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의료인들의 철학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다른 결이 느껴지는 의학드라마 '라이프(2018, jtbc)'
글. 이영문/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  |  cowalk1004@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10.18  11:46:0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사진 출처 jtbc 홈페이지

인간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질병을 정의하고 원인을 찾고 그것에 상응한 치료를 하는 과정은 동시대의 철학과 궤적을 함께 합니다. 과학이라는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19세기부터 임상의학이 본격적으로 출현했고, 현대인의 삶에 의료는 필수적 요소가 됐습니다. 그러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일찌감치 임상의학의 출현이 또 다른 권력구조의 시작이라는 점을 예견했었지요. 이제 의료산업은, 특히 미국의료의 모순점을 철저하게 추종하는 한국 의료현장은 질병치료의 차원을 넘어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유기체가 됐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한국 의료의 적나라한 모습과 인간 군상들의 욕망을 예리하게 포획한 드라마 ‘라이프(2018, jtbc)’입니다.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의 의학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배경과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종합병원(1994, mbc)’처럼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훈훈한 모습과 말랑한 러브라인과는 거리가 멀고, ‘하얀거탑(2007,mbc)’의 권력에 대한 야망과도 다른 결이 보입니다. 드라마 안으로 걸어가 봅니다.

화정그룹이 운영하는 상국대학병원에 의사가 아닌 구승효(조승우 분) 사장이 부임합니다. 공교롭게도 모든 직원들의 존경을 받던 이보훈(천호진 분) 원장이 낙상사고로 사망한 채 응급실로 실려오지요. 어수선한 병원 분위기. 우왕좌왕 불안한 의료진 앞에 구승효 사장이 나타납니다. 그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일 중독자, 노조 파괴자로 잘 알려져 있지요. 병원 경영분석을 시행한 후 만성적자가 나타난 하위 3개 과를 ‘공공의료 지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방 파견을 결정합니다. 당연히 의사들은 반발하고 대책을 강구합니다.

걷잡을 수 없는 큰 갈등 앞에서 인간은 대개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맞서 싸우는 사람, 힘에 끌려 순종하는 사람, 멀리 도망가는 사람. 상국대학병원도 예외는 아닙니다. 평소 병원 일에 관심 없이 환자만을 진료하던 예진우(이동욱 분)는 예상과는 달리 사장의 자본논리에 맞섭니다. 그가 가장 존경했던, 그리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료해주던 의사, 이보훈 원장이 죽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오세화(문소리 분), 늘 이보훈의 그늘에 가려 지낸 김태상(문성근 분), 이보훈 원장의 권유로 지방에서 올라온 주경문(유재명 분) 교수 등이 다양한 목소리를 냅니다.

이 드라마에서 ‘누가 더 인간적인 의사인가?’라는 질문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병원의 비리를 파헤치고 의사들을 제압하는 나쁜 인간으로 생각되던 구승효 또한 화정그룹이라는 괴물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마도 외부의 시각으로 병원이라는 폐쇄구조에 살며시 들어가 내면을 비추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는 의료인들만으로 구성된 병원이라는 유기체(모순과 비밀로 가득 찬) 내부에 연기의 천재 조승우가 항원(외부 침입자)으로 들어와, 내부의 항체(저항력과 깨달음)를 형성해가는 과정이 날 것처럼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항원과 항체의 반응 속에 성장합니다. 구승효 사장은 창문을 통해 병원 안을 들여다보고, 엘리베이터와 자신의 방에서만 사람들과 마주합니다. 철저하게 외재적 접근인 셈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객관적인 구 사장에게 소아전문의 이노을(원진아 분)이 다가갑니다. 이노을은 자연스럽게 구승효를 내부로 당겨오는 역할을 하지요.

   
사진 출처 jtbc 홈페이지

사실 의료의 내면은 환자들의 고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의학은 바로 사람들의 고통(파토스)을 연구하고 없애려는 자연철학의 바탕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오늘날 의료가 비정하게 보이고 기계적인 유기체가 된 것은 자본의 논리가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이 드라마의 본질은 아닙니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병원의 의사들이 안주해왔던 작은 성이 외부인의 힘에 의해 아주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또한 타자의 눈을 통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현미경을 보듯이 그린 것입니다.

선과 악, 좋음과 나쁨으로 구분되는 의학드라마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절대 악인은 오직 한 사람, 화정그룹 회장 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해고하는 회장에게 구승효 사장이 말합니다. ‘병원을 조각내지 마십시오.’ 이 말은 병원이라는 유기체는 상업화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또한 ‘병원이 더 이상 치료기관이 아니라, 가진 자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게 되는 것은 오로지, 내부에 있는 의료인들의 철학에 달려 있다는 마지막 인사말은 오랫동안 저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집단은 결코 전문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법조인과 의료인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검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비밀의 숲’의 작가, 이수연이 이 드라마를 쓴 것은 아마도 그런 의미가 있을 겁니다. 두 드라마에서 각 직업을 대표하는 검사장과 병원장이 죽은 것은 우연일까요? 자본의 논리와 권력의 구조 속에 우뚝 선 두 직업을 동일한 잣대로 잴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미 우상의 몰락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자본의 거대하고 혼탁한 움직임 속에서 한국 의료의 철학적 저항(순전히 제가 쓴 용어이니 괘념치 마세요)을 기대해봅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를 추천하시면 "오늘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카페풍경은 만남과 사랑입니다
2
폭력을 훈육이라 말하는 학교, ‘특수’에 담긴 비장애인 중심성
3
장애인에게 삶의 질을 추구할 권리는 없는가?
4
주도권 보장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옹호하다
5
개똥이삼촌 11화
6
우리는 지금 없는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7
2018 실천연구대회 ‘장애인, 일상의 삶을 살다’ 개최
8
한국에서 만난 저의 새로운 인생, 어때요?
9
하모니원정대가 추천하는 11월 여행지 BEST 2
10
여우각시별이 쏘아 올린 ‘혐오’, 가로막힌 정신장애인의 생존권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rss home back top
함께걸음 제호: 디지털 함께걸음  |  우)07236 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서울아00388 | 등록연월일 2007년6월26일 | 발행인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성재 | 편집인 겸 편집국장 김성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태곤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선스 2.0:영리금지ㆍ개작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