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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활동이 무의미해질 세상을 만들어간다장애인이동권컨텐츠 협동조합 무의(Muui)
글. 채지민 객원기자 ◎ 사진 제공. 무의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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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4  09: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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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만남이자 설렘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언제든 떠날 준비와 환경이 마련된 이들의 자기만족에 한정될 수 있다. 마음은 간절한데 움직이는 게 쉽지 않고, 움직인다 해도 미지의 모든 걸 장벽처럼 대비해야 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가는 길 앞에선 주저됨을 감추긴 어렵다. 머나먼 여행지나 휴양지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당장 자신이 사는 도시와 마을 전체가 이동권을 가로막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화려한 여행이 아니라, ‘일상 속 나만의 여행’을 부담 없이 즐길 방법은 없을까? 이동에 불편함을 가진 이들을 위해, 당사자들의 눈높이에서 이동의 편의성을 지도로 제작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2018년 한국장애인인권상 인권실천 부문을 수상한 장애인이동권컨텐츠 협동조합 ‘무의’를 소개한다.

 

불합리함,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

“장애는 누구나 처음 겪는 거죠. 장애인이 집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경험치가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하지만 모든 게 첫 경험인 건 똑같아요. 비장애아를 키우는 것도 첫 아이를 키운다는 첫 경험이고, 장애아를 키운다는 것도 당연히 첫 경험일 수밖에 없죠. 가정을 갖고 아이를 키우는 모든 과정이 전부 다 첫 경험인데, 장애아일 경우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단절되는 괴리감과 마주치게 됩니다. 정보가 없는 거예요. 물어볼 데가 없고, 주변에 있는 또래의 선배엄마들한테도 문의를 할 방법이 없어요. 제가 첫 번째로 느꼈던 사회의 불합리함, ‘이건 아니다’ 하며 생각을 달리하게 됐던 건, 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던 무렵이었습니다.”

협동조합이기에 ‘이사장’이라는 호칭을 쓴다.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기 전, 장애인이동권컨텐츠 협동조합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한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무의가 쌓아온 실적과 다양한 활동은 홈페이지 방문과 인터넷 검색, 기존의 관련기사로도 충분히 확인가능하다. 그런데 취재를 준비하면서 궁금증이 더해졌던 건, 일상의 평범했던 한 엄마가 협동조합을 만들어 직접 사회 속을 뛰게 된 계기와 과정 안에 더 의미 깊은 내용들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치였다. ‘무의’의 소개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의’ 가 탄생하기까지의 발자취에 더 큰 해답이 담겨 있으리라 지레짐작했던 것이다. 좋은 제안이라며 그는 흔쾌히 동의 했다. 그리고 오랜 기억 속에 머물러 있던 퍼즐들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내심 예상했던 대로 마음 아픈 내용들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홍 이사장의 딸 지민이는 ‘신경모세포종’이라는 소아암을 가지고 태어났단다. 생후 14개월 동안 14번의 항암치료와 10번의 방사선치료를 받는 과정은 모든 게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고 한다. 척추 안에 암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신경을 눌러, 지민이는 결국 그 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가 됐단다. 직장생활을 하던 엄마의 퇴근길은 병원으로의 출근길이었고, 그 어린 아기와 함께 새우잠을 자면서 마음 고생한 결과로 14개월 만에 항암치료를 모두 마치게 됐다고 한다.

“어렵게 어린이집을 알아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엇비슷했어요. ‘기어서 다니는 애가 밟히면 우리는 책임 못진다’는 거죠. 국가에서 특수교사를 보내주는 제도가 있긴 한데, 장애를 가진 아이가 세 명은 있어야 신청이 가능하대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럼 지금 나보고 두 명을 더 모아오라는 건가?’ 하며 혼자 자문자답을 해야 했죠. 찾고 또 찾다 대안으로 선택한 게, 당시 거주지 인근에 있던 공동육아어린이집이었어요. 협동조합 형태로 부모들이 출자를 해서 만든 어린이집이었거든요. 부모님들인 이사장님과 교사들이 오랜 회의를 열었어요. ‘애를 받아 준다, 못 받는다’의 개념이 아니라, 애를 받는다면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아이를 맡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토론했던 거죠.”

그 어린이집에 다니는 걸로 결론이 났고, 교사 한 명이 지민이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어린이집 생활이 시작됐단다. 나들이를 갈 때면 부모들(주로 엄마들)이 돌아가며 아이를 업고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직장맘’이었던 홍 이사장은 정말로 절실하게 깨달은 게 있었다고 했다. “인디언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제가 깨달은 게 바로 그 공동체 정신이었어요. ‘아이를 키우기 위해 혼자 모든 걸 뒤집어쓰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 주변의 도움 같은 걸 많이 알아봐야 하고, 스스로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것. 지금은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지만, 다른 능력을 키워서 도움을 주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장애인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동등하게 살아갈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것’, 이런 생각과 다짐들이 가슴과 머릿속에 가득 채워진 거예요. 그게 제 모든 활동의 첫 번째 계기가 됐던 거죠.”

