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감옥이었다
본문
지난 11월 4일 국회 김홍신 의원실,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팀과 취재진 등 10여 명이 양평군 중원리에 있는 성실 기도원(현재는 조건부 시설 등록으로 성실 정신요양원으로 개칭하고 있다)을 방문 및 취재했다.
그 후 11워 13일에는 조치원에 있는 은혜기도원(이곳도조건부 신고시설로 등록되어 이제는 은혜 사랑의 집이라 불리운다)을 한나라당 인권위 관계자와 인궈운동사랑방, 장애우 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가 방문조사했고 취재진들이 합류했다.
육중한 철문과 자물쇠로 굳게 잠긴 철문 안에서, 언제 나갈지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을 <함께걸음>이 고발한다.
성실기도원, 폐쇄했다가 다시 운영
성실기도원은 10여 년 전 사람들의 마음과 병을 고친다며 눈을 찌르는 안수기도를 하다가 방송에 고발되어 원장이 구속된 적이 있다. 이 일로 잠시 기도원은 폐쇄됐고, 세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 기도원의 문제는 잊혀져 갔지만, 그들은 다시 버젓이 종교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보호, 치유(?)하고 있다.
현재 약 200여 명의 알코올, 정신장애, 정신지체장애우들이 입소해 있고 기도원 측에 약 30만원(월)의 입소비를 내고 있다. 운영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족. 어머니 원장과 딸 부원장, 사위 사무장이 공식 행정 라인이다. 200여 명의 식사와 빨래, 청소, 하루 일정 관리 · 감시, 기도원 소유의 농사일 등은 모두 상태가 좀 나은 입소자들이 책임진다. 관리인, 방장, 실장이란 이름으로. 하지만 이들에게 월급이라고는 없다. 다만 입소자들이 동네에서 하루 품 파는 일을 하는데, 기도원 측은 그 일당을 ‘자원봉사확인 각서’라는 것을 받아 고스란히 챙기고 있다. 노동 착취가 그 곳에서는 자원봉사로 통한다.
죄인 취급, 개 취급, 입소자들은 관리대상일 뿐
모든 건물 외벽에 철조망으로 덮여진 성실기도원. 조사팀과 취재진들은 200여 명의 입소자들을 상대로 개별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누가 민대(기도원 측에 보고하는 사람)인지 모른다며 입소자들끼리도 감시와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로 성실기도원의 모습을 살펴보자.
우선 입소자들의 하루 일과는? 입소자들은 새벽 5시에 기상한다. 5시 20분부터 시작되는 새벽예배가 끝나면 곧바로 식사를 한다. 그리고는 아침예배를 본다. 그 후 점심을 먹고 다시 점심예배, 그것이 끝나면 다시 저녁식사, 또 저녁예배…. 그리고 8시에는 모두 취침에 들어간다. 모든 불을 끄고 밖에서 문을 잠그도록 되어 있으니 저녁 8l만 되면 암흑 천지가 되어 버린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란 밥 먹고 예배 보고 잠자는 것뿐. 3~4번째 입소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이렇게 10년을 넘게 산 사람도 있다.
이런 생활을 참지 못하고 반항을 하거나 불만을 갖기라도 하면 곧바로 관리자라고 하는 입소생들의 폭언과 협박이 쏟아져 나온다. 이것도 안되면 전도사나 원장의 ‘눈 찌르기 안수기도’가 실시된다. “차라리 맞는 게 좋다. 엄지손가락 하나가 다 들어가는 안수기도는 정말 죽을 것 같다”며 고개를 젓는 김모씨(26세, 남). 이곳에 온 지 4년 5개월이 되었다고 정확하게 밝힌 그는 2001년 7월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도망가다가 다시 잡혀 들어오기도 했다며, 입소생들끼리 싸우거나 사무장에게 대들면 2층 침대 방 침대에 사지가 묶여 며칠씩 밥도 굶긴 채 벌을 받는다고 한다. 정신장애 상태가 심한 사람들에게는 CP(향정신성의약품)라는 약을 제멋대로 투약하기도 한다. 아프다고 하면 “참아라, 담배 끊어라, 기도해라, 안수기도 받아라”는 말이 처방의 전부고, 더 환경이 열악한 시설로 보내겠다는 협박도 서슴치 않는다고 입소자들은 입을 모았다.
