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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당신만큼 존엄한 인격체입니다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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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9  09: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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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작년이 돼 버린 2018년, 그 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미투(Me too)’ 운동은 한순간의 폭발과 외침 정도로 끝날 것 같진 않다. 썩고 곪은 부위는 너무나 많은데, 아직까진 단지 몇몇 군데의 고름만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 ‘두 번 죽이기’로 몰고 가는 일그러진 세상은 여전하다. 오히려 정보의 공유가 빛의 속도로 가능해진 탓에, ‘두 번 죽이기’ 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예 ‘매장시키기’로 몰아가는 반인륜 혐오세력들의 득세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게 분명하다. 그렇게 세상은 미친 듯이 돌아가는데도, 여전히 무관심과 차별의 그늘 속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있다.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그 존재를 부정당하는 그들을 2019년엔 어떻게 마주봐야 할까? ‘그들도 존엄한 인격체’임을 행동과 실천으로 증명하는 이들을 만났다. 사단법인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문을 두드린다.

 

낯선 땅에서는 누구나 이방인이다

이주여성들이 관련 시민사회단체를 찾아와 받는 상담 유형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주여성들이 처해 있는 현실이 어떤 수준인지를 짐작케 한다. ‘가정폭력·일반폭력·성폭력·성매매·부부갈등·가족불화·가출·심리정서·외도·이혼 문제·일반법률·체류문제·노동·기초생활·의료·쉼터’ 등의 항목만으로도 그들의 현재 상황이 액면 그대로 드러난다. 아주 먼 지역, 어느 두메산골의 모습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생활공동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원으로 늘어났고, 다문화사회의 확대와 함께 그 비중은 더더욱 크고 넓어질 게 분명한 일이다.

“행정안전부와 법무부의 통계가 달라요. 통계를 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인데, 행안부는 주민센터 같은 정부 기관에 등록된 실제 거주민들을 종합해서 발표합니다. 190만 명 정도 돼요. 법무부 통계는 이 땅에 들어와 있는 모든 외국인들을 포함합니다. 250만 명이 넘어서고 있어요. 그러니까 행안부의 통계만 기준으로 한다면, 이미 우리 곁엔 200만 가까운 이주민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이미 다문화사회로 본격 진입한 상태입니다.”

2001년 ‘여성이주노동자의 집’으로 출범한 한국이주여성 인권센터(아래 이주여성센터)는 20여 년의 기간 동안 일반대중에겐 거의 드러나지 않은, 그러나 인권운동의 측면에선 매우 깊고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며 성장해 왔다. 사회적 소수자라고 하면 빈민과 장애인 정도만 떠올리던 당시에 이주여성의 인권에 주목했다는 것, 그건 시대를 앞선 선도적 도전이자 ‘소수자’라는 개념을 대폭 확대시키는 기폭제의 역할 또한 담당했다는 의미도 갖는다. 이주여성센터는 이주여성들을 위한 ‘민간대사관’을 자임한다. 또한 ‘이주여성이 기댈 마지막 장소’라는 대외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을 펼쳤다는 건데, 이는 ‘이주민’이면서 ‘여성’인 그들에게 가해지는 가정폭력과 성폭력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가정과 사회 안에서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되기보다는, 학대당하고 신분증을 빼앗긴 채 외출과 취업이 금지되는 모든 부조리함이 실제 현실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한번 언론에 등장했다가 사라지며 잊혀지는 ‘OOO에서 온 이주여성, 남편에게 살해됨’ 같은 사건기사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고사례들을 살펴보다 보면, ‘정상적인 가정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를 헤아릴 수밖에 없는 실상과 마주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주여성도 본국에 가족이 있습니다. 그 가족한테는 정말 소중한 딸이고, 언니나 누나 아니면 동생인 거죠. 그런데 결혼을 위해 이주했다는 이유만으로 성적(性的) 대상화가 되는 게 대부분이에요. 계획임신도 얼마든지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이주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임신부터 해야 인정을 받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위장결혼이라는 의심이 모든 판단의 잣대로 덮어씌워지니까요. 아이를 낳기 전에 이혼이라도 당하면, 한국국적도 못 받고 빈손인 채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내라는, 며느리라는 하나의 인격체로 한 사람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시댁에 필요한 건 ‘자궁’ 하나일 때가 많다는 거예요. 모든 문제는 그런 일그러진 시각에서 시작 됩니다.”

