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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빼고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정신장애당사자들이 직접 만드는 언론 마인드포스트(Mind Post)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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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5  10:5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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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에선 한 해 동안 총 200만 건의 범죄가 발생했다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0.4%에 해당되는 8,300여 건의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따로’ 존재한다며, 대다수 언론들은 때마다 목소리를 드높인다. 100% 가운데 0.4%라면 극소수의 비중밖에 안 된다.

하지만 이 땅의 주요언론들은 절대다수인 99.6%를 애써 뒤로 접어두고, 0.4% 때문에 우리 사회가 당장이라도 붕괴할지 모를 상황이라며 극단의 대책이 필요함을 떠들어댄다. 범죄를 저지른 200명을 한데 모아놓은 뒤, 그 중 단 1명한테만 ‘이 가운데 가장 나쁜 놈이 바로 너!’라고 올가미를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그 1인’의 정체는 대체 누구일까? 바로 정신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이다. 자신들을 향한 오해와 왜곡만 부각하는 이 사회를 향해, ‘그건 아니다!’라고 외치는 이들이 분연하게 일어섰다. 정신장애당사자들이 직접 주도하는 당사자 대안언론 ‘마인드포스트’를 만났다.

 

이젠 마인드포스트가 함께한다

정신장애당사자들이 주체가 되는 언론이 왜 필요한지를 직접 밝힌 언론사 소개의 글, 그 글을 먼저 본문 그대로 이 자리에 옮긴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당사자의 의견 그 자체로 경청하는 것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실질적인 내용이 되리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정치적 목소리 내기 - 정신장애인은 사회적 청결성이라는 이데올로기 명목으로 정신병원에 격리돼야 했고, 스스로의 목소리 없이 의료 권력의 언어 아래에서 침묵하는 존재였습니다. 정신장애에 대한 보편적 인식은 ‘위험함’, ‘예측 불허의 존재’, 혹은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정신장애는 사회의 주변부에서 겉돌았고, 정신장애에 의한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격리 이데올로기가 더 강화되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 왜 우리는 끊임없이 배제와 격리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걸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정치권력이든,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든, 그들에게 우리의 존엄이 왜 훼손돼서는 안 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 오늘, 조금은 엄숙한 마음으로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미쳤다고 규정한 사회의 법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에 정치적 저항을 하려고 합니다. 큰 것을 얻으려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제 그 시작을 ‘마인드포스트’의 이름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모든 편견과 차별을 생산하고 확장시키는 정치권력과 제도는 바뀌어야 합니다 - 그래서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세상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겠습니다. 끊임없이 공동체에서 무시되고 배제돼 왔던 우리가,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를 정치적으로 담론화하고 평등한 사회를 위한 저항의 자리에 서 있겠습니다. 외롭고 고독하고 길고 어려운 길이겠지만, 예속된 정신장애인의 해방을 위해 한발 한발 걸어가겠습니다.

우리를 빼고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 - 이것이 우리의 슬로건입니다. 마인드포스트와 함께 해주십시오.

 

   
 

무지가 만들어내는 편견

“아주 개인적인 말씀부터 드리고 싶은데요. 시골에 살던 열 살 즈음 때의 일인데, 정신병을 가졌다던 동네 아저씨가 외지의 병원에서 퇴원을 한 뒤 마을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때 또래의 친구들끼리 모여서 수군댔죠. ‘저 사람이 우리를 해칠지도 몰라. 산에서 마주치면 우리의 간을 빼먹는대.’ 이런 얘기를 새파랗게 질린 얼굴들로 나눴거든요. 그런데 저는 지금도 아주 커다란 물음표를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체 그런 내용을 누가 우리한테 가르쳐 줬을까?’, ‘정신장애인이 그만큼 두렵고 무섭다는 것을 누가 주입시켜 놓았을까?’ 그 문제의식은 지금도 여전하고, 마인드포스트가 존재해야 할 이유 중하나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정신장애당사자들이 주도적으로 직접 만들어가는 대안언론 ‘마인드포스트’의 박종언 편집국장은 어린 시절 자신의 사례로부터 말길을 열어놓았다. ‘간을 빼먹는다’는 말이 어린 또래 친구들의 창작은 아닐 게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누구로부터 전해 듣고 움츠리게 된 걸까? 그런데 정신병을 가졌다는 또 다른 한 사람이 마을에 있었다고 한다. 군복무 시절에 정신병을 얻었다고 했는데, 당시 50대 나이였던 그 아저씨는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녔단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동네 사람들(특히 아이들)과 마주칠 때마다 호루라기를 힘껏 불며 지나갔다는 것이다.

