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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변화보다 중요한 건 국민 모두의 인식개선입니다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채지민 대담전문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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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호] 승인 2019.11.14  16: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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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7일은 특별한 발언 하나로 두고두고 기록될 날이 될 듯하다.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제1야당 소속 법사위 위원장이 시청자들 모두가 고개를 다시 돌리며 화면을 재확인해야 할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웃기고 있네. OO 같은 게.” 여기서 ‘OO’은 ‘병신’이라는 단어다. 말로 먹고 산다는 다선(多選)의 국회의원이 자신의 분을 못 이겨 혼잣말로 그 단어를 내뱉었다는 건, 평소 내면에 간직된 가치관을 고스란히 고백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동안 ‘OO’이라는 표현으로 대신 써야 했던 일이 어찌 그날의 그 인물뿐이겠는가. 이만큼 갈 길이 멀고 험한 게 장애인식개선이라는 당면과제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게 큰 결실을 맺어온 한 단체를 소개할 차례가 된 듯하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이 이번 만남의 주인공이다. 무슨 벽을 어떻게 허물어왔는지를 이 자리에서 함께 확인하고자 한다.

 

사용하는 언어는 ‘나’의 실체를 드러낸다

“사실 언어한테는 죄가 없어요. 죄가 없는데 사회라는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잖아요. ‘병신’은 병이 든 몸 상태를 말합니다. 그냥 일반적인 병이 아니라 좀 힘든 병. 그래서 사람들이 걸리기 싫어하는 병이지만, 안타깝게 여기며 보듬어야 할 ‘나 아닌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이었죠. 얼마 전 제1야당 당대표가 발언했던 ‘벙어리’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순수한 우리말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보듬어야 할 우리만의 언어표현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것이 차별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금지해야 하는 겁니다. 한계성과 불가능성만 강조하기 때문이죠. 또한 사회적으로 천시되는 대상을 지칭하는 이미지가 아주 강해요. 선입관부터 제공하는 언어사용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아래 장애벽허물기) 김철환 활동가는 언어 자체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사회적 편견의 문제부터 지적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의 명제를 덧붙였다. ‘언어의 한계는 한 인간이 가진 세계의 한계다.’

“인간 개개인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고를 그대로 반영하거든요. 그래서 특정한 비어를 사용한다는 건, 장애를 바라보는 그 사람의 관점을 무의식중에 노출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언어를 쓰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겁니다. 사실 국민 개개인 모두가 인식개선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내가 이런 표현을 쓰면 안 되겠구나’라는 걸 자각하는 게 가장 좋은데, 그렇게 될 때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불가피하게 법으로 강제화 시키는 거예요. 법적으로 ‘쓰지 마!’ 하면, ‘왜 못 쓰게 하지?’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거든요. 1야당 대표의 ‘벙어리’ 발언이 심각한 건 그 때문입니다. 지도자급 인물이라면서도,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계층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내면 그대로 러났다는 거죠. 그동안 국민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겁니다.”

맞는 말이다. 말하는 어투나 발음, 억양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지역 사투리가 심하다 해도, 그것이 그 사람만의 특징이라면 얼마든지 반길 수 있다. 문제는 발언하는 내용이다.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를 살펴보다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과 생각하는 속내가 가감 없이 드러나는 법이다. 더군다나 평범한 소시민이 아닌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발언에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함이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기대할 게 뭐가 있을까. 모범? 준법정신? 직업윤리? 차라리 국민이 먼저 시범을 보이는 수밖에 없다. 인식개선을 하지 않으면 아주 큰 창피를 당한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게 될 때까지 말이다.

 

아직도 모든 게 허물어야 할 벽이다

장애벽허물기는 2018년 3월에 출범했다. 1년하고 절반이 더 넘어간 활동기간이지만, 장애벽허물기한테는 또 다른 역사가 있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가 전신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던 시기로 올라간다.

