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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주의는 독일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독일의 UN CRPD 이행
글. 이명희/독일 도르트문트대학교 장애복지학 박사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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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7  15: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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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inklusion-verein.de/der-verein/inklusion/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이 체결된 지 10년이 흘렀다. 국제적 선언 또는 협약은 가이드라인으로만 인식된 채 개별 국가에서 형식적 비준을 거친 후 사회적 관심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서명·비준했지만 선택의정서는 하지 않은 관계로 협약 이행 의무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유럽연합홈페이지에 따르면 소속된 모든 국가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그중 독일을 비롯한 22개 국가는 선택의정서에도 각각 서명하고 비준했다. 2009년 유럽연합의회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해 결의하고 2011년 1월부터 유럽연합 차원의 효력이 발생함에 따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이 공동으로 전략을 세우고 대응할 수 있게 됐다.

독일은 유럽연합에 앞서 2007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 2008년 선택의정서에 서명과 비준을 해 2009년부터 그 효력이 발생함에 따라 협약 이행을 본격화했다. 독일 연방정부는 우선 국가추진체계를 구축하고 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의 요구에 따라 2011년 제1기 국가추진계획 (Nationaler Aktionsplan, NAP 1.0)을 실행했고, 2016년부터 제2기를 진행하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비준 이후 독일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기존에 담론으로만 형성되던 ‘Inclusion(인클루전)’이 삶의 전 영역에서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되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Inclusion 실현에 필수 전제조건인 당사자주의는 조직 체계(연방정부 차원의 기구)적·법적·제도적 그리고 정보에 대한 접근성 구축과 정비를 기반으로 의미 있는 진척을 보이고 있다.

Inclusion은 이런 상호적인 공존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의 규범이나 문화로 흡수하는 통합(Integration)과 다르고 일방적인 시혜를 뜻하는 포용(우리나라에서 Inclusion 의 번역으로 주로 쓰임)과도 차이가 있다. 이에 필자는 Inclusion에 해당하는 적절한 우리말을 찾을 때까지 고유 명사처럼 사용하고자 한다.

 

당사자주의를 가능하게 한 협약의 특성

1) 인간존엄성의 구체적 실현방향과 원칙으로써 ‘Inclusion’

인간 개개인에 대한 천부적인 존엄성은 세계인권선언 전문에 천명된 바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더 나아가 천부적 존엄성의 구체적 실현 원칙과 권리로 ‘Inclusion’을 제시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Inclusion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삶의 전 영역에서 동등한 권리의 기초 아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연방노동사회복지부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Inclusion은 사회 속에서 불편함 없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제반 조건들이 조성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어디에서 누구와 살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에 대해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기본 원칙을 의미한다.

 

2) ‘장애’ 개념에 대한 통합적 인식과 패러다임의 변화

기존의 ‘장애’라는 개념은 의료·재활·치료·돌봄·봉사 등의 주제와 연관돼 다뤄졌다. 이런 편협한 개념적 접근 때문에 장애를 가진 사람은 평생 격리된 곳에서 치료받거나, 특수한 교육의 대상으로 인식돼 분리되거나 또는 누군가의 봉사를 받아야 하는 의존적이고 동정 받는 일군으로 여겨졌다. 특히 인간의 사회권이나 복지에 대한 인식이 낮은 국가에서는 국가적 책임인식이 미흡해, 장애를 가진 사람의 일상이 한 개인의 책임이나 부양가족의 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를 인간 개개인의 차이점과 다양성의 한 부분으로 인정한다. 즉, '장애'는 장기간의 신체적·정신적·지적 또는 감각적인 손상을 지닌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지역사회에서 평등하게 사는 것을 저해하는 태도와 인식, 환경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결과물로 인식된다. 이에 전 유엔장애인권리위원장인 테레지아 데게너(Theresia Degener)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으로 장애관련 패러다임이 의료와 돌봄 모델에서 인간의 권리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됐다고 시사한 바 있다. 당사자주의는 변화된 '장애' 인식에 부합하는 원칙이며 패러다임변화의 견인차이다.

 

3)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접근성 강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당사자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 조건인 장애인 접근성을 규정한 국제협약이다. 구체 적으로 협약 제9조에서 “장애인들의 자립적인 삶의 영위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완전한 참여를 위하여” 유무형의 접근성을 보장할 의무를 명시한다. 즉, 장애를 가진 사람 에게 자신들의 삶과 관계된 생활환경(건물·시설·교통 등), 정책, 서비스 정보 등과 관련해 접근성의 보장을 요구한다. 특히, 장애 관련 정책과 다양한 서비스 정보 등에 대한 접근성은 장애인의 알 권리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 방안에 대한 고민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당사자주의에서 말하는 당사자 역량 강화에 필수적이다.

