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광주 5만개 촛불, 그 의미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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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신문 시민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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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열린 6.10촛불문화제는 근 20여년만에 최고 인파인 5만여명이 몰려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했다. 역시 광주는 끈끈한 정신적 유대가 살아있는 도시라는 희망이 얘기됐고 촛불집회와 향후 정국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 ||
초중고 젊은 학생들이 주도하는 촛불 문화제의 재기발랄함에 놀란 어른들부터 80년 후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집단 광장문화를 경험했던 이들의 가족단위 참가까지, 6·10 21주년이라는 시기적인 상징성이 겹치면서 금남로는 주최 측 추산 5만명, 유동 참가자들까지 합하면 6만여명이 거대한 촛불의 물결를 이루었다.
특히 그동안 광주에서는 32일 동안 500~5천여명의 시민들이 촛불시위에 참여해 왔지만 이날 5만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어 '역시 광주'라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6·10 촛불문화제는 새로운 시위문화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신세대들에게나 과거 광장문화를 체험했던 구세대들에게 모두 어떤 신선한 충격을 준 것임엔 틀림없어 보였다.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촛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가족들을 이끌고 나온 30, 40대 가장들도 역사적인 현장을 경험시키기 위해 번잡한 시내 나들이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좁은 지역사회에서 이처럼 드문 대형사건은 참가자들 스스로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20여년 만에 최대 인파 "역시 광주"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쇠고기 재협상 관련 최대 규모의 인파가 몰린 촛불 집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선 광주라는 도시가 가진 역사적인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측면이 많았다. 또 이명박 정부 초기 한미 쇠고기 협상으로 인한 국민적 각성에 대한 밝은 전망들을 내놓았다.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을 중심에 놓고 취재하는 방식으로 여러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아봤다.
안관옥 <한겨레신문> 기자는 "촛불시위가 계속될 때 광주가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때가 되면 나타나서 시대의 흐름을 이끄는 것 같다"면서 "광주에서도 운동의 세대교체, 방식교체가 일어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소감을 밝혔다. 안 기자는 또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며 “관성적으로 이끄려하기보다 대중들에게 자발적으로 맡겨두면 발전적인 방향으로 진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은 "광주라는 도시가 디테일적인 면은 다소 둔감할지 모르지만 거대담론 부분에서 굉장히 민감하고 역사의식 속에서 현실을 보는 직관을 갖고 있다고 본다"며 "광주가 정서적으로 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뿌듯하지만 일상적인 시스템 속에서 구체적으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정우 <씨네트워크> 편집장은 "광주에서 5만이 모였다면 서울과 인구대비로 따지면 50만이 모였다고 봐야 한다"며 "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 6·10항쟁 21주년 등으로 집중점을 형성했다"고 분석했다. 이 편집장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공약이 아니었던 쇠고기 협상 문제가 정권초기에 터지면서 촛불시위로 국민적 각성이 일어나 향후 정권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아지지 않겠느냐"며 "이제는 촛불집회라는 본원적 에너지를 뒷받침할 전문가 집단의 '액션 파일'이 구체적, 부문적으로 준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병준 KBS광주방송총국 차장은 "대선, 총선을 거치면서 한국사회가 경제 제일주의, 보수주의로 회귀할 거라는 우려가 컸지만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지켜가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국민 스스로가 보여줬다"며 "이러한 각성이 향후 한국사회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이끄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광주 5만 촛불, 갈 곳은 어디?
이번 6·10 촛불문화제는 전국적으로 100만 인파를 목표로 준비돼 성공적으로 무엇보다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는 게 주최 측의 평가다.
광주에서도 '얼씨구학당'의 명콤비 지정남, 백금렬씨가 마이크를 잡아 프로다운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자유발언에 나선 연사들 중에서는 신자유주의 강요하는 미국을 반대한다는 미국인까지 등장하면서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가수 김원중씨의 노래공연, 이번 촛불집회의 최대 히트곡으로 떠오른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맞춘 깜찍한 초등학생들의 태극기 율동 등 볼거리도 적지 않았다.
87년 6월항쟁 때 시국선언에 나섰던 교수들도 다시 뭉쳤다. 이날 106명의 조선대 교수들이 금남로 삼복서점 앞에서 비상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데 이어 전남대 교수 145명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호남대, 광주대 교수들도 속속 시국선언에 동참할 예정이다.
80년 5·18때처럼 농민회에서 제공한 쌀로 만든 1만5천여명 분의 주먹밥과 가래떡이 참가자들에게 나뉘어졌고 재기발랄한 구호가 적힌 손피켓, 생각지도 못한 퍼포먼스, 무엇보다 수만개의 촛불이 빚어내는 따뜻한 일체감이 촛불집회의 열기를 더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번 6·10촛불문화제가 광주에서도 계속 지속될 것인가 하는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전망이 분분하다. 요는 느슨한 연대의 비상시국회의로는 지금의 상황을 '컨트롤'할 수 없으며 일정정도의 조직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집단지성의 힘에 맡겨두자는 주장이 겹치고 있다.
과거 전남대 학생전투조직인 오월대 회원 30여명과 촛불집회에 참석한 '오월대 대장' 박수본(42)씨는 "화염병 대신 촛불이라는 무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가 달라진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전두환, 노태우를 빼놓고 대통령이 전국민적인 모욕을 이렇게까지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국본이나 전국연합 등 지도부 없이 국민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 더 큰 힘이 될 수도 있고 조용히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정기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큰 변수가 있지 않는 한 현재의 국면이 계속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서울의 촛불시위 영향으로 지역에서도 자발적인 시민들의 동참이 이뤄지고 있고 과거의 5·18이나 6·10항쟁의 경험에 비춰 봐도 조직화보다는 집단의 참여가 폭발력이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노래운동가 박종화씨는 "역대 어느 운동에서도 주체가 서 있지 않은 운동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면서 "후속 효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각 하부단위부터 '뒷심'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직화되지 못하면 촛불집회라는 평화시위가 자칫 흐지부지해질 수 있다는 것.
이번 주 정부발표, 분수령될 듯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광우병 광주전남비상시국회의에서도 이러한 고민은 현재적 과제다.
허달용 광우병 광주전남 비상시국회의 위원장은 “매일 촛불집회를 준비하는 주체들도 상당히 지쳐있고 앞으로 어떻게 준비해 가야 할지 내부 논의가 치열하다”면서 “하지만 길게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모아진 힘들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은 인원으로라도 날마다 촛불집회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허 위원장은 또 “대학생들의 참여가 전반적으로 저조하고 노동자들도 각 사업장별로 임금협상을 벌이고 있어 조직적인 결합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13일 발표되는 정부의 후속조치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따라 촛불집회의 장기화나 수위가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단 서울에서 20일까지 정부가 재협상을 발표하지 않으면 정권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천명하고 나서고 있어 광주전남 비상시국회의도 ‘비상’ 국면을 맞고 있다.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 포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국무총리 기용설 등을 흘리며 국제법상 문제의 소지가 있는 쇠고기 재협상 문제만큼은 어떻게든 무마하려고 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문제가 정권 퇴진으로까지 번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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