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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이 감옥에 갔다사건으로 돌아보다
이태곤 편집장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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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0  14: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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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에다가 여성, 거기다가 극심한 빈곤까지 더해지면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2000년 4월 한 장애 여성의 비극적인 삶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당시 40세였던 그이는 경기도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고 130㎝의 작은 키, 몸무게 35㎏의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자궁암에 걸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 그가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된 건 끔찍한 살인사건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그이는 차디찬 수갑을 차고 철창에 갇혔다.

유아무개 씨, 그이는 농촌 출신이었다. 7남매라는 많은 형제자매가 있지만 당시 모두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장애 때문에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해서 한글도 깨치지 못했다. 부모님과 살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오빠 집에 얹혀살았는데, 가난한 오빠에게 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집을 나와 방을 얻어 혼자 살았다. 그 순간부터 생계수단은 구걸이 됐다. 구걸로 생을 이어가던 그이는 설상가상으로 폐결핵에 걸렸다. 동사무소를 통해 1994년 대구에 있는 결핵요양원에 보내졌고 거기서 남편 최아무개 씨를 만났다.

남편 최 씨는 비장애인이었다. 심한 폐결핵을 앓고 있었고 알코올중독자였다. 술이 그의 인생을 막다른 곳으로 내몰았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후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요양원에서 유 씨를 만났다. 1년여 머물던 요양원에서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요양원을 나와 유 씨 집에서 동거에 들어갔다. 사실상 결혼생활이었다. 그때 생계를 이어가는 책임은 전적으로 여성장애인 유 씨가 졌다. 무능력자에다 알코올중독 상태였던 최 씨는 유 씨가 구걸해서 벌어오는 돈에 기대 삶을 이어갔다.

부부가 ○○역 근처에 있는 영구임대아파트에 이사 온 것은 1997년이었다. 13평형 작은 아파트였지만 두 사람이 사는 데는 아무 불편이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돼서 사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유 씨는 계속 구걸 일을 나갔다. 비오고 눈보라 치는 날만 빼고, 주위 사람들이 만류해도 그이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을 나갔다. 당시 ○○역 육교 위에 앉아서 바구니 하나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구걸을 하다가, 벌이가 시원치 않으면 콩을 까서 팔았다. 이렇게 일을 나가서 번 돈이 하루에 2∼3만원이었다.

그러면 그이는 일 나가서 번 돈을 모두 어디에 썼을까? 사건이 벌어진 후 주위 사람들이 놀란 건 그이의 검소한 생활이었다. 집 장롱을 열어보니 그이 옷은 단 두 벌밖에 없었다. 그이는 구걸해서 번 돈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모두 남편 최 씨를 위해, 금반지를 사주고 개량한복을 사주는 등 아낌없이 썼다. 또 최 씨가 술을 먹는 데, 최 씨가 술을 먹고 만취상태에서 그이를 구타해서 쓴 비용의 대부분이 그이가 구걸해서 벌어온 돈이었다.

최 씨는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렸다. 거리에서 낯선 사람에게 시비를 걸다 행인이 신고해서 파출소에 잡혀가는 일이 잦았으며, 집 유리창을 박살내서 병원에 실려 가고, 또 시도 때도 없이 그이를 때렸는데, 보다 못한 이웃들이 경찰서에 폭행신고를 한 게 한 달에 평균 세 번 꼴이었다. 폭력을 피하기 위해 문을 닫아걸면 최 씨는 유리창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그이는 최 씨의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얼굴에 피멍이 들고 뼈가 부러져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잦았다. 아웃들에 따르면 영구임대아파트에 119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하면 대부분 실려 가는 것은 가녀린 그이였다고 한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그이는 왜 최 씨를 떠나지 못했을까? 무능력자에다 술만 마시고, 거기다 폭력까지 휘두르는 남자를 벗어나 새 삶을 시작할 생각을 그이는 왜 하지 못했을까? 그이가 빈곤한 장애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직업이 없어 밑바닥 생활을 해야 했던 빈곤한 처지 때문에, 그이는 질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도 최 씨를 떠날 수 없었다는 것이 이웃 증언이다.

