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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는 ‘후천성인권결핍증’을 앓고 있다HIV/에이즈인권활동가네트워크
채지민 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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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9.05.15  21: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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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위한 준비는 매번 꼼꼼하게 해야 함이 당연하지만, 아예 시험공부를 하듯 집중하며 매달려야 할 때가 있다. 바로 이번 취재가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듣고 난 뒤 이해하는 수준에 이르기 위해선, 일단 이해가 가능해질 만큼의 정보와 지식을 먼저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가 굳건히 쌓아온 혐오와 차별의 벽을 깨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다한다 해도, 편견의 그 선입견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건 바로 이 세상 속 ‘에이즈’라는 한 단어였다. 그런데 이번 취재의 가장 큰 성과라 할까? 가장 뜻깊게 얻은 소중한 의미는, 에이즈라는 대상을 독감바이러스처럼 일상의 존재로 거리감 없이 바라보게 됐다는 점이다. 그런 관점의 변화를 이끌어준 이들이 있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HIV/에이즈인권활동가네트워크를 만났다.

 

감염 = 에이즈? 그게 아니다

 

34년 전인 1985년 12월, 최초의 내국인 감염자가 대한민국 땅 안에서 생겨났다고 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얼마나 엄청난 공포가 사회 전체를 뒤덮었는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현대판 흑사병’이라며 모든 저주의 언어들이 쏟아졌고,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조바심은 일상의 인간관계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게다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이라는 거대한 행사로 수만의 외국인들 입국을 앞둔 이 나라 전체는 말 그대로 모든 게 발등의 불이었다. 치료약은커녕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채 감염되면 무조건 죽는다던, 그래서 인류의 종말마저도 공공연하게 거론되던 그 긴장감은 2019년 현재까지 암암리에 유지되고 있다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고, 그걸 이 땅의 국민들만 모르고 있다는 지적이 던져졌다. 바로 감염인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문수 “외국에선 ‘HIV감염인’이라고 정확하게 부르는데, 한국에선 아직까지도 ‘에이즈환자’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죠. 이미 오래 전부터 더 이상 죽을병은 아닐 만큼 의료 환경이 좋아졌어요. 똑같은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치료가 되고, 간이나 신장이 안 좋은 사람들처럼 지속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는 만성질환 정도로 생각하시면 돼요. 자연사(死)할 때까지 살 수 있다는 거죠. 감염 자체로 사망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는 겁니다. 죽는 것도 의료 환경이 극히 열악한 저개발국가 같은 지역에 한정된 얘기인 거죠.”


용어의 설명부터 먼저 정리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HIV는 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의 약자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를 말한다. 독감바이러스나 간염바이러스처럼 바이러스의 한 종류로, 인체에 침입해서 세포면역기능체계를 파괴시킨다. 몸에 들어와도 6주에서 12주가 지나야만, 검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을 항체로 형성되기 시작한다. 아무런 증상도 보이지 않는 기간이 평균 10년이나 되기 때문에, 검사를 통해 확인하기 전까지는 HIV감염인 스스로도 HIV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HIV의 확산으로 신체 면역력이 크게 떨어지고, 판정기준에 속하는 감염과 질환이 발생하게 될 때 비로소 AIDS(에이즈,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후천성면역결핍증) 판정이 내려진다. 에이즈 자체로 중환자가 되거나 사망에 이르는 게 아니고, 면역기능의 저하로 인해 발생한 질환을 막아내지 못해 그 질환으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HIV에 감염됐다고 해서 무조건 에이즈로 진행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HIV감염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조기에 적절한 투약을 시작하면 신체 면역력이 거의 정상수치로 회복이 되고, 비감염인과 같은 일상생활이 가능해진다. HIV라는 바이러스가 억제된 상태로 몸 일부에 남아 있을 뿐, 혐오와 편견의 대명사가 된 에이즈 단계로 넘어갈 일은 없다는 것이다.


