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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에 묶일까 염려되는 장애인 이동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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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3  11: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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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강력해진 미세먼지의 공습. 공기청정기나 마스크를 다루는 산업 분야에야 갑작스런 호황을 가져다주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건강과 야외 활동에 심각한 제약을 가져다주는 커다란 근심거리다.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의 원인이 중국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 명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딱히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 없어 보이 남의 나라 원망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입장에서 우리끼리 할 수 있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눈도 맵고 피부도 따끔거릴 정도로 미세먼지가 심한 날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호흡기에 손상이 오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들고, 혹여 호흡기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이제 미세먼지가 심한 날 야외 활동이 꺼려지는 것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큰 차이 없이 같은 처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미세먼지에 장애인의 발이 묶여버리는 건 아닐까?’라는 염려는 이런 직접적인 불편에 대한 생각만은 아니다. 엉뚱하게도 미세먼지와 함께 흩어져버리는 민심을 붙잡기 위해 정부가 시도하는 ‘뭐라도 해야 할’ 일 중에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37년 만에 풀리는 규제... 2019년 3월 26일부터 누구나 액화석유가스(LPG) 차량을 구매할 수 있다’는 기사들에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장애인 승용차에 대한 LPG 연료 사용 허용은 1990년에 처음 도입됐는데,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수단이 부족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연료인 LPG 사용을 통해 이동의 부담을 줄여주는 조치였다. 특히 2000년도까지 LPG 가격이 휘발유 가격 대비 28% 수준이었다는 점이나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혜택 중 소득수준이나 장애정도를 기준을 따지지 않고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혜택이었다는 점에서 장애인 승용차에 대한 LPG 연료 사용 허용은 매우 파격적이고 큰 도움이 되는 기특한 정책이었다.

이러한 평가는 2000년 당시 장애인 등록차량 434,895대 중 80%에 해당하는 347,916대가 LPG 차량이었다는 점이나, 일반 자가용의 연평균 주행거리가 16,500km인 것에 비해 장애인자가용의 연평균 주행거리는 1.5배에 가까운 연평균 23,925km를 주행한다는 당시 연구자료에서도 뒷받침 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자가용 이용 거리가 더 긴 것은 이용 가능한 다른 교통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실제로 2017년에 실시된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통약자가 아닌 일반인은 지역 내 이동시 가장 선호하는 이동수단으로 버스(54.3%)와 지하철(24.7%)을 선택한 비율이 79%에 달하는 반면 장애인은 버스와 지하철을 합쳐 47%, 자가용과 장애인콜택시, 휠체어 이용으로 응답한 비율이 35.5%로 나타난 바 있다. 같은 조사가 처음 실시되었던 2008년에는 자가용을 가장 선호한다고 응답한 장애인이 무려 41%였고, 버스는 30.4%, 지하철 12.7%로 자가용 외에 다른 교통수단의 이용이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2004년 이후 장애인에 대한 LPG 세제 혜택이 지속적으로 축소되다가 폐지되면서 2008년 장애인실태조사에는 장애인 등록 차량 중 LPG를 연료로 이용하는 차량의 비율은 49.4%로, 다시 2017년에는 34.7% 수준까지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미세먼지 이야기로 LPG 사용혜택 축소의 문제를 떠올리게 된 것은 2000년에 정부가 느닷없이 장애인에 대한 LPG연료 사용 혜택을 없애겠다고 나설 때의 배경과 지금의 상황이 일부 겹쳐보이는 데자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정부는 장애인과 국가유공자, 영업용 차량에 한해서만 사용을 허가하던 LPG를 국내 자동차 산업 활성화를 위해 7인승 이상의 승합차에 전면 허용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연료 가격 상승 속에 산타모, 카렌스, 레조와 같이 트렁크에 의자 2개 추가한 승용차형 RV가 LPG 차량으로 판매되고, 이 차량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휘발유를 통해 징수되던 세금이 대폭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정부가 에너지 가격구조 개편을 통해 LPG에 부가되는 세금을 점진적으로 늘려 2003년에는 휘발유 가격 대비 60% 수준까지 가격을 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애꿎은 장애인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장애인계와 정부의 갈등과 타협으로 장애인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LPG 세금 인상분을 장애인 등록증기능의 신용카드 결제 차감의 방식으로 보전해 주기로 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은 2004년부터는 월 사용 한도를 250리터로 제한하고, 2007년에는 지원을 전면 폐지하는 것으로 LPG 사용 혜택이 종결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취한 입장이나 주장들은 장애인들에게 실망과 불신을 더하는 것들이었다. 먼저 당시 정부가 장애계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제시했던 보완책은 LPG 세금 인상을 통해 장애인들로부터 추가로 징수되는 재원을 장애인들에게 교통수당의 형태로 나눠주겠다는 방안이었다. 이 대안은 차를 소유한 장애인을 차가 없는 장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으로 오인하고, LPG차를 소유한 장애인의 연료비에서 걷은 교통수당을 정부의 추가 재원 확보 없이 전체 장애인에게 교통수당으로 배분하겠다는 논리로 장애계의 빈축을 샀다. 당시 전체 등록장애인 가구의 1/3이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경제적 수준과 상관없이 자가용 차량이 없으면 심각하게 이동과 생계를 제약 당하는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자가용을 보유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간과한 대안이었다.

또 다른 정부의 억지스러운 논리는 LPG가 공해(온실가스)를 촉발하는 연료이기 때문에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세금 인상이 불가피 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5년 여 전에 7인승 RV승용승합 차량에 LPG 사용을 허용하면서 정부가 LPG를 청정 그린 에너지라고 홍보했던 점이나,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승용차 LPG 사용을 전 국민에게 허용하겠다는 정책이 시행되는 것을 보면 정부의 편의에 따라 LPG 환경 영향이 일관성 없이 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신뢰를 잃어버리는 주장이었다 하겠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 혜택도 벌써 폐지되었고, 휘발유에 비해 낮은 LPG의 연비 효율을 생각하면 이미 장애인 승용차 LPG 사용의 혜택은 무의미한 것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세먼지 저감을 이유로 정부가 시작한 LPG 승용차 전면 허용이 혹여 20년 전과 비슷한 상황을 반복하여, 또 다시 LPG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러한 악순환이 아직도 조금이라도 저렴한 LPG를 사용하려고 불편을 감수하며 LPG 차량을 유지하고 있는 승용차를 소유한 장애인의 34.7%의 이동을 위축시키는 것은 아닌지 20여년 동안 지우려고 노력했던 염려가 다시 되살아난다.

환경을 생각하고, 재정의 균형을 생각하는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비난하고 반대할 수는 없겠지만, 정책 시행에서 나타나는 부대 효과가 장애인들의 삶을 후퇴시키지 않도록 보다 섬세한 고려와 신뢰할 수 있는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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