 스무고개를 되풀이했을 뿐이다. 장애 당사자인 막내는 아예 처음부터 소통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간주됐다. 공단 직원은 처음부터 나에게 질문을 던졌고 나와 우리 부모님, 또 다른 가족들에 대해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것을 꼬치꼬치 물었다. (…) 하지만 나는 ‘심사 대상’의 입장에서 이 수많은 불쾌함을 그 자리에서 대등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의 불만 사항 자체가 심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알 수 없으므로. (…) 필요한 것은 심사가 아니라 논의와 대화다. 현재의 제도에서 장애 당사자는 대화의 주체가 아니라 관찰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다. (…) 왜 장애 당사자가 무엇을 얼마만큼 필요로 하는지 직접 말하게 하지 않는가? 왜 당사자가 자기 자신을 더 풍부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질문을 고안하지 않는가? 장애인의 삶이야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이므로 몇 가지 ‘전문적인’ 질문만 던지면 그 사람에게 적합한 지원 서비스의 명세가 마법처럼 인쇄되어 나온단 말인가.”

-“활동보조 등급심사...‘전기 밥솥으로 밥을 할 수있냐’구요?”, <비마이너>, 2017. 9. 25.

이런 일은 장애인에게만 국한된 것도,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는 복지 서비스를 받기까지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비인간적인지 보여준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60대로, 심장 질환으로 쓰러진 뒤 한동안 일을 할 수 없자 질병 수당을 신청한다. 담당자는 질문한다. “혼자 50m 이상 걸을 수 있나요?” “윗주머니까지 양팔을 올릴 수 있나요?” 팔다리는 괜찮고 문제는 심장이니 심장에 관해 이야기하자며 다니엘이 답답해하자, 그런 태도는 심사에 득 될 게 없고, 묻는 말에만 답해 달라고 한다. “시계 알람을 맞출 수 있나요?”

질병 수당 신청은 기각된다. 어렵게 잡은 항고일이 왔지만 그는 심장마비로 죽고 심사 담당자에게 하려고 적은 글은 유서가 된다. “나는 사기꾼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도 아닙니다. 난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사진 출저. 네이버 영화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죽은 사람들

작년 8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광화문역 지하보도에 있던 농성장을 찾았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광화문공동행동’이 농성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나 있었다. 그사이 장애인 여럿이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죽었다. 2012년 김주영(뇌병변장애 1급) 씨와 박지우(미등록 발달장애), 박지훈(뇌병변장애 1급) 남매가 화재로 사망했다. 김주영 씨의 활동지원인은 퇴근했었고, 남매의 부모는 일을 나가 있었다. 2013년 활동지원 신청 자격이 장애 2급으로 확대됐다.

그해 3월 간질장애인 박진영 씨가 자살했다. 그는 “기초수급비를 받으며 살았는데 잘못된 판정으로 장애등급이 무급으로 처리됐다. (…) 더 이상 싸우기도, 스트레스 받기도 싫다. 억울해서 못 살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그는 2010년 3급에서 4급으로 등급이 하락했고, 2013년에는 ‘등급 외’로 판정받았다. 2014년 뇌병변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던 송국현 씨가 화재로 사망했다. 장애 3급인 그는 활동지원 서비스 신청 자격이 없었다. 같은 해 근육장애인 오지석 씨는 활동보조인이 없던 시간 인공호흡기가 분리돼 사망했다. 2015년 활동지원서비스 신청 자격이 장애 3급으로 확대됐다.

 

등급제는 폐지되지만…

복지부는 지난달 3일 ‘장애등급제 폐지 시행을 위한 장애인 단체 토론회’를 열고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서비스 제공 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장애등급제는 없어지지만 장애인등록제는 유지한다. 다만 1~6급으로 분류하던 걸 장애 정도에 따라 경증과 중증 두 가지로 나눈다. 기존의 감면·할인이 등급을 기준으로 제공됐기에 최소한의 구분은 한시적으로 필요하다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주요 서비스는 모든 장애인이 신청할 수 있고 ‘종합조사표’로 적격성과 지원량이 정해진다. 종합조사표는 기초상담, 복지욕구 조사, 분야별 서비스 필요도 평가로 구성된다. 기초상담으로 장애인의 전반적 여건을 파악하고, 복지욕구 조사로 희망하는 서비스 등을 조사한 뒤, 분야별 서비스 필요도 평가로 필요한 돌봄지원, 이동지원, 소득·고용지원 서비스의 양을 점수로 측정한다. 이중 내년 7월부터 바로 적용되는 건 돌봄지원이다. 이동지원과 소득·고용지원은 평가도구를 개발해 추후 도입된다.

복지부의 계획을 들은 장애인 단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김태현 정책실장은 “장애 등급을 없애고 경증·중증 장애인으로 나눈다면 4급 뇌병변장애인은 걷기 불편해도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다. 장애인의 욕구를 제대로 조사한 건지 모르겠다”며 비판했고, 한국시각장애인협회 김영일 부회장은 “장애등급제 폐지 취지로 볼 때 ‘돌봄’이라는 시혜적 용어는 문제가 있다. 돌봄지원 필요도 평가표는 모든 유형의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도구라고 보기 어렵다. ‘누운 상태에서 자세 바꾸기’ 등 몇몇 지표는 시각·청각장애인에게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를 바 없는 새로운 조사표

토론회에서 가장 많이 비판받은 건 종합조사표였다. 새로운 조사표는 현재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할 때 쓰는 인정조사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정조사표는 장애인이 처한 환경이나 장애인의 특성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장애로 인한 신체·정신 기능에 문제가 있는지를 주로 확인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현수 정책실장은 “그동안 1~2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고 삶도 달라졌다. 무조건적인 점수별 서비스 제공은 사람을 잘라내고 제한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당사자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지, 그 의견이 판정에 반영되는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종합조사표는 그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건 등급제와 다를 바 없다. 복지부가 지금 추진하는 개편 방향은 지난 정부가 하던 것의 연장선에 있다. 추진해 가던 것을 무시하고 원점부터 시작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혹은 그래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조사표를 새로 만들기는 어렵다. 현실적인 대안은 10년 넘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며 누적된 자료를 활용하는 것이다. 15개 장애 유형별 또는 크게 몇 단위로 묶어서 유형에 따라 어떤 항목에 높은 점수가 나왔는지 확인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때 반영하는 것이다. 욕구별로 나눌 수도 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크게 신체 활동, 가사 활동, 사회 활동 세 가지 필요에서 신청한다. 역시 활동별로 어떤 항목 점수가 높은지를 확인해서 그걸 활용할 수 있다. 여전히 장애인의 환경적 측면을 반영하지 못하는 등 문제는 남지만,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 생각해 볼 만한 보완책이다”라며 대안을 제시했다.

 

국가는 예수가 아니다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은 87만 명으로 추정된다. 올해 활동지원을 받는 장애인은 7만 1천 명이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는 건 7천 명뿐이다. 아무리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인의 욕구를 반영한 서비스를 개발해 필요한 만큼 제공하려고 해도, 예산 안에서 할 수 있을 뿐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 대비 장애인 복지 지출이 OECD 꼴찌 수준이다. 최소한 평균은 되도록 장애인 복지 예산을 4배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예산 확대는 복지부 혼자 할 수 없다. 기획재정부가, 나아가 등급제 폐지를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였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는 예수가 아니다. 예산을 늘리는 만큼만 서비스를 더 제공할 수 있다. 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구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광화문공동행동)이 지난 추석 내내 서울역에서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을 찾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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