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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좀 적어주세요소수장애인
글. 박관찬/시청각장애인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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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7  10:4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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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할 때 제가 가장 선호하고 편한 의사소통 방법은 ‘손바닥 필담’입니다. 저는 말하고, 상대방은 제 손바닥에 글로 적는 소통 방법입니다. 이 방법을 20년 넘게 사용하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었습니다.

 

나만의 성격 파악법

저는 제 손바닥에 글을 적어주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바닥에 글을 적어달라고 하면, 사람마다 글을 적어주는 속도와 글자의 크기, 글씨의 방향 등이 천차만별 다양합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유형은 손바닥에 한 글자씩만 적는 경우입니다. 손바닥 안에 절대 두 글자 이상 적지 않습니다. 대개 차분한 성격이죠.

몇몇 사람은 두 글자 이상 적습니다. 예를 들어 ‘안녕하’를 손바닥에 한 번에 적고 공간이 없으니까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세요’를 적습니다. 이런 경우는 글씨를 작게 쓰거나 빨리 쓰려는 경향이 있어 성격이 급하거나 소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글자씩 적는 경우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가 하고 싶은 말이면, ‘만나서’라고만 적어도 제가 눈치채고 말하기 때문에 대화가 더 빨라집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참을성 있게 자신의 말을 다 적는 유형도 있습니다. 정말 꼼꼼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예상하지 못했던 배려

학교에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러 가면 학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교육을 진행합니다. 특히 강의 중 필요한 ‘통역’을 활동지원사를 통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요청합니다. 통역 담당 학생은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대화하는 체험을 해볼 수 있겠지요.

한번은 어느 고등학교에 강의하러 갔습니다. 평소처럼 학생 한 명이 나와 저에게 통역해 줬는데, 무슨 글을 쓰는지 순간 이해할 수 없어 잠시 당황했습니다. 저는 시각과 청각 대신 촉각이나 인지기능이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굳이 글이 쓰이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손의 인지기능으로도 충분히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글을 적어줄 때 읽는 저의 방향이 아니라 쓰는 자신의 방향으로 글을 씁니다. 저의 방향에 맞추려면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글씨를 옆으로 기울어지게 써야 해서 번거롭습니다. 그래서 저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쓰는 글을 읽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통역을 담당해준 학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글을 읽는 저의 위치에서 읽기 편하도록 글을 적어준 겁니다. 배려해준 것이죠. 그런데 우습게도 그러한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던 저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20년 넘게 손바닥 필담을 나누며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썼는데, 학생이 이렇게 배려하니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 학생은 제가 강의에서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인 ‘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을 이해하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꼭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장애인을 바라볼 때, 장애인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종종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장애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에 갇혀 살게 됩니다.

 

   
 

필담 에피소드

손바닥 필담으로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해봤습니다. 한번은 기차 안에서 승무원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잘 들리지 않으니까 손에 좀 적어달라고 하니 승무원이 들고 있던 펜으로 제 손바닥에 글을 적었습니다. 펜을 손가락 삼아서 쓰는 게 아니라 진짜 잉크를 묻혀 가며 쓰는 겁니다. 깜짝 놀랐지요.

어떤 분은 글을 쓰면서 띄어쓰기를 해야 하거나 새로운 문장이 시작될 때마다 저의 손바닥을 쓸어내리며 그 의미를 전달하기도 하고, 다른 분은 펴있는 제 손바닥에 손을 잠시 밀착해두면서 그런 의미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냥 손바닥에 하고 싶은 말을 글자로만 적어줘도 충분히 감사한데, 사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본인의 감정,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 등을 조금이라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손바닥 필담 이야기를 하면 가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빠랑 목욕탕에 갔을 때입니다. 온탕 안에서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제스처로 손가락을 내밀길래 물 밖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제 손을 다시 물속으로 넣고 글을 쓰는 겁니다. 하하. 가족끼리 백화점에 간 적이 있습니다. 엄마랑 옷이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갔는데 거기서 엄마가 저의 손을 옷 속으로 넣어서 글을 쓰는 겁니다. 하하 2.

당시에는 그냥 웃어넘겼지만 부모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겉으로는 전혀 시청각장애, 아니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비장애인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부모님이 항상 부끄러워하지만도 않습니다. 엄마는 제 손에 글을 적으실 때, 뭐라고 적고 있는지 적으면서 ‘말’도 같이 합니다. 어쩌면 제가 조금이라도 듣기를 바랄 수도 있고, 엄마와 제가 나누고 있는 대화를 다른 사람에게도 들려주기 위함일 수도 있지요.

반면 제 동생은 진짜 통통 튀는 녀석입니다. 그냥 손가락으로 쓰면 되는 것을, 손가락을 꼿꼿하게 세워서 손톱으로 적어줄 때가 있습니다. 하하 3. 요즘은 손가락으로 적어 주는데, 제 동생이 제 주변 사람들 중에서 제가 가장 알아보기 쉬운 속도와 크기로 적어줍니다. 가장 대화가 편한 상대라고 해야겠죠.

 

그저 소통의 한 방법

의사소통은 반드시 ‘말’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죠. ‘손’으로 하는 수화처럼, 손바닥 필담도 하나의 의사소통 방법입니다. 반드시 체계적으로 정립돼야만 의사소통 방법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시청각장애인에게는 이 지구상의 모든 것이 다 의사소통 방법일 수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목에 손을 짚고 그 목에서 나는 발성을 통해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입술을 만져서 입 모양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판단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착용하는 팔찌나 특정한 헤어스타일 등을 만지게 하여 본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방법 역시 하나의 의사소통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화나 점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시청각장애인과 가장 쉽고 편하게 대화하는 방법이 바로 ‘손바닥 필담’입니다. 손바닥에 하고 싶은 내용을 적어주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 방법으로 소통하기 쉬우면서도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더 그렇습니다. 제 장애를 설명하고 손바닥에 적어달라고 했을 때 바로 이해하고 적어준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대부분 핸드폰이나 종이를 꺼내고 거기에 글로 적어서 전달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서 경계하게 되는 부분도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냉정히 표현하면 신체적인 접촉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한번 해보면 금방 적응할 수 있고,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거부감 없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해하도록 설명할 수 있을지 늘 고민됩니다. 물론 이 방법이 하나의 의사소통 방법으로 인정되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것보다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조금이라도 더해진다면 충분히 큰 어려움 없이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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