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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동화 <아주 특별한 우리 형>으로 본정상성 이데올로기
글. 차미경/대구대학교 장애학과 일반대학원생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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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5  1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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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동화는 장애인 형(종식)을 가진 비장애인 형제(종민)의 입장에서 쓰인 이야기다. 주인공 종민은 어느 날 부모님이 형이라며 데리고 나타난 종식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갑작스레 형이 나타난 것도 놀라운데 형은 종민이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뇌병변장애까지 가졌다. 종민은 형의 존재보다 그 장애를 받아들이기가 훨씬 곤혹스럽다. 부모님이 자기를 속여 왔다는 배신감, 부모님의 사랑을 형에게 빼앗겼다는 상실감, 그리고 형이 장애인이라는 부끄러움 때문에 종민은 가출까지 하며 반항한다.

형 종식은 그런 종민을 웃음으로 이해하려 애쓰고 동생을 힘들게 하는 형임을 미안해한다. 가족의 당당한 일원이 되기 위해 종식은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수기 공모에 대상으로 당선되기도 하고, 뛰어난 능력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한다. 그런 종식을 종민은 점점 자랑스러워하고 진심으로 형을 받아들이며 동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장애를 극복하는 전형적 이미지 재현

“너희 형 컴퓨터 박사라면서?”

“너희 형 아주 훌륭하대, 장애를 극복하고...”

“종식이 오빠 글도 잘 쓰더라.”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종식은 팔방미인이었다. 종식의 숨겨진 재능들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진다. 수기 공모에서 대상까지 받고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개발하더니 공익을 위해 그것을 무료로 나누는 훌륭한 인성까지 갖췄다.

이런 이야기에서 아이들은 슈퍼맨의 이미지를 발견할 것이다. 말 그대로 슈퍼맨은 평범하지 않다. 게다가 일반적인 사례도 아니다. 그런데 장애인을 그릴 때만은 슈퍼 장애인이 일반적으로 등장한다. 슈퍼 장애인은 수많은 사회적 장벽과 배제에도 불구하고 특출난 능력으로 장벽을 뚫고 배제된 사회 속으로 간신히 진입하기에 성공하며 ‘장애를 극복한’ 영웅이다. 사회는 사회적 장벽과 차별을 제거하는 대신 특별한 개인의 분투와 노력을 칭송하고 부각함으로써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다수의 평범한 장애인을 실패한 낙오자로 만든다.

 

정상성 이데올로기 강화

가족이 종식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사회적으로 내재화된 정상성에 대한 강박 때문이다. 가족이 느끼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소위 ‘정상적’이지 않은 종식의 상태와 그들이 가진 ‘정상 가족’의 이미지에 부합하지 못하는 ‘비정상성’에서 기인한다. 종민은 종식의 일그러진 표정과 몸짓, 그리고 온통 음식을 흘리면서 먹는 모습 등 겉으로 드러난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에 혐오와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가족의 죄책감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장애를 가진 자식을 낳았다는 죄책감, 그런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 버렸다는 죄책감, 장애를 가진 자식을 숨기고 속여 왔다는 죄책 감은 종식이 부모의 몫이다. 이야기 속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진 않지만 종식의 부모가 아이들에게 보이는 모든 말과 행동에서 그 죄책감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또 형의 장애 때문에 형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부감과 도덕적 당위성 사이에서의 죄책감은 종민의 것이다. 형을 받아들이기까지 종민이 보인 심술과 반항은 그 죄책감에서 비롯된 갈등일 것이다. 종식 역시 내내 죄책감에 시달리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장애에 있다. 장애가 있는 자신 때문에 가족에게 분란을 만들어서, 못난 형이어서, 그저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 죄스럽고 미안함을 느낀다.

뇌성마비라고 아이들이 얼마나 놀릴까. 게다가 밥 먹을 때마다 지저분하게 먹으니… 종식이가 너무도 창피하고 부끄러워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은 아예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 고맙다. 내 새끼. 미안하구나.” 어머니는 종식이를 가슴에 꼭 껴안았습니다. 아버지도 코를 훌쩍거렸습니다. “내가 장애인이어서 미안해….”