“당시엔 그 아저씨의 그 행동이 이해가 안 됐죠. 그런데 이제는 충분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주변의 시선을 두려워했던 겁니다. 스스로가 두려움에 휩싸인 상태였고, 그 두려움을 상쇄시키기 위해 호루라기를 계속 불면서 다녔던 거죠. 자기 자신의 내면상태에 대한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절대적인 대안으로, 호루라기라는 방법을 찾아내고 사용했다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건, 그 아저씨한테는 마을의 어느 누구 하나 두려움을 안 가졌다는 점이다. 매일 봤기 때문에 익숙한 제3자이자 동네 사람이었지, 굳이 ‘정신병’을 이유로 경계해야 할 대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무지하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 인간은 두려움을 갖잖아요. 그런데 경험을 해버리고 익숙해지면, 그 두려움은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거예요.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가 이런 정의를 내렸죠. ‘무의식이 의식으로 올라오면 무의식은 힘을 잃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경험이다’라고요. 알면 익숙해지는데 모르면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거, 정신장애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바로 이 지점에 여전히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마인드포스트는 지난 2015년,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창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 1년여 준비기간을 가지고 나서 공식 출발하기로 한 뒤, 한 포털사이트에 임시 둥지를 틀고 담금질의 닻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의 특성상, 치열한 취재작업과 원고작성에 견디지 못한 이들의 이탈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런 우애곡절 끝에 정식 출범은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올해(2018년) 6월에야 이루어지게 됐다.

“그건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할 부분이었어요. 부담스럽고 힘들어지면, 일단 떠나는 걸로 결론내리는 게 정신장애인들의 약한 고리 같은 거였으니까요. 그렇게 말없이 떠나갔다가 말없이 돌아오고, 아예 연락도 없이 떠나가는 이들도 생기고, 그런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언론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됐습니다.”

마인드포스트는 일반 사회의 거대언론, 또한 다양한 시선을 우선시하는 주요 언론매체들과는 분명히 다른 지향점을 갖는다. 중립과 보편성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언론이 중립성을 배제한다? 그건 마인드포스트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저희는 신문사를 시작할 때부터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우리는 불편부당한 걸 원하지 않는다. 우리 신문은 정파적이고 당파적이다.’ 이유는 간단하고 명확합니다. 장애유형은 크게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로 나눠지죠. 시각장애·청각장애 같은 열두 개 유형이 신체적 장애이고, 정신장애·지적장애·자폐성장애 세 가지가 정신적 장애입니다. 이와 같이 엄격하게 분리가 돼 있는데도, 기자들이 글을 쓸 때는 ‘이 사람이 지적장애가 있는데 조현병이 있다’ 이렇게 써버리는 거예요.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한테 정신적 장애가 의심된다 하면, 무조건 조현병부터 갖다 붙여요. 정 안되면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다’고 필요 이상 강조를 하죠. 언론이 무조건적으로 ‘정신장애인들은 위험하다’는 이데올로기를 확대생산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기자 본인이 편견과 왜곡에 지배되고 있다는 겁니다.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정신장애인 자체에 공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객관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겠습니까.”

 

   
 

나오세요. 우린 똑같은 사람입니다

마인드포스트가 불편부당함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 개인의 일탈을 정신장애인 전체의 문제로 규정지어버리는 사회 전체의 일그러진 인식 때문이다. 뇌물수수혐의로 국회의원 한두 명이 구속된다면, 나머지 국회의원 전체를 해임시켜야 할까? 촌지비리를 저지른 교사 두세 명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과연 논리적일까? 그런 입장으로 일반 대중을 설득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정신장애인들만큼은 예외가 된다. 0.4%가 일으킨 사건사고 때문에, 100%가 싸잡아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여론은 마녀사냥의 수준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사고가 터지면, 댓글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비슷합니다. ‘격리시켜라’, ‘사형시켜라’가 기본이죠. 사형시켜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굉장히 모호하고 정체성도 없고, 또 예측 불가능하고 비이성적이라는 것이죠. 그 근저에는 실체도 없는 두려움이란 감정이 깔려 있습니다. 그 두려움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라도,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잔인한 논리로 이어져 온 ‘정신장애인 절멸(絶滅)이데올로기’가 재등장하는 겁니다. ‘너 때문에 내가 죽을지도 모르니까, 그 이전에 너부터 죽여야겠다’는 무시무시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거죠. 실제로 나치독일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 팔만 명의 정신장애인들을 가장 먼저 다 죽였어요. 유대인 학살은 그 다음에야 진행됐죠.”

