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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명을 바꿀 수 있는 한 명우간다에서 한 장애인권 교육
글과 사진. 배용진 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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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4  09: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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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아프리카 우간다에 취재하러 가기로 결정됐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하 연구소)가 우간다 초등교사에게 장애인권 교육을 할 예정이었다. ‘아프리카’란 단어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나로 뭉뚱그려 생각한 대륙에는 54개 나라가 있었다. 황열과 장티푸스 예방주사를 맞고 말라리아 약을 챙겼다. 덥겠다는 것 말고는 예상이 잘 되지 않았다. 그곳에 사람이 있고, 삶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1975년 한국의 경제수준인 우간다, 1975년 태어난 아이

2017년 우간다 국내총생산(GDP)은 약 259억 달러, 세계 98위다. 1인당 국내총생산으로 환산하면 604달러로 순위가 154개국 중 146위까지 떨어진다. 1975년 한국과 근사한 수치다.

숫자로 확인하지 않아도 아프리카 대륙은 빈곤하다고 인식된다. 인식 한편엔 작열하는 태양, 드넓은 초원과 사막, 야생동물이 있고, 다른 편엔 기아로 배가 볼록한 아이, 아이를 안고 수심에 잠긴 부모가 있다. 이 인식을 심은 건 미디어다.

미디어는 장애인 또한 쉬이 동정의 대상으로 비춘다. 비장애인은 이를 ‘장애 포르노’로 소비한 뒤 일상으로 돌아간다. 돌아간 자신의 세계에 사람으로서 장애인은 없다. 우간다에도 미디어가 보여준 빈곤 너머 사람이 있고, 그들의 삶이 있다.

 

1975년 부산 거제동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칠삭둥이였고, 다리부터 세상으로 나오다가 얼마간 숨을 쉬지 못했다. 그사이 뇌가 손상됐다. 아이는 제대로 목을 가누거나 기지 못했다. 늦되다고 생각하던 부모는 돌 즈음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는 뇌성마비로 진단했다. 앞으로 아이가 걸으려면 목발이 필요했다.

아이 외할아버지는 한국 전쟁에서 다리에 총을 맞았다. 외갓집은 집안에 장애인을 둘 수없다며 총알을 빼지 않게 했다. 아이 엄마가 외할머니 뱃속에 있을 때였다. 외할아버지는 아빠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아이가 장애인인 건 그 때문이 아닐까, 외가는 짐작했다. 친가는 아이 엄마가 잘못을 저질러 애한테 귀신이 씌었다며 굿을 했다. 양가 모두에게 아이의 장애는 죄를 지어 받은 벌이었다.

 

한데 모인 우간다 장애 대학생, 운 좋은 한국 장애 초등학생

16시간 남짓 날아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도착했다. 더웠다. 아프리카는 더운 지역의 대명사다. 한국에서 가장 덥다는 대구가 ‘대프리카’로 불리는 이유다. 그런데 예상만큼 덥지는 않았다. 계절 탓만은 아니었다. 한국은 40도가 넘기도 한 지난여름에도 우간다 수도 캄팔 라(Kampala)의 기온은 30도를 넘지 않았다. 덥다고 일반화하기에 아프리카는 넓었다.

다음날 캄팔라에 있는 마케레레 대학교에 갔다. ‘장애 인식 주간(Disability Awareness Week)’을 맞아 행사가 열렸다. 40명쯤 모인 가운데 서로 다른 유형의 장애 학생이 차례로 나와 발언을 이었다. 취업 문제, 국가의 장애 정책 등을 성토했고 청중은 호응했다. 한국 팀을 초대한 건 연구소가 이번 교육의 강사로 섭외한 엘리자베스(Elizabeth)와 미리엄 (Miriam)이다. 엘리자베스는 특수교사이자 장애인권 교육 강사고, 미리엄은 변호사로 장애인 법률 지원 단체 LAPD(Legal Action for Persons with Disabilities Uganda)에서 활동한다.

한국에서는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사무국장이 강사로 참여했다. 행사를 지켜본 그는 “90년대 중반 대학에 가서 장애 학생 동아리를 만드니 장애인 동기 22명 중 2명이 가입했다. 그들은 장애를,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 이렇게 많은 장애 학생이 모여 있어 놀랐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사실 그들은 우간다에서 굉장히 소수다. 우간다 장애 아동 중 초등학교에 다니는 비율조차 9%다. 반면 전체 아동의 초등학교 진학률은 92%다.

 

여러 군데 입학을 거절당하고 아이는 한 사립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몇 학부모가 자기 자녀를 장애인과 둘 수 없다며 반대했지만, “그러면 반 전체를 맡지 않겠다”고 아이 담임은 단호히 대처했다. 3학년이 된 아이가 물었다. “친구들이 저를 왜 이렇게 불편해할까요?”