 

   
 

목소리를 내고 움직여야만 답을 얻는다

무언가 한 가지에 집중하다 보면, 언제 어디서든 ‘그것’만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홍윤희 이사장’ 아닌 ‘지민이 엄마’였던 당시의 그는 아이와의 외출을 방해하고 가로막는 모든 요소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한다. 꼭 타야 하는 마을버스는 저상버스가 전혀 없다는 것, 휠체어를 탄 채 이동한다는 건 모든 게 ‘배리어’라는 사실도 체험으로 확인 하게 됐단다. ‘배리어프리(barrier free)’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배리어(장벽)뿐인 세상이었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외출하는 걸 몹시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출퇴근길마다 꼼꼼하게 교통 환경을 살피던 그의 눈에 결정적인 문제점이 포착된 건, 서울 지하철 고속터미널역에서 목격한 한 장면이었단다.

“고속터미널역은 세 개의 노선이 환승으로 만나죠. 당시 건국대병원에 다니던 저의 아이와 이 환승 구간을 이용할 일이 있겠다 싶어 둘러보는데, 환승통로의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 났다고 안내문이 서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내용이 기가 막혔어요. ‘휠체어를 타신 분은 7호선으로 갈아타려면 9호선을 다시 한 번 타시고, OO역에서 내려서 4호 선으로 갈아타신 후 4호선의 OO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십시오.’ 생각으로만 계산을 해도 40분은 족히 더 걸리겠더라고요. 더 황당한 건 이 리프트가 언제 고쳐지는지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고, 역무실 전화번호도 없고 ‘고속터미널 역장’이라고만 적혀 있는 거예요.”

‘지민이 엄마’는 곧장 역무실 번호를 검색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대뜸 “어머니, 어디 계세요?” 묻기에 왜 그러느냐고 되물으니까, “계단 위쪽에 계시면 3호선이나 9호선으로 연락하시고, 아래쪽에 계시면 7호선으로 연락하세요.” 이런 식의 설명이 이어졌단다. 이런 대답이 왜 나오는 건지 의아해서 한참 되짚다 보니, 비로소 그의 눈에 해답이 들어왔다고 한다. 운영주체가 전부 다 다르다는 것이다. 당시 3호선은 서울메트로, 7호선은 서울도시철도공사, 9호선은 서울시메트로 9호선, 이렇게 제각각 관리책임이 나눠져 있으니 책임소재 또한 ‘우리가 아니고 저쪽’이라고 강변하면 끝나는 셈이다.

“거기서 실마리가 확 풀린 거예요. 제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매번 불편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는 거죠. 무슨 자수 모양을 뜨는 것처럼 노선 하나 만들고, 그 아래 다른 노선 하나 더 만들고, 또 그 아래로 새 노선을 추가 하다 보니, 서로의 각도가 맞지 않아서 제대로 된 엘리베이터 하나 설치할 공간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는 거죠. 그러니 환승하는 길이 복잡하게 뒤엉키게 되고, 이용자들이 필요 이상 먼 길을 이동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가장 큰 문제는 교통약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배려가 전혀 없다는 거예요. 휠체어 리프트는 고장만 나면 무용지물이고, 너무 위험해서 누구든 타려고 하지 않잖아요. 불편하고 위험하니까 안 타게 되고, 안 타다 보니까 그 역에 갈 일이 없게 되고, 장애인들도 이용을 안 하니까 역무원들도 사용법마저 잊어버리게 되고, 고장난 걸 문제제기하는 사람도 없다 보니, 그런 식의 무책임한 안내문과 역무원의 대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만연하는 거예요.”

홍 이사장은 너무 화가 나서, 그날 느꼈던 문제점을 조목조목 페이스북에 올렸단다. 그걸 읽은 한 일간지 기자가 신문지면에 크게 기사화했고, 이튿날 국토교통부에서 해명자료가 나왔다고 한다. ‘우리는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위해 이렇게 이렇게 하고 있다’는 면피성 내용이 대부분이었단다.

“그 일로 인해 정말 확실하게 깨달았어요. ‘목소리를 내니까, 목소리를 높이니까 뭔가 변하는구나.’ 이 확신이 모든 문제해결의 방법론으로 저한테 제시됐던 거죠.”

