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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 인권의 비행정신장애인이 말한다
박은정/정신장애인 인권 활동가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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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호] 승인 2020.03.11  09: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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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

매일 삼키던 정신과 약 스무 알에서 서서히 용량을 줄이다, 반년 전 약을 끊었다. 한결같이 기분이 썩 괜찮았다. 많은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들이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의 약어)에서 말하는 ‘기능’에 대해 일부 설명하면, 나는 구태여 많은 변명거리를 늘어놓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일을 했다.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집을 치웠다. 간혹 지옥 같은 불행이나 고독, 자기연민, 불같은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다. 대부분 다음날 아침 차를 마시며 햇살을 보면 치유되었고, 다소 드물어진 친구와의 약속은 오히려 더 즐거워졌다. 근 반년 치 삶은 지난 24년의 시간을 초과하는 걸까? 아니면 지난 24년을 보냈기에, 비로소 이제는 남겨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바보처럼 순수했는지도 모른다. 긴 터널을 나오기만 하면 순탄하리라 믿었다. 정작 남들 다 걷는 포장길에서 항공기만 찾아 헤매는 나를 발견했을 때, 오히려 이제는 법률도 도덕도 행정도 사고도 재해도, 그 무엇도 신뢰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부끄럽게 고백하지만, 어릴 적 나는 아버지가 가장 무서웠다. 그 다음엔 선생님, 정신과 의사, 이어서 지금은 경찰이 무섭다. 하루 종일 공인된 구제책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나쁜 사람의 악행에 치를 떨다가, 잠들기 전엔 사적 복수의 방법이나 진짜 올바른 실천이 뭔지 조금쯤은 고민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아직 철이 덜 들고 힘이 부족해, 어른 마냥 철저하며 관대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괴로웠다. 꿈을 꿔도 완벽히 개운하지 않았다.

무엇이 이상이고, 어디가 현실일까. 어떻게 고치고, 왜 지치지 않아야 할까. 누가 쉬어야 할까? 매순간 단 한 가지 판가름을 내보지만, 실제론 아는 바가 없었다. 버스에서 정확한 표정과 어긋나지 않는 발음을 연습해 보는 내가 부담스러웠다. 유년기부터 지금껏 겪은 고난을 능가하는 고통은 중년의 나에게는 오지 않았으면 한다. 제아무리 더 두터운 장벽이 버티고 있을지라도, 시련이 배움이 아니라 고통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고민을 하자니, 나는 어쩌면 오십 원어치 스티커를 훔치던 일곱 살 그날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장애란 불과 200년 전 사회적 차별로 고안된 발명품일 뿐이라는 대전제는 제법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혐오 철폐, 차별이 최소화된 사회, 이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 안정적인 나와 너의 오늘과 내일을 설계할 수 있다.

 

유니콘과 진정성 검증

우리가 만족하는 인생을 영위하려면, 나의 프라이버시(사생활)를 사수해야 한다. 현실에서 정신과를 다녔다는 사실이 엄청난 약점이 되는데, 당사자주의가 아무리 이를 전복하고 재전유하더라도 활동가의 강점은 일상에서 언제나 취약하다.

