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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산다는 거, 시설에서 나와 알게 됐어요탈시설 뇌병변장애인 황기원
글과 사진. 정혜란 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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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2  1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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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라는 잔소리가 지겹고 여행과 아이돌 음악을 좋아하는 뇌병변장애인 황기원 씨는 이제 고3이다. 중증장애인 스포츠 보치아 전문 특수학교에 다니며 개학을 앞둔 그는 이번 겨울방학 내내 보치아 연습을 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기원 씨는 지난 10회 오텍배 서울시 보치아 대회에서 2위를 기록해 은메달을 수상한 경력도 있다. “고3이 끝나면 좀 쉬고 싶어요”라며 해맑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여느 수험생과 다르지 않았다. 이토록 평범한 기원 씨의 일상은 성인이라도 홀로 감당하기 버거운 시간들을 지난 후에야 겨우 찾은 것이었다.

 

가족과의 불화, 그리고 시설 입소

작년 10월부터 서울시 자립생활주택에서 살고 있는 기원 씨는 2017년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온 일명 ‘탈시설 장애인’이다. 시설에 입소하기 전까지는 따로 생활하는 부모님의 집을 각각 오가며 살았다. 그가 날짜까지 또박또박 기억하는 2016년 4월 1일, 함께 살던 아버지와의 불화가 심해지면서 기원 씨는 아버지의 집에서 차로 한 시간여 떨어진 한 시설에 보내졌다. 그곳에서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기원 씨가 가장 먼저 언급한 단어는 ‘감옥’이었다.

“시설은 감옥이었어요. 필요한 게 있거나 누굴 만나야 해서 잠깐 나갔다오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어요. 정해진 시간에는 정해진 활동을 해야 하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취급을 당해야 했어요. 감옥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쳐도 제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내가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요.”

시설 안 문제들을 두고만 보기 어려웠던 그는 시설 안 생활을 기록으로 남겨 ‘국가인권위 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비슷한 시기 시설 실태조사를 나온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이하 발바닥)’ 활동가가 기원 씨에게 탈시설을 제안했고, 인권위에서 시설 측에 시정명령을 내린 이후 발바닥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아 입소 1년여 만에 시설에서 나왔다.

“처음 인권위에 진정을 넣겠다고 했을 때, 제게 잘해주시던 학교 선생님께서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시설에서의 일들이 문제인 건 인정하지만, 시설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제가 해코지 당할까봐 걱정을 하셨던 거죠. 실제로 시설 실태조사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말을 안 듣거나 문제를 공론화하면 퇴소시키겠다며 협박당하는 게 일상인데, 어느 누가 쉽게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저도 처음 인권위에 진정을 넣기 전에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것 같아요. 그때 결단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30살이 되어서도 계속 시설에서 살아야 했을 거예요.”

 

   
 

시설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

시설에서 나오던 당시 기원 씨의 나이는 17세로 미성년자였다. 그는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혼자 사는 편을 택했다. 자신을 시설로 보낸 아버지의 집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어머니에게도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마침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이하 학피센터)가 운영하는 쉼터로 연계가 돼 그곳에서 10개월간 생활했다.

“학피센터 쉼터는 이를테면 학대피해를 입은 장애인이 자립을 하기까지 회복을 지원하고 자립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에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3년간 운영하는 단기사업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운 좋게 이곳에 들어와 좋은 분들을 만나고 제게 필요했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탈시설 한 장애인 중에서 저는 꽤 어린 나이에 속하는 편이에요. 가뜩이나 성인이 탈시설을 하더라도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한데, 미성년자가 탈시설 하는 경우는 드물다보니까 부딪힐 수밖에 없는 벽들이 많았어요. 핸드폰도 통장도 뭐 하나 혼자서 만들 수가 없었거든요. 거기에 탈시설 장애인을 위해 제도적으로 갖춰진 게 거의 없다보니 이분들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다시 시설로 돌아가야 했을지도 몰라요.”

시설에서 나온 이후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기원 씨에게는 하루하루가 사건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학피센터의 사업이 끝나갈 무렵 운영하던 쉼터 문을 닫기 직전까지도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일을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아찔하다. 쉼터 퇴소 이후에도 지속적인 맞춤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학피센터 담당자는 기원 씨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자립생활주택에서 기원 씨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다. 하지만 기원 씨가 탈시설 전 거주했던 시설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시설이 아니었기 때문에 입주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때는 정말 다시 시설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했어요. 다른 방법이 없었거든요. 탈시설을 하고 나서 다시 시설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처음에는 기껏 어렵게 나왔는데 왜 다시 제 발로 시설에 들어가려는 건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학피센터 담당자 분들과 발바닥 활동가 분 등 여러 분들의 도움을 받아 정말 극적으로 자립생활주택으로 입소를 할 수 있게 됐어요. 대신 자립생활주택에서 최대로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인 7년이 지나면 ‘자립정착금’ 명목으로 지원받는 1천 2백만 원을 받지 않겠다는 전제조건이 있었어요. 자립생활주택에서 나온 이후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살 집을 구해야 한다는 게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이만한 걸 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통령님, 탈시설 공약 잊으셨나요?”

“시설에서 나와서 좋았던 거요? 그냥 모든 게 다 좋았어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음식을 먹고, 밖에서 자유롭게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집에 서나 영화관에 가서 볼 수 있으니까요. 그냥 이게 사람답게 사는 거구나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는 활동지원인과 함께 외할머니 댁에 다녀왔어요. 제가 여행을 좋아하거든요. 나중에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우고 싶어요.”

기원 씨는 인터뷰 내내 “제가 운이 좋았어요”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 말은 곧 생활 시설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기원 씨와 같은 탈시설 지원은 받기 어려운 현실을 의미하기도 했다. 기원 씨는 시설에서 나온 이후 자립생활주택의 소장님을 따라 장애인 인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장애인생활시설 관련 한 토론회에 참여해 탈시설 이후 자신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에 대해 발언하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탈시설과 통합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탈시설 공약을 내걸었는데, 지켜진 건 거의 없어요. 토론회에 참여했을 때 보건복지부 담당자에게 시설 위치가 지방이라는 이유로 자립생활주택에 입주할 수 없는 부당함을 이야기했더니 서울시에 이야기를 하라는 답변을 받았어요. 서울시에 똑같이 이야기를 해도 역시나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었어요. 지방에서 탈시설한 장애인이 당장 잘 곳이 없어서 길바닥에서 잠을 자게 생겼는데, 책임지는 기관은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로는 지역사회 장애인 통합을 위해 힘쓰겠다고 이야기를 하니 앞뒤가 안 맞는 거죠. 지금의 한국 시스템에서는 시설에서 나와도 다시 시설로 돌아가라는 말밖에는 안 돼요. 어렵게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이 다시 시설에 돌아가는 모습을 정부는 그저 구경만 하고 있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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