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접근권 보장, 임의조항으로의 개정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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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법률 시행착오 반복하지 말아야
지난 6월 30일 보건복지가족부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개정하기 위해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방송사업자의 서비스 범위가 아닌 점자, 점자변환, 보청기기, 큰문자, 인쇄물음성변환출력기, 음성서비스, 전화 등을 삭제하여 방송사업자의 서비스 범위를 ‘수화통역, 폐쇄자막, 화면해설 등’으로 다시 규정하였다(제3항).
둘째, 출판물 사업자와 영상물 사업자에게 자막, 수화, 화면해설, 점자 및 점자 변환, 인쇄물음성변환출력기, 화면읽기·확대프로그램 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새로이 규정하였다(제4항).
셋째, 유·무선망을 이용하여 전화서비스를 행하는 사업자에게 통신장비를 통한 중계서비스 또는 이에 상응한 수단을 확보 제공하도록 명확히 규정하였다(제5항).
넷째, 정보통신과 의사소통의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행위자 등의 단계적 범위 및 필요한 지원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대통령령에 위임하였고(제6항), 실효성 있는 시행령을 제정할 수 있도록 1년을 유예기간으로 규정하였다(부칙).
정보통신·의사소통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는 분명히 개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입법 과정에서 이미 예견되었다. 방송사업자뿐만 아니라 출판물 사업자, 영상물 사업자, 통신사업자 등에 따라 각기 다른 편의제공을 규정하지 않고,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각종 편의를 충분한 검토 없이 오직 방송사업자의 의무로만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금번 보건복지가족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은 현행법보다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
법률의 미비점을 알면서도 개정(안)을 그대로 입법화한다면, 또 다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번 개정(안)에서 특히 보완해야 할 내용은 개정(안) 제4항에 규정된 출판물 사업자와 영상물 사업자의 편의제공과 관련된 것이다.
▲ 지난 7월 28일 보건사회연구원에서 열린 장애인차별금지법 21조 개정 입법예고에 관한 내부 공청회 모습 ⓒ전진호 기자
임의조항으로의 개정은 아무런 편의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과 똑같아 출판물 사업자와 영상물 사업자의 정당한 편의제공을 의무가 아니라 임의 조항으로 규정한 것은 문제이다.
이 항은 제21조 ‘정보통신·의사소통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의무’의 일부이므로, 제2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행위자의 정당한 편의 제공은 행위자 유형에 상관없이 모두 의무로 규정돼야 한다.
방송사업자(3항)와 전화 서비스 사업자(5항)는 강제 규정으로 개정하는 데 비해, 출판물 사업자와 영상물 사업자의 편의제공은 임의규정으로 하는 것은 행위자간에 형평성이 부족하다.
아무리 많은 편의를 열거해 두더라도, 의무가 아닌 한 과연 실효성 있는 법 시행이 가능하겠는가?
제4항에 예시된 편의 내용도 문제이다.
자막, 수화, 화면해설, 점자 및 점자 변환, 인쇄물음성변환출력기, 화면읽기·확대프로그램 등이 모두 출판물 사업자와 영상물 사업자가 결국 제공해야 할 서비스인가?
모두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인쇄물음성변환출력기와 화면읽기·확대프로그램은 출판물 사업자와 영상물 사업자가 장애인에게 제공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 장애인이 개인적으로 구입하기 곤란할 정도로 비싼 인쇄물음성변환출력기나 화면읽기·확대프로그램은 출판물 사업자와 영상물 사업자가 제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현재와 같이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보조공학센터, 정보문화진흥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을 통해 제공하는 것이 적절하다.
점자의 경우 출판물 사업자가 과연 시각장애인에게 점자 자료를 제공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시각장애인도서관이 35개소 이상 있다. 물론 대부분 영세한 여건에서 운영되고 있지만, 시각장애인도서관을 통해 점자 출판물을 제공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더욱이 2007년 새로이 설치된 국립중앙도서관의 장애인도서관지원센터가 민간기관이 제공하기 어려운 정보통신 관련 편의를 제공하는 데 그 역할을 확대시켜 가야 한다.
