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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보장제도, 장애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기획 / 장애계 30년 전과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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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4월호 <함께걸음> ‘생존의 벼랑 끝으로’
 
<함께걸음>은 올해 ‘장애계 30년 전과 오늘’ 기획을 통해 과거 장애계의 요구와 현재를 비교하며 변화와 과제를 짚고 있다. 앞선 특수교육과 고용에 이어, 이번에는 복지 영역을 다룬다. 다만 복지의 범위가 넓은 만큼, 이번 호에서는 장애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득보장 제도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장애인을 둘러싼 소득보장 제도는 꾸준히 확대돼왔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과 장애인연금 도입 등 제도적 변화도 이어졌다. 그러나 제도의 확대가 실제 삶의 안정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현재의 구조가 장애인의 다양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점검이 필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등장
 
1990년대 초반까지 장애인의 생계는 제도보다 가족과 개인의 몫에 가까웠다. 당시 적용되던 생활보호법은 극빈층만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었고, 기준도 엄격해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 상당수가 제도 밖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등 근로능력이 결여된 무의탁자인 ‘거택보호자’에게 1인당 월평균 3만 9천 원, 근로능력이 결여된 무의탁자인 ‘시설보호자’에게 1인당 월평균 4만 8천 원을 지급하였다. 또, 장애로 인해 노동시장 진입이 어렵고 추가 지출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보완하는 별도의 제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1991년 3월 <함께걸음>에는 그 당시 상황을 ‘서울 용산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던 지체장애인 장충식 씨는 포장마차 자리를 잃은 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달 인천 부평의 편마비 행상인 김병식 씨도 생활고를 비관해 세든 방에서 숨졌다. 국민소득 5천 달러 시대라 불리던 당시, 국가가 이들에게 제공하던 소득보장 제도는 사실상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흐름은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대량 실업과 빈곤의 확산이 기존 제도로는 사회적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냈고, 국가가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다. 그 결과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며, 빈곤을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영역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생활보호제도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차이는 ‘누가 지원 대상인가’에 대한 관점 변화였다. 생활보호제도가 노인·아동·중증장애인 등 근로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사람 중심의 선별적 제도였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했다.
 
이는 일정 소득 이하라면 최소한의 생활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기준선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달랐다. 다시 말해, 일부 대상을 선별적으로 보호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공공부조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였으며, 장애인 역시 이를 통해 국가 지원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이전보다 확대됐다.
 
 
장애를 고려한 소득보장의 시작
장애인연금 도입의 문을 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은 복지정책의 큰 변화였지만, 장애인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기본적으로 비장애인을 포함한 일반 가구를 기준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나 노동시장 접근의 어려움까지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실제로 2000년도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가구당 월 평균소득은 108만 원으로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 소득 233만 원의 46%에 불과하며, 장애로 인한 추가 소요비용(의료비·보조기기·이동비 등)이 월 158,000원으로 나타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구가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장애계는 별도의 소득보장 제도를 요구해왔다. 핵심은 장애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과 노동시장에서 배제되는 구조를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2년부터 장애인단체들은 연대기구를 구성, 2005년에는 100여 개의 단체가 참여한 장애인연금법제정공동투쟁단이 출범했다. 거리 농성, 정책 토론회, 대선 공약화 요구가 이어졌고, 2007년 대선에서는 주요 후보들이 모두 장애인연금법 도입에 동의했다.
 
그 결과 2010년 장애인연금법이 제정됐다. 이는 한국 복지사에서 처음으로 장애를 이유로 한 현금급여 제도가 법제화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으며 장애인의 소득보장을 국가 책임으로 명시했다는 상징성도 있었다. 이러한 변화로 장애인들은 장애 정도와 소득 수준에 따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기초수급과 장애인연금법을 통한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26년 현재와 30년간의 법·제도의 변화가 장애인 개인의 삶에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가상사례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살펴본다.
 
가상사례 : 중증장애인으로 서울에 혼자 사는 1인 가구이며 근로소득은 0원, 부양가족은 없고 기초생활보장수급 가능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 A씨. A씨의 조건을 바탕으로 1990년과 2026년 소득보장 급여를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이를 당시 생활 수준을 중심으로 비교하면 1990년도 생계급여(거택보호자 1인당 월평균 명목지급액)는 3만 9천 원이었으며 1990년 통계청이 발표한 도시 가계수지동향에 따라 가구주 월평균 소득이 약 69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당시 생계급여는 월평균 소득의 약 5.6%에 해당된다. 반면, 2026년 생계급여는 820,556원으로, 이는 2025년 도시근로자의 월평균 소득 1인 가구 기준 약 381만 원의 21%에 해당된다. 즉 평균소득 대비 생계급여 수준은 1990년대 5.6%에서 2025년 21% 수준으로 약 15.4%가 늘었다.
 
기초수급, 장애인연금 등 현금 급여를 넘어
장애인 일상을 지원하는 공적 지원 확대
 
 
 
현금급여 외에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공적서비스도 대폭 늘어났다. [표 2]에서와 같이 과거 장애인 정책이 생계보호와 시설수용 중심에 머물렀다면, 현재는 장애인의 생활 유지와 사회참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화되면서 의료·주거·이동·돌봄·문화·고용 영역까지 지원 범위가 넓어졌다.
 
2026년 현재 기초생활보장 수급 장애인은 생계급여, 주거급여, 장애인연금, 문화·체육 바우처 등 복수의 제도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현금성 급여와 현물성 지원을 단순 합산하면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적 지원 규모가 확대됐다. 과거에는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비·이동비·돌봄비·보조기기 비용 등을 정부 지원 없이 개인과 가족이 직접 부담했다면, 현재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상당 부분을 공적 서비스로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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