“당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보 관련부처를 없앤다고 했어요. 굉장히 크게 반대를 했죠. 장애인 문제에 있어서 정보전달의 중요성이 크게 논의되지 않던 시기였는데, 저희는 정보제공 자체가 생존권인 청각장애인들에게 집중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모든 장애에 다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저희는 기존의 장애인 단체들 중에서도 소수로 머물러야 했던 청각장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어요. 현재 장애벽허물기는 감각장애당사자들의 인권에 중점을 두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신인 장애인정보문화누리를 포함한 장애벽허물기가 이뤄낸 가장 큰 성과는 한국수화언어법(약칭 한국수어법)의 제정과 시행이다. 이건 수화가 일부 장애당사자들의 언어로 인정받았다는 수준으로 단순하게 판단해선 안 될 일이다. 한국수화언어가 대한민국의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들의 고유한 언어임을 법으로 입증한 역사적인 쾌거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한글뿐 아니라 수화언어라는 또 하나의 언어, 즉 두 개의 표준어를 가진 나라라는 선언이 된 것이다.

“그동안 저희가 허물어낸 벽들이 몇 가지 있죠. 물론 가장 큰 건 한국수어법 제정과 시행이고, 방송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방식을 많이 바꿔놓았어요. 방송법도 개정했고, 관련예산을 늘리는 데도 나름 큰 역할을 했다고 자임합니다. 미디어 문제와 정보 문제를 중요하게 보는 시선들이 적었기 때문에, 저희가 그 밑불을 놓는 촉매제 역할을 많이 해왔습니다.”

김철환 활동가는 ‘다양성의 인정’을 특히 강조했다. 장애벽허물기의 모든 활동은 궁극적으로 다양성을 인정하고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것이다.

“국가라는 큰 울타리 안에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야 돼요. ‘용광로 이론’이라는 말이 있죠. 어떤 문화든 대한민국이라는 기준에 맞게 전부 다 섞여서 하나의 형태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인데, 그렇게 되면 획일적인 문화만 존재할 수밖에 없어요. 겉으로는 단일문화로 산뜻해 보이겠지만, 건강한 사회는 절대 될 수가 없는 거죠. 우리 주변의 소수문화를 존중해야 합니다. 소수문화의 공존, 저희는 그 공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들도 엄청나게 많잖아요. 그런데 무조건 한국어부터 우고 한국식으로 살라고 하면, 문화의 정체성이 부딪치기 때문에 불합리한 결과가 도출될 수밖에 없죠.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 역시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가 존재합니다. 그걸 배척하면 안 되는 이유는 그 또한 공존해야 할 다양성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애벽허물기는 헌법 전문을 개정해서, ‘언어 및 문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별도의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11조(모든 국민은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를 개정해서, ‘언어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반드시 삽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법에 정보통신에 대한 권리도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장애벽허물기의 지적은, 20세기에 머물고 있는 헌법을 시급히 21세기의 속도에 맞출 것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저희가 특별히 집중하는 게 또 하나 있는데,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토론방송에 반드시 수어통역사 두 명 이상을 배치하라는 것이에요. 세 명 네 명의 후보자들이 제각각 난상토론을 벌이는데, 그걸 수어통역사 혼자 통역한다는 건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불합리한 일이거든요. A당후보의 주장에 B당 후보의 반박과 C후보의 재반박을 한 명의 수어통역사가 이어놓으면, 그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궤변으로 번역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방송과 토론회에 반드시 두 명 이상의 수어통역사가 진행을 맡아야 한다는 관련법 개정안이 지금 국회에 발의돼 있습니다. 故 노회찬 의원께서 발의하셨던 개정안이라서, 저희는 아주 큰 애정을 갖고 진행과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지난 1월 31일 서울 용산역에서 열렸던 한 집회에서, 수어통역사가 전하고 있는 수어의 모습

 

수어통역은 청와대와 국회부터

청각장애를 가진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외면적으로는 장애여부를 단번에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건 확실한 장점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단점이 된다. 의학적인 판단기준으로만 중증과 경증의 장애기준을 나눈다는 게, 청각장애당사자들한테는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불편함이 무엇인지는, 어디에서도 확인받을 길이 없다는 뜻이 된다.