정상성에 대한 가족들의 강박은 끊임없이 이 가족을 부끄러움과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그들은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 때문에 불행하다. 이에 대한 동화의 해결 방법은 ‘정상성’에 미치지 못하는 낙오 대신 특별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표정도 일그러지고, 말도 잘 못하고, 밥도 흘리며 먹고, 가족이 일거수일투족을 도와야 하는, 그래서 종민에게 괴물처럼 느껴지던 형 종식은 알고 보니 뛰어난 능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미운 오리’인 줄 알았는데 ‘특별한 백조’로 판명됐다는 이야기다.

정상성에 미치지 못한다고 인식할 때는 부끄러웠지만 그 범주를 초월해 ‘특별한 존재’가 되니 종민은 형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한다. 나중에는 자신의 몸을 던져서 형을 위험에서 구하는 뜨거운 형제애를 발휘한다.

언젠가 한 사람의 몫을 꼭 해내리라고. 그때가 되면 장애인 종식이가 아니라 떳떳한 한 사람의 인간 종식이가 될 것입니다.

종식이 되고 싶던 ‘떳떳한 한 사람’이란 무엇이었을까. 종식은 그냥 있는 그 자체로의 ‘한 사람’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자신을 증명해 내야만 했다. 소위 정상성의 범주에 들어 있는 몸을 가진 사람들은 그토록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지 않아도 떳떳한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왜 종식은 단지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그렇게도 안간힘을 써야 하는가, 왜 그래야만 비로소 ‘떳떳해’지는 것인가.

“미운 오리는 그냥 좀 못생긴 오리일 뿐이었어”가 되면 안 되는가? 그냥 못생긴 오리 그 자체로도 행복할 수 있다면 힘겹게 백조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이 동화가 ‘정상성’에 미치지 않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특별함’을 선택하는 대신 그저 ‘다름’ 자체를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이야기했다면 장애를 처음 이해하는 입장에서 덜 혼란스럽고 덜 이상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장애인 대상화

“종민이 엄마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니요. 나 같았으면 못 견뎠을 거예요.”

한울이 어머니는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몰라 난처한 얼굴로 종식이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뇌성마비 장애인을 만난 것은 처음일 것입니다.

그곳에는 형보다 더 심한 장애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떤 장애인은 팔과 다리 없이 몸만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도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봉사자가 먹여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기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종민이는 형이 그런 사람에 비해서 얼마나 장애가 가벼운 편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위 예시에서는 장애인을 나와는 전혀 다른 ‘타자’ 혹은 ‘객체’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더라면 ‘못 견뎠을’, 나와는 다른 세계의 불행 정도로 말이다. 장애인은 일반적인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나와 ‘상관없는’ 이상한 존재로서 인식될 뿐이다. 이런 대상화를 통해 얻어지는 것은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안도감이다.

이런 모습은 이웃에게서 뿐만 아니라 종식이 가족에게서도 잘 드러난다. 종식이보다 더 심한 장애인을 만났을 때 가족들은 ‘그런 사람’에 비해서 가벼운 종식의 장애에 감사한다. 배고픈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며 “우리는 저렇게 굶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하는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다. 나와 그들 사이에 금을 그어놓고 불쌍하고 불행한 저쪽이 아니라 이쪽에 있는 것에 대한 감사와 행복. 종민과 그 가족이 느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동 포르노’, 감동의 대상화는 이렇게 나와 저들의 사이를 명확하게 구별한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답습

