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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라는 이름의 박탈
배용진 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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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3  16: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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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선고되면 죽어야 벗어날 수 있다고들 말한다. 선고를 받은 뒤 혼자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이것은 무기징역 이야기가 아니다. 성년후견제에 관한 말들이다.

성년후견제는 질병·장애·노령 등으로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는 성인을 대신해 후견인이 재산 관리나 법률 행위를 하는 제도다. 크게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으로 나뉘고, 법정후견은 다시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후견을 받는 사람, 즉 피후견인에게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됐다면 성년후견 유형, 결여된 정도는 아니지만 부족하다면 한정후견 유형에 해당한다. 일시적이거나 특정한 일에만 후견이 필요하다면 특정후견 유형이 알맞다. 임의후견은 후견이 필요할 상황을 대비해 미리 직접 후견인을 정해 놓는 후견 유형이다.

성년후견제 이전에 있던 금치산자·한정치산자 제도는 당사자의 의사와 장애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모든 법률 행위를 못 하게 만들었다. 이 점을 개선하고자 “피후견인의 신상에 관한 결정권은 본인에게 있다는 원칙과 후견인의 임무 수행에 있어서 피후견인의 의사 존중 의무를 명시”하며 2013년 7월 성년후견제가 도입됐다.

서울가정법원 김성우 판사가 2013년 7월부터 2016년 9월까지 후견인이 선임된 사건 천여 건을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후견이 발생한 정신적 제약의 원인은 뇌출혈 등으로 인한 뇌병변장애가 41.6%로 가장 많았고, 치매와 발달장애가 그 뒤를 이었다. 다만 특정후견 유형에서는 발달장애가 제약의 원인인 경우가 80.7%였다. 김성우 판사는 공공후견 지원사업으로 특정후견이 신청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법원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

시행 5년차에 접어든 성년후견제는 이전 제도와 다르지 않은 이유로 비판받는다. 먼저 성년후견 유형이 전체의 약 80%로 지나치게 많다. 성년후견 유형은 사무 처리 능력이 ‘결여’된 경우 적용하게 돼있다. 후견인은 거의 모든 행위를 피후견인을 대신해 처리할 수 있다. 후견을 받는 사람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그만큼 제한된다.

도입 취지와 사뭇 다른 제도의 실제 쓰임은 법원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관련 있다.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는 “법원이 장애인의 의사결정 능력에 큰 선입관을 갖고 있다”며 “결여는 ‘없다’는 것이다. 의사결정 능력이 결여된 경우는 식물인간 상태 말고는 없다. 치매가 심해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발달장애인도 자기 의사가 있고 표현한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기술과 이해하려는 노력이 비장애인에게 없을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사단법인 온율의 배광열 변호사는 “공공후견이 아닌 이상 법원은 기본적으로 특정후견 후견인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해 후견하는 동안 피후견인의 재산을 찾아낸 다음, 후견이 종료돼 법원이 감독할 수 없게 되면 후견인이 그 재산을 빼돌릴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특정후견으로 청구해도 성년후견 유형으로 심판하기도 했다. 지금도 공공후견 기관을 통하지 않고 특정후견을 청구하면 유형 변경 검토를 요구하거나 기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법원은 장애인의 의사결정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성년후견제를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이용해 타인이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법원과 후견청구인 사이에서 당사자는 소외된다. 그 결과 장애인은 보호라는 명목으로 많은 걸 잃는다. 개시 사유가 없어지면 후견을 종료할 수 있지만 장애는 치료되는 질병이 아니다. 따라서 한번 ‘보호’가 시작되면 사실상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다. 앞서 김성우 판사가 조사한 사건 천여 건 중, 사망하지 않고 후견이 종료된 건 ‘정신상태 호전’으로 인한 단 한 건뿐이다. 자기가 주체가 되지 않는, 또 자신을 주체로 여기지 않는 사회에서 사는 것을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앞뒤 안 맞는 국가보고서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성년후견제를 대체의사결정제도로 규정하고 지원의사결정제도로 전환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제출한 ‘장애인권리협약 제2·3차 병합 국가보고서’에서 “다양한 유형의 후견제도를 통해 장애인의 잔존능력에 따른 의사결정을 존중하고 이러한 의사결정이 충실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한정후견 유형을 예로 들고는 “성년후견 유형에 대한 이용 비율이 높기 때문에 즉각적인 폐지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전체의 10%를 차지하는 한정후견 유형은 성년후견제의 대표성을 띨 수 없다. 장애인의 권리를 가장 심각하게 침해하는 성년후견 유형을 많이 이용한다며 권고를 따르기 어렵다는 답변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권고를 한 이유를 들어 권고를 따르기 어렵다고 말한 것이다. 또 모범적인 예로 소개한 한정후견 유형은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부분에서 성년후견 유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취재하며 만난 전문가들은 “후견 범위가 다르긴 하지만 두 유형은 크게 차이가 없다”며 “한정후견 유형도 일반적으로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 법률 행위를 할 수 있”어서 “성년후견 유형만큼 후견인의 권한이 막강하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은 의사결정 능력이 있다

성년후견제로 대표되는 대체의사결정제도와 장애인권리위원회가 권고한 지원의사결정제도는 무엇이 다를까. 전자가 당사자를 대체해 타인이 결정할 수 있게 한다면 후자는 당사자가 직접 결정할 수 있게 지원한다.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냐는 것 외에도 큰 차이가 있다. 후견 또는 지원하는 사람이 갖는 기본적인 생각이 다르다. 후견인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피후견인에게 가장 좋은 쪽으로 판단한다. 반면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판단하지 않고 당사자가 원하는 바를 파악한다.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기에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도 당사자의 결정을 존중한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는 2000년 최초의 지원의사결정제도인 대리 합의법(Representation Agreement Act)을 도입했다. 법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의사결정 능력이 있다고 간주한다.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기 전에 다음 네 가지 예와 같이 가능한 모든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의사결정 지원을 원하는지 드러낼 수 있는가 ▲동의와 거절을 표현할 수 있는가 ▲계약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는가 ▲의사결정 지원자와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을 모두 할 수 없다고 명확히 증명하지 못하는 한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따라서 치매나 발달장애, 정신장애가 있어도 대리 합의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대리 합의는 법원의 승인이 필요 없다. 양쪽이 계약서를 작성하면 되는 사적 계약이다.

   
나이더스(Nidus) 조앤 테일러(Joanne Taylor) 대표

대리 합의법 제정에 기여한 비영리조직 나이더스(Nidus)의 대표 조앤 테일러(Joanne Taylor)는 지난달 19·20일 한국에서 열린 ‘지원의사결정제도 도입을 위한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그는 “지원의사결정제도는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다해서 대상자의 뜻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소통과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 경청이 의사결정 지원자의 의무다. 어려운 일이지만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 건 포기할 수 없는 문제다. 의사결정권이 있는지에 따라 같은 치매라도 급격히 기능이 쇠퇴할 수도, 반대로 더뎌질 수도 있다. 누구든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법이 제정되고 시행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 말은 좋은데 실제로 해 나간다는 것에 사회 각 분야의 의구심이 많았다.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의사결정 능력에 관한 관점을 변화시키느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며 “한국은 오래 끌지 않고 빨리 지원의사결정제도를 도입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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