“최근의 사례인데, 한 청각장애인이 KTX를 타려고 출발 오 분 전에 도착했는데, 열차의 문이 그냥 닫혀버린 거예요. 분명 오 분 전인데 이 당사자가 너무 당황해서 안내하는 곳에 달려가 상황을 파악하려 했지만, 소통 자체가 안 돼 결국 열차를 타지 못했어요. 그런데 오 분 전에 닫혔던 문은 열차운행 전의 시험개폐였다는 거죠. 분명 그 안내방송이 미리 나왔겠지만, 그 당사자는 출발하기 위해 닫힌 걸로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공항에서 비행기의 연착을 몇 시간 동안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죠. 최근에 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이 올라갔지만, 청각장애인의 이동의 문제는 그 내용에 없어요. 아직도 개선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다는 반증입니다.”

지난봄 강원도 고성과 속초에 대형 산불이 났을 때, 가장 긴장했던 건 각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청각장애주민들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지역의 단체들이 발빠르게 대응해서 영상전화를 돌리고 서로 연락을 취하며 아무런 피해 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는데, 이 또한 정보전달의 중요성에 해당된다. 주변이 뜨거워지거나 타는 냄새가 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화재를 파악할 길이 없다. 실제로 뜨거워지거나 타는 냄새가 나는 시점은 대피할 방법도 없는 상태가 된 이후이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인정과 공존을 위해서는, 수어도 하나의 언어이고 꼭 필요한 소통수단이라는 점을 국민 모두가 인식하게 만들어야 해요. 몇몇 소수만을 위한 방식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정말 중요한 삶의 방식이란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저희가 요구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청와대와 국회의 브리핑에 반드시 수어통역사가 옆에 함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당연히 있어야 하고, 수어통역하는 그 모습이 날마다 모두의 눈에 익숙해져야 돼요. 음성의 언어만큼 중요한 게 수어라는 걸 국민 모두가 인지하기 위해선, 청와대와 국회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가장 발달한 나라가 일본이란다. 총리나 관료들의 기자회견에는 수어통역사가 항상 곁에 있고, 정부부처의 각 기자회견실에는 수어통역사가 상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철환 활동가는 동일한 기준의 정보제공을 위해,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발표는 반드시 한 사람의 수어통역을 각 방송사가 받아서 그대로 방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잘 하는 게 그 부분인데, 우리나라처럼 정부의 발표를 각 방송사마다 다른 수어통역사로 뉴스를 진행하게 되면, 전달돼야 할 정보의 내용이 제각각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방송사의 논조나 뉴스 진행자의 취향에 따라 다른 분석을 내놓다 보면, 정확한 정부의 발표 내용이 아닌 논리를 수어통역으로 받게 된다는 거죠. 자의적인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선, 정부의 발표는 반드시 한 사람의 통역을 모든 방송이 똑같이 내보내야 합니다.”

 

장애인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G20이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니 뭐니 하며 항상 우리나라가 선진국임을 강조하지만, 정작 국가복지예산이 꼴찌 수준이라는 건 드러내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늘어나는 게 당연한 자연증가분을 예산증액이라고 강변하는 발뺌 또한 매년 반복된다. 지난 10월 28일 오전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진행된 전동휠체어 사용자들의 고속버스 탑승행사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정부는 장애인단체들의 계속된 요구사항을 자신들이 들어주고 받아들였다는 식으로 홍보한다. 하지만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시행된 지 13년이나 지났는데, 13년 동안 그 법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는 핵심은 뒤로 감춘다. 김철환 활동가는 물질적인 변화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점이 있다며, 국민 모두의 인식개선을 주문했다.

 

   
▲ 김철환 활동가가 수어로 (모든 것의 중심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두 인간이에요. 인간한테 초점을 맞추면 해답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인간한테 초점을 맞추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구가 무엇인지, 인간에게 둘러싸인 환경이 어떤 모습인지가 눈에 들어오거든요. 지금은 정책이 모든 걸 우선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정작 중요한 욕구와 환경이 뒤로 밀리는 거죠. 우리나라가 OECD 장애인복지비 평균 지출의 절반도 못 미친다고 하잖아요. 당연히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하고, 정부의 명확한 의지를 촉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산확보에 집중하다 보면, 인간한테 꼭 필요한 욕구와 환경을 매번 놓치게 돼요. 무엇보다도 인식개선이 우선입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불편한 점이 뭔지, 그들이 처해 있는 환경이 무엇인지를 열린 마음으로 살펴보는, 그래서 함께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관점에서 살아야 다양성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건지를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합니다. 장애인이라는 단어에 가두면 안 됩니다.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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