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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살아남는다. 국가의 존재이유를 듣기 위해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노숙농성현장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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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6  10: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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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사건> -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사회정화와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장애인과 고아, 거리의 무고한 시민들을 무작위로 불법감금하고 강제노역 시킨 대표적인 인권유린사건. 이미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공론화됨. 정확한 통계조차 없이 12년간 총 3만여 명한테 불법감금, 강제노역, 폭행치사, 성폭력을 저질렀고, 공식 사망자는 513명이지만 암매장과 시신해부용으로 유출됐다는 희생자 다수는 아직도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음. 1987년 3월 직원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집단 탈출함으로써, 은폐됐던 지옥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됨. 이후 여론의 무관심 속에 25년간 잊혀 있다가, 피해생존자 한종선의 국회 앞 1인시위로 다시 언론에 등장함. 기본설명은 이 정도로 요약하고, 이제 그들을 만난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모임의 국회 앞 농성장을 찾았다.

 

   
 
   
 

우리의 절규는 왜 외면하는가

최근에 달라진 변화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형제복지원’이란 검색어로 몇 년 동안의 기사를 모아 A4지 30장 넘는 분량을 읽어봤다. 의문점은 여기서도 발생한다. 거의 대부분의 기사 내용이 똑같다. 앞 장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엇비슷하게 반복된다.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항에 추가된 건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에게 비상상고를 권고했다’는 것, ‘현직 부산시장이 이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는 정도라고 할까? 분명한 발화점과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왜 형제복지원 사건은 여전히 제자리에 멈춰 머물고 있는 걸까?

“대부분의 기자들은 저희를 찾아와서 독자들을 위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며, 그 안에 있었던 만행을 먼저 듣고 싶다면서 이야기를 끌고 가죠. 그러니 모든 기사들이 다 똑같은 거예요. 기사 전반부부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시 길게 설명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써야 할 말들은 못 쓰게 되는 거죠. 피해당사자들한테 피해사실만 집요하게 파면 뭘 합니까? 그렇게 파헤쳐서 뒤집어 까고, 뭐 하나라도 진상규명이 되도록 만드는 건 하나도 없잖아요. 그렇게 찾아와서 피해자들을 두 번 죽여서는 안돼요. 최소한의 답도 못 내놓으면서, 왜 상처만 계속 건드립니까? 이미 드러난 사실들은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나와서 싸우는지, 피해생존자들이 요구하는 걸 정부와 국회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는 게 언론의 기본자세 아닙니까?”

피해생존자모임 한종선 대표는 언론의 행태부터 질타했다. 그리고 반갑지도 않다고 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도대체 무엇인가?’ 식의 설명이 지면의 중심을 채우고, 피해생존자들의 회한과 요구는 끝부분에 몇 줄 집어넣는 걸로 취재를 다 했다는 게 기자들의 언론관이라면 만날 필요도 없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국회 앞에 농성장을 처음 만들 때, 그 흔한 기자회견마저 안 했단다. 왜냐, 해봤자 모든 기사 내용들이 어떻게 나올지 훤히 예상됐기 때문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아세요. 당시 야당 조사 때 민간인 신분으로 직접 실사에 참여했던 분이라서, 사건 초기의 실상을 가장 잘 파악한 변호사 입장일 거예요. 하지만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에서, 먼저 발언을 하면 정치적으로 휘말릴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계신 게 아닐까 싶어요. 제 생각이지만 여당은 대통령한테, 대통령은 여당한테 총대를 메라고 미루면서, 둘 다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판단도 들죠.”

국회 앞 농성장 텐트 옆면에는 노숙농성의 숫자가 335일로 적혀 있었다. 첫 눈이 내릴 즈음이면 400일을 넘길 게 분명하다. 한겨울 칼바람을 견딘 뒤에 500일로 넘어갈 테고, 또 다시 40도 내외의 기록적인 폭염이 덮칠 즈음이면 600일을 맞이할 것이다. 농성의 기간을 마음대로 예단하는 건 결례가 분명하겠지만, 현재로선 그렇게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이 국회에서도, 청와대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아무것도!

