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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없는 존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알폰소 쿠아론의 자전적 영화 〈로마(Roma, 2018)〉
글. 이영문/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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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9.01.31  16: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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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어릴 적 그리움이 있습니다. 멕시코 태생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미 자신의 전작인 〈이 투 마마〉에서 자신을 길러준 보모에 대한 그리움을 표시한 적이 있었지요. 나이가 들수록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과 기억의 뿌리를 찾아가게 됩니다. 쿠아론 감독의 유년기 기억을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 분)라는 입주 가정부의 발자취로 더듬는 영화 〈로마(Roma)〉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바닥이 화면에 떠오릅니다. 3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카메라가 고정된 채, 음향 없이 흑백으로 오프닝 크레딧(opening credit)이 나타날 뿐입니다. 청소하는 소리가 들리고 물길이 일어납니다. 하얀 거품 사이로 하늘이 손바닥만 하게 비치지요. 고인 물에 비친 하늘은 아직 열리지 못한 닫힌 창공입니다. 긴 침묵 끝에 클레 오가 청소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합니다. 멕시코시티의 로마 지역에 사는 중산층 집안의 입주 가정부인 클레오의 일상을 따라 카메라는 흔들림 없이 좌우로만 움직임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클레오의 시선을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흑백 화면이 주는 화면의 제한성이 더욱 그녀의 표정, 행동을 주시하게 하지요. 두 문장 이상의 대사가 없는 클레오는 가끔 멕시코 원주민 언어인 미스텍 (Mixteco)을 구사합니다. 실제 쿠아론 감독의 어린 시절에 ‘리보 로드리게즈’라 불리는 보모가 있었고, 이 영화는 그녀에게 헌정하는 영화입니다.

클레오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남자친구를 만나 아기를 잉태했으나 그에게 버림받고, 아기가 유산되는 과정이 나타날 뿐입니다. 그러나 무표정한 듯,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한 그녀의 행동과 대사는 그녀가 돌보는 어린이들의 안식처가 되지요.

영화는 쿠아론 감독의 각본과 촬영, 감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촬영을 겸한 감독은 쿠아론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로마〉의 제작은 모두 멕시코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그는 고집했습니다. 흑백을 고집하고, 인위적 음향을 넣지 않으며, 영화 속 전개와 같은 순서로 촬영해 만들어진 영화 〈로마〉는 잔잔한 파도와 같은 감동을 줍니다. 물의 흐름이 자주 카메라에 잡히며, 불길이 일어난 산을 보여주기도 하고, 파도에 휩싸여 죽을 뻔한 에피소드를 그린 것 등을 보면, 쿠아론은 자연적 요소로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바람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 대신, 어머니와 보모를 중심으로 새롭게 창조된 가족관계에 더 큰 희망을 얻었고, 그것을 딛고 성장한 자신의 이야기가 영화에 그대로 담겨있지요.

이 영화는 마치 쿠아론에게는 신성과 같은 의미를 지닌 의식이라고도 보입니다. 장면 하나하나를 매일 쪽 대본으로 소화하면서, 쿠아론은 고집스럽게 롱테이크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피사체의 중심에 클레오가 존재합니다. 오프닝 3분, 엔딩 크레딧 6분이 모두 장엄한 장례 의식과도 같이 그려집니다. 오프닝은 하늘이 물에 담긴 것이었다면, 엔딩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하늘이 나타납니다. 클레오를 중심으로 인간관계의 상징들이 나타나는 대비적 구도입니다. 물청소하는 클레오와 빨래를 말리려고 지붕을 오르는 클레오. 변한 것은 물에서 하늘뿐이지만, 우리는 남성 들이 부재한 클레오와 주변 관계의 변화가 가져올 긍정적 희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간간히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그중에서 ‘마음은 집시’로 번역된 이탈리아 깐소네가 나오는 장면은 저를 70년대로 데려다주었지요. 폭력이 난무하던 1970년대 멕시코 상황은 유신체제의 한국을 떠올리게 하고, 우익테러리스트로 변신한 클레오의 전 남자친구가 발음하는 일본어는 무한성장할 것 같던 1970년대 일본의 야망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누구나 변하게 마련입니다. 성장 없는 존재란 상상할 수 없기에 쿠아론 감독의 자서전과 같은 이 영화는 저와 주변 사람들의 성장과 같은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존재가 생성되고 또 변해가는 과정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만일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통해 인간은 또 다른 생성을 낳게 되고 역사는 그것을 다시 증명하고 시간과 공간 속에 자리매김합니다. 우리에게 성장의 의미와 사람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 〈로마〉를 모든 분들에게 권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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