요즘에는 눈에 보이는 심각한 폭력보다 교묘하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꼼짝 못하게 하는 수법으로 사람을 관리한다고 한다. 취재진이 처음 들어갔을 때 김장 무를 씻고 있던 한 입소자는 사무실 쪽 눈치를 보다가 재빠르게, “어디서 왔어요? 잘 보고 가요. 하나하나 놓치지 말고”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방안, 문도 없이 변기만 달랑
1~2평 남짓한 방안에는 5~10명이 생활하고 있다. 방안에 있는 화장실은 문도 없이 변기만 하나 달랑 있을 뿐이다. 과거 감옥이나 유치장에서 보아왔던 풍경이다. 정신장애우로 보여지는 한 여성이 갑자기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는다. 복도를 다니는 남성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자 한 여성이 재빨리 일어나 문 앞에 서서 막아준다. 방문을 닫는 것도 허락지 않기 때문이다. 방문도 밖에서 잠그도록 되어 있어 화재 사태에도 무방비다.
또 각 방마다 인터폰 같은 것이 있어 입소자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사무실에 전달되기도 한다. 말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감시체계다. 면회도 부원장이나 사무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고 오가는 말 일체를 기록한다. 집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상태가 좋아지거나 악화되어 가족들이 집에 데려가겠다고 하면 “또 술 먹는다”며 엄포를 놓는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으니 한결같이 “우리 가족에게 돈을 받으니까요”라고 답한다.
성실보다 더 열악한 은혜기도원
상황은 조치원의 은혜기도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한 사람당 월 40여 만원을 받고 있다고 했지만 훨씬 더 열악하다. 먼저 남자숙소에 들어섰다. 코를 찌르는 방안의 쾨쾨한 냄새와 운동장 한 가운데 설치되어 있는 감시 카메라, 그리고 ‘보호실’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징벌 방’은 음침함과 스산함에 소름마저 돋게 한다. 반 평정도 되는 방에는 전등도 없고 바로 뒷산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쇠창살로 만들어진 유리 없는 창문을 통해 고스란히 방안으로 들이치고 있었다. 이곳에 한 번 들어오면 밥은 굶은 채 적어도 3일을 견뎌야 한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치유보다는 자연스럽게 정신장애를 갖게 될 것 같은 환경이다.
여성 숙소는 이보다 더하다. 사람들의 상태도 훨씬 심각했는데, 남성 중에는 알콜중독인 사람들이 많았지만 여성들은 대부분 중증의 정신지체나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졌다. 낙엽을 뜯어먹던 한 여성은 “밥도 조금밖에 안 줘. 배고파 죽겠어.”라고 중얼거린다.
숙소 한가운데 육중한 철문이 있고, 밖에서 잠그도록 만들어진 방이 있었다. 조사단의 요구에 의해 문을 열었다. 한 젊은 여성이 담요를 뒤집어쓰고 누워있다. 총무를 맡고 있는 양길수씨가 일어나라고 하자 가만히 일어나 앉는다. 취재진이 들어가 앉아도 아무 동요도 없었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뭔가 이야기를 하려고 손을 대자 이불이 축축이 젖어 있어 냄새를 맡으니 소변냄새다. 방구석에는 작은 플라스틱 통이 하나 있는데 그게 소변통이고,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차가운 장판 위에는 음식물이 쏟아진 자국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곳은 여성 ‘징벌 방’이었다.
