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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길, 어두운 밤의 여정에서 언어를 만나다언어와 의사소통 장애
김화수/대구대학교 언어치료학과 교수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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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호] 승인 2020.03.13  09: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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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나는 길가로 나왔다

자갈길은 안개 속에서 반짝인다

밤은 고요하고 황야는 신에게 귀 기울이고

별들은 별들끼리 이야기 하고 있다

 

하늘의 모든 것은 경건하고 신기하다!

땅은 창백한 푸른 빛 속에 잠들었다…

그러면 왜 나는 그토록 심한 아픔과 마음의

무거움을 느끼는가

어느 것을 후회하면서 무엇을 기다리는가

 

삶에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고

과거를 뉘우치지 않는다

나는 자유와 평화를 찾고

망각을 찾아 잠에 떨어지고 싶다

 

하지만 묘지의 차가운 잠이 아니라

생명의 힘이 잠시 쉬는

영원한 잠을 자고 싶다

조용한 호흡을 감아 들이고 싶다

 

그리하여 매혹적인 어떤 목소리가

밤낮으로 사랑을 노래했으면 싶다

짙은 상록의 떡갈나무가 허리 굽혀

내 위에서 흔들렸으면 싶다

 

Mikheil Lermontov(1814-1841),

<혼자 나는 길가로 나왔다> 전문

 

이 글의 제목인 ‘적막한 길, 어두운 밤의 여정에서 언어를 만나다’는 윤시향 교수가 번역해 문학동네에서 펴낸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길을 나섰다>라는 페터 한트케(Peter Handke, 1942~ )의 장편소설 제목으로부터 얻은 문장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페터 한트케는 현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림원은 한트케가 “인간 체험의 뻗어나간 갈래와 개별성을 독창적 언어로 탐구한 영향력 있는 작품을 썼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한편 서두에 러시아의 시인인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호흡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시를 앞에 소개한 데는 이유가 있다. <혼자 나는 길가로 나왔다>와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길을 나섰다>의 문장 안 단어들에는 놀랍도록 닮은 영혼의 소리가 들어 있는 것 같아서다.

문학동네에서 소개한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길을 나섰다>라는 한트케 소설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잘츠부르크 근방의 어느 도시 탁스함에 살고 있는 중년의 약사, 어느 날 숲 속에서 머리에 충격을 받고 실어증에 걸린 그는 우연히 만난 옛 올림픽 영웅과 한때 유명했던 시인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밀폐된 일상에서 벗어나 갖가지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모험을 겪은 약사는 홀로 황량한 초원인 스텝 지역을 횡단한다. 우주적 심연을 품고 있는 초원의 신비로운 파노라마. 이제 그는 가족에 대한 죄의식, 깊은 고독의 미로로부터 서서히 놓여난다.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 그로테스크한 여행과 편력이 끝날 무렵, 그는 말하는 힘을 되찾고 자신의 진정한 얼굴과 대면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까지 감격했다’고. 이 모든 이야기는 탁스함의 약사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은 서술자에 의해 전달되면서 환상적 힘을 더한다.”

사실 소설 속에 기술된 실어증에는 동반된 신체적 증상은 없다. 실제로 실어증에 걸린 사람들은 흔히 신체마비가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아,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더불어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 한다. 또 이 때문에 우울증을 겪기도 쉽다. 아마도 소설 속 약사가 갖게 된 ‘실어증’은 새로운 시선으로 장치해 놓은 작가의 상징적 설치물일 것이다.

이쯤에서 스위스 작가인 페터 빅셀(Peter Bichsel, 1935~ )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는 ‘언어’라고 하는 상징이 지닌 자의적 특성과 함께, 사회적 약속으로서의 소통언어에 대해 소설 <책상은 책상이다>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책상’을 왜 ‘책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책상’을 ‘책상’이라 부르지 않고 ‘침대’라 부른다 해도, 책상이라고 하는 본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책상은 책상이다>의 주인공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명명했던 사물의 이름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그리고는 ‘책상’을 왜 굳이 ‘책상’으로 불러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그는 그 생각을 한 날부터, 지금까지 부르던 사물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졌다. 바꾼 단어로 문장들을 만들고, 이제는 새롭고 낯선 문장으로 말하고 쓰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나는 오늘 ‘사과(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창문)’을 열었다”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혼자서 매우 재밌어 한다. 그런데 자기가 바꾸어 새로이 명명했던 참조물(대상)의 이름이 점점 더 많아지자, 급기야는 스스로의 기억에 한계를 느낀다. 나중에는 자신이 바꾸어놓은 단어들의 뜻을 기입한 단어사전을 만드는 데까지 이른다. 소설 속 주인공의 행위는 끝나지 않는 문장의 생성에 대한 작가의 욕구를 드러내는 것 같다. 결국 언어란 혼자의 명명이든 사회 속 인간들 사이의 약속에서든, 끊임없이 학습해야 하며 새로이 만들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관습화된 약속의 언어, 즉 의사소통을 깨는 행위가 이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길을 나섰다>와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두 소설의 주인공들 모두에게서 찾을 수 있다. 한 사람은 머리 충격에 의해,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의지에 의해. 이는 현실을 뒤집는 전환이자 혁명이다. 한트케 소설 속 인물인 약사의 첫 실어증 증상은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부터 나타났다. “그가 식당을 나서며 무어라고 인사를 하자, 식당 주인은 그 말을 스페인어로 알아들었다. 스페인어? 그 스스로도 자신이 조금 전에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그것은 언어가 아니었던 것이다.”-47쪽.

