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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에 대한 편견, 내 삶을 파괴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부모 수다방

본문

살아가면서 ‘나 미쳤나봐’, ‘저런 미친놈’, 이런 표현 한번 써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 표현만 보더라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과 불신을 알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7년 등록 장애인 현황을 보면 등록 정신장애인의 수는 지체, 뇌병변, 시각, 청각장애인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7만7천7백명이다.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장애등록을 하지 않은 이까지 포함하면 4~5집 걸러 한 가구 꼴로 정신장애인이 생활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지만 이들에 대한 인식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형기 없는 감옥’이라 불리는 정신병원에서 평생을 보내는 정신장애인의 수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는 이유도 바로 이런 그릇된 편견 때문 아닐까.

이중적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정신장애인의 인권 문제를 <함께걸음>이 짚어봤다.

1. 정신장애인 ‘탈원화’, 시대적 요구
2. 정신장애인의 삶, 지역에서 꽃피울 때
3. 성폭행과 추행, 정신병원은 무법지대
4.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 내 삶을 파괴했다”

수용중심의 정신장애인 정책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건 당사자의 목소리가 드러나기 어려운 것도 한몫 한다.
‘수용’이외에는 어떤 사회적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대한민국 사회복지 시스템도 모든 책임을 가족이 떠맡게 한다. 때문에 경제적,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가족들이 해체되거나 입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

‘차별 안의 차별’을 겪으면서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당사자들, 평생 동안 주위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살아야 하는 가족들의 심경은 어떨까.

사회복귀시설협회와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자조집단 형성을 위한 리더십 트레이닝’의 일환으로 당사자와 부모들이 대한민국서 정신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해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는 입·퇴원

○○남 : 재작년에 부모님에 의해 강제 입원한 적이 있어요. 주치의는 약도 잘 먹고, 생활도 잘하니 입원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했지만, 부모님 생각은 달랐어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6개월 동안 입원했는데,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대○ : 저는 날짜까지 기억하는데, 15살 되던 1982년 9월에 처음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어머니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입원실 없는)신경정신과 의원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저보고 조울증이라고 하더군요.

의사선생님이 침대에 누워보라고 하셔서 시키는 대로 했더니 ‘편안해 질 거야.’라며 주사를 놔줬어요. 그런데 눈을 떴더니 환자복을 입은 채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입원사실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죠.
정신병원을 비유하자면 일종의 교도소에요. 한번 들어가면 자꾸 들어가게 되고…

○○희 : 전 신고 때문에 정신병원에 가게 됐는데, 길에 서있는 저에게 경찰 아저씨가 오더니 ‘신경정신과 가봤냐.’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가 봤다.’고 했더니 정신병원으로 데려가더라고요.

청량리, 용인 정신병원서 10년간 생활했는데, 그 때 든 생각이 “다른 사람은 금방 나가던데 왜 나는 안 내보내 주는 걸까?”, “보호자가 없기 때문인가?”, “공짜 밥을 먹으니까 그 대가로 있어야 하는 건가?”였어요. 처음에는 병원생활에 적응을 못해 무척 고생했는데, 적응할 만하니까 내보내준다고 해서 가게 된 곳이 쉼터였죠.

○○원 : 처음 정신병원에 가게 되면 아무래도 불안하니 소란을 피우게 되고, 그래서 안정제를 강제로 투여하는 것 같아요.
문제는 그 양인데, 아무 이야기도 없이 진정제 주사 6대를 놔 잠들게 하더라고요.
하루 2천500ml 씩을 투여했는데, 보통 여자들은 1천ml만 맞아도 혼자 화장실도 갈 수 없어요. 일어나지도 못하고 바로 쓰러져버리고… 말 한마디 못하는 상태가 돼버리죠. 제가 그런 상황에서 생활했어요.

환자 수 늘리려는 병원비리 심각

김○중 : 제가 있던 병원은 정원 외에 3~40명을 추가로 받았어요. 이불조차 인원수대로 지급되지 않았는데, 추가 인원이 걸리면 안 되니까 감사가 나올땐 목욕탕에 가거나 숨어있고 그랬어요. 어떤 때는 2주씩 외박을 보내기도 하고.

유○환 : 저는 1992년도에 병원에 가게 됐는데 병원이 아니라 정보기관에 끌려간 줄 알았어요. 혜화동에 있는 XX정신병원이었는데, 한방에 200명이 일렬로 쫙 누워서 자는 거예요. 군대도 아니고….

