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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란 용어에 대한 함께걸음의 입장 ①]"장애우’과연 시혜적이고 차별적인 용어인가?
여준민  |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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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03.02.01  11: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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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말, 한 일간지 독자코너를 통해 ‘장애우’라는 용어가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간혹‘장애우’가 어떤 의미에서 쓰여지는 용어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기는 했어도, 이렇게‘잘못된 것’이라는 단정적인 비판은 공식적으로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용어 사용의 비판적 해석에 동의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안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우리 함께걸음은 이 논쟁의 당사자로서, 용어 사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알다시피‘장애우’라고 하는 용어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함께걸음이 만들고 사용해왔습니다. 아마 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용어에 대한 비판의 글들을 보면, 처음 이 용어를 만들어 낸 동기나 과정,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현재 비판의 논쟁이 되고 있는 지점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실제 함께걸음은‘장애우’라고 하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대표하는 공식용어로 자리매김 하기를 원하지도, 주장한 바도 없습니다. 하지만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장애우’라는 용어를 방송이나 신문 등이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의미전달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채 전해지고 있고, 오히려 단순히‘부드럽고 친근한 표현’이라는 이미지의 확대만이 부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장애우’라는 용어는 저희의 입장과는 관계없이‘장애인을 대체하는 용어’로 인식되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장애’가 있는‘사람’을 어떤 존재로, 계층으로 이해할 것인가 하는 사회적 정의를 함께 고민하고 합의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장애우’용어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의미를 설명하는 차원에서 그치기보다는 이 논쟁이 좀 더 발전적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에서 장애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해야 하는지,‘장애 가진 사람’이 자주성을 가진 존재로서 당당히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논의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름’과‘틀림’을 구분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
그럼, 우선 현재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연구소와 함께걸음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된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현재‘장애우’ 논쟁에서 핵심이 되고 있는 사안을 살펴보면‘시혜적이다, 차별적이다, 정체성을 부인하고 있는 용어이다, 1인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 장애인을 계층이 아닌 비사회적인 집단으로 표현하는 것이다’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선 장애우라는 용어가‘시혜적이고 차별적 단어이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함께걸음은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용어 사용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선 이 단어가 생겨난 1987년 당시만 해도‘장애인’이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 없는 단어였습니다.‘장애자’라는 용어가 공식적인 표현이었습니다. 더군다나’장애자“라는 단어보다는‘장애’에 초점이 맞추어진‘병신, 절름발이, 맹인, 벙어리, 바보’등의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던 때였습니다.
장애우들이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갖고 있긴 하지만, 교육을 받을 권리나 노동할 권리를 갖고 있는‘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항상 "장애"에 무게중심이 더 가 있어서 곧바로 능력이 없는 사람 취급당하기 일쑤였던 것입니다. 또한 해방이후 상이군인 등이 국가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분노를 일반 시민과 상인들에게 쏟아냄으로써 사람들의 장애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렇게 우리 나라 국민들의 장애우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었습니다. 현재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의 하나도 비장애우들이‘장애’를 개별적이 아니라 전체적인 것으로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애는‘청각, 시각, 지체, 언어, 정신지체’등 다양한 영역이 있지만 뭉뚱그려서 사람들은 장애인이라고 하면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들을 반영해 어떤 모습으로 단정짓고 마는 것입니다. 구체적 함께함이 없는 속에서‘장애 가진 사람’의 모습은 익숙하지 않음에 대한 거부감으로, 그리고 두렵고 포악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나와는‘틀린’사람으로 규정짓는 것입니다.‘다르다’, 즉 차이로 인한 풍부함과 긍정적 요소를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옳고 그름의‘틀리다’의 문제로 장애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식민지와 분단을 경험하고 독재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무의식 속에서‘이것’아니면‘저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강요받고 인간이 원래‘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잊고 지내왔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일반 국민들의 인식수준을 익히 알고 있었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창립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장애우’라는 용어를 만들고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장애 가진 사람들이 만든 장애우라는 용어>
장애우라고 하는 용어는 87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설립과 함께 합니다. 함께걸음 창간호인 88년 3월호에 실린 이성재 현 이사장(당시 소장, 변호사)의 창립취지문 「장애우들에게도 문명의 건강한 동반자로서 살아갈 능력과 권리가 있다」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저희들은‘장애자’라는 단어의 개념이 이 사회 속에서 잘못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장애우’라는 단어를 선정했습니다. 우연하게 신체적 손상을 당한 사람들이 이 사회 속에서 늘 도움이나 받아야 하고, 국가나 개인의 눈물어린 동정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비치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장애를 입은 사람도 완전한 인격체로서 나머지 능력만을 가지고도 이 사회 속에서 얼마든지 문명의 동반자로 살아갈 능력과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든 이들에게 알리고 설득시키며, 이 작업에 일체의 사심없이 헌신적으로 일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러니까‘장애우’라는 용어에 대한 고민의 출발은, 장애 가진 사람에 대한 사회적 지위가 무지와 잘못된 편견으로‘동정과 일방적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반대한다는 의지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비장애우가 아니라 바로 장애를 갖고 있는 당사자였던 것입니다. <계속>

글/ 여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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