농성장에는 세 명의 피해생존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모임 시작 때부터 함께했다는 양세환 씨, 취재 바로 이틀 전에 처음 농성장을 찾아왔다는 이주현 씨 그리고 한종선 대표였다. 31년의 세월이 지나갔는데 이틀 전에야 피해생존자의 1인으로 나타났다는 이주현 씨, 그는 모든 게 조심스러운 몸짓과 언어로 뒤늦게나마 동참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굳이 끄집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고아였고 혼자이기 때문에 사는 게 바빠서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부산시장이 사과문을 발표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얘기를 해줘서 알게 됐어요. 옆에 있던 사람이 형제복지원 얘기를 하기에 ‘아, 나도 거기에 있었는데’ 답하다 보니, 이제야 검색을 해보게 된 거죠.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해오셨더라고요. 그래서 밥이라도 같이 먹고 얘기라도 해봐야겠다 싶어 찾아오게 된 거예요.”

취재를 진행하는 동안 사진 촬영이 가능한지 물으니까, 이주현 씨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촬영을 스스로 접을 수밖에 없는 한마디가 덧붙여졌다. “상관없어요. 우리한테는 초상권이라는게 없으니까.” 좁은 텐트 안 바로 옆에 앉은 양세환 씨의 넋두리가 분노처럼 뒤따랐다.

“평상시에 잠을 잘 때도 몸에서 경기가 나요. 뭐든 생각을 하면 내가 다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경각심이랄까요? 혼자 불안해지는 거예요. 저는 바깥생활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혼자 벤치에 앉아있다가도, 뭐랄까요. 사람이 다치기 직전에 본능으로 느끼는 예지라고 할까요? 그런 실감이 들어 몸을 움츠리게 되는 거예요. 주변에 아무도 없고 혼자 있는데도 그런 불안감에 휩싸이는 거죠.”

그는 형제복지원 안에서 유독 머리를 많이 맞았단다. 사람을 때릴 때 등이나 가슴, 배 주변이나 팔다리처럼 때리고 맞을 데가 여럿 있을 텐데, 그에겐 항상 머리부터 폭행이 집중됐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지금도 자신의 의견을 밝히다가도, 몇 마디 한 뒤엔 잠시 쉬어야 한다고 한다. 후유증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가 된다. 앞에 마주앉은 한종선 대표는 그게 바로 골병이라며 자신의 현 상황을 언급했다.

“골병이 맞죠. 습관성인지 스트레스성인지, 지금도 위장염 같은 걸 계속 가지고 있어요. 여전히 가장 일상화된 건 밥을 급하게 먹는다거나 폭식을 한다거나, 그런 게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거죠.”

국회 앞 1인 농성을 시작했던 이후 흘러간 몇 년, 상황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해도 피해생존자로 연락이 가능해진 이들은 300명 정도로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정 아쉽고 혼란스러운 부분은 갑자기 연락이 쇄도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평소엔 아무런 관심도 안 보이던 이들인데, 뭔가 보상이 진행될 거라는 언론보도 같은 게 나오면 모르는 번호로 전화기에 불이 붙는다는 것이다. 피해생존자모임 대표로서, 그는 이 의견을 꼭 지면에 새겨놓고 싶다고 했다.

“인권유린의 피해에 대해서 분명한 보상은 받아야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분들한테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싶어요. 보상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건데, 최소한 우리가 왜 잡혀갔는가부터 알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우리가 왜 끌려갔는지조차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 진상을 조사하려는 국가 차원의 시도마저 없는 상태에서, 지금 우리가 여기 이 허허벌판에서 왜 싸우고 있는지는 왜 외면하시는 건가요? 민주국가이고 법치주의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인생을 유린당하고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진실부터 밝히라는 겁니다. 보상은 그 다음 나중의 문제예요. 왜 내가 그런 지옥에서 생존해야 했는지, 그 진실은 아무도 대답을 안 하잖아요. 세월호 부모님들의 투쟁과 그 심정이 무엇인지 저는 이해가 됩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잖아요.”

