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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점자인 지폐, 이제는 시각장애인 차별이 맞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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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4  14: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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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말에서 2007년 초경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신권이 세상에 등장했고, 2009년 오만 원권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들 지폐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앞면 우측에 점자가 인쇄돼 있고, 각 권마다 길이가 다르다. 즉, 일천 원권에는 점 하나(●), 오천 원권에는 점 둘(●●), 일만 원권에는 점 셋(●●●), 오만 원권에는 줄 다섯이 표시돼 있고, 오만 원권은 154㎜, 일만 원권은 148㎜. 오천 원권은 142㎜, 일천 원권은 136㎜로 길이에 차이를 둬서 시각장애인이 각 지폐의 점자를 만지거나 길이를 가늠해서 그 지폐가 얼마인지 구별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떤 면이 지폐의 앞면인지 몰라 점자 표기를 찾기조차 쉽지 않고, 찾는다고 해도 갓 발행된 것이 아니면 점자를 손으로 느낄 수 없다고 한다. 또 지폐 길이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단순히 손으로 만져서는 그 길이를 알 수 없고, 비교할 수 있는 지폐가 없으면 소용이 없으며, 지폐가 여러 장일 경우 그 길이를 일일이 재고 있을 수도 없다고 한다. 결국 지폐에 있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장치는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2007년 2월경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포함한 몇몇 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새로운 지폐가 시각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다고 진정했다. 그러나 당시 인권위는 기술의 한계가 있다는 이유로 지폐에 표기된 점자가 시각장애인의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이후 현재까지 지폐들은 동일한 형태의 점자 표기를 유지한 채 발행·유통되고 있다. 인권위의 결정 당시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으나 아직 시행되기 전이었다. 그렇다면 현행 법 규정에 비추어보면 어떨까? 먼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보자.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15조(재화·용역 등의 제공에 있어서의 차별금지) ①재화·용역 등의 제공자는 장애인에 대하여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 아닌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수준의 편익을 가져다주는 물건, 서비스, 이익, 편의 등을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0조(정보접근에서의 차별금지) ①개인·법인·공공기관은 장애인이 전자정보와 비전자정보를 이용하고 그에 접근함에 있어서 장애를 이유로 제4조제1항제1호 및 제2호에서 금지한 차별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1조(정보통신·의사소통 등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의무) ① 제3조제4호(공공기관)·제8호가목 후단 및 나목(공공기관 포함)에 규정된 행위자는 당해 행위자 등이 생산·배포하는 전자정보 및 비전자정보에 대하여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한국수어, 문자 등 필요한 수단을 제공하여야 한다. 이 경우 제3조제8호가목 후단 및 나목에서 말하는 자연인은 행위자 등에 포함되지 아니 한다.

 

다음으로 2017년 5월 29일 시행된 점자법을 볼 필요가 있다.

점자법

제2조(기본 이념) 시각장애인은 문자 수단으로서 점자를 사용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와 국민은 점자의 발전과 보전·계승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제3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점자"란 시각장애인이 촉각을 활용하여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도록 튀어나온 점을 일정한 방식으로 조합한 표기문자를 말한다. 이 경우 도형·그림 등을 촉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제작된 촉각자료를 포함한다.

제4조(점자의 효력 및 차별금지) ① 점자는 한글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문자이며, 일반활자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② 공공기관등은 입법·사법·행정·교육·사회문화적으로 점자의 사용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5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책무) ② 공공기관등은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사용하여 모든 정보에 접근·활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지폐는 재화에 포함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5조에 따라 지폐를 제공하는 한국은행이 장애인에게 비장애인에게 제공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수준의 편익을 가져다주는 지폐를 제공하면 안 되는 건 명백하다. 또 점자법 제4조는 점자가 일반 활자와 동일한 효력이 있고, 공공기관이 입법·사법·행정·교육·사회문화적으로 점자 사용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지폐에 표기된 점자는 일반 활자가 당연히 읽을 수 있는 형태로 표시돼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이 촉각으로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인쇄돼 있어야 한다. 또 지폐에 인쇄된 금액 표시는 하나의 정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점자법에 따라 시각장애인은 지폐에 표시된 금액이라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읽을 수 없는 점자가 있는 것은 점자를 제공하지 않은 것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서 장애인 차별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점자법 위반에 해당한다.

한편, 지폐 길이를 구별해 놓은 것은 그 방법만 놓고 보면 시각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정당한 편의제공이 전부 제공됐다고 볼 수는 없다. 시각장애인용 지폐 구분 도구가 있더라도 현실적으로 늘 그 도구를 사용하기 쉽지 않고, 지폐가 아닌 종이를 지폐와 동일한 크기로 만들어 제공했을 때 시각장애인은 속을 수밖에 없는 등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인권위는 차별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술의 한계를 들었다. 그런데 강산이 한 번 바뀌는 동안 한국은행과 정부는 점자 표기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기술적 한계라는 이유가 사실이라면 인권위는 단순히 진정을 기각할 게 아니라, 정부와 한국은행에게 당장은 차별로 보지 않겠지만, 차별의 소지가 있으므로 시정하기 위해 연구하도록 정책 권고를 했어야 했다. 분명한 것은 그동안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점자법이 제정되면서 차별임이 보다 명확해졌다는 것이고, 2016년 호주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지폐에 시각장애인이 확실히 인식할 수 있는 돌출된 점자 표기를 한 사실에서 보듯이 현재의 지폐보다 시각장애인이 인식하기 좀 더 나은 형태의 지폐 제공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부디 이제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점자법 위반을 그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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