문수 “초창기엔 먹어야 하는 약 분량이 엄청났고, 부작용도 아주 심했다고 해요. 그러다가 1995년부터 ‘칵테일 요법’이라고 세 가지 약물을 한데 섞어서 부작용을 줄인 약들이 등장했는데, 2000년대 들어서서 새로운 효능의 약들이 다시 개발됐죠. 그래도 하루에 몇 알씩 두세 차례 계속 복용해야 했어요.”


윤가브리엘 “그러다가 2007년 전후로 3차 치료제가 등장했어요. 그 이후로는 하루에 한 알로 충분해진 거죠. 부작용을 더 줄이고 약의 효과도 열두 시간에서 스물네 시간, 하루에서 이틀, 이런 식으로 늘어나게 된 거예요.”


문수 “앞으로는 한 번의 주사 처방으로 한 달을 갈 수 있는 치료법도 지금 개발 중이라고 해요. 그럼 점점 더 완치의 길로 가는 거죠. 물론 HIV가 100% 박멸되진 않는다고해요. 골수라든지 뼈 속이라든지, 이런 데 몇 개라도 남아있다는 거죠. HIV감염인의 바이러스는 수만 개, 수십만 개가 될 때도 있어요. 그런데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 그 숫자가 오십 개 미만으로 떨어져요. 그러면 의학적 진단으로 ‘미검출’이라는 판정이 나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백개까지 미검출로 판단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엄격하게 오십 개로 규정하고 있어요. 혈액 속에 있다 해도 감염될 만한 양이 전혀 안 되고, 한마디로 무의미한 수치로 확인이 되는 거죠.”

 

   
▲ 사무실 문에 부착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포스터. HIV감염으로 끝내 숨져간 이(프래디 머큐리)는 세계적인 영웅으로 추앙받는 현실이 이 땅의 감염인 당사자들에게 극명한 명암을 전달하고 있다.


윤가브리엘 “간단하게 생각한다면, HIV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는 약은 없잖아요. 죽이는 게 아니라, 전부 다 억제시키는 기능을 하니까요. 인플루엔자라는 감기바이러스도 그 자체를 제거할 수는 없죠. 환절기 때 면역력이 떨어지면 쉽게 걸리고 약을 찾게 되듯이, HIV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단, 평소에도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는 거, 그것만 지키면 미검출 상태로 인생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혐오가 더 아프다, 심신의 상처보다도

 

HIV/에이즈인권활동가네트워크(아래 네트워크)는 HIV감염인들과 인권활동가들의 연대체로 2016년 출범했다. 감염인들이 경험하는 차별에 주목하고 소수자들의 목소리로 인권의 담론을 확장하며, 에이즈에 덧씌워진 낙인과 혐오를 지워나가기 위해 활동한다. 현재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러브포원, 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요양병원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PL모임 ‘가진사람들’, 한국 청소년 청년 감염인 커뮤니티 ‘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등이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윤가브리엘 “판정이 나올 때 양성(+)과 음성(-)으로 표시되잖아요. KNP+, 나누리+처럼 명칭 옆에 붙는 +(플러스)라는 표현은 ‘양성’임을 뜻하고, ‘다 함께’라는 ‘투게더(together)’의 의미도 담고 있어요. 외국의 감염인 단체들도 플러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윤가브리엘(활동명) 씨는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하는 인권단체 나누리+에서 대표를 맡고 있고, 문수(활동명) 씨는 감염인 중심의 자조모임인 KNP+를 이끌고 있다. 네트워크 자체의 사무실은 없고 각 단체별로 활동하다가, 대외적인 큰 이슈가 있을 때 같이 모여서 대책을 한데 수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공식적인 성명서를 발표할 때는 항상 네트워크의 명칭으로 의견을 드러낸다.