하지만 정신장애당사자들은 편견과 왜곡뿐인 사회적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신장애의 특징은 외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스스로 움츠리는 경향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남을 해치기는커녕, 남들한테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자신의 존재부터 감추기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에 진행된 연구(아주대학교 심리학과 연구팀)에 따르면, 살인을 저지른 조현병 환자 33명 중 관계가 없던 사람을 죽인 경우는 3%에 불과하고, 자신의 가족에게 피해를 입힌 사례가 84%였다. 33명 중의 3%라는 건 단 1명뿐이라는 의미가 된다.

“저는 대인공포와 공황장애에 조현병까지 있다 보니까, 사람 만나는 일이 가장 두려웠어요. 그 두려움이라는 게 정신장애인들의 공통된 질환이자 증상 중 하나인데, 그 당사자들한테 밖으로 나가라고, 뭐를 하라고, 심지어 나쁜 일을 하라고 한다 해도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정신장애인은 제3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존재가 아니라, 제3자들에게 피해를 안당하려는 방어기재가 훨씬 강한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체를 알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모르기 때문에 오해와 편견은 지속되고 증폭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신장애의 종류와 내용에 대해 알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없다. 장애당사자에게 조현병이 발병했다 해도, 발병 이후 조현병 증세가 무조건 지속되진 않는다. 평상시에는 비장애의 영역에서 남들과 똑같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다가 증상이 느껴지면 의사의 상담을 받게 되는데, 대부분 우울증·조울증·조증·화병 등의 진단을 받게 된다. 시민사회의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수준의 증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다가 상태가 심해졌을 때 비로소 조현병으로 치료를 받게 되는 것이고, 입원치료 후 상태가 완화되면 다시 일상생활의 복귀로 마무리된다. 문제를 파헤치려면 강제입원과 반인권적 진료행위에 초점을 맞춰야지, 장애당사자들에게 괜한 화살을 겨눌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신체장애인들은 밖으로 나와서 생활할 수 있습니다. 이동편의시설이 어느 정도 갖춰졌고, 길도 다 닦여 있으니까 나갈 환경이 만들어져 있는 거죠. 투쟁을 할 때도 신체장애인은 휠체어를 타고 나옵니다. 발달장애인들은 그 부모님들이 함께 나갑니다. 그런데 정신장애인은 아무도 안 나가요. 왜냐하면 자기 안의 공간에 틀어박혀 있기만 하니까, 애초부터 나올 생각을 못하는 거죠. 두렵고 괴롭고 아프니까 더 못 나갑니다. 그 사람들한테 나오라고 하면 나오겠습니까? 저는 마인드포스트를 만들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비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골목길 안에서만 살았어요. 녹슨 철문 그 뒤쪽에만 있었던 거죠. 그랬기에 이제는 그 골목길에서 나와, 아크로폴리스 같은 광장에서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는 겁니다. 그 매개체가 바로 마인드포스트가 되는 거죠. 어두운 골목길의 녹슨 철문 같은 원룸이나 고시원에서 나와야 합니다. 긴 싸움이 되겠지만, 그들을 일일이 불러내야 한다는 게 마인드포스트의 가장 큰 화두로 남겨지게 될 겁니다.”

 

   
 

모두가 마음의 문을 열 그날까지

1984년에 1만2천 병상 수준이었던 정신과 입원병상이 현재는 8만 병상을 웃돌고 있다. 정신요양시설 또한 1만 병상이 넘는다. 환자들에게 친화적인 진료환경이라면, 그 병상이 얼마나 되건 상관할 필요 없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1만 병상인 정신요양시설에 10년 이상 거주한 비율이 65%, 20년 이상 거주한 비율은 35%나 된다는 점이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그 긴 기간을 보낸다는 것, 그건 치료가 아닌 감금이라 불러도 지나침 없을 이 땅의 실제 현실이다.

“악법 중의 악법이었던 ‘정신보건법(1995. 12. 30 제정)’의 문제조항들을 개정해서,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2018. 09. 21 시행)’을 다시 만들었고, 거기에 더해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설치 운영해서 강제(비자의)입원 환자들의 권리를 살피는 등 몇 겹의 안전장치를 마련했잖아요. 그런데요. 그럼 뭐합니까? 정신병원이라는 곳이 있기에 좋은 곳이냐? 아니거든요. 편하게 방문해서 편하게 치료 받을 환경이 아예 아니라는 겁니다. 내용은 똑같은데 틀만 바뀌었어요. 개정안에 반발하는 여론이 누구한테서 주로 나오는지를 살펴보면, 그 안에 답이 다 담겨 있는 겁니다.”

