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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빛깔 가을 하늘, 고려청자 보러 다녀왔어요”오사카에서 온 편지
글과 사진. 변미양/지체장애인. 오사카 거주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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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7  1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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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찾아왔네요, 가을이! 창 너머로 구름 한 점 없이 펼쳐지는 파란 하늘을 보며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도 자연의 신비로움과 깊이에 감사합니다. 가만히 보기만 해도 좋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 뭔가 더 곁들이면 금상첨화겠죠. 찾다 보니 ‘오사카시립 동양도자기미술관’이라는 곳에서 고려청자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더라고요. 고려청자라, 문외한이지만 제대로 본 적도 없고, 더군다나 일본 오사카에서 우리의 고려청자를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니 구경을 나섰습니다.

이번 전시회 소개를 읽어보니 올해가 고려왕조가 창건된 해인 918년으로부터 딱 1,100년이 되는 아주 기념적인 해이기에, 이 미술관에서는 30년 만에 대대적으로 고려청자 특별전시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하네요. ‘코리아(KOREA)’가 조국인 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건만 일본에서 고려 창건 1,100년을 기념해 ‘고려청자 특별전’을 연다니, 조금 묘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일이지요. ‘진품명품’이었던가, 집안에 오래 묻어둔 가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전문가에게 진단 받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은데 일본에서도 똑같은 프로가 있고 도자기가 출품되는 경우가 아주 많고, 우리나라에 유래하는 도자기들도 드물지 않아요. 일본의 고대 문명이 우리 한반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일찍이 알려진 일이고, 그 중에서도 일본 도자기의 원류를 찾으면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끌려온 도공들에 의해 그 기술이 전수되고 발전됐다는 것도 공인된 이야기예요. 그런 점을 생각하면 일본에 건너온 도자기에서 우리 민족의 애환이 녹아 빚어낸 역사를 엿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고려청자는 1392년 고려왕조의 멸망 이후 그 모습이 잊혀 ‘환상의 도자기’라고 불렸다고 해요. 그런데 500여 년 수수께끼에 묻혀 있던 그 모습이 19세기말 조선 말기 대한제국의 혼란기 속에 고려왕릉을 비롯한 능이나 유적들이 파헤쳐져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됐다고 하네요. 그 시절 미국영사관의 담당의사로와 있었던 알렌이라는 선교사가 1884년 갑신정변 때 부상 입은 고종의 측근을 치료해 줬는데 그 답례품으로 고종으로부터 청자를 선물 받았대요. 처음 청자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알렌은 점점 그 매력에 빠져 청자를 수집하게 됐고, 알렌이 수집해서 기증한 많은 고려청자들은 지금도 미국의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대요. 500년 만에 재회한 고려청자의 비취 보석과도 같은 매력과 아름다움에 매료돼 그 신비로움을 재현하고자 한성에 전문도자기 공장이 생겼고, 1915년쯤에 재현된 청자가 12세기에 만들어진 고려청자에 흡사할 정도에까지 이르렀으며, 그때 만들어진 많은 작품들이 일왕에게도 바쳐져 일본 궁내청에서 보관돼 왔는데 그중 몇 작품들도 선보이고 있더군요.

   
 

이번 전시회에서는 일본 국내에 소장되고 있는 약 250점이 소개됐다고 하는데, 일본의 중요문화재나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돼 있는 작품도 있었어요. 특히 포스터에도 실려 있는 용머리 9개가 장식돼 있는 작품은 석가가 태어날 때 하늘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향수를 뿌렸다는 ‘구룡전설’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작품이라네요. 고려에서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고 불교문화가 바탕이 돼 있다는 것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죠. 또 한편으로 중국으로부터 음차나 음주문화가 전래돼 왕실이나 귀족, 사원에서 크게 유행했으며 그러한 종교행사나 의례, 차 도구나 술 도구로 청자가 구워져 고려청자의 독자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게 됐고, 중국 당, 송의 월요청자를 뛰어넘는 고려청자의 투명하고 빛나는 ‘비색’, 그리고 정교한 상감기법의 아름다움은 중국에서도 ‘천하제일’이라고 불리며 고려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해설이 덧붙여 있더군요.

그렇게 천천히 보면서 휠체어로 청자를 따라가다 보니 연세가 좀 들어보이는 어떤 여성 두 분의 “결국 이 청자들은 모두 식민지 조선에서 빼앗아온 거잖아요.”라는 말도 들리고, 꽤 잘 차려 입은 멋쟁이 두 남자의 “일본에 가져 왔으니까 이만큼 보존돼 있는 거지, 그냥 조선에 있었으면 남아있지도 않았을 거야.”라는 말도 들려 왔어요. 일본 땅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울컥 올라오는 감정도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나설 수는 없더라고요. 그리고 그 순간 내지르는 한마디로는 더 엉키기만 할 뿐 결코 풀리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그나마 고려청자에 관심을 가지고온 사람들이니 지금은 먼저 고려 문화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우리 역사의 높은 문화와 멋을 느끼고 인정해 주기를, 그리고 그 맥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긍지 높은 이웃나라라고 존중해 주는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바라야 할 테니까요.

푸른 하늘에 들떠 나선 가을 나들이에서 제 마음이 더 뿌듯해진 건 거리에서 스치는 사람들의 미소였는데요. 휠체어를 타고 가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제 시선이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에 머물게 되더군요.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 직접 눈길이 마주치지는 않고 저 혼자만 보는 일이 많아요. 마침 제 앞에 한 가족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아이가 탄 휠체어를 밀고 있더라고요, 초등학교 고학년쯤일까, 일요일이니까 학교는 아닐 테고 외출길인지. 아이의 겉모습만 봐서는 아주 중증에 중복장애를 가진 것 같기에 저는 언뜻, 무례하게도 엄마, 아빠가 고되고 지친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을까 염려가 앞서는 거예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휠체어를 미는 아빠도 옆에 가는 엄마도 정말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고요. 정말 꾸밈없이 웃고 있는 그 순간의 모습에 저 혼자 미안해하고, 뿌듯했어요. 머지않아 선선하던 바람이 매섭고 차갑게 느껴지는 계절이 되잖아요. 하지만 미리 움츠리거나 찌푸리지 말고 따뜻하게 웃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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