“내가 하도 화가 나서 최 씨에게 이 단지에서 당장 나가라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최 씨가 하는 말이 마누라는 나 없으면 못 산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내가 왜 못 살아, 내가 대신 돌봐줄 테니 너는 나가, 그랬죠. 그러자 최 씨가 뭐라고 그러냐면, 구걸하는 사람을 잡아다가 가두는 데가 있대요. 갱생원이라는 곳인데, 거기 잡혀가면 보호자가 있어야 나올 수 있다는 거였어요. 만약 마누라가 잡혀가면 남편인 자기가 보호자가 돼서 데리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마누라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를 떠날 수 없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한 적이 있어요.”

삶에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도 구걸이 그녀 삶을 지탱해 줄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이는 평소 거리 미화를 이유로 행정관청이 무차별 단속을 벌여 자신을 잡아 부랑인시설에 가두는 상황을 상정해 심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 경우 자신을 시설에서 꺼내줄 사람은 바로 최 씨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약점 때문에 그이는 매를 맞으면서도 최 씨 곁을 떠날 수 없었다.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은 2000년 1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밤 9시경, 당시 최 씨는 이미 술에 취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최 씨는 밖에 나가더니 소주 3병을 더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이가 “제발 술 좀 마시지 말라”고 말렸지만 최 씨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소주 1병을 더 마셨다. 그리고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9시 50분경 갑자기 집 전화벨이 울렸다. 그이가 전화를 받았다. 보험설계사가 보험금 납부를 독촉하는 전화였다. 그이는 최 씨 몰래 가입해둔 보험이 있었다. 최 씨가 보험 가입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때 최 씨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순간 최 씨가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 전화를 걸었는지 대!”라고 소리치며 그녀의 머리채를 낚아챘다. 그런 다음 방바닥에 그녀의 얼굴을 대고 짓이겨대기 시작했다. 폭행당한 그이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이가 전혀 기척을 보이지 않자 당황한 최 씨는 전화를 찾아 늘 그랬듯이 119를 눌렀다. “우리 부부가 쓰러졌다. 둘 다 실어가 달라!”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고함소리에 그이가 정신을 차렸다. 엉금엉금 기어 싱크대로 간 그이는 과도를 꺼내들었다. 그 과도로 전화를 거는 최 씨의 등을 찔렀다. 칼을 맞은 최 씨가 돌아 앉아 그이를 노려봤다. 겁이 난 그이는 다시 한 번 칼로 최 씨 가슴을 찔렀다. 예리한 칼끝이 하필 최 씨 폐를 파고들었다. 최 씨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잠시 후 119 구급대가 도착했다. 당시 그이는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상태에서 넋이 나간 모습으로 “119, 119…”를 외쳐대며 서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경찰에 의해 그이는 연행되고 이후 최 씨는 사망 판정을 받는 것으로 상황은 끝났다. 그이는 계획해서 살인사건을 저지른 게 아니었다.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 사실은 경찰서를 찾아가 그이를 면회한 이웃의 다음과 같은 증언에서 드러난다.

“왜 그랬니?” “몰라, 너무 맞아서 정신이 없었어.” “그래도 참지 그랬어.” “나 너무 많이 맞았어, 맞아서 죽을 뻔 했어.” “그럼 바깥으로 도망치지 그랬어.” “언니 나 나가려고 했는데 머리채 잡혀서 끌려 들어갔어, 도망칠 수가 없었어….”

후일담이다. 사건이 벌어지자 그이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대놓고 그이를 비난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진작에 그이 같이 장애가 심한 사람은 음성 꽃동네 같은 데에 보냈어야지. 꼴에 시설에 가서 살아야지 왜 사회에 살면서 사고를 저지르는 거야. 사회에서 살게 놔두니까 이런 사건이 벌어지는 거잖아.”

그이는 구걸로 삶을 연명했을지언정 주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숨죽이며 살아온 그이 같은 중증장애인은 사회가 아닌 거주시설에 가서 살아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그이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지역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구명활동으로 이어진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이는 지금 시설에 가지 않고 혼자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누가 이 장애 여성의 손을 잡아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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