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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의 그늘 -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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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이었습니다.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로 1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철창에 갇혀 목숨을 잃었습니다. 여수에 내려가 두 달 동안의 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아직 한국사회가 이들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화재가 나고 연기가 보호소를 집어 삼키는데도, 보호소 직원들은 이들이 도망갈까 싶어 철창문을 제때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아닌, 그래서 최소한의 기본권마저 갖지 못한 관리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유가족들이 오동도에 핀 동백꽃보다 더 붉은 울음을 토해 냈지만, 철창에 갇혀 문을 열어달라고 외치다 쓰러졌던 이들은 더 이상 말이 없었습니다.

절망보다는 깊은 슬픔이 더 많았던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였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대하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비인간적인 시스템, 죽음으로 존재를 알린 뒤에야 조그만 희망이라도 내어주는 우리사회의 야만적인 모습은 절망 보다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슬픔을 안고 지역으로 돌아와 새로 맡게 된 일이 인천지역 420장애인공동투쟁단이었습니다. 늘 받기만 하던 일방적인 연대에 대한 뒤늦은 자각으로 찾아간 곳이었습니다.

직접 마주한 장애인들의 현실은 충격이었습니다.
첫 회의 자리가 너무나 불편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애운동을 알기 전 47년 동안 집 밖에 나온 게 딱 세 번이다. 그 세 번 모두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간 거였다. 여전히 많은 장애인들이 나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거다.’는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 활동가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 회의 자리는 가시방석이었습니다. 지난했던 장애인 투쟁의 성과들과 언론보도를 통해서 막연히 ‘많이 좋아졌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인권활동가라 소개했던 자신이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반쪽짜리 다문화 정책들

요즘 이주민 혹은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꼭 지난 봄의 저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부에서는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다문화가족지원법’ 등등의 정책을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만들어 내고, 중앙과 지방자치단체를 막론하고 다문화라는 이름을 건 축제들을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들고 있습니다.

이에 맞추어 언론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국제결혼이주여성이 환하게 웃은 사진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제 우리사회도 다문화사회에 접어들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근거를 가지고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세계인의 날’을 만들어 대대적인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젠장, 참 많이 좋아진 것입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좋아진 이주민 세상의 혜택을 받는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는 소수일 뿐입니다.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에서 정부가 외치는 다문화사회는 이미 많은 자본을 가진 외국인과 전문 인력들을 유치하기 위한 포장일 뿐입니다.

기본법에서 재한외국인으로 대우하고 있는 외국인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처음부터 제외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배제와 차별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정하고 있는 ‘거주외국인지원조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에서 추진해 제정되어 올해 9월부터 시행되는 ‘다문화가족지원법’에서도 배우자 중 한 명이 한국국적을 가진 다문화가족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이주자끼리 결혼한 가족은 최소한 권리에서도 배제된 것입니다. 올해 2월에 학교에 다니던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모두 추방 대상이 되어 쫓겨난 것이, 지금 정부의 다문화 정책의 본 모습입니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정책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국에서 다양한 정부지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 본질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한국인 남성들의 편의를 위한 외국인 신부의 한국인 만들기 프로젝트’일 뿐입니다.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통합교육 의무화가 가장 노골적입니다.

한국에 시집 온 지 한 달 만에 아파트 창밖으로 몸을 던져 암울한 현실을 스스로 마감해야 하고, 한국인 남편의 폭행에 갈비뼈 전체가 부러져 극한 고통 속에서 홀로 죽어나가야 하는 국제결혼의 우울한 현실은 외면한 채 사회통합을 운운하는 것은, 그것도 국제결혼이주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온갖 인권침해의 수단이 되고 있는 국적취득을 전제로 한 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국제결혼이주자들에 대해 국가가 저지르는 또 다른 폭력입니다.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들어지고 시행되고 있는 여러 정책들이 시작부터 반쪽짜리인 것은 시선의 문제입니다. 당사자들이 정책입안 과정에서 배제된 결과입니다. 소수자들이 편안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다수자들의 변화와 노력 없이, 이주민을 그 안에서도 차별화해 통제하려는 의도가 뻔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생존권인 노동권을 보장 않고서 무슨 다문화 사회인가?

