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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을 통해 돌아보는 한국 사회고요 속의 대화
노선영/작가, 청각장애인  |  souldea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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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호] 승인 2020.02.20  14: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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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로 재조명 받고 있는 가수 양준일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신드롬 수준의 인기를 끌고 있는 그의 영상은 현재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JTBC 슈가맨 3 출연까지 이어졌습니다. 방송 이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고, 대중들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공개한 양준일의 패션 센스와 세련된 무대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재미교포 출신 양준일은 1991년 ‘리베카’로 데뷔했습니다. 개성 넘치는 패션과 당시 유행했던 ‘뉴 잭스윙’ 장르의 춤으로 대중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후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한 ‘가나다라마바사’, ‘Dance With Me 아가씨’ 등의 세련되면서도 자유분방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간 노래였을까? 발라드와 트로트 장르가 주류였던 당시 가요계에서, 양준일의 노래들은 1990년대의 국내 정서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당해야 했습니다.

그 시절 한국사회의 사상이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 장애·젠더뿐만 아니라 외국문물의 새로운 스타일까지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놀이공원에 ‘오렌지족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양준일은 당시 ‘낯설고 이상한’ 가수였습니다. 1969년 베트남에서 태어난 양준일은 미국에도 살아서 그런지 한국말에 서툴었습니다. 그런 분명한 이력이 있는데도, 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영어 가사를 썼다는 이유로 방송사 심의에 걸리고, 무대에서 노래만 하면 돌이 날아오기도 했습니다.

   
▲ 인터넷 한겨레 화면 갈무리

이런 대중의 혐오를 그는 노래 ‘가나다라마바사’의 내레이션(설명하듯 멜로디 없이 말로 전하는 것)에 녹였습니다. “가수 양준일 몰라? 아으 밥맛 떨어져. 왜 이렇게 머리가 기냐, 어쭈 귀걸이까지 했어. 야, 여잔지 남잔지 모르겠다.” 양준일의 활동 기간은 2년 남짓, 사실상 ‘퇴출’이었습니다. 공항의 출입심사관까지 양준일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것이 싫다며, 비자 연장을 거부해 오랫동안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증언을 통해 유추한다면, 당시 음악적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차별을 받고 한국에서 배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차별문화의 상징이었다는 것입니다. 양준일이 받아온 차별과 질타를 보면서, 장애인이 한국사회에서 대우받고 있는 현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소름끼치게도 그 시대의 양준일이 처했던 입장이 지금의 장애인이 처한 현실과 비슷합니다. 불과 몇 달 전에 지체장애나 청각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놀이기구 탑승을 제한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1990년대 초반 한국사회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손가락질하거나, 아예 견고한 벽을 쌓아버리는 사회. 가혹했던 그 시절 탓에 몸짓과 손짓 하나까지 예사롭지 않았던 가수는 삼십 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묻혀 지내야 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편견의 자화상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지금의 양준일은 새롭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양준일을 통해 '편견과 차별', '옳게 사는 삶', '삶의 가치' 등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양준일 씨가 살아온 발자취를 살펴보며, 현재의 사회 모습과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죠.

   
▲ 방송에 다시 출연한 양준일 씨(인터넷 한겨레 화면 갈무리)

우리는 왜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일까?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또 다른 양준일‘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있습니다. 혐오와 차별의 문화는 우리 사회를 뿌리째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한국은 나와는 다른 모습,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배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양준일을 계속 우리 사회에서 밀어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야 돌아온 양준일을 뜨겁게 받아주고 있는 것처럼, 우리 주변의 타자들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우리 사회의 하나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또 다른 양준일‘들’을 만들지 않는 길입니다. 1990년대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하지만, 장애인은 여전히 차별과 억압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양준일처럼 30년이 지나서야,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과거에 양준일에게 가해졌던 혐오가, 특정한 전제조건들을 이유로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또 우리는 양준일이 남긴 말을 통해, 예상치 못했던 상황의 변화로 찾아들 ‘뜻밖의’ 희망을 가져봅니다.

 

‘네 뜻대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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