선생이 대답했다. “장애인을 못 봐서 그렇다. 네 장애를 설명해주면 된다. 나도 장애를 학교에서 배우기만 했다. 장애인인 너를 이렇게 직접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갑고 기쁘다.” 그는 아이의 장애를 긍정했다. 운이 좋았다. 학교에는 좋은 선생님이 많았다. 아이가 멋있을 순간을 포착해 사진 찍던 선생님이, 체육 시간에도 아이를 참여시키려고 고민한 선생님이 있었다. 그들의 태도는 아이가 자기 장애를,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며 자라는 데에 뿌리가 됐다.

 

   
 

장애를 대하는 태도는 교사에게 달렸다

6시간가량 차를 타고 북부 지역 글루(Gulu)로 갔다. 연구소 김강원 실장은 “내전을 겪은 글루에는 장애인이 많다. 부상과 전쟁 트라우마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가족이 살해당하거나 마을이 불타는 모습을 보고 정신장애가 생긴 아이들이 있다. 또 빈곤층이 많아 말라리아 같은 질병이 치료되지 못하고 장애로 이어진 경우도 많다”라며 장애인권 교육 지역으로 글루를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수업 없는 주말, 6개 초등학교에서 교사 100명이 장애를 배우려고 교실에 모였다. 교장을 포함한 모든 교사가 참가한 학교도 있었다. 오전 강의는 엘리자베스와 미리엄이 하루씩 맡았다. 엘리자베스는 통합 교육을 주제로 강의하고 미리엄은 유형별로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기초적이지만 필요한 내용이었다. 강의를 끝낸 미리엄은 “과거 선생님들은 내게 신경 썼지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다. 불쌍히 여길 뿐이었고 배려 한다는 이유로 활동에서 배제했다. 선생님을 보고 아이들도 나를 불쌍하게 봤고 나조차도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됐다. 여기에 온 교사는 장애인이 살아온 삶을 들었고, 장애 학생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분명 다른 교육을 할 것이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오후 강의는 김형수 사무국장이 맡았다.

 

어른이 된 아이는 우간다 초등교사 앞에 선다. 운 좋게 좋은 선생님을 만났던 그가 만날 우간다 교사들은 장애 아동에게 좋은 운이 돼줄 것이다.

“어린 나는 비난받았다. 그러나 장애인인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우리 부모 잘못도 아니 다. 힘들고 어렵지만, 때로 날 외롭고 슬프게 하지만, 장애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렇게 선생님에게 배웠다. 지금 난 내 장애를 사랑한다. 장애인인 게 자랑스럽다. 어릴 적 집안에 있기를 강요당했지만 40년 뒤 나는 1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우간다에 있다. 나는 한국 팀의 유일한 장애인이다. 목발이 없었으면 여기 오지 못했을지 모른다. 이렇게 장애는 많은 기회도 줬다. 단점이라고만 생각하는 장애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꾸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게 교사로서 여러분의 역할이다. 교사 하나가 바뀌면 학생 백 명이 바뀌고, 학생 백 명이 바뀌면 한 학교가 바뀐다. 그러면 글루가, 우간다가, 아프리카가 바뀐다. 그런 믿음을 갖고 학교로 돌아가길 바란다.”

 

   
 

경제 발전이 인권 의식을 높이진 못한다

100명의 교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이후 이틀간 4개 학교에서 교육 받은 내용을 학생들에게 시연했다. 장애인 주인공이 나오는 동화책을 읽었고, 테블릿 PC와 빔 프로젝터로 동화책과 관련한 동영상을 봤다. 한 학생이 장애인을 묘사하며 ‘절름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선생님이 고쳐줬다. 다른 선생님은 장애인은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비장애인과 다른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장애가 겉으로 드러난 학생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 교사는 “학교까지 긴 거리를 올 방법이 없기도, 경제적인 사정으로 가정에서 방치되기도 한다”라고 이유를 말했다. 세 번째로 찾아간 학교에는 휠체어를 탄 학생이 있었다. 휠체어는 지나치게 깨끗했고, 장애 학생은 친구들과 달리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한국 팀원이 사전 조사로 이전에 방문했을 때 아이는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이제 씨앗 하나가 심어졌다. 그날 아이는 처음 휠체어를 탔을 수도, 처음 주인공이 됐을 수도 있지만 심은 씨앗에서 싹이 움트고 자란다면 아이의 삶은 이전과 달라질 것이다.

 

   
 

“한국은 경제가 발전해서 지원이 많지 않나.” 교육 받던 우간다 교사가 물었다. 김형수 사무국장이 답변했다. “양적인 지원은 우간다보다 많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한국 장애인이 느끼는 차별은 여기 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2017년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교사 부담이 크다’, ‘부모 욕심이다’라는 말로 장애 아동의 입학 포기를 요구했다. 서울의 한 특수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장애 학생 두 명을 상습적 으로 폭행했다. 2017년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1조 5,302억 달러로 12위, 1인당 국내총생산은약 3만 달러로 26위다. 그러나 장애 학생은 아직도 운에 기대 인권을 보장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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