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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장애인 폭력근절, 국가가 나서야

여성장애인과 폭력

본문

시작하며…
여성장애인이 이 사회의 약자라는 사회적 인식은 많이 확산되어 있지만, 약자를 대상으로 자행되는 각종 폭력은 피해자 개인과 그 가족의 문제라는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여성장애인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제도와 문화 속에서 장애로 인한 기능적·물리적 제한이나, 한계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과 함께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지적여성장애인은 지적능력이나 인지적 판단의 결핍과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으로 인해 가정이나 시설에서 의존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학대나 폭력의 위험에 놓이게 되며, 가해자는 원가족의 부모나 형제, 친인척을 비롯하여 결혼 생활에서의 남편, 시부모나 시집식구, 학교 관계자, 장애인 생활시설 근무자, 병원 관계자, 지역사회 등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 만나는 사람으로부터 폭력 피해를 입고 있다.

1. 여성장애인에 대한 폭력 유형

1) 원 가족 내에서의 폭력
한 사람이 최초로 삶을 경험하는 곳인 가정 공동체는 개인에게 사회의 그 어느 집단이나 제도보다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부분의 여성장애인은 원 가족들로부터 차별과 무시, 무관심과 편애, 방임, 신체적·언어적 폭력 피해를 경험하고 있으며 가정 내 의사결정이나 대소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소외되어 살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거나 가정이라는 사적인 집단의 특성상 외부로부터 분리된 영역이라는 점, 게다가 ‘가정의 문제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가정폭력문제에 대한 개입이 어렵다.

특히 지적여성장애인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고 의존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정폭력에 노출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상담현장에서 지적여성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와 그 부모, 형제를 상담하다 보면 가족이 피해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나이가 30세가 넘은 피해자가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목욕 등 일상생활을 대신해 주는 과잉보호, 학교 교육을 시키지 않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 못하도록 방에 가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거나, 정부 수급비를 받으면서 피해자를 집에 데리고 있지만 전혀 돌보지 않는 아버지, 데리고 살기 힘들고 어렵다며 상대가 누구든 결혼을 시켜서 멀리 보내려는 부모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폭력이 나타나고 있다.

2) 이성교제 및 혼인을 빙자한 폭력과 금품갈취
여성장애인은 생에 전반에 걸쳐 어려움과 문제를 갖고 있지만, 특히 이성교제와 결혼이 있어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인해 결혼이나 이성교제 기회가 적은 약점을 이용하여 접근하는 가해자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적 유린과 금품을 갈취 당하는 피해를 당하지만, 가해자의 협박과 채무, 외로움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쉽게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다. 또 법적으로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보상을 받을 수 없는 현실로 인해, 이런 피해를 당한 여성장애인의 고통과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3) 결혼생활에서의 폭력
여성장애인 특히 지적여성장애인의 결혼은 양측 부모들의 결정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장애의 특성으로 인해 자신의 의사결정을 행사할 수 없거나, 행사할 능력이 있어도 주변사람들에 의해 박탈당하는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생활해 왔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지적여성장애인 부모에게 왜 결혼을 시키려고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내가 평생 데리고 살 수 없기 때문에… 어디 마땅하게 보낼 곳이 없어서… 내가 죽은 후에 평생 생활대책으로…’ 라고 대답했다.

대부분 지적여성장애인의 결혼 상대자는 같은 지적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많거나,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있는 남성인 경우가 많다. 지적장애가 있어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결혼생활에서 비장애인 수준의 역할 수행을 하지 못하거나 남편이나 시집식구의 폭력 성향 등으로 인해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

모든 지적여성장애인의 결혼생활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수행 가능한 역할을 지원하고 능력을 최대한 개발시켜 주면서 주변사람들의 도움과 이해 속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지적여성장애인도 있는 반면, 법적·제도적으로 지적여성장애인의 결혼생활에 대한 지원체계의 부족과 남편이나 시집식구에 의해 장애인수당이나 정부지원금, 노동력을 갈취당하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의적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도 있다.

그러나 전국에 여성장애인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가 한 곳밖에 없고, 가정폭력 피해 실태조사 이뤄지지 않아 피해 정도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

4) 학교 및 병원, 장애인 생활시설 내의 폭력
학교나 병원, 장애인생활시설도 여성장애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으로부터 안전지대는 아니다. 지적장애의 특성상 자기표현 능력이 미약한 장애인에게 시설 근무자와 생활자들에 의한 왕따, 차별, 무시 등의 정서적 폭력과 신체적·성적 폭력 피해가 발생한다. 장애인생활시설이 지역사회와 분리되어 있고 폐쇄적인 시설운영과 집단생활의 맹점을 이용하여 자행되는 폭력은, 지속적이고 피해자가 다수이며 시설 비리가 함께 발생하는 특성이 있다.

어렵게 폭력 피해 사실이 드러나도 시설 측과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 기관에서 조직적으로 가해자를 비호하고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회유, 협박하여 사건이 은폐되기 때문에 가해자 처벌이 어렵다. 시설 내 폭력 피해자 보호와 폭력근절을 위해서는 대규모 시설을 없애고, 지역사회 안에서 그룹홈 형식의 소규모 공동가정형태로 바꾸어야 한다.

4) 성폭력
성폭력은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약자인 사람에게 일방적이고 강압적으로 가하는 성적 폭력이며, 특히 지적여성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은 판단력·인지력이 부족한 지적 장애의 취약성을 악용하여 성을 유린하는 죄질이 나쁜 범죄이다.

