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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미 제도의 정착과 확대시행이 필수적이다

[기획②] 여성장애인 엄마 되기 힘들다 시각장애인 김OO 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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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지민 객원기자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의 성장과정은 부모, 특히 엄마의 가슴엔 영원한 동영상으로 또렷하게 간직되는 법이다. 최초의 눈 마주침, ‘잼잼’ 움직이는 아기의 여린 손놀림과 하품하는 모습, 배고프다며 찡그리고 우는 눈빛 모두가 잊혀질 리 없는 영원의 기억으로 새겨지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 더 귀엽고 덜 귀여운 아이가 있겠는가. 자신의 몸에서 잉태하고 낳은 아이를 품에 끌어안는 마음은 지구의 자전(自轉)이라도 멈출 만한 힘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모정(母情)인 것이다.


그 소중한 아이의 사랑스러운 미소와 옹알거리는 입놀림을 ‘영원히’ 직접 마주볼 수 없다면…, 그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아픔이 뿌리내리게 될까. 익명(匿名)을 부탁한 시각장애인 김OO 씨의 두 아이 출산 및 육아기를 짧게나마 들어 보기로 한다. 취재에 큰 도움과 다리를 놓아 준 사회복지사 손나래 님께도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 함께걸음(이하 함께) : 현재의 장애 증상은 무엇인가.

- 김OO(이하 엄마) : 시각장애 1급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아주 조금씩 나빠졌다. 시력을 다 잃기까지는 10년 넘게 걸린 것 같다. 나빠진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아주 조금씩 서서히 진행됐다.

▶ 함께 : 지금은 어느 정도까지 안 보이는가.

- 엄마 : 거의 다 안 보인다. 밖에 나갔을 때 밝은 태양빛 정도만 느껴진다. 지금 앞에 계신 분도 어디에 앉으신 건지… 확인이 안 된다.

▶ 함께 : 그렇다면 어릴 때의 기억은 남아 있는가.

- 엄마 : 성장하면서 아주 천천히 나빠졌기 때문에, 스무 살 넘어설 때까지 색깔 정도는 봤던 것 같다. 기억으로는 어느 정도 남아 있다.

▶ 함께 : 시각장애의 전문적인 명칭은 무엇인가.

- 엄마 : 각막염이다. 나름대로 확인해 보니까, 희귀한 증상이 아니라 이런 상태로 지내는 분들이 제법 있는 것 같다.

▶ 함께 : 결혼은 언제 했나.

- 엄마 : 2002년에 했다. 아들 둘이 있다.

▶ 함께 : 결혼하게 되면서 힘들었던 일들이 있었는지.

- 엄마 : 장애 때문에 애초부터 결혼을 안 할 생각이었다. ‘결혼’이라는 생각 자체를 아예 안 했다. 어차피 사람이 좋아 결혼한다 해도, 시댁 문제라든지 이런 것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할 확률이 높지 않은가. 결혼 시작점부터 부딪쳐야 할 인생이라면, 생각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 함께 : 그렇다면 지금의 남편은 어떻게 만났는가.

- 엄마 :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만났는데, 친구로 알고 지낸 게 7년 정도 된다. 좋은 친분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는데, 만남의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까 상황이 결혼 쪽으로 발전하게 됐다. 그런데 정말 의외로 시댁에서 별다른 반대가 없었다. 남편이 완고하게 자신의 입장을 얘기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 함께 : 가장 본질적인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 본인의 장애 때문에 혹시라도 2세 준비를 안 했거나 고민하는 과정 같은 건 없었나.

- 엄마 : 그런 건 아니다. 물론 처음 가졌을 때는 가끔 불안하기도 했다. ‘혹시?’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의 집안이 선천적으로 그런 장애를 가진 게 아니라 나만 그랬기에, 유전 같은 위험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 함께 : 유전 가능성과 확률이라는 것 때문에, 인공수정 등의 사전검사를 고려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 엄마 : 그런 건 일부러 하지 않았다. 종교에 따른 마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차피 낳을 거라는 생각만 했다.

▶ 함께 : 그렇다면 아이들의 시력은 어떤가.

- 엄마 : 괜찮은 것 같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현재까지는 안경 쓸 일 없이 아주 작은 것들도 잘 보며 지내는 것 같다.

▶ 함께 : 지체장애일 경우는 진료 과정 중에 의료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무리한 요구나 회피가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임신 기간 중에 특별히 힘들었던 게 있는가.

- 엄마 : 지체장애의 그런 경우 얘기는 자주 들었다. 그런데 시각장애는 출산을 위해 신체적으로 특별한 위험 요소가 없기에 동네병원에 그냥 다녔다. 아이는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 함께 : 하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쳤을 것 같은데.

- 엄마 : 육아도우미를 지원 받으면서 많은 경우를 겪게 됐다. 아기가 조금이라도 뒤집고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가 문제이다. 방바닥에 조그만 것이라도 떨어져 있을 때는 아기가 무조건 입으로 가져가지 않는가. 그래서 잠시라도 애들 옆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그게 제일 위험했던 것 같다. 내가 안 보이는 상황이기에 아무리 깨끗하게 방을 닦아놓았다 해도 순간적으로 바닥에 뭔가를 떨어뜨릴 수도 있고, 그것 때문에 혹시라도 잘못되어 애들한테 탈이 나면 큰 일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엄마들은 애들 눈동자를 본다든지, 얼굴의 혈색을 봐서 아이의 몸 상태를 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직접 관찰하고 살피는 걸 할 수 없지 않은가. 밤에 열이 나는 경우는 손으로 만져 봐서 알겠는데, 다른 증상은 알 길이 없으니까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태열이나 피부병이 생겨도, 또한 기저귀를 채울 때도 피부가 물러지고 심해지면 만져 보는 걸로 알게 된다. 그런데 발생 초기라면 피부가 약간이라도 빨갛게 되는 시점을 내가 모른다는 게 문제이다. 초기에 약을 발라 줬다면 덜 아플 텐데, 내가 모르고 있는 동안 피부가 짓무르게 될 때가 안타까울 뿐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 함께: ‘도우미’라는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는 건가.

