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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에서 나와 지역에서 살기일본 왓빠 모임의 50년
배용진 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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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호] 승인 2019.10.02  13: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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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있는 사람이 산속 시설에 격리돼 있던 시절, 그것이 이상하다고, 지역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 학생이 있었다. 시설에 살던 장애인과 지역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모임은 시작됐다.

 

‘낙원’에서 지역으로

1960년대 말 일본에 대규모 장애인 수용 시설들이 들어섰다. 지자체별로 지역에서 분리된 산속 이곳저곳에 ‘콜로니(colony)’를 세우고 ‘장애인에게 낙원을’이란 표어를 내세우며 시설 입소야말로 장애인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1959년 9월 일본 역사상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입히며 태풍 베라(Vera)가 지나갔다. 5,0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많은 학생 단체가 재난 복구 지원 활동을 했고, 이후 다양한 봉사와 학생운동으로 활동을 이었다. 1969년 당시 대학교 1학년이던 사이토 겐조 씨는 장애인 시설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을 산속에 고립 시켜 놨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건 사람이 사는 방식이 아니에요. 격리죠. 가장 작은 규모의 시설에도 100명 넘는 장애인이 수용돼 있었어요.”

1971년 사이토 씨와 친구는 빌린 돈으로 협소한 집 하나를 빌려 시설에 있던 장애인과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왓빠 모임’의 탄생이다. ‘왓빠(わっぱ)’란 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고리처럼 이어지자는 뜻이다. 장애인을 사회와 철저히 분리하던 사회에서 장애인과 함께 사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생활을 지속하려면 일해야 했다. 연금제도 등 장애인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제도가 없었고, 기업도 장애인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일거리를 받아와 간단한 조립 등 가내수공업식 일을 하며 10년 이상 생활을 유지했다.

유지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왓빠 모임은 두 가지를 계획한다. 첫째는 빵 만들기 사업이었다. 회원 한 명이 빵 공장에서 수습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1984년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은 ‘왓빵’을 만들었다. 처음엔 회원 모두가 먹고살 만큼의 수입을 올리지 못했지만, 점차 판매가 늘며 모임을 대표하는 사업으로 발전했다.

다른 한 가지 계획은 행정조직에서 보조금 받기였다. 애초 왓빠 모임은 보조금을 받지 않는다는 방침이 있었다. 정부의 장애인 정책이 입소 시설을 지향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통소 시설(주간 보호 시설)이 도입됐고, 왓빠 모임은 단체를 법인화해 통소 시설 지원금을 따냈다. 사회복지법인이 됐어도 모임은 기존 운영 방식을 고수했다. 의사 결정도 이사회가 내리지 않았다.

 

   
 

어떤 장애가 있든, 얼마나 나이 들든

80년대까지는 일자리를 확대하며 모임을 성장시켰다면, 90년대 중반 들어서는 취업 지원과 생활 지원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왓빠 모임 내에도 일반 기업에서 일하고자 하는 중증장애인이 많았다. 1993년 왓빠 모임이 만든 취업지원센터는 현재 나고야 최대 규모의 장애인 취업지원센터가 됐다. 연간 400~500명을 상담하고, 그중 200명가량은 취업에 성공한다.

취업 지원에 이어 왓빠 모임은 장애인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살도록 생활 지원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활동지원사 파견이다. 결혼하며 나고야에 살게 된 한 중증장애인 여성이,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어 생활이 어렵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이 계기였다. 당시에는 아직 활동지원제도가 없었다. 왓빠 모임은 자원봉사자를 모아 활동지원사로 파견하고 사례금을 지급했다.

2004년 장애인지원법이 제정돼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도화된 뒤에도 왓빠 모임은 나고야 시와 교섭해 서비스 범위를 넓혔다. 등하교 시 등 다른 지역에서는 지원받지 못하는 몇몇 상황에서 나고야에 사는 장애인은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일본 장애인지원법은 여전히 경제 활동이나 통학 등은 활동지원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 7월 국회의원에 당선된 중증장애인 기무라 에이코 의원이 현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로 질문서를 내각에 제출한 상태다.

2000년대 들어 왓빠 모임은 고령이 된 장애인도 안심하고 지역에서 살 수 있게 지원을 넓혀갔다. 성년후견제도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자체적으로 장애인의 금전·재산 관리를 지원했고, 사망한 회원을 위한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또 장애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사회적 사업소’를 지향해나갔다.

장애인이 따로 격리돼 살게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던, 그래서 왓빠 모임을 시작했던 20대 청년은 이제 70대가 됐지만 장애인이 지역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어떤 장애가 있든, 얼마나 나이가 들든 장애인을 절대 시설에 보내지 않겠다는 방침으로 활동하고 있다. 큰 과제 하나는 고령화다. 건강하던 장애인도 나이가 들면 다양한 지원이 필요한데, 고령화로 지원 수요가 점점 는다. 고령자요양보험이 있지만 운영상 여러 벽에 부딪힌다. 어떻게 하면 우리 모임 독자적으로 고령 장애인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권리로서의 노동

왓빠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수익을 동등하게 나누는 것이다. 직위와 직책이 달라도, 특정 기술이나 능력이 있건 없건, 심지어 노동 시간과 강도가 현저히 차이 나도 분배금은 동일하다. 대신 가족 수 등에 따라서는 분배금이 달라진다. 왓빠 모임의 노동자는 일한 대가로 급여를 받지 않는다. 생활에 필요한 만큼 배당받는다. 따라서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되고 실제로 대강대강 일하는 사람도 있다.

“마도카 씨는 일을 잘 하지 않습니다. 소위 농땡이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루 여덟 시간 작업장을 지킵니다. (…) 쟁반 한 개 나르고 30~40분 휴식하거나 공장의 집기를 건드리거나 노래를 하거나 뜀을 뜁니다.”

- 심민경/<왓빠이야기>(2012) 감독

어떻게 일할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금전적 보상 없이 열심히 일한다는 게 선뜻 믿어지지 않지만, 왓빠 모임의 성장은 그게 사실임을 증명한다. 현재 왓빠 모임의 노동자는 정규직 180명, 비정규직이 150명 있다. 그중 장애인은 110명이고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다.

“개인적으로 한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휠체어를 타는 한 중복장애인이 손바닥으로 반죽을 굴리는 모습이었다. 그가 그 일을 온전히 해내기 위해서는 다른 두 동료의 도움이 필요했다. 한 명은 반죽 덩어리에서 반죽 한 움큼을 떼서 그의 손에 쥐여 주고, 다른 한 명은 그가 반죽을 손바닥으로 잘 굴릴 수 있도록 손목을 지탱했다.”

- 김은정/전 <함께걸음> 기자

한 명이 노동하는 것을 돕기 위해 두 명이 보조하는 모습은 이상해 보인다. 노동의 목적이 생산에 있다고 봤을 때 그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노동을 권리의 관점으로 바라봐 보자. 노동이 권리라면 노동자는 상품이 아니다. 노동자를 상품으로 취급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왓빠의 노동 현장을 이해할 수 있다. 사이토 겐조 씨는 말한다.

“우리는 능력주의가 차별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주의에 따르면 중증장애인의 경쟁력은 없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이라도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우리는 생산성을 확보하고자 훈련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의 모습 그대로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 한다. 장애가 아주 심하면 출근 자체에 의미를 두고 그 사람 나름의 일을 찾고자 고민한다. 그렇게 같이 현장에 있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참가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

장애인이 손바닥으로 반죽을 굴리기 위해 한 명이 적당한 크기로 떼어주고 다른 한 명이 손목을 지탱한다. 권리가 실현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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