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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는 감옥에 가고 나쁜 환자는 어디든 간다정신장애인이 말한다
박은정/'파도손' 활동가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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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호] 승인 2019.09.05  16: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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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당사자가 아니다

정신장애에 관해, 관련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잘못된 이야기를 한다. 정신장애인의 가족과 정신건강 업계 종사자, 그리고 정신장애인 당사자까지. 정작 이들이 자기 세계에 갇혀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다. '바깥'은 지금 당장은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결국은 우리를 치유로 이끌 수 있는 진실의 세계다. 당연히 우리는 이 진실로 나아가야 하며, 그러려면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직시하고 계급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정신장애인이 계급의식을 갖추지 못하면, 그의 모든 사고와 판단은 결국 지배계급의 논리와 이익에 헌신하게 된다. 21세기 한국에는 노예제도가 없고 봉건사회의 신분·계급도 없다. 그 어떤 기업인이라도 노동자를 직접적으로 착취하겠다고 선언했다가는 역풍을 맞을 것이다. 정신장애인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대놓고 정신장애인을 시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정신장애인을 열등 시민 취급하는 진실은 은폐되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라는 공허한 헌법 조항만 남는다. 어떤 정신장애인들은 자신이 차별받고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차별대우를 '공정한 것'이라며 합리화한다. 그렇게 가해자의 논리를 답습한 정신장애인은, 정신장애인을 억압하는 구조의 전방에 서게 된다.

이들을 '당사자'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환자는 당사자가 아니다. 모든 정신장애인이 당사자성을 지니진 않는다. 당사자성은 자기 현실을 직면해 명확히 판단하고, 사회 부조리에 맞서 계급의식을 지녔을 때 획득된다. 많은 의사는 흔히 '병식 없음'이라는 마법의 구절로, 모든 환자의 행동을 정신병 취급하며 통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환자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병식이 아니다. 환자에게 없는 것은 사회 인식이다. 나는 의사의 논리를 복제하는 환자, 편견에 맞서기는커녕 자신만큼은 살인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환자, 착한 환자들도 있다고 주장하는 환자를 원하지 않는다.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는 편익 외에는 그 어떤 해방의 깨달음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당사자성과 멀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부작용은 일절 설명하지 않으면서 1분 이내의 관찰로 약물만 지어주는 권위적인 의사들, 폐쇄 병동에서 고객들을 깔보고 떼로 격리실에 가둬 놓는 간호사들, 정신장애인 학대를 다루지 않는 언론, 그리고 무엇보다 고립된 자기를 설명할 언어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그들의 처지에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의료권력과 사회적 냉대 앞에서 수많은 경험을 겪어 결국 무기력을 학습했고,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이 학습된 무기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무기력을 탈피할 수 있는 언어를 학습해야 한다. 우리 언어를 만들고 퍼뜨려야 한다. 환자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파하고, 우리가 의료 산업과 사회적 차별로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 눈앞에 들이대야 한다. 그래야 함께 분노하고 함께 생각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세계를 회피하지 않고 올바르게 사유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당사자성을 교육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치료는 치유가 아니다. 우리의 자아는 사유하는 과정에서 평등에 숙달되며, 치유로 나아갈 것이다.

 

범죄자는 감옥에 가고, ‘나쁜 환자’는 어디든 간다

짐 스타인맨(Jim Steinman)의 노래에는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나쁜 여자'란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주체적 여성’을 의미한다. 이 문구를 정신장애인에 빗대 '착한 환자'를 설명할 수 있다. "정신질환은 약을 잘 먹으면 '관리'될 수 있는 질병이다. 따라서 그러한 병을 제대로 인지하고(병식) 기존 의료 시스템에 순응해야 한다." 이 두 문장에 동의하고 실천에 옮긴다면 '착한 환자'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권장하는 삶의 모델은 착한 환자가 아니다. 오히려 '나쁜 환자'다. 나쁜 환자는 기존 진료 방식과 입원 절차, '병식 없음' 프레임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자신에게 필요한 적절한 치료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를 가지며, 사회에서 만든 '예비범죄자'라는 낙인에 굴하지 않는다. "나는 약을 잘 먹고 있으니, 범죄자가 아니다"라며 변명하지 않는다. 권위적 치료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당사자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 정신장애 혐오 사회에 일조하는 비겁자가 되지 않는다.

 

   
▲ 영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이를 ‘치료 거부’라는 의미로 곡해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약물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특히 급성기 환자들에게 약물은 극적인 효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권위적 의료에 자신을 내다 바치는 것은 자유를 잃는 일일 뿐더러 해결책이 아니다. 수많은 당사자는 약이 너무 많아서, 부작용을 경험해서, 정신질환이 있다며 손가락질 받을까 봐, 사회적 불이익을 경험할까 봐 약을 먹지 않는다. 입원 거부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긴다. 한국에는 열악한 환경의 병동이 너무나 많고, 격리·방치될 가능성이 높으며, 사회적 편견으로 두려움이 클 수 있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을 단순히 '병식 없음'으로 대신하고, 강제 입원 및 강제 투약을 하자는 것은 눈속임이고 폭력이다.

사회에서는 정신장애인에게 '장애 계급'이라는 낙인을 씌운 것도 모자라, '예비범죄자'라는 이중 낙인을 덧씌웠다. 강남역 살인사건, 강서구 살인사건, 진주시 방화살인사건, '역주행' 사건, 가해자가 '조현병 환자'라고 해서 '조현병 범죄'가 됐다. 혹시 이름을 바꿔 ‘남성 살인’이라고 부를 생각은 없는가? 강력 범죄에서 남성 가해자 비율은 97% 가까이 되며, 나머지가 여성 가해자고, 정신장애인은 그중 거의 한 줌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 중 아주 일부가 범죄를 저지르면 그것은 정신장애로 인한 범죄가 돼 구체적으로 이름도 붙는다.

정신장애가 범죄를 일으키는 요인이라는 허구로부터 ‘일부 정신장애인의 범죄는 약을 잘 먹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며, 그러한 병식 없음이 범죄 사건을 만들고, 그러므로 강제입원시켜 격리하고 약을 먹여야 한다’는 ‘논리’가 탄생한다. 대전제부터 틀린 ‘억지 논리’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결코 ‘착한 환자’가 돼 그저 "약을 잘 먹고 있다”라며 순응할 수 없다. 안인득과 김성수의 정치적 이름은 정신장애인이 아닌 ‘범죄자’가 돼야 한다. 범죄자는 감옥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나쁜 환자’, 순응하지 않는 환자는 어디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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