이 문장이후 사실 소설 속 서술자와 현재시점 대화를 제외하고는, 63쪽에 이르기까지 그는 스스로 말을 못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못 느낀다. 그의 증상을 굳이 진단해 보자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스스로 말이 산출되지 않는 브로카실어증에 가까운 듯하다.

다시 그의 상태로 돌아가 보자. “그는 말을 잃어 버렸다. 그 순간만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중략) 말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따금 꿈속에서처럼 도망쳐야 하거나, 누군가를, 가까운 친척을, 가족을, 물에서, 불에서, 낭떠러지에서, 괴물로부터, 갈기갈기 찢는 도깨비로부터 구해내야 하는데, 무거운 돌자루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과 같은 것일까. 그는 무엇이먹고 싶은지 설명하려고, 말하려고 애썼다. 식탁 위에 놓인 촛불의 불꽃을, 그 푸른 투명함 속을 잠깐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했다. 혹시 고통이, 죽은 혓바닥이 다시 살아나 펄쩍 뛰어오르도록 도와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희미한 신음조차, 끽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64~65쪽.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까지는 혼자서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는 얘기다. 결국 그의 어려움은 말이나 언어가 아니라 의사소통에 있었을 것이다. 혼자 세상을 대하며 사고하는 건 말이나 언어로 하는 행위 이전의 어떤 직관적 읽기라면 자신이 아닌 타인과의 만남에서는 소통이라는 행위가 우선적 요소인지도 모른다.

어둠과 밝음, 이상과 현실, 그 안에서 약사는 결국 어느 여자의 그림자가 말하는 말에 귀 기울인다. “여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산 자를 찾는 걸 그만두세요! 당신은 그 실어상태를 떨쳐버려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그 무언(無言)이 오늘이라도 당신을 죽여 버릴 거예요. 당신의 침묵은 결코 침묵이 아니에요. 비록 처음 얼마간은 당신의 의식을 확대시켜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혼자 있을수록 당신의 실어상태는 위험해지고 급기야는 생명까지 위험할 거예요. 실어상태가 계속되면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그토록 의미 있어 보이는 현재가 실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모든 체험들까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파괴될 거예요. 그렇게도 상징적인-어린 시절까지도. 그러면 당신의 기억은 무가치해지고, 또 파괴되어버리죠. 기억이 없어지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찾을 것이 없어지고 의사소통도 불가능해져요. (중략)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다시 입을 연다는 사실이에요.”-197-198쪽.

작가가 말하는 ‘입을 연다’는 행위는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온다는 것이고, 의사소통을 시작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약사는 결국 가장 쓴 버섯을 베어 물고, 가슴에서 피가 흐르며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한트케는 말한다. 다시 말할 수 있게 된 순간, 혹은 바로 그 직전에, 그에게 사랑이 솟아났다고. ‘말’과 함께 솟아오른 ‘사랑’이란 얼마나 기막힌 은유인지. 실어증이 없어지게 된 주인공이 소설의 서술자에게 하는 말을 빌자면 말과 사랑은 동질의 것이며, 소통의 마지막 단계는 세상을 향해 자기의 소리를 내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소리는 글로 기록되어야 함을 말한다. “나는 내 이야기가 글자로 써진 것을 갖고 싶소. 나는 내 이야기가 문자로 기록된 걸 보고 싶소. 그 이야기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소.”-224쪽 라며.

어쩌면 우리 자신도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라는 방해물을 없애기 위해, 혹은 방해물을 견디면서 수많은 시간을 여행해야 하는 여행자로 태어났을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따스함으로 더 큰 어려움을 베어 물고 소통을 향해 나아갈 때 실어증이라는 장애물이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듣고 말하며, 읽고 쓰게 될 수많은 언덕에서 다시 다짐해 본다. 언어와 의사소통의 걸음걸이를 위해, 어두운 밤의 적막한 길을 따라 세상을 내딛는 깊은 호흡을 해봐야지. 그렇게 길을 나서면 천천히 평화와 자유를 얻게 될 것이고, 아마도 종국에는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될 터. 이제는 나도 <함께걸음>의 독자로서가 아니라 필자로 걸으면서, 글로써 소리 내며 손 내미는 용기를 가져보려 한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의사소통을 통해, 좋은 세상을 만들고 좋은 사람이 되려는 나의 용기와 실행력이 점점 자라나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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