 

   
 

여기에도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보상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냐는 시선들이 너무 많아요. 제가 대외적으로 의견을 발언하면, 피해자답지 않다고들 말씀하시죠. 피해자답다? 그 의미가 뭘까요? 말투가 어눌해야 하고, 불만에 쌓여 있어야 하고, 사회의 부적응자처럼 보여야 된다는 의미잖아요. 피해자들이 논리적으로 발언을 하면 ‘(금전적 보상을) 노리는 게 있다’, 똑바로 서서 가열 차게 발언하면 ‘신체는 멀쩡하다’, 과거 피해사실을 폭로하면 ‘역시 좌파 빨갱이야’, 이런 식으로 몰아간다는 거죠. 저는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저의 모든 생활과 언행은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승-전-형제복지원’이라는 거예요. 31년 전의 일로 싸우고 있고, 국회 앞 일인시위 이후에 몇 년이 흘러갔어도, 국가는 아무런 대답을 하고 있지 않잖아요.”

그 속앓이를 되씹기만 해도, 진상조사백서 수십 권은 만들어졌을 일이다. 반향 없는 사회를 향해 내질러야 했던 절규만 모아도, 최고의 웅변기록이 됐음직한 일이다. 게다가 피해당사자만 300명 넘게 모이는 게 가능해졌다. 그런데도 대답 없는 국가뿐이다. 왜 대답이 없을까?

“국회의 행정안전위원회 위원들은 뭘 하고 있죠? 감히 말씀드리겠는데, 보좌관들이 진짜 팩트(fact, 사실)를 보고하지 않아요. 의원님들 듣기 좋은 소리만 전하죠. 자신들의 자리보전의 의미도 있으니까요. 진실은 저 멀리 접어버리고, 좋은 말만 듣기 원하는 의원들과 보좌관들의 눈치 보기가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어요. 인권은 소수의 눈물에서 출발한다고 하면서도, 소수의 이야기는 결국 언제나 묵살하잖아요. 그들 자체가 기득권이기 때문인 거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사항이 나왔는데도, 국가와 국회는 메아리가 없다. 한종선 대표는 피해생존자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첫 발을 내딛는 의미라고 했다. ‘피해생존자들의 존재’, 그것 이상 진실규명의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냐는 절박한 항변이기도 했다. 묵묵히 대화와 논쟁을 듣고만 있던 이주현 씨가 입을 열었다.

“불합리한 건 분명하잖아요. 그런데 수용 당시는 너무 나이가 어렸고(그는 7살 나이에 잡혀갔다고 했다),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이렇게 말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거잖아요. 당시엔 아무 말도 못했어요. 뭐라고 말을 하면 또 다른 수용소에 감금될 것 같았거든요.”

텐트 입구에 걸터앉아 바깥 방향을 향해 긴 담배연기를 내뿜던 양세환 씨도 몇 마디를 덧붙였다. 그는 2012년부터 6년 동안 인권유린을 당했다.

“피해생존자, 피해당사자, 피해유가족, 피해관련자, 그들 모두가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진실이 있잖아요. 직접 겪었고 직접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라면, 트라우마 운운하지 말고 우리한테 와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숨어 있을 이유도 없고, 자기가 겪고 당했던 걸 있는 그대로 얘기해 주면 되거든요. 그래야만 세상이 바뀌게 돼요. 당한 사람들이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면, 세상은 절대 안 바뀐다는 걸 꼭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거대한 바벨탑 같은 국회 건물을 응시하던 한종선 대표의 눈빛은 진실의 답을 반드시 얻고 말겠다는 결의 그 자체로 전해졌다.

“유례없는 인권유린사건이라는 점엔 여야가 따로 없어요. 그건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거든요. 그런데 이 진상조사 특별법을 통과시키게 되면,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고 생각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것 같아요. 관련자들의 은폐와 자신들의 정치생명부터 지키겠다는 거죠. 특별법 제정이 계속 무산되는 이유를 그것 말고는 설명할게 없다는 거예요. 저희는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건 다했습니다. 일인시위로 시작해서 삭발, 단식, 규탄집회, 국토대장정, 노숙농성장까지, 그래도 국가와 가해자들의 대답이 없다면, 이제 남은 건 국민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촛불을 들었던 그 심정으로, 저희 피해생존자들을 바라보고 응원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지옥 안에서는 병들고 구타당해 죽었고, 밖에 나와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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