- 엄마 : 여기 복지관에서 산모도우미와 육아도우미를 파견해 줬다. 첫 출산 당시 잘 모르던 상태로 막막했었는데, 아이를 직접 키워 보신 분들의 손길이라서 실질적인 도움을 참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한 사회복지사 손나래 씨한테 문의하니까, 복지관에서 다양한 도우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산모도우미의 경우 출산 전후로 한 달 동안 매주 5,6회씩 방문을 하고, 몸을 추스를 때까지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고 한다.

육아도우미는 하루에 3시간 동안 함께하는데, 일주일에 두세 번 방문하는 제도라 한다. 더불어 여성장애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파견되는 가사도우미가 매주 1,2회 실시되고, 이런 활동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시(市)의 기금으로 지원 받기 때문에, 이용자의 금전적 부담은 전혀 없다고 한다.

- 엄마 : 아기는 변 색깔만 봐도 애의 건강상태를 알 수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건 나 혼자 있을 때는 알지 못하고 대책이 안서는 부분이다. 그런데 도우미 분들이 오셨을 때, 아기한테 뭘 먹였는가, 아기의 변 색깔이 안 좋다, 이런 식으로 얘기해 주니까 적절한 도움을 그때마다 받게 된다.

▶ 함께 : 혹시라도 안 보인다는 것 때문에 크게 실수했거나 아이가 다친 적이 있었나.

- 엄마 : 그런 일은 수시로 많은 것 같다. 내가 간다고 하며 아이를 치고 나갈 때도 있고, 가끔씩은 아이를 살짝 밟게 될 때도 있다. 아이한테 미안하다는 말이 곧장 나오게 되는 경우이다.

▶ 함께 : 엄마로서 정말 ‘아차!’ 싶었던 순간이 있었는가?

- 엄마 : 위험한 걸 애가 들고 있을 때가 있지 않은가. 부엌의 칼 같은 건 수시로 치운다. 그런데 순간순간 가위로 뭔가를 자르고 나서 잠깐이라도 놔두면, 애들은 즉시 달려와서 가위를 만진다. 최고의 사건으로 기억나는 건… 애가 칼을 들고 나한테 갖다 준 적이 있었다. 과일칼이 아닌 부엌칼이었다. 그때 얼마나 아찔했는지…. 내가 쓰고 금방 집어넣으려 했는데, 그 사이에 애가 나한테 가지고 오는 바람에 너무 크게 놀랐었다. 조금만 잘못해도 칼날에 베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 함께 : 현실적인 질문이기도 한데, 이웃과의 관계는 어떤가.

- 엄마 :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 동네 이웃들은 착한 분들이 많다. 애들이 나가서 놀면 더 신경 써서 봐주고 도와주려 한다. 이웃이 좋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다른 분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장애엄마를 이웃으로 둔다는 걸 꺼려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 함께 :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게 되는가.

- 엄마 : 애들이 지금은 커서 괜찮지만, 막 뛰기 시작할 때는 천방지축이 되지 않나. 애들 손을 잡고 밖에 나갔다가, 잠깐이라도 손을 놓으면 애들이 큰 길로 뛰어가 버리는 거다. 내가 잡으러 갈 수가 없지 않은가. 애들이 잠깐이라도 곁에 없다는 게 확인되면 아이들을 부르는데, 그때마다 이웃의 아이엄마들이 나와서 애 찾는 걸 도와 준다.

▶ 함께 : 이제는 출산 이후가 아니라 육아와 성장을 신경 써야 할 시기일 텐데, 개인적으로 걱정되는 부분이 있는가.

- 엄마 : 처음 낳았을 때는 애를 키운다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 정도 크니까 일정부분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기에 좀 괜찮아진 편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교육과정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내가 생활 속에서 해줄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큰 애 같은 경우는 색깔 개념이 별로 없다. 엄마가 그걸 못해 준 까닭인 것 같다. 옷을 입힐 때도 오늘은 파란색 옷을 입자, 지금은 무슨 색 양말을 신을까, 이런 걸 전혀 못하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애가 아는 색깔 자체가 몇 가지로 한정된 것 같다. 색약은 아니지만… 다양한 색감에 익숙해지지 않아 걱정이 된다.

또한 평소에 엄마가 수시로 글자공부 같은 걸 시킬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다른 엄마들이라면 과자 봉지를 열어 줄 때도 겉봉의 과자 이름을 따라 읽게 하는 등, 일상생활 자체로 자연스럽게 하나씩의 교육을 시키는 것 같다. 나는 그게 안 된다. 글을 쓰고 읽는 걸 집에서 해주지 못하는 게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다.

▶ 함께 : 정리하는 차원에서 마지막 질문을 드린다.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면 좋겠는가.

- 엄마 : 엄마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어둡지 않고 밝게 자라면 좋겠다. 다른 건 몰라도 애들이 엄마 때문에 기가 죽는다든지, 아이 혼자 콤플렉스를 가진다든지 하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다. 소중한 나의 두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밝게 커가기를 기원한다.

- 얼굴 촬영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본인의 의견에 따라, 김OO 씨의 손 모습을 기록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편집자 주)

작성자채지민 객원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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