윤가브리엘 “제가 2003년 아시아 에이즈 문제 관련 포럼에서,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를 했던 게 시작이었어요. 그때 했던 말이 ‘에이즈 때문이 아니라 혐오 때문에 아프다’였죠. 그 한마디가 일정한 울림을 갖게 되면서 감염인들의 모임이 하나둘씩 만들어지게 됐고, 강요된 침묵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게 됐어요. 다만 내부적으로는 서로가 공개(커밍아웃)를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사양하고 있기 때문에, 밖에서 의견을 드러내는 역할은 제가 주로 맡고 있습니다.”


‘병 때문이 아닌 혐오 때문에 아프다’라는 표현이 가장 절박한 울림을 실제 담고 있는 것 같았다. HIV감염인들의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또한 하루에 약 한 알로 해결될 만큼 의료적 환경도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건 초창기에 비해서 나아졌다는 거지 세상 자체가 변화됐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여전한 건 혐오와 차별과 편견의 벽이다. 퀴어문화축제 등의 행사 때마다 행사장 전체를 포위하듯 둘러싸며, ‘동성애가 합법화되면 에이즈 천국이 된다!’ 같은 가짜뉴스만 외쳐대는 유사종교인들의 겁박과 저주를 떠올린다면, 사회적 환경은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문수 “혐오가 과학의 성과마저 가로막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현대의학이 이뤄낸 놀라운 성과를 애써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죠. 감염률 0% 상태로 치유가 된 HIV감염인들인데도, 차별과 혐오는 에이즈가 처음 창궐하던 그 시절의 공포에 멈춰 서 있는 거예요.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주된 논리로 언제나 HIV감염인들을 불러내잖아요. 여기서 분명하게 말씀드려야 할 것은 HIV를 감염시키고 전파하는 사람들은 HIV감염인들이 아니라, HIV감염 사실 자체를 모르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자신들이 감염의 주체인 줄도 모르면서, 혐오와 차별만 부르짖고 있다는 거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비롯해 97개국 800여개 단체에서 잇따라 발표한 ‘U=U 성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바이러스 미검출=전파되지 않음)’ 선언으로써, HIV감염인이 꾸준히 치료 받으며 약을 먹으면 6개월 이내에 HIV가 미검출 수준으로 떨어지고 그 상태가 유지됨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핵심은 ‘바이러스 미검출 수준을 유지하는 HIV감염인과 성접촉으로 HIV에 감염될 확률은 0%’라는 점이다.


윤가브리엘 “감염인 당사자, 즉 감염 사실이 드러나서 치료에 들어간 감염인들은 예방법을 확실하게 잘 알게 됐기 때문에, 오히려 보다 더 안전한 생활을 추구하게 되죠. 그런데도 사회적 비난은 HIV감염인들한테 집중되고 있어요. 치료과정을 거쳐 약을 복용하는 이들은 더 이상 감염과 전파의 주체가 아닙니다. ‘미검출’이고 ‘감염될 확률 0%’가 공식 인정됐으니까요. 이 사회가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건, 감염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그들’이라는 겁니다.”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을 가장 힘들게 만든 혐오와 차별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물론 ‘모든 것’이라는 게 정답이겠지만, 우리가 모르는 당사자들만의 답답함과 억울함이 따로 있을 것 같아 양해를 구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문수 씨는 아직까지 대외적으로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주변인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어서 차라리 괜찮은데, 그 대신 그를 힘들게 만드는 모든 차별은 그의 증상을 검진하는 병원 측에 집중돼 있다고 한다.


문수 “가족들이 알기는 알아요. 그런데 완전히 이상한 상황에서 알게 된 거죠. 감염 초기에 시골집에 내려가 있었는데, 그 지역 보건소에 등록된 사람이 저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어느 날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었대요. ‘OOO 씨 있는가? OOO 씨는 보건소에서 관리해야 할 병에 걸려 있으니까 빨리 와야 한다.’ 그렇게 가족한테 말해놓고, 보건소 직원이 직접 집으로 찾아와서 제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정말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을 당한 거죠. 참지 못하고 보건소장한테 달려가서, 무슨 행정을 이런 식으로 하느냐고 아주 강력하게 항의를 했어요. 진짜로 무릎 꿇고 빌더라고요. 잘못했다고요.”