 

   
 

한국인은 모르는 한국인만의 경험

2017년 1월 총회에서 제2대 대표로 선출된 허오영숙 상임대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여성인권운동에 매진해 왔던 산증인이다. 남성 중심의 운동에 회의를 느껴 여성운동으로 방향을 돌렸고, 여성이주민 문제에 눈을 뜨면서 그들의 송출국(출신국) 중 하나인 필리핀에서 현지 활동 까지 한 남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07년 여름 이주여성센터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쳤고, 내부의 모든 실무를 담당한 뒤 자연스럽게 대표가 된 케이스가 된다. 전임 대표가 창립 이후 17년을 책임졌기 때문에, 그의 상임대표 선출은 이주여성운동의 2세대가 시작됨을 알리는 세대교체의 의미 또한 담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인권운동을 안정적으로 길게 가져갈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저 역시 이십대 시절 여성운동 조직에 있을 때 굉장히 헌신적이었고, 하루 이십사 시간 열정적으로 운동만을 위해 살아봤거든요. 그런데 그게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면서, 중간에 공부를 한다고 오 년 정도를 쉬어야 했던 기간이 필요했어요.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언제든 당연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저는 가능한 한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선에서 센터를 운영하려고 해요. 노동권과 인권운동에 헌신하는 것이 물리적인 시간의 양으로만 측정되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사회적 건강과 개인의 정신건강 그리고 육체건강이 같이 가야 한다는 거죠. 그게 이 운동을 진정성 있게 더 긴 시간 동안 끌고 가게 만드는 대안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이주여성센터의 활동가 중 많은 이들이 이주여성 당사자들이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약 4백여 명의 이주여성들이 가정폭력상담원 교육·성폭력상담원 교육·인권전문가 양성교육을 수료했고, 이들은 전국의 상담센터 및 쉼터 등의 일선에서 이주여성을 돕는 상담가와 활동가로 직접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허오영숙 대표는 그의 오랜 경험에서만 내릴 수 있는 색다른 관점의 평가를 내놓았다. 선주민 활동가들의 성장속도와 이주여성 당사자 활동가들의 성장속도 및 성장의 방법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선주민’은 이주민에 대응하는 표현으로, 원래부터 이 땅에 살고 있던 한국인을 의미한다. ‘장애인’의 대응으로 ‘비장애인’이라는 용어가 권장되는 경우와 같은 표현이다.) “당장 우리 선주민들만 해도 4·19를 경험한 세대와 경험하지 못한 세대, ’87민주항쟁에 직접 참여한 세대와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의 입장이 크게 다르잖아요. 같은 의미로 민주화라는 경험이 없는 이주민들은 한국에 와서도, 원래 살던 나라의 체제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잖아요.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계가 있든 없든 간에, 한국인은 정부를 무너뜨려 본 경험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경험을 한 사람과 그 경험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의 차이가 엄청나게 커요. 예를 들어 탄핵정국 당시 촛불광장에 같이 나갔다고 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주했던 수많은 경찰들을 그들은 극도의 두려움으로 받아들여야 했다는 거죠.”

이런 예는 일상적인 활동에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이주여성센터 차원에서 특정 대사관을 찾아가 항의하거나 해당 국가의 정부에 직접 문의해야 할 상황이 생겼을 때, 선주민인 우리 활동가들은 해야 할 일들을 있는 그대로 진행한다. 하지만 이주여성 활동가들은 그러한 업무 자체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왜냐, 대사관에 ‘찍히면’ 안 되기 때문에, 본국에 가족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대해선 우리 모두의 깊이 있는 이해가 뒤따라야 할 일 같다.