 

   
 

내 아이, 우리 모두의 안정된 일상을 위해

당시 교육감이 중점을 뒀던 혁신학교로 진학하는 게 낫겠다 싶어, 홍 이사장 가족은 서울 강동구의 한 혁신학교 인근으로 이사를 했단다.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역은 5호선 종점인 상일(동)역이었는데, 하필 서울지하철 중에서 엘리베이터가 없던 10여 개 역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래서 문제의식을 갖고 줄기차게 민원을 제기했단다. 지하철공사부터 시작해서 서울시, 국가인권위원회, 강동구, 심지어 당시 총선 기간에 국회의원 하겠다고 입후보한 후보들한테까지 질의를 계속했다고 한다.

“아이와 외출하는 건 항상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 했죠. 그러던 와중에 대학 선후배들끼리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EBS 피디(PD)인 한 후배가 저의 의견을 듣더니 ‘이런 이동권에 대한 영상을 찍어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는 스토리펀딩 영상이 연재가 된 거예요. 화면 뒤에 괜한 슬픈 음악 같은 거 넣지 않고, 지민이의 이동과정을 있는 그대로의 동선에 따라 촬영했던 거죠.”

예를 든다면 이런 식이다. ‘지민이가 좋아했던 구체관절 인형이 있는 합정역까지 가려면, 5호선 상일역에서 타고 2호선 환승역인 왕십리역에서 갈아탄다’, ‘코엑스몰에 가기 위해 상일역에서 삼성역까지 이렇게 이동해야 한다’, ‘저상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발판이 고장 나서 제대로 탑승하지 못했다’, ‘저상버스가 왔지만 정류장에 불법 주차된 승용차 때문에 버스가 접근하지 못했고, 쓰레기통과 가로수가 돌출된 위치에 있어서 저상버스 이용이 불가능했다’, 이런 내용들이 연재로 이어지자,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응이 모아지게 됐단다.

“제가 절실하게 느꼈던 건, ‘아니, 이렇게 해가지고선 우리 애가 혼자 다닐 수 있겠나?’는 근본적인 질문이었어요. 아이가 성장하면서 인간답게 대중교통시설을 이용하면 좋겠는데, 그 환경이 너무 열악한 상태로 지속되는 거예요. 리프트는 너무나 비인간적이잖아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인간답게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훨씬 더 많이 설치돼야 해요. 하지만 그마저도 어르신들이 먼저 독점해 버려서, 정작 우선탑승이 필요한 휠체어 사용자들은 뒤로 밀려나는 게 일상화됐잖아요.”

고등학교 시절 스키 사고로 척추를 다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당시 미국 하버드대 유학생이었던 김건호 씨와의 만남이 홍 이사장의 인생에 새로운 방점을 찍었다고 한다. 미국 현지에서 휠체어를 타고 20개 주를 횡단했던 자신의 체험을 담은 ‘20 States on Wheels’를 출간했던 김건호 씨, 그는 장애인도 떳떳하게 자신의 의지를 갖고 능동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무의’라는 단체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전후 순서를 구분한다면, 김건호 씨가 만든 협동조합 무의에 ‘지민이 엄마’가 합류한 것이고,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간 건호 씨 다음으로 무의를 책임지게 된 게 홍 이사장이 된다.

그가 펼쳐왔던 모든 활동이 ‘무의’라는 테두리 안에 그대로 녹아들었음은 물론이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계원예술대학교의 한 교수가 교통약자 환승지도 제작을 제안했고, 이 프로젝트에 동감한 계원예대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휠체어에 앉아 이동하면서 제작한 게 바로 ‘교통약자 환승지도 모바일 맵’이다. 2017년 2월에 14개 역의 지도가 먼저 공개됐고, 2018년에 33개 역 58개 구간으로 제작이 확대됐다. ‘구간’이라 함은 환승을 위한 각각의 길을 의미한다. A호선, B호선, C호선이 한데 환승되는 역이라면, 역 자체는 하나지만 이동해야 할 길은 제각각 달라진다. A→B, A→C, B→C, C→A, C→B, B→A가 전부 다른 방식에 따라 환승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고도의 첨단기술을 요구하는 ‘하이테크(Hightech)’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저는 일상의 가장 단순한 부분들을 해결해 주는 ‘로우테크(Lowtech)’ 신봉자이거든요. 사람들이 매번 저한테 얘기하죠.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보행이 가능하게 하는 로봇이 나올 거니까 희망을 잃지 마라.’ 네, 언젠가는 나오겠죠. 하지만 그런 첨단제품이 나와도, 가격이 수억 원 할 테니까 저는 구입을 못할 거예요. 저는 일상 자체의 자유로움을 원해요. 일상적인 이동의 불편함만 줄여도,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테니까요. 접근성의 문제는 이동권의 문제를 넘어 기본권의 문제와 직접 연결되거든요. 저는 무의가 만든 이동편의지도가 필요 없게 되는 세상이 최종목표예요. 다름은 그냥 다름일 뿐이거든요. 무의는 그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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