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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차별들인권이 던진 질문
글.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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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8  11: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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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아 치유하는 글쓰기 강좌를 들었다. 치유하는 글쓰기라 알듯 말듯 하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정리해야 할 뿐 아니라 마음의 결도 뒤돌아봐야 하니 ‘치유’에 딱 들어맞지 않는가. 치유란 일종의 쓰다듬는 행위다. 아플 때 배를 쓰다듬듯, 위로가 필요할 때 등을 쓰다듬듯, 왜 머리가 복잡하지, 왜 마음이 아프지 등을 돌이켜보며 생각과 감정을 쓰다듬는 것이니. 그럼에도 강좌를 들은 건 치유하는 글쓰기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최근 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몇 시간 교육을 받는 시간만이라도 치유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4번의 교육시간 동안 내 마음을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마지막 날에는 원수 같은 사람에게 편지를 쓰라는 미션이 있었다. 더러는 원수 같은 사람이 없다는 이도 있었다. 있든 없든 조별로 각자 쓴 편지 내용을 나누었다. 그리고 전체 질의 응답시간, 남자 수강생이 강사에게 물었다. “제가 누구한테 나쁜 짓을 한 적은 없는데, 나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를 원수로 여길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모든 사람에게 잘해주는 편인데요.”

강사는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방이 느끼는 생각과 감정은 다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고 하면 본인이 제일 힘들 거라고 했다. 갑자기 뭔가 밑에서 올라와 나도 말을 덧붙였다. 최근 사람들의 무심함 때문에 상처 입었던 일들이 떠올랐나 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고 애쓰다보면, 그게 때로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를 주는 일일 수도 있지요. 예를 들어 피해자가 보는데 성폭력 2차 가해자에게 잘해준다면 피해자의 마음은 어떨까요? 상황과 맥락을 알지 못할 때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모든 사람에게 잘해주겠다는 것이 피해자의 상황과 감정은 고려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으니까요. 무심함이라는 게 사실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단 걸 지나치는 일이니까요. 그 무심함 때문에 그 사람은 당신을 나쁘게 여길 수 있지 않을까요?”

무심함이라는 건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니 언제든 쉽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농담으로 무심하게 건넨 개인의 과거사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특히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픈 마음에 피해자가 보는 앞에서 가해자였던 사람에게 잘해준 것이라면, 사실 그건 피해자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이미지에 더 신경을 써서 생긴 일이니, 본인의 행위에 따른 결과다. 무심함이 개인의 무지나 성격 탓이라 하더라도 결국 하나의 행위인 것이다.

 

무심코 던진 차별들

그런데 무심함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건 단지 개인의 성격 탓이라고만 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무심할 수 없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은 무심해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도처가 차별투성이니. 어쩌면 무심해도 되는 건 이 사회에서 주류 질서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불편함을 못 느끼는 건 아닐까.

비장애인은 무심코 ‘턱’이 있는 곳에 행사장소를 잡는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라 장애인이 행사에 참여할 거라곤 평소 생각하지 않아서다. 장애인은 이미 머릿속에 대상에 없다. 남성들은 칭찬이랍시고 동료여성에게 ‘얼굴이 예뻐서 살기 편하겠다’는 인사말을 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쉽게 여성을 외모만으로 평가하는 건 익숙한 일이다. 그녀가 일을 잘하건 못하건 간에 외모는 꼭 따라온다. 여성을 온전한 인격체로 대우해본 적이 별로 없으니 무심히 던진 말일 게다. 그리고 이성애자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문이 막히면 인사치레로 ‘여자(남자)친구 있냐?“고 묻는다. 이성애중심의 사회에서 내가 이성애자이니 상대방도 당연히 이성애자, 즉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고 이성(異性)을 애인으로 둘 거라고 여겨서다. 모두 흔한 풍경들이다.

이런 무심한 언행은 한 번도 자신이 우리 사회에서 주류, 즉 권력을 가진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다. 또는 자신의 권력적 위치 자체가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긴장하지 않아서다. 모두가 평등하지 않은 세상에서 무심하다는 건 어쩌면 차별의 턱을 그대로 두겠다는 건 아닐까. 차별의 턱을 없애려면 차별의 세상을 더 알고 긴장하며 상대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그건 피곤하고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익숙해진 차별의 사고와 생활을 벗어나면 몸부림쳐야하니 편할 수는 없지 않은가. 비장애인인, 그래서 때로는 주류로 사는 나는 불편해지기 위해 애쓴다.

 

사회적 소수자에게 무심한 국가정책

개인의 무심함보다 더 큰 문제는 국가의 무심함이다. 모든 제도와 예산을 주류 중심으로 짠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소수자들이 우리를 포함한 정책을 만들라고, 정책을 집행할 예산을 짜라고 요구할 때까지 무심한 차별정책은 지속 된다. 장애인들이 극한투쟁을 하는 이유일 게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장애인들이 또 서울역에 9박 10일 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서울역에 가보니 ‘장애인 생존권 예산을 삭감한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을 현상 수배한다’는 피켓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장애인들이 장애등급제를 ‘진짜’ 폐지하고 장애인의 인권을 유린한 대구시립희망원에 있던 장애인들이 탈시설 할 수 있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장애인 예산이 대폭 확충되어야 가능한데 그걸 줄여서 농성을 택했단다. 2019년 정부안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총예산은 2조 7,326억 원이다. 장애인활동지원이나 탈시설, 발달장애인 지원 등 애초 장애계가 요구한 3조 5,470억 원과 비교하면 8천억 원이나 적다. 장애인친화적인 정책을 집행하려면 예산이 있어야 한다. 예산을 책정하지 않고 ‘장애인친화적 정책’이란 립서비스일 뿐이다.

시설에 갇힌 장애인들이 나와서 비장애인들처럼 생활하려면 활동지원서비스가 충분히 지원돼야 한다. 활동지원을 받지 않고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이 많다.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이 확충돼야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 장애등급제 때문에 활동지원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있다.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적어 하루 중 절반을 움직이지 못한 채 집안에 갇혀 있는 장애인들이 있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대구시립희망원 탈시설 추진을 위한 시범사업’을 공약했는데 그 예산도 없다. 예산이 없다는 건 정책이 없다는 뜻. 장애인들은 국가의 무심함에 항의해 농성천막을 차린 것이다.

원래 동등하지 않다고 여기는 장애인들이 정책과 예산을 요구할 때, 일부 비장애인들은 ‘예전보다 장애인들의 삶이 나아졌는데’ 욕심이 과하다고 핀잔을 주곤 한다. 재벌이 노동자들에게 예전에 삼시세끼 못 먹고 일할 때보다 나아졌는데 하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처우를 기준으로 삼고, 정부는 ‘과거의 장애인의 삶’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무심한 핀잔에 속이 상한다. 애초부터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비교해서는 안 되는 존재인가. 동등한 처우를 요구하는 건 과한 일인가. 무심한 핀잔엔 다른 전제가 있는 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다수의 비장애인을 위한 예산은 당연한 필수고 소수의 장애인을 위한 예산은 선택이라고 여기는 전제! 이런 전제는 비장애인 예산은 동결할 수 없지만 장애인 예산은 동결해도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국가는 국민 대다수의 동의를 얻기 쉬운 쪽으로, 결국 다수라는 힘의 논리에 기울어진다. 국가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보다는 다수, 즉 주류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를 선택한다. 어쩌면 이것이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개인이 저지르는 무심함과 국가의 무심함이 차이일지 모르겠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개인과 국가의 무심함이 도처에 깔린 사회에서, 때로는 주류가 아닌 나는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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