 

   
▲ 사무실 벽에 부착된 치료약의 종류와 설명들


문수 씨는 다른 경우도 한 가지 더 언급했다.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이라는 OO대학병원에서의 일이라고 한다. 이유도 없이 갑자기 열이 40도를 오르내려서 응급실로 달려갔는데, 구석의 의자에 대기시킨 채로 하룻밤을 보내게 하더란다. 가까스로 응급실 병상을 잡긴 했지만, 이번에는 의사와 간호사 누구도 다가오지 않았다 한다. 치료행위 자체를 거부한 셈이다. 의사가 와서 진료를 해야 뭐든 진행이 될 텐데, 그렇게 사흘 밤낮을 방치됐던 게 지금까지도 지옥 그 자체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윤가브리엘 “폐렴이 갑자기 심해져서, 거의 기어가다시피 나가서 택시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간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보호자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서류가 있잖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형님한테 감염사실을 처음 밝혔어요. 그래서 아시게 된 거죠. 형님은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어요. 어떤 냉대나 거리감 같은 것도 없이 똑같이 대해 주셨거든요. 이후로 친구나 저와 가까운 사람들한테 드러냈을 때도, 어느 누구 하나 저를 소외시키거나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일이 전혀 없었어요. 제가 커밍아웃을 하고 공개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게 된 힘은,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가족과 지인들한테서 얻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윤가브리엘 씨를 향한 혐오와 차별은 감염인이라는 사실뿐 아니라, 외모로 드러나는 장애가 훨씬 더 컸다고 한다. 이중의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른쪽 눈이 전맹이고 왼쪽으로만 볼 수 있는데, 그마저도 CNV(choroidal neovascularization)라는 바이러스로 인한 염증 때문에 많이 안 좋은 상태라고 한다. 게다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중이염이 악화돼서,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HIV로 인한 면역력 약화가 청력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했다.


윤가브리엘 “시각장애 때문에 흰 지팡이를 잡고 다니는데 식당에서도, 헬스장 같은 개인생활을 위한 공간에서도 다 거부를 당하는 거예요. 식당에 들어가면 주인이 ‘어떻게 왔냐?’고 꼭 물어요. 아니, 식당에 식사하러 오지, 고객한테 그렇게 묻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자리에 앉기 위해 손을 휘저으며 의자를 찾는 동작을 하면, 시력이 정말안 좋다는 걸 확인하고선 곧장 ‘장사 안 한다. 나가라’고 내쫓아요. 이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를 일일이 몸으로 겪으며 지내야 하는 거죠.”


마주앉은 두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차별의 사례는 계속 이어졌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진료실 문틈 사이로 내다보며 진료를 하고 처방전을 그 사이로 내밀어준다는, 정말 코미디 같은 증언에선 헛웃음부터 나왔다. 감염인과 관련된 모든 것, 진료차트는 물론이고 심지어 쓰레기통과 식판에도 별도의 딱지를 붙여 따로 구분한다는 대목에선 두 사람 모두 허탈한 웃음을 씁쓸하게 내지었다.

 

   
▲ 현행법 조항의 불합리를 공개토론회 자리에 나와 지적하고 있는 당사자들(눈에 모자이크 처리된 이들)

 