이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46만여 명의 이주노동자들, 특히나 23만여 명에 달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한 걸음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뒷걸음질 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리프트에서 떨어져, 버스를 타려다 차에 치여 죽어가는 장애인들처럼 반인권적 강제단속추방에 내밀려 10층 모텔방에서 떨어져 죽고, 3층 공장 옥상에서 뛰어내려 허리가 휘고, 6개월 치 밀린 급여를 받으러 노동부에 갔다가 급여 대신 수갑이 채워져 보호소 철창에 갇혀야 하는 게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오늘의 모습입니다.

국가에 등록되어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가 2004년 고용허가제를 시행하면서 ‘이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없어졌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현대판 노예제도라 불리며 이주노동자들을 착취했던 산업연수제의 폐해는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사업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웬만한 인권침해와 부당한 대우는 ‘그냥 참고’ 견뎌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3층 옥상에서 떠밀려야 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도한 입국비용과 3년 단기 로테이션 제도, 가족동반 금지는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을 잠깐 쓰다 버리면 그만인 기계로 취급하는 우리사회의 시선을 말해줍니다.

당사자들의 절박함으로 지하철 철로에 뛰어들었던 장애인들처럼, 이주노동자들도 탄압의 철길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 가장 앞자리에서 정권과 자본의 온갖 탄압을 맨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원들이 그들입니다.

‘이주노동자 노조가 세상에 어딨냐? 불법체류 제로(0)로 만들어라.’는 2MB대통령의 광우병 쇠고기 같은 말 한마디에, 이들에 대한 탄압의 강도는 폭력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일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토르너 위원장과 소브르 부위원장이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에 의해 표적 단속되어 강제로 이 땅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이주노조지도부 3인이 표적 단속되어 강제 추방된 지 5개월 만에, 또다시 자행된 반인권적 국가폭력입니다.
노동기본권을 지켜내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특별한 권리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 헌법과 유엔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숨 쉴 권리와 같은 최소한의 권리입니다. 이렇듯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최소한의 권리마저도 공권력에 의해 너무나 쉽게 무시되고 있습니다.

지난 5월부터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합동단속이 시작되었습니다.
각 지역마다 할당량이 내려와, 전국 출입국관리사무가 발바닥에 불이 붙도록 설레발을 치고 있습니다. 인신을 구속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영장주의마저 깡그리 무시되며 반인권 행태들이 자행되었고, 무리한 단속으로 억울한 죽음까지 발생했는데, 이젠 할당제까지 도입했으니 또 어떤 정부합동인권침해가 발생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인간사냥식으로 온갖 인권침해를 자행하며 이주노동자들을 한 해 3만여 명씩 이 땅에서 몰아내도, 미등록이주노동자 수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마 정부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책 없는 단속추방만으로 2MB대통령 지시를 따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누구보다 더 진하게 굵은 땀을 흘려왔고, 한국사회에 이미 적응해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버린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전면 합법화만이 불법체류 제로의 길이라는 것을.
이 문제를 한번쯤 고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누구하나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게 지금 우리 정부의 모습입니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서 너무나 잘 드러나, 더 이상의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겠지만요.

    다르지만 닮은 운동

장애인과 이주노동자운동은 다르지만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올해 인천지역 420공동투쟁의 핵심 사안은 장애인야학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 같아 여기서 다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인천시와 교육청에 항의하기 위해 친 농성천막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치워달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현실입니다.

올해 인천의 민들레와 작은자 장애인 야학투쟁을 보면서, 새삼 배우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요구가 우리를 특별하게 대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에서 소외되지 않고 보편적으로 이용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아주 소박한, 어쩌면 이렇게 모든 소수자 운동의 요구가 구호만 달랐지 거의 비슷한 진실을 간직하고 있는지 가슴 한쪽이 저릿저릿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사자들의 절박함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걸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지금 비록 선주민인 제가 이주민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 이주민운동도 곧 주체들의 힘으로 변화 발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 봄 그 희망의 씨앗들이 전국 곳곳에서 싹트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격려해 주십시오.
작성자이상재(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교육홍보팀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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