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특별법, 시행도 안 해보고 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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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특별법」이 시행된지 채 2개월도 안 돼 폐지될 운명에 처해졌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11월 3일,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특별법」의 내용을 「장애인복지법」에 포함시키고 특별법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번에 보건복지가족부가 「장애인복지법」으로 통.폐합시키겠다고 밝힌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특별법」은 지난 9월 22일 시행된 법이다.
복지부, 비용과 실효성 이유로 통. 폐합 추진
중요한 건 이 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것도 아닌 시행 한 달을 조금 넘긴 시점에서 폐지 방침이 나왔다는 것. 하나의 법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폐지되는 것은 비슷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안이어서 법 내용을 떠나 장애계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말 그대로 제대로 시행도 하지 않을 법을 왜 만들었나’라는 지적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잠시 그 동안의 과정과 특별법 내용을 살펴보면 지난 2006년 국회에서 이 법이 발의됐고 2년여의 심의를 거친 후 비로소 지난 2월, 국회 통과를 마쳤다. 어렵게 제정된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특별법」은 국무총리실에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촉진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회가 공공기관에 중증장애인 생산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요구할 경우 공공기관의 장은 이를 우선 구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공공기관이 불합리한 차별적 관행이나 제도를 행할 경우 이에 대한 시정요구를 의무화 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조항은 공공기관 구매 예산의 1% 이상을 반드시 중증장애인 생산품 구매예산에 사용해야 한다고 의무화 한 것이다. 장애계는 이런 특별법 조항들이 법 자체가 장애인복지법에 흡수 통합됨으로써 우선구매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지지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현재 「장애인복지법」안에 우선구매제도 조항이 있는데 굳이 특별법을 시행해 중증장애인생산품 구매를 촉진하는 것은 비용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또한 우선구매촉진위원회 등 여타 위원회들이 방만하게 운영되면서 중복지원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정책을 펼칠 가능성도 제기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입장은 기존의 장애인복지법에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 구매에 대한 조항이 있기 때문에 별도로 특별법을 만들어서 시행할 필요는 없다고 읽힌다.
문제는 보건복지가족부 이야기대로 기존의 장애인복지법안에 공공기관이 중증장애인생산품을 우선 구매해야 한다는 조항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동안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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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사용지 생산 작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지적장애인 ⓒ함께걸음 자료사진 | ||
장애인복지 축소 일환으로 개정안 마련됐다는 비난 제기돼
당장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 같은 곳은 「장애인복지법」 안에 있는 조항으로는 정부 기관이 장애인 생산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며 실효성이 없어서 제정된 게 특별법인데, 시행해보지도 않고 폐지시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춘만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 사무국장은 지난 11월 19일 열린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정부 등 공공기관에서 조달업무를 하는 구매자가 생산품을 구매할 경우 우선구매와 관련한 법률을 일차적으로 검토하게 되는데 중소기업이나 여성기업, 국가 보훈단체의 경우에는 국무총리령으로 우선구매를 명확하게 적시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생산품이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춘만 사무국장은 “중증장애인의 일자리를 통한 사회참여와 경제활동을 목적으로 시행된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특별법」이 축소돼 「장애인복지법」에 규정된다면 중증장애인생산품 판로 개척을 통해 회생의 희망을 갖고 있던 장애인생산품 생산 기업들에게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또 장애인 단체들도 한결같이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특별법」의 첫 걸음도 떼기 전에 통. 폐합은 무리라는 반응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통해 정부가 장애인복지정책을 축소시키려하는 것 아니냐며 정부의 효율화를 위한 일련의 조치 속에 장애인 복지는 뒷걸음 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도 “개정안에 따라 통. 폐합되는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촉진위원회 등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들이 보건복지가족부로 이관됨에 따라 이들의 정책조정기능 상실과 정책실행의 혼선이 야기될 수 있다”고 표명했다. 현재 장애계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특별법 안에 있던 국무총리실 산하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촉진위원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는 부분.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번 개정안 입법 예고에서 이 위원회의 기능을 복지부내 장애인정책심의회에서 하게 된다고 밝혔다.
언뜻 보기에도 국무총리실 위원회와 복지부 위원회는 분명히 위상이 다르기 때문에 과연 우선구매제도가 제대로 작동될 지에 많은 장애인계 관계자들이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등록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 351군데이고 이곳에서 1만여명이 넘는 중증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유일한 제도가 바로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 구매 제도다. 정부에서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서 생산하는 물품을 구매해 주지 않으면 사실상 판로가 없다는 것이 직업재활시설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특별법 형식의 우선 구매제도도 공공기관이 중증장애인 생산품을 구매하지 않을 경우 벌칙 조항이 없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특별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었는데, 특별법을 시행도 안 해 보고 폐지한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장애계 관계자들의 지적사항. 만약 보건복지부가 개정안을 밀어붙일 경우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게 공공기관에서 장애인 생산품을 구매하지 않았을 경우 벌칙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제출된 의견에 대해 논의 중에 있으며 빠르면 다음 주 내로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특별법」을 현행대로 유지시킬지 아니면 「장애인복지법」으로 통․폐합할지의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첫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특별법」의 존․폐 여부에 대한 장애계와 보건복지가족부 측의 입장이 혼선을 빚는 가운데 이를 담고 있는 그릇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에 대한 문제제기와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일관되지 못한 정책수립과 집행을 수행하는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 ‘정부가 장애인 복지 축소의 일환으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수립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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