최근 충북 어떤 마을에서 16세 지적여성장애 청소녀를 할아버지, 아버지, 백부, 숙부, 사촌남동생이 성폭력 한 사건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져 분노와 충격을 주고 있다. 가해자 모두 피를 나눈 친족이라는 것도 끔찍하지만, 피해자를 성폭력하고 있는 사실을 서로 알고 있었다는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5명의 가해자 중 한 명만 구속하고 나머지 가해자는 불구속했는데, 그 이유가 피해자가 성폭력 당한 일시를 기억하지 못했고 피해자 아버지는 10년 전의 범행이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은 지적여성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진술 시에 6하 원칙을 고수하는 수사태도를 지양하고, 피해자가 직접 몸으로 겪은 피해정황에 초점을 맞춰 수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어떻게 성폭력 했는가이지 언제 몇 번을 했느냐가 아닌 것이다.

그동안 지적여성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사건은 언론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졌으나, 사건 중심의 선정성과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보도 행태로 인해, 방송을 통해 사건을 알게 된 지역주민들로부터 피해자와 그 가족이 비난을 받거나 이사를 종용받아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기도 했다.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서 지적여성장애인의 의견이나 결정권이 반영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상담현장의 경험에 의하면 성폭력 피해자보다 피해자 부모의 의사에 따라 고소나 합의 여부가 결정되며,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도 피해자가 아닌 부모 앞에서 한다.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 후유증으로 밤잠을 못자고 무서운 꿈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있어도, 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병원 치료나 쉼터 입소 조치를 할 수 없다.

법은 지적여성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가혹하다. 수사 및 사법기관은 피해자의 진술능력을 의심하고 피해정황에 대한 진술을 믿지 않으며, 가족은 피해자를 대신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처리하면서 피해자를 철저히 소외시킨다.

2. 현 정권의 장애인복지 전망
현 정권은 성장을 중시하고 분배에는 관심이 없는 보수정권이다. 그동안 장애인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장애인 인권의식의 신장, 장애인식의 변화를 통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었던 배경은 진보정권을 통해서였다. 진보정권은 미흡하게나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나 예산 지원에 대한 노력이 있었지만, 현 정권은 효율성을 따질 수 없는 사회복지 분야 예산이 지나치게 많다며 올해 복지예산을 삭감했고, 내년 장애인 복지예산도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가진 자에 대한 감세정책은 장애인의 복지 예산을 축소시키고 그로 인해지금보다 더 많은 장애인들이 빈곤상태에 처하게 될 현실 앞에서 장애인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는 계속해서 축소되고 퇴보할 것이며 장애인의 가정 내에서나 사회적 위치가 낮아지고 역할이 축소되어, 그 결과 장애인에 대한 가족의 보호 및 부양책임의 과중으로 인해 특히 여성장애인은 가정과 사회에서 각종 차별과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3. 여성장애인에 대한 폭력 근절을 위한 과제
여성장애인 성폭력은 가해자 개인이 저지른 범죄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 구조적인 차별과 편견에 기인하므로, 약자를 폭력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임이 우선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 여성장애인 폭력 피해자 사회복지 지원 확대
현재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는 15개소이며 가정폭력 문제를 전문적으로 상담 할 수 있는 곳은 2개소, 보호시설 4곳뿐이다.

앞으로 여성 장애인이 폭력으로 인해 가출, 이혼으로 혼자 살거나 한 부모 가정이 되었을 때 주택·의료비·국민기초생활수급자 지정 등이 우선적으로 지원되어야 하며, 여성장애인 미혼모 시설·여성장애인 모자원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복지 시설이 필요하다.

또 보호시설에서 최대 9개월 동안 상담·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안정을 찾은 이후, 피해자가 원하거나 가정으로 복귀할 수 없는 친족 폭력 피해자나 무연고자일 경우에는 중·장기생활시설 지원 등 그들의 자립을 위한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정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2) 여성장애인 폭력 예방 및 근절을 위한 교육과 법과 제도 개선
폭력 피해자, 가족이나 친·인척 등 주변인, 경찰 및 사법기관 등에서 여성장애인 폭력문제에 적극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실시하고, 사회적으로 취약한 장애인에 대한 인권을 보호하고 옹호할 수 있도록 역할과 책임을 강화해야 하며, 형법 개정과 제도 개선·신상공개·형량 상향 조정을 통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

3) 가족역할강화 및 여성장애인 역량강화 지원
가족 내에서 여성장애인이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피해자를 지지해주는 역할강화프로그램의 개발과 피해자 가족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며, 교육·이동·접근·정보권 등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이동서비스제공, 장애인 편의시설의 확충, 활동보조인제도를 활성화하는 등 사회적 접근의 기회를 높여 위기상황과 폭력발생시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을 통해 폭력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

마무리하며…
여성장애인은 ‘여성’과 ‘장애’라는 이유로 이중적 차별이나 억압, 또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 사회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다양한 차별이나 억압을 동시에 경험한다.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열악한 삶의 조건 속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여성장애인은,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 각종 폭력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다.

여성장애인 폭력 사건이 내 가족이나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범죄의 심각성이나 그 영향을 피부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여성장애인 폭력 문제는 이 사회의 사회 문제로 제기되어 왔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

여성장애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가해자 개인이 저지른 범죄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 구조적인 차별과 편견에 기인하므로, 약자를 폭력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국가에게 일차 책임이 있다. 따라서 여성장애인 폭력 근절을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실효성 있는 법과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작성자민병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소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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