관리체제, 폭력과 감금
이곳에서도 성실기도원과 마찬가지로 눈을 찌르는 안수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 일과도 마찬가지로 예배로 시작해 예배로 끝난다. 폭력도 난무하다. 단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때린다. 우리가 방문한 그 날 아침에도 폭행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부어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하자, 방실장 역할을 하는 정모씨는 “당신들도 여기에 있어 봐라. 우린 술을 입에 대지 않으면 보통 사람들이다. 혼자 중얼거리고 말도 안듣고 눈에 거슬리게 이상한 행동을 자꾸 하는데 어떻게 손이 안올라가는가!”라며 조사단에게 항의했다. 알콜 때문에 온 사람들과 정신장애우들을 한 곳에서 수용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가족들에게 버림받아 갇혔다는 피해의식과 분노, 열악한 생활환경은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진단서도 없이(이곳 생활자들은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두 같은 날짜로 같은 병원의 진단서가 구비되어 있었다.) 가족에 의해 끌려 들어와 TV도 책도 없이 철저히 세상과 차단되어 언제 나갈지 모르는 끝도 없는 기다림에 그들은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이모씨(남, 52세). 척추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더 악화되어 이제는 하반신을 쓰지 못한다. 면접하기 위해 그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들어왔는데, 좌변기도 없는 화장실을 어떻게 이용하느냐고 물으니 “조그마한 통을 밑에 깔고 간신히 볼일을 보다가 화장실에서 미끄러지기 일쑤”라고 답한다. 또 “40일 철야기도가 가장 힘든데, 불편한 몸으로 몇 시간씩 앉아있으면 정말 죽을 것 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편의를 봐달라고 하면 그 즉시 ‘보호실로 직행’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고 말한다. 종교가 기독교냐고 물으니 “절대 아니다”고 답하는 그에게 우리나라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졸속 대책, 무엇을 보장하고 있나
양평의 보건소와 군청, 조치원의 보건소 등에서는 이 날 조사결과를 토대로 다시 한번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내어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미신고시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없기 때문에 그 동안 개입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변명 아닌 변명이었다. 그러나 이 두 시설 모두 조건부시설로 등록되어, 이제는 제대로 운영하지 않을 경우 폐쇄나 전원조치 명령까지도 할 수 있다. 정부차원의 접근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한편, 인권운동사랑방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지자체와 보건복지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이 두 시설을 비롯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대형 미신고시설에 대한 철저하고도 실제적인 조사와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조건부시설로 등록한 시설에 대해 형식적인 운영자 입장의 조사가 아니라 민간과 활동으로 실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중심에 두고 실태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신고시설에 대한 인권침해와 시설 열악함이 사회문제화되어 2002년부터 ‘조건부 신고시설’이란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미신고 복지시설 양성화 종합대책이란 것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사안이다. 하지만 이 제도의 출발점은 명확히 ‘생활자’ 입장이 아니라 ‘시설운영자’ 입장이었다. 물론 시설운영자가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면 생활자들의 형편도 나아지긴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미신고 복지시설 양성화 대책은 성실 · 은혜 두 기도원의 상황에서 보았듯이 기본을 간과하고 있고 내용에도 충실치 않다. 이 두 시설은 모두 기도원이라는 이름을 떼고 각각 ‘성실 정신요양원’, ‘은혜 사랑의 집’으로 조건부 신고시설 등록을 마쳤다. 2005년까지 몇 가지 신고시설 조건만 갖추게 되면 법인을 획득하고 더 당당하게 국가의 지원을 받아 시설을 운영할 것이다. 그릇된 종교적 신념과 복지 마인드를 갖고 있더라도 전혀 하등의 문제없이 제도권 속으로 편입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의 입지는 더욱 공고하게 되어 대형시설이 고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미신고 복지시설 양성화 대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시선은 시설로 갈 수 밖에 없는 생활자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에 더욱 깊고 진지하게 머물러 있어야 한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