개정(안) 제4항에 출판물 사업자와 영상물 사업자가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는 편의를 포함시키고 있고, 그것을 임의조항으로 한 것은 장애인에게 실제로는 아무런 편의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출판물 사업자와 영상물 사업자의 서비스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다.
물론 최근 출판물의 변화 추세를 보면, 출판물 사업과 영상물 사업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장 시각장애인 대부분은 인쇄 또는 전자적 형태의 출판물을 접근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실효성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아니다.
또한 영상물 사업자가 개정(안)대로 점자 및 점자 변환을 제공할 필요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개정(안) 제4항은 출판물 사업자와 영상물 사업자가 제공할 편의를 적절하게 구분해 놓지 않고 있다. 방송사업자의 서비스 범위를 명확히 규정할 뿐만 아니라, 출판물 사업자와 영상물 사업자의 서비스 범위도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실효성있는 시행령 제정위해서라도 법조항 강제조항으로 해야
위에서 지적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가족부의 입법 예고안 중 제4항은 다음과 같이 개정해야 한다.
첫째, 4항을 임의 조항이 아니라 강제 조항으로 개정해야 한다.
서비스의 범위와 단계적 시기를 시행령에서 추후에 규정하더라도, 실효성 있는 시행령을 제정하기 위해서라도 법 조항을 강제 조항으로 해야 한다.
둘째, 출판물 사업자와 영상물 사업자가 제공해야 할 편의를 각각 구분하여 규정해야 한다. 영상물 사업자는 수화통역, 폐쇄자막, 화면해설 등을 제공하도록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이에 비해 출판물 사업자는 ‘음성과 점자 및 확대문자로 변환할 수 있는 형태의 전자파일’을 제공해야 한다.
시각장애인 등 인쇄물을 자유롭게 읽을 수 없는 사람은 일반문자를 음성, 점자, 큰문자 등으로 변환시켜야 하는데 각자 선호하는 매체가 다르다. 출판물 사업자가 인쇄물을 음성, 점자, 큰문자로 각각 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지만 방법은 있다.
출판물 사업자는 음성과 점자 및 큰문자로 변환될 수 있는 전자파일을 제공해야 한다.
300쪽 분량의 책을 일일이 다시 입력하여 점자로 출력하는 데 최소한 60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렇지만 전자파일이 있다면, 내용 중 도표나 그림 등 편집해야 할 요소가 어느 정도 있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약 3시간이면 출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예 전자파일을 점자정보단말기에서 읽는다면 시간을 추가로 소요할 필요가 없다.
셋째, 출판물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 장애인지원센터와 같은 국가기관을 통해 음성과 점자 및 큰문자로 변환할 수 있는 전자파일을 제공하도록 규정해야 한다.
출판물에 대한 저작권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문제는 저작권과 정보접근권이 충돌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특정 국가기관이 저작권과 정보접근권을 보호하기 위한 중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출판물 사업자가 제공하는 전자파일을 음성과 점자 및 큰문자 등으로 변환시키면서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는 형태의 파일을 개발해야 한다. 이 두 가지 과제는 1, 2년 사이에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멀리 돌아가지 말고 곧바로 가자
우리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IT 강국의 국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은 정보화 시대에 IT 강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직접 및 간접 차별을 겪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대부분의 웹페이지를 혼자서 이용하기가 어렵다. 모든 형태의 e-book 도 읽을 수 없다.
민간기관은 포기하더라도 국가기관이 온라인으로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는 정부 문서조차 이미지 형태의 PDF 문서이므로 볼 수 없다. 마치 폭우처럼 매일 출판되는 간행물도 읽을 수 없는 것은 과거와 다름 없다.
그래도 길은 있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도 정보화시대에 IT 강국의 국민으로서 함께 살아갈 길은 있다. 시각장애가 없는 사람이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에서 즉각적으로 읽을 수 있는 모든 인쇄물과 전자자료를 읽기 위해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수십 시간 돌고 또 돌아서 갈 필요는 없다.
인쇄물 또는 전자자료를 간행하는 출판물 사업자뿐만 아니라 국가 및 공공기관도 시각장애인에게 음성과 점자 및 큰문자로 변환될 수 있는 전자파일을 제공함으로써 정보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
시각장애인도 모든 저작권물에 대한 저작권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돌아갈 필요가 없는 길을 굳이 돌아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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