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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간 곳이 산속 감옥이었다사건으로 돌아보다
이태곤 편집장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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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9.02.20  1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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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5년 4월 따뜻한 어느 봄날, 서울에 있는 한 재활원에서 직원이 소풍을 가자고 해서 따라나선 한 무리의 지체장애인들이 있었다. 그런데 장애인들을 태운 버스가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근처 공원이 아니라 강원도 철원 끝 철책선 안 황량한 벌판에 있는 낯선 거주 시설 앞이었다. 깜짝 놀란 장애인들은 직원들에게 “차에서 내리기 싫다. 재활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울면서 매달렸다. 하지만 직원들은 매정했다. “너희들이 이제 나이 먹어서 갈 데가 없는데 여기 있어야지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 무리의 장애인들이 언제 나올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사실상의 감옥인 장애인 거주 시설에 버려졌다.

지금도 그 시설이 있다. 철원에 있는 은혜·문혜 장애인 요양원이다. 장애인을 위해 존재하는 시설이 왜 감옥인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시 이 시설들은 쓰레기 매립지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서울시는 서울 시내 재활원에서 청소년기를 넘긴 성인 장애인들을 지역사회로 내보내는 대신 철원에 요양원이라는 시설을 만들어 전원 조치시켰다. 장애인들에게 이 시설은 인간 폐차장이었고 한번 들어가면 자의로 나올 수 없는 삶의 종착지였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 머릿수에 따라 운영비를 지원받았기 때문에 시설 측은 사망하지 않는 한 장애인을 절대 밖으로 내보내 주지 않았다. 당시 은혜원과 문혜원에는 무려 509 명의 장애인이 수용돼 있었다.

그곳에 가보니 원생들은 대부분 아무런 프로그램 없이 누워서, 혹은 앉아서 원에서 주는 밥을 먹고 방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햇볕을 쬐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원생들은 대부분 발달장애인이었지만 뇌성마비 등지체장애인들도 있었다. 그때 만난 지체장애인들은 한결같이 시설을 “감옥이다”라고 단정 지었다. 그러면 왜 장애인들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시설을 감옥이라고 했을까? 당시 직원 눈을 피해 서울에서 소풍 온 몇몇 장애인들의 증언을 들어보았다.

   
 

“철원은 너무 추워요. 이불을 6~7장씩 덮고 자야 그나마 잠을 잘 수 있어요. 저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감기에 하도 많이 걸려서 결국 편도선을 없애야 했어요. 요양원에 서는 동상에 걸리는 일쯤은 아주 흔해요. 특히 지적장애 인들이 그랬는데, 동상에 걸려도 치료를 받을 수 없어요. 치료대신 보모들이 동상 걸린 발에 꿀을 발라줬는데 그래 도 낫지 않아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던 장애인 한 명은 결국 발을 잘라내야 했어요. 이렇게 추운데도 시설에선 난방은커녕 양말이나 속옷도 제대로 안 줘요. 겨울에도 여름옷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장애인을 돌봐야 할 보모들은 출근하자마자 이사장 농장에 가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 층에 50명 정도의 장애인이 있는 곳은 보모 2명이, 100명 정도가 있는 곳은 보모 4명이 돌봐야 했고, 때문에 보모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주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지적장애 아이들은 화장실에서 비누나 락스 같은 것을 먹고 쓰러지기도 했고, 한 아이는 작은 실톱으로 머리를 그어 머리가 찢어지기도 했는데, 그러나 병원 치료는 받을 수 없었습니다. 보모들은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자해나 사고가 벌어지니까 지적장애 아이들에게 CP(항정신성 의약품, 정신과전문의만이 처방할 수 있다)라는 약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온종일, 때로는 이틀이고 사흘이고 깨어나지 못하고 잠만 잤죠. 보모 4명이 장애인 100명을 사고 없이 돌보려니 정신과 약을 먹여 재워야 했던 것입니다.”

“믿지 못하겠지만, 요양원 장애인들은 물조차 제대로 마실 수 없습니다. 물을 마시려면 밥때까지 기다려야 했죠. 그나마 지체장애인들은 물을 떠다 달라고 말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지적장애인들은 그런 의사표현조차 못하니 밥 먹을 때나 돼야 물을 마실 수 있었고, 화장실 변기 물을 퍼먹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적장애 원생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졌어요. 보모가 이사장 농장에 일을 나가기 위해 그 장애인을 묶어뒀는데, 7~8시간이나 묶여 있던 장애인이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쓰다가 끈이 더 조여 손목과 발목에 피가 안 통하는 지경에 이른 거였어요. 이 때문에 그 장애인은 결국 손목과 발목을 절단해야 했고, 그러고도 살아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보모 2명이 해고됐습니다. 그러나 이건 보모 들만의 책임은 아닙니다. 요양원 측은 일 나가는 보모들에게 자해하는 장애인들의 팔다리를 묶어두고 나오라는 방송까지 했거든요. 결국 이사장이 보모들을 농장 일을 시키려고 동원해 가서 생긴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이사장은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을 다 보모들에게 돌렸습니다.”

“요양원에서 장애인들이 사람대접 받는 날은 감사가 있는 날 뿐이에요. 공무원들이 감사가 나오면 종일 "깨끗이 치워라, 묶어놓은 아이들은 다 풀어놓아라”하는 방송이 나옵니다. 평소엔 보모들이 헌옷으로 만든 기저귀를 쓰는데 그땐 일회용 기저귀로 바꿔 채워주죠. 보모들은 락스를 물에 풀어서 대청소하고, 저 같은 여성장애인들에게는 원피스를 입히기도 합니다. 따뜻한 물도 나오고, 평소 엔 한 방에 하나씩 주던 우유도 4~5개씩이나 줍니다. 방도 뜨끈뜨끈하고. 보모들도 그날만은 농장에서 작업하지 않습니다. 안 주던 크림빵도 그날은 넘치도록 주고 생전 보지도 못한 과일도 나옵니다. 멀건 김칫국은 없애고 고기나 생선 반찬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 뜨는 날을 제일 좋아합니다. 요양원에선 감사가 나오는 날이면 보모와 원생들에게 이런저런 교육도 시킵니다. ‘공무원들이 왜 원생 몸에 상처가 났느냐고 물으면 작업하러 가서 아이들을 못 본 사이에 그렇게 됐다고 하지 말고 혼자 넘어져서 그렇다고 대답해’라고 말이죠. 공무원들이 시설을 돌아다니면 원장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아이들은 늘 이렇게 행복하게 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가 막혔지만 우리는 공무원들에게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할 기회도 없지만 말하고 나면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장애인들 증언을 옮겨 싣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길지 않은 장애인들 증언에 시설이 어떤 곳인지, 갇힌 시설에서 장애인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왜 탈시설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가 다 들어가 있다. 시설 측은 과거에 벌어졌던 일이고 지금은 절대 이런 인권유린이 없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시설은 과거 그 자리 산골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여전히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그 갇힌 곳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사실상 아무도 알 수 없다. 또 거주 시설에서 나이 든 장애인들은 어디로 보내지고 있는가? 지역사회로 나오는 대신 소풍 가자고 차에 태워 삶의 마지막 종착지인 깊은 산속에 있는 시설에 버려지고 있는 건 아닌가? 누군가 왜 탈시설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이 이야기로 대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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