강제입원의 조건을 강화하는 장치를 마련하자마자, 주요 언론은 강화된 조건 때문에 입원시켜야 할 정신장애인들이 사회에서 격리되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한다는 식의 논리를 위험천만한 사태인 양 전파시키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론은 받아 적기에 바쁜 것일 뿐, 그 논리를 적극적으로 퍼뜨리는 건 의료권력이다. 한마디로 ‘밥그릇 싸움’이고, 한 꺼풀 더 그 포장을 벗겨내 보면 결국은 ‘돈이 되느냐’ 여부의 본질과 마주치게 된다.

“조기에 입원시켜야 할 사람들이 입원치료를 못 받고 있다, 이렇게 얘기들 하는데, 저희는 역으로 묻고 있습니다. ‘정신병원을 인권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당신들은 고민해 본 적 있는가? 정신보건법이 시행된 이후로, 탈원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본 적이 있긴 있는가? 이십 년 넘게 아무것도 안 해놓고 왜 이제 와서 탈원화는 위험하다고, 강제입원이 어렵게 된 건 큰일이라고 이의만 제기하는가. 그건 본말이 전도된 거다. 당신들의 잘못이다.’ 의료권력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의 인격 같은 건 관심이 없습니다. 환자들의 인권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약화되는 데만 더 날카롭게 집중한다는 거죠.”

박종언 편집국장은 강조한다. 정신병은 낫지 않는 병이자 증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의료권력의 논리는 단순하다. 다 완치시키고 나서 지역사회 공동체로 나가야 한다는 건데, 그건 죽을 때까지 강제입원에서 풀어주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과 같은 말이다.

“증상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지, 정신병은 낫지 않습니다. 잔존된 증상이 끝까지 남아 있다는 의미죠. 다 낫고 나면 내보내겠다는 건 말 자체가 안 됩니다. 뼈가 부러져서 완치된 다음 퇴원하는 것하고는 개념 자체가 달라요. 정신질환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동체로 살아가야만, 그래야만 비로소 자신의 생으로 되돌아오는 증상입니다. 감옥처럼 고립돼 있는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죠? 약 먹고 자고, 약 먹고 자고, 그러다가 평생을 내버리게 만드는 건데, 그게 환자 개개인을 위한 의료행위인가요? 국가와 언론과 의료권력의 카르텔 속에서, 발언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희생되는 국민들을 이젠 살려내야 합니다.”

박 국장은 마인드포스트가 갈 길이 너무나 멀다는 걸 인정한다. 그리고 정신장애인의 운동이 아직 제대로 태동되지도 못한 상황임을 절감하고 있다며 고백한다. 모든 게 역부족이다. 뜻을 같이 하는 아군(我軍)을 확보하는 데도 힘겨운 출발선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발을 내딛었다. 모든 게 가시밭길이지만, 그렇다고 희망 자체가 보이지 않는 건 아니라는 점도 깨닫게 된다고 했다. 하나씩의 방법론이 보이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은 삼등시민이라 하죠. 일등시민은 비장애인, 이등시민은 신체장애인이고요. 끊임없이 비하되고 차별되는 속에서, 의사의 진단 하나에 운명을 내맡기며 살아왔고 살아가는 거예요. ‘너는 정신병 F코드인데, 너는 정신질환자야. 너는 정신장애인이야. 너는 미친놈이야.’ 그러면 F코드의 인생이 돼 버리고 마는 거고, 그러다가 의사가 ‘너는 조현병이야’ 하면 그때부턴 조현병 환자가 되는 거예요. 여기엔 정신장애당사자들의 잘못도 크다고 판단합니다. ‘정신건강복지법’이 자기 운명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데, 막상 그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거든요. 모든 걸 바꿔야 합니다. 모든 걸 지배해 왔던 의료권력과의 관계부터, 국가의 제도부터, 시민사회의 인식부터 이젠 모든 걸 뒤집어야 합니다. 마인드포스트가 해야 할 일들이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는 것이죠.”

쇠사슬을 감은 중증장애당사자들이 2001년 서울역 지하철 철로 바닥에 맨몸으로 드러누워,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 외치던 그 절규가 20년이 되어간다. 만약에 당시의 그 외침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이동편의시설들은 갖춰질 수 있었을까? 여전히 모든 게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투쟁 없이 거저 얻어진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 절규는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함께 사는 게 자연스러워질 그 세상이 될 때까지 말이다.

“저희한테도 십 년, 이십 년이 필요한 일이겠죠.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저희도 정신장애당사자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광장에 나설 때까지 나아감을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새로 출범한 언론이니까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신장애 중심의 언론이지만, 한쪽으로만 문을 열어놓는 건 아니니까 자주 방문해 주시고요. 독자 여러분이 저희들 곁에 있다는 힘을 항상 느낄 수 있게, 격려의 한마디를 늘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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