장애 이해를 목적으로 쓰인 이 동화의 가장 큰 목적은 그야말로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동화에서 종민네 가족과 주변 등장인물들이 장애를 대하는 방식은 그동안 사회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오해나 편견을 그대로 답습하기에 그친다. 이 동화에서 그리듯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를 청천벽력 같은 불행으로 받아들이길 바라지 않지만, 우리 사회 현실이라면 부모가 잠시나마 그런 마음일 수도 있겠다 이해가 가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아이를 친척 할머니에게 맡기거나 사회복지 시설에 위탁하는 가족의 모습이 과연 장애 이해 동화의 취지에 적합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또 종식이 친척 할머니 손에 자라는 동안 그 부모는 종민에게 형의 존재를 숨길 뿐만 아니라 종식을 만나러 갈 때마다 여행을 간다고 종민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모습들은 나중에 종식이 특별한 아이였다는 결론을 부각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로 이해한다 해도 결코 바람직한 이야기 전개는 아니다.

“백오 동에 사는 애는 뭐 지적 장애라나 하는 장애아인데 남의 차 유리창도 깨고 막 그래요. 이웃 주민이 아주 시달리고 있어요.”

종식이의 상태가 훨씬 더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훌륭한 글을 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이종식 군, 이렇게 몸이 불편한데 원고는 어떻게 보냈어요?”

장애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가령, 이웃이나 기타 인물들과의 대화에서 주로 드러나는데 예시된 대화들에서는 지적장애에 대한 편견과 뇌병변장애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초래할 소지가 다분하다. 또 ‘장애에도 불구하고’ 같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부정적 인식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표현들이 일일이 다 지적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점은 장애 이해 동화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물론 작가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인식을 갈등의 수단으로서 단순 재현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대상이 어린이임을 감안한다면 굳이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을 자극적인 방식으로 전달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종식이는 밥을 먹을 때뿐만 아니라 화장실 갈 때, 잠잘 때,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남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그 귀찮고 힘든 일을 사랑으로 할 작정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너 겨,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살면 어, 어떻게 할래?”

동화는 가족 구성원 중에 장애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를 독자에게 끊임없이 인식시킨다. 친척 할머니 손에 맡겨야 할 만큼 키우기 힘든 아이, 복지시설에 보내야 할 만큼 함께 살기 부담스러운 아이, 손이 무척 많이 가는 힘겨운 아이, 그래서 사랑으로만 감내해야 하는 아이, 그게 바로 종식이다.

종식과 함께 살면서 이 가족이 보이는 주된 감정 반응은 아픔, 눈물, 한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애 때문에 생기는 타인과의 사소한 갈등에서도 현명한 대응 대신 울분과 눈물로 처리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다는 것은 이 동화에 의하면 그렇게 슬프고 억울한 일이다. 더욱이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살면서도 형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장애인 형제의 저 슬픈 다짐에서 과연 가족애의 뜨거움이 느껴질까 아니면 가족이란 이름의 부담감이 느껴질까.

왜 하필 수많은 사람 가운데 자신이 이처럼 뇌성마비라는 몹쓸 장애를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없어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이 동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당사자인 종식의 장애에 대한 부정적 정체감이다. 줄곧 자신의 장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억울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형으로 인정하지 않는 동생의 무례함에 대해 오히려 미안함을 느끼며 끝내 웃음으로만 대응하는 종식은 ‘착한 장애인’ 이미지의 전형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고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아이들이 이 동화를 통해서 처음으로 ‘장애’를 간접 경험하게 된다면 과연 아이들에게 장애는 어떤 것으로 기억에 남게 될까. “가족이 그렇게도 부끄럽고 끔찍하게 여기는 장애 따위 절대 내게는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한 사람이 가족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가족을 위해 생활비를 벌어다 주거나 특별한 능력을 갖춘 뛰어난 인물이어서가 아니다. 그냥 가족이니까 사랑하는 것이다. 그냥 가족, 그냥 사람이 왜 장애인에게는 어려운 것인가. 장애를 포함한 모든 ‘다름’이 특별하지 않아도 되는 보통의 세상을 좀 더 다양한 색채와 목소리로 담아내면 좋겠다. 그래야만 동화가 아이들이 읽는 생애 첫 책으로서의 존재의 의미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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