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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서울시민소수장애인
박관찬  |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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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7  09: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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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포항에서 태어나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경상도에서 살아왔어요. 하지만 올해 1월에 서울로 이사 와서 지금은 전입신고도 마친 엄연한 ‘서울시민’입니다. 서울의 집값은 무시무시합니다. 집을 구할 엄두도 내질 못했죠. 그러다 알게 된 것이 LH주택공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장애인 전세자금 즉시지원’입니다.

이 전세자금 지원으로 서울에 집을 구하고 이사하면서 많은 안타까움을 느꼈어요. 무엇보다도 저는 시청각장애가 있어서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집을 구하는 장애인에게 이러한 지원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던 거예요. 만약 서울로 이사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면 아마 원룸이 아닌 아파트에 살았을 것 같아요. 전세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으니까 굳이 제가 직접 돈을 내며 원룸을 구할 필요가 없겠죠? 그동안 원룸에 자취하면서 부담한 돈을 생각하면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당사자도 정보를 얻기 위한 노력은 해야겠지만, 주민센터나 장애인복지관 등의 기관에서 지역 주민들, 특히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어떠한 지원과 서비스가 있는지 적극적으로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현행 제도나 서비스에 대해 당사자들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더 안타까운 사실도 있었어요. 전세자금을 신청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한 주민센터를 방문했거든요. 장애인복지과의 담당자를 만나서 제가 받고자 하는 지원을 신청하러 왔다니까 다른 서류를 내미는 거예요. 다른 거라고 말했는데도 담당자는 이게 맞대요. 그 지원에 대한 공고를 휴대폰으로 찾아서 보여주니 그제야 담당자가 컴퓨터로 한참을 찾아 맞는 신청서를 건네줬어요. 장애인복지과 담당자도 장애와 관련한 어떤 지원이 있는지 제대로 모르니 저처럼 제대로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서울살이 시작

 

분명히 같은 대한민국이지만, 경상도와 서울은 너무 다릅니다. 포항에는 지하철이 없고, 대구 지하철은 1~3호선까지만 있어서 구분이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서울은 9호선까지 있지요. 공항철도, 분당선 등 생소한 이름도 있고요. 조심할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우선 ‘일반’과 ‘급행’이 있다는 겁니다. 제가 9호선이 다니는 곳에 살고 있는데, 여긴 급행열차가 멈추지 않아요. 그래서 급행열차를 타면 집으로 오지 못하죠.

이사 온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집과 서울역을 혼자 왕복할 수 있게 됐어요. 9호선에서 1호선 또는 1호선에서 9호선으로 환승을 한 번 해야 하는데, 내려야 하는 역을 정확히 구분하려면 정말 많은 집중력이 필요해요. 9호선은 내리는 문 바로 위에 다음 역이 안내 문구로 나와요. 문 바로 밑에 서 있으면 그 글씨가 보이거든요. 아무거나 탄 뒤 안내 문구를 보면서 일반인지 급행인지도 구분해냅니다.

1호선은 9호선처럼 문 바로 위에 안내 문구가 없어요. 1호선 안내 문구는 아직 찾지 못했지요. 그래서 제가 탄 곳에서 하차 역까지 몇 개의 역을 지나는지 기억하면서 갑니다. 열차 문이 한쪽에서만 열리지 않으니까 항상 시선을 잘 유지해야 해요. 특히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들이 열차에 꽉 차니까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는지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기도 했어요.

아직은 서울역이나 여의도 등 자주 가는 곳 위주로 길을 익히고 있어요. 다른 곳으로는 직 가기 쉽지 않지만, 취재도 가고 지인도 만나러 여기저기 다녀보면서 자연스럽게 길을 익히는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휴대폰 지도를 보며 길을 찾는 것이 저에게는 ㅁ들기 때문에 길을 외우는 게 가장 쉬운 편이에요. 환승 개찰구는 에스컬레이터 기준으로 어느 쪽에 있는지, 4량이나 6량의 열차는 몇 번째 선로에서 타야 하는지, 하차할 역까지는 몇 정거장인지, 어느 쪽 문이 열리는지. 외워야 할 ‘숙제’가 엄청 많지요.

서울에서 전철을 많이 타면서 좋은 점도 생겼어요. 바로 ‘개찰구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거죠. 저는 카드가 개찰구에 제대로 찍혔는지 알지 못해요. 개찰구 화면에 나온 잔액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보다 보면 뒤에 사람이 빨리 가라고 재촉해요. 하루에 두세 번 지하철을 타니 이젠 개찰구 트라우마를 이겨낸 것 같아요. 개찰구를 열 번 통과하면 한두번 정도는 막히는 것 같은데, 그냥 그러려니 하고 개찰구 입구로 돌아가서 다시 카드를 찍고 통과해요. 역시 경험이 큰 자산인 것 같아요.

 

   
 

 

어디를 가도 중요한 건 가족

 

서울로 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반대하셨어요. 특히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하셨지요. 그래도 부모님께 언제까지나 의지할 수는 없었어요. 돈을 벌어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며 저만의 인생을 누리고 싶은 의지도 강했거든요.

결국 부모님이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셔서 서울로 이사 오게 됐어요. 이사 온 뒤 처음 맞이한 주말, 부모님과 여동생까지 온 가족이 다 제 집으로 왔어요. 같이 침대며 옷장 등 가구도 사고, 집의 여기저기를 다듬고 손질했어요. 엄마가 반찬을 만들어 오셔서 냉장고를 가득 채워주시고, ‘맥가이버의 손’이라고 불리는 아빠는 집안 여기저기를 멋지게 만들어 주셨어요.

주말 동안 가족이랑 함께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이 ‘가족의 사랑’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서울 집에서 하루를 보낸 뒤 가족이 포항으로 출발하려고 할 때, 저도 모르게 가족들을 안아주게 되네요. 그런데 가장 먼저 아빠를 안아드리는데,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겨우 참고 다음 엄마, 매번 집에 갈 때마다 엄마를 안아드리는데 이번에는 엄마도 그 어느 때마다 강하게 안아주시네요. 눈물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어요. 마지막으로 동생도 꼭 안아주었어요. 가족을 배웅하고 집에 들어오니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눈물을 닦으며 다짐했어요. 이제 정말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살게 됐는데 그만큼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말이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부모님 걱정 끼치지 않게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아가겠다고요. 물론 어떤 일이든 제가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주어진 기회와 환경 속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마음먹었어요. 평범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서울살이, 정말 잘 지내고 싶어요. 그래서 가족을 비롯해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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