문수 “제가 겪은 일은 아니고 가장 최근에 직접 전해들은 건데,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 모두 허벅지 뼈가 부러진 감염인이 급히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쫓겨났대요. HIV감염인이라고 난리가 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이 다니던 감염내과가 있던 대학병원으로 힘들게 옮겼는데, 거기서도 두 시간 넘게 응급실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는 거죠. 거의 반년을 치료해야 할 심각한 부상을 당했는데도, 응급실 출입 자체를 봉쇄당하고 밖에 있어야 했다는 거예요. 정말 하늘이 도왔는지 자신을 진료하던 감염내과 의사가 때마침 지나가서, 그를 붙잡고 하소연해서 가까스로 응급실에 들어가는 게 가능해졌대요. 가능해졌다…. 글쎄요, 이게 대한민국 의학계에서는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국민의 인권은 어디 갔는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인 HIV는 성접촉이 가장 큰 감염원인으로 밝혀지고 있다. 또 하나의 주된 경로는 감염된 혈액의 수혈이다. 감염될 확률이 95%에서 10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지만, 수혈에 사용되는 혈액에 대한 철저한 검사로 인해 최근에는 감염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외에도 오염된 주사바늘의 공동사용, 감염된 산모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수유 과정에서도 HIV감염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HIV감염인과는 접촉 자체를 무조건 피해야 할까? 그건 아니다. 정상적으로 치료를 받고 약을 복용하는 이들이 사회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듯, 일상생활에서 HIV가 감염될 통로는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항들이 거의 전부라고 보면 된다. 식기와 컵을 함께 사용해도 감염되지 않는다. 화장실의 변기를 함께 사용해도, 침구류를 같이 써도 무방하다. 수영장과 대중목욕탕을 함께 이용해도 상관이 없고 피부접촉과 포옹, 가벼운 입맞춤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 국가의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는 행정에 대해, 활동가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규탄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 제공 네트워크)

 

문수 “그런데 HIV 감염사실이 어떤 경우에 가장 많이 밝혀지는지 아세요? HIV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이것인데, 아마도 독자 여러분 모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에이즈검사라고 하는 HIV검사를 한두번씩은 다 받아보셨을 거예요. 수술을 할 때 사전에 하는 검사 안에 HIV감염여부 확인이 포함돼 있거든요. 산모가 제왕절개수술을 할 때도, 심지어 외모를 위해 성형수술을 할 때도 다 검사를 해요. 그래서 정말 난데없이 의사한테 통보를 받게 된다는 거죠. ‘당신은 에이즈에 걸렸다(HIV에 감염됐다)’라고요. 사전 동의도 없이 마구잡이로 진행되는 이 검사가 가장 대표적인 인권유린의 사례라는 겁니다.”


윤가브리엘 “그래서 그 충격으로 자살한 사례들이 실제로 많이 있어요. 충분한 치료와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정보는 전혀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1980년대식의 공포와 저주부터 받아들여야 하는 걸 견뎌내지 못하는 거죠. 군대 갔다 온 남성들은 판정을 받기 위해 신체검사를 먼저 하죠. 입대가 결정되면 자대 배치 전에 또 받고, 제대할 때까지 일정 기간마다 피검사 같은 검진을 주기적으로 받아요. 그 안에 HIV검사가 다 포함돼 있습니다. 교도소 같은 집단생활의 공간에 들어갈 때도 다 검진을 받습니다.


본인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가의 검열을 받았다는 사실은 아마 다들 처음 알게 되실 거예요.” 황당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무조건 ‘에이즈=저주=사망’이라는 오래된 편견만 알고 있는 일반 서민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검진이 진행된다는 것, 가장 묵과할 수 없는 대목은 국민 개개인한테 사전 동의 과정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무작위로 실시한다는 사실이다. 세세한 상담이 먼저 진행돼야 하는데, 행정편의주의로 국민 모두를 ‘잠재적 감염인’으로 취급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윤가브리엘 “분명한 강제검진이죠. 명백한 인권침해라는 겁니다. 갑자기 통보 받는 국민의 입장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거예요. ‘후천성 면역결핍증 예방법’ 제7조에 비밀누설금지 조항이 분명하게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감염사실이 밝혀진 ‘본인’한테만 통보가 진행될까요? SNS 등 각종 사생활 침해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데, 국민도 모르는 이런 강제검진은 분명히 시정하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다는 실제증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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