“원래 살던 본국의 상황이 항상 전제가 된다는 거죠. 본국 정부가 얼마나 억압적이었는지를 몸으로 직접 체화했기 때문이에요. 최근의 예로 중국에선 노벨상 수상자마저도 출국이 금지되고, 노학연대 활동을 했던 중국 대학생들이 사라졌다(실종됐다)고 하잖아요. 본국의 정치체제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의 정도가 다른 거예요. 우리가 정말 어렵게 쟁취해낸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이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같은 법 자체가 없는 나라일 수 있고, 비슷한 게 있다고 해도 사문화된 채 적용되지 않는 나라에서 살았을 경우엔 실제 피부로 느끼는 절실함과 절박함이 다를 수가 있다는 거죠.”

 

   
 

이주여성, 그들도 존엄한 가족의 일원이다

이주여성의 피해사례는 단순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한 사건이 거의 없다. 내용 자체가 복잡하고 선주민 중심의 일방적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주여성의 인권이 배제된 상태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존재가 이 땅의 일반대중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사건은, 몇 해 전 발생했던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과 관련됐던 5년여의 법적다툼이었다. 이 사건을 설명하던 허오영숙 대표가 눈시울을 적시며 발언을 잠시 멈춰야 했을 만큼, 아직까지도 로스쿨을 비롯한 법조계에선 법의 맹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최고의 변론을 이끌어낸 변호인단이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이 안 된 채 접어야 했던 사례로 기록돼 있다고 한다. 아주 많은 내용을 풀어내야 하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베트남 출신 여성이 한국에 와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아버지한테 강간을 당했다. 한국어를 제대로 몰라, 한국에서 만난 같은 나라 출신 친구의 신고로 경찰에 접수가 됐다. 강간형사사건은 승소했고 시아버지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는데, 최종심 직전에 남편 측 집안에서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했다. 베트남 출신인 여자가 출산 경험이 있다는 걸 알리지 않고 속였다는 것이다. 출산 사실은 맞다. 하지만 그건 13세 때 당한 성폭력의 결과였다.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성폭력에 의한 출산인데, 태어난 아이는 남자 측에서 데리고 갔고 여자는 자기 가족에게서도 버림을 받아 쫓겨나게 됐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보쌈’이라는 풍습이 있었죠. 마찬가지로 베트남에는 ‘약탈혼’이라는 게 있대요. 마음에 드는 여자를 납치한 뒤 사흘 내로 여자 집안에 허락을 받아야 결혼이 이뤄지는데, 그 사흘 동안에는 여자를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해요. 하지만 그 사건의 경우엔 납치하자마자 폭력과 강간이 진행됐어요. 약탈혼이 아니라 성폭력 이었던 거죠. 강요된 출산을 하게 된 건데, 그걸로 피해자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여부가 쟁점이 됐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 법조계의 모든 판례에서 그런 경우의 사례가 전혀 없었다는 거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까지 받아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가선 패소했습니다. 당시 인지세조차 받지 않고 변호를 맡았던 공동변호인단과 협의한 끝에, 개인사건 최초로 유엔(UN)의 여성차별협약에 제출하는 과정까지 밟았지만 당사자가 먼저 포기를 했어요. 소송만으로 살아야 하는 한국에서의 삶을 접겠다는 결론을 힘들게 내리고 떠났던 거죠.”

한국 땅에서 일했던 이주노동자들은 매달 또는 분기별로 본국의 가족에게 송금하는 금액을 포함해서, 어찌됐든 일정한 목돈을 마련한 뒤 귀국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자신을 도와줬던 활동가들에게 한 끼 밥을 감사의 의미로 선물한 뒤 출국한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으로 온 이주여성들이 귀환한다는 건 모두다 실패예요. 잘 살았다면 당연히 남편과 여기서 살고 있는 게 맞죠. 남편이 죽었거나 이혼을 당했거나, 그런 사유로 몸과 정신 다 망가진 채로 돌아가는 거니까 그들에게 귀환은 거의 다 나쁜 사례가 되는 거예요. 그런 이주여성들이 지금도 우리 곁에서 하소연조차 못하는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 센터가 주목하지 않았다면 묻히고 말았을 사례들이 너무 많이 있어요. 그들도 존엄한 인간이고, 소중한 집안에서 살았던 가족의 일원입니다. 30만 명으로 추산되는 그들에게 이젠 여러분이 이웃의 마음으로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때라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한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한 인격체로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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