미국 장애 운동가 제임스 찰턴은, ‘우리 빼고 우리를 말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라며 일갈한 바 있다. 원론 일부를 달달 외워 “나는 아는 것이 많으니 이 뒤를 따라준다면 함께 실천하겠다”라고 역설하는 다양한 ‘실천가’들을 나는 한때나마 존경했었다. 비록 이들이 한때 우울증을 지독하게 앓았더라도, ‘검증’된 노력가일지라도, 당신과 나를 우리로 묶는 인물일지라도, 이제 나는 발언대에 서지 못하는 우리를 대변해 줄 실천가란 전적으로 신뢰받기 어려운 존재라 느낀다. 장애란 비록 역사가 짧은 불합리한 사회의 구성물일지언정, 한두 사람의 변호인이 우리를 수호하는 ‘차별 없는 사회’가 가능하다 믿어줄 정도로 대중이 단순하다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립적으로 우리 행위, 속성을 판단해주는 ‘보편적’, ‘객관적’ 정초란 불가하다는 생각이다. 정신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외출하면, 돌아왔을 때 임신 검사부터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만큼 성폭력에 흔히 노출되어 있는데, 아무도 이들 개개 실존과 주체적 생존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일부 의료진은 조현병 환자는 살인마이고, 아직 약을 먹지 않은 환자는 위험하니 비련의 잠재적 범죄인자로서 복지 또는 의료라는 ‘수혜’를 받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칭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소개하며 공론장에 서서, 어려운 이론서를 들고 여성인권을 소리치는 남성들이 있다.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이들을 옹호하며, 가끔은 ‘유니콘’이란 딱지를 붙여 준다. 개중 진정성이라는 민감한 영역을 ‘검증’ 받은 이는 없어도 변변찮은 솜씨로 집필에 참여하거나 관련 학위에 영향을 받는 등, 대중적 인권감수성에 편승하는 사익추구 행위는 빈번하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성범죄를 저지른다. 지금까지 피해 여성의 위치가 어디였든, ‘유니콘’을 수호하던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그저 꼬리 자르기에 열중한다. 이 중 특히나 정신장애를 가진 피해 여성들은 발언권은커녕 고시원에서 라면으로 연명이라도 하고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거니와, 가해자를 처벌하기도, 피해를 구제받기도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 감히 짐작한다.

정치에는 정말로 진정성이란 게 실효 있을까? 절대다수의 한국 정치인들이 자기를 뽑기만 하면, 공약을 실천하고 본인 이념에 걸맞은 정책을 펴리라 선전한다. 이들은 재래시장에 가서 젓갈을 맛보며, 젊은 시절 얼마나 지난한 고통을 감내했던가 설파하고 동정심에 호소한다. 이런 ‘진정성’에 대해 정치인에게는 꽤 많은 검증이 따르는 듯 보이지만, 남는 건 결국 개표 후 얼마나 표를 모았는지 아닌가 싶다. 정신장애 인권운동가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으면서, 더구나 진정성이 깊어야 하고, 거기다 자기관리에 철저한 실천가인데, 추가로 빠르고 깊게 검증까지 받아야 한다면, 당연히 아무도 이 일에 뛰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대체 누가 어디서 어떻게 해야, 또 누구와 함께해야, 그리고 젓갈 대신 한정식을 매일 차려 먹기라도 해야 활동가가 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하기는 하다. 이미 당선된 정치가를 굳이 차치하더라도, 사상검증에 굴하지 않는 완벽한 진정성, 무결한 전략, 그리고 꾸준한 ‘실천’을 활동가에게 들이대는 사람은 누구고, 또 실제로 그런 검증이 꾸준히 이행되고 있는지 여부는 전혀 검토된 바 없지만 말이다.

   
 

불나방

이상은 높게, 현실은 바닥에, 방법은 모르며, 지칠 줄 모르고 뛰지도 않는다. 대체로 아무도 제대로 쉬지 못하지만, 정작 판가름을 내야 할 때는 모두가 꼬리를 뺀다.

나는 아직 헤아릴 수 없는 여생을 행복하게 꾸려가야 할 어린 학생으로서 지칠 수 없다. 이제는 대중 앞에 서야만 하는 정신장애인의 인권은, 파멸을 소득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인 불나방에 맡겨져선 안 된다.

애벌빨래를 하기 위해 재사용한 구정물을 버리면, 때 묻지 않은 진짜가 보인다. 가짜보다는 부서진 진짜가 더 소중하고, 진실은 세월이 지날수록 명료해진다. 다만 유독 진정성만을 내세우거나 실제로 하고 있거나 가진 것은 없는 이들이 오히려 젓갈을 먹어보는 정치인과 동종 인사가 아닌지 의심하므로, 나는 진정성에 앞서 실력, 실력에 앞서 활동가 본인의 프라이버시까지 존중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에 협업하는 것을 대안으로 생각한다.

만일 소득을 파멸로 왜곡하며 불나방을 자처하고 있다면, 결코 우리는 오늘과 내일을 비행할 수 없다. 내 생각에 그런 판단 오류는 마치 하루 스무 알을 처방하던 정신과 약물 같다.

 

덧붙임 : 이 칼럼에 수록된 그림 이미지 2장은 2018년 11월호 취재로 진행된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에서 촬영했던 내용을 자료사진으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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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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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8 13: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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