 

   
출처. http://www.behindertenbeauftragte.de/SharedDocs/Publikationen/DE/BroschuereKoordinierungsstelle.pdf?__blob=publicationFile

당사자주의는 독일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

“우리 없이 우리 문제를 논하지 말라”는 유엔장애인권리 협약의 당사자주의와 관련한 일종의 '정언명령'이다. 이는 어떤 국가의 상황이나 특정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 무조건적인 원칙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정치적이고 공적인 분야의 의사결정뿐만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살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등의 사적인 영역까지도 삶의 주체가 되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독일에서는 당사자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기구,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하여 보장받을까.

 

1) 기관 또는 기구를 통한 당사자주의의 실현

장애를 가진 사람들 스스로 주체가 돼 당사자의 문제를 다루는 기구가 존재하고 그 기구를 통해 그들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일상적으로 수렴하고 그것을 정부 정책에 반영하도록 연방정부에 심의·조정하는 통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당사자주의를 실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 연방장애인권리위원(회)(Beauftragter der Bundesregierung für die Belange von Menschen mit Behinderungen)

연방장애인권리위원(회)은 일상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실효성 있는 기구다. 그 명칭과 역할은 2002년 장애인평등법(Behindertengleic hstellungsgesetz, BGG) 제정을 통해 규정됐고 임기는 4년이며 연방 내각에서 임명된다. 장애인권리위원(회)은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동일한 가치의 삶의 조건을 마련하는 연방정부의 책무에, 권고와 조정을 통해 영향을 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2014년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연방장애인권리위원(회)으로 임명됨에 따라 실질적인 당사자주의 실현에 큰 전기가 마련됐다.

 

• 국가조정기구 (Staatliche Koordinierungsstelle)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독일 내 이행을 위한 국가추진체로 국가추진기구(전담부처)와 국가조정기구 그리고 국가 모니터링기구가 구축됐다. 그중 국가조정기구(Staatliche Koordinierungsstelle)는 2008년에 연방장애인권리위원(회)에 설치됐고 2010년부터 최고 의결기관으로, 총 13명의 심의원으로 구성된 Inclusion심의회(Inklusionsbeirat)를 두고 있다. 이 13명의 심의원은 연방장애인권리위원을 상임위원장으로 두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표하는 단체,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관련한 국가기관, 서비스 공급자, 주정부 장애인권리위원(회) 1인, 장애를 가진 사람과 관련해 의학적·과학적·일상적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 등이 임명되며 그중 10명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다. 통상적으로 회의에는 13명의 심의원들과 국가추진기구가 설치된 연방노동사회복지부 1인과 국가 모니터링기구가 설치된 독일국가인권연구소의 1인이 참관위원으로 참여한다. 토니아 람바우젝(Tonia Rambausek)에 의하면 국가 조정기구는 장애를 가진 당사자의 주도 아래, 시민사회와 국가추진기구 그리고 모니터링기구 사이의 조정역할을 명실상부하게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정책 추진계획의 이행에 대한 감시와 평가를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장애인정책조정위원 회를 두고 있다. 하지만 행정부처 장관들이 당연직위원의 자격으로 과반수 이상 차지하고 위촉위원들은 장애 관련 연구 수행자, 관련 연구소나 단체 관계자 또는 기관 소속자로 구성되며 그중 절반 이상이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위촉된다. 독일과 비교할 때 한국의 장애인정책조정위 원회는 장애 당사자 중심 조정기구라기보다는 오히려 행정부처중심의 추진 기구에 장애 관련 단체나 기관을 결합 시킨 당사자주의의 형식적인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런 조직 구조상의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단체로 대변되는 당사자의 요구가 있어도 회의가 상시적으로 개최될 수 없고 당사자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위한 연맹(Allianz zur UNBehindertenrechtskonvention, 이하 BRK-Allianz)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당사자조직인 BRK-Allianz에 의하면 2012년 결성 당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대표하는 또는 관련된 78개의 장애 관련 시민단체들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러한 독일 최대 규모의 단일 연맹체의 출범은 재정적으로 열악한 작은 단체들이 거대한 국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당사자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당연하고 효과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BRK-Allianz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관련 홈페이지를 독자적으로 운영하며 장애를 가진 사람과 당사자 조직에게 장애인권리협약과 관련한 현황과 활동 정보를 공유한다. BRK-Allianz에 소속된 '인권과 장애인 평등을 위한 협회(NETZWERK ARTIKEL 3 Verein für Menschenrechte und Gleichstellung Behinderter e.V.)’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민간번역본을 제작해 독일어권 4개 국가 공식번역본의 적지 않은 오역을 수정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통합(Integration)’으로 잘못 번역된 부분을 Inclusion 으로 바로잡은 것은 당사자주의의 모범을 보인 중요한 사례다. 2013년 완결된 첫 병행보고서는 수어, 큰 글씨 버전, 오디오 버전뿐만 아니라 독일어 초보자와 발달장애인도 읽을 수 있도록 쉬운 언어(Leichte Sprache)버전으로 출간했다. 이런 노력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공적 삶에 참여할 권리를 신장하고 당사자로서 능력과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 당사자주의 실현을 위한 법적·제도적 지원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 영역은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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