강○수 : 정신병원 분위기가 굉장히 억압적이고 공포스럽잖아요.
처음 병원에 끌려갔는데, 보호사가 굉장히 위협적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위험한 상황이구나.’ 생각해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어요.
그렇게 생활하면서 다른 분들을 쭉 지켜봤는데, 팔뚝에 전기치료 때문에 상처가 생긴 이들도 많았고, 강제로 끌려온 이들은 저항하다가 강박도구에 의해 강제로 묶여있고….

○○원 : 우리아이는 작년에 발병해서 치료 중인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우리아이는 어떤 상황인가.’라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처음에는 잠을 좀 재우려고 대학 병원에 갔는데, 가족들을 분리시키는 거예요. 우리 애가 들어간 곳이 폐쇄병동인줄도 몰랐고요. 철창으로 돼 있어서 아무나 열 수도 없었고, 면회는 하루에 두 번, 공중전화로 아침, 저녁 두 번 밖에 통화를 못하더라고요.

침대 하나만 달랑 있는 이런 곳에서 생활하다보면 멀쩡한 사람도 병나겠다 싶어 의사에게 ‘이런 곳에 우리 아이를 둘 수 없다. 사전에 이야기를 해줬다면 오지도 안았겠지만… 우리 애는 방어조차 못하는 데, 다른 사람이 때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따졌죠. 그랬더니 ‘일반병동의 병실을 주겠다.’며 기다리라고 해 3개월 만에 입원하게 됐어요.

은숙 : 전 23살 때 종합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적이 있어요.
이후 몸이 다시 안 좋아져서 입원을 해야 했는데, 종합병원은 비싸 다른 병원에 가게 됐죠. 2~30명이 생활하는 공간에 아무 시설도 없더라고요.

밥을 제대로 못 먹거나 물을 흘려도 때려요. 제가 성격이 급해 그쪽에서 거칠게 나오면 성질을 부리곤 했는데, 7개월 동안 생활하면서 하도 많이 맞아 온 몸이 보라색이 될 정도였어요. 하지만 의사는 그 밀폐된 장소에 한 번도 오지 않더군요.

위급한 상황 아니면 본인 동의 없이 강제치료 하지 말아야

○○희 : 저는 강제로 전기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요. 의사 선생님이 부모님께 ‘전기치료를 받으면 좋아진다.’고 해서 받게 됐는데, 어떻게 치료를 받았는지 기억 못할 정도로 기억력이 나빠지더라고요. 눈도 안보이고, 머리 아프다고 의사 선생님에게 이야기했지만 그게 끝이었어요.

○○원 : 전기치료를 받으라고 권유 받았지만 안 받았어요. 제 체질에 맞는 약만으로도 편안하고 부작용도 없어서 받지 않았는데, 다른 이가 받는 모습을 보니 가급적 안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설사 치료를 받더라도 환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근 : 저는 제가 답답하고 빨리 낫고 싶은 욕심에 전기치료를 받겠다고 했더니 어머님이 오셔야 한다고 해 어머니를 모시고 왔죠.

밀실 같은 방에서 전기치료를 받았는데, 하늘색 모포를 접어서 침대 밑에 깔고 그 위에 누워서 머리에 띠를 두르고 혀를 깨물지 못하게 재갈을 물리더라고요.
갈색가방에 조작 장치가 있는데, 스위치를 누르면 지지직 소리가 나요. 그 상태로 기절하고 깨어나는 거예요.

두 번째까지는 참고 받았는데 호전되기는커녕 더 나빠지는 것 같아 더 이상 안 받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죠. 이 문제를 놓고 어머니랑 의사 선생님과 크게 싸웠다고 들었어요.
언젠가 TV에서 방영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영화에서 전기치료를 받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이걸 보는데 예전 치료 받고 나서의 후유증이 엄습해 와 괴로웠던 적이 있어요.

병원비 부담, 가계에 심각한 영향

김○현 : 저는 한 달에 두 달 치 약을 타먹고 있는데, 평균 8~9만 원이 들어요.
예전에는 제게 좋지만 가격이 비싸면 의사 선생님이 싸게 해주시곤 해 약을 먹었는데, 요즘엔 그나마도 부담이 돼 비싼 약은 못쓰고 있어요.

김○주 : 저는 15~20만 원 정도 쓰고 있어요. 그런데 이 비용이 너무 많이 들다보니 병원가기를 포기하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수급권자가 아니더라도) 국가에서 병원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어머니 1 : 우리 애는 급하게 대학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실이 없어서 1인실에 있었어요.
6개월가량 입원해있는데 약 6백만 원 정도 나오더라고요.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하는 이유가 병원비 때문인 것 같아요. 돈 때문에 더 이상 치료를 받을 수 없잖아요.

어머니 2 : 국립 병원에 가면 한 달에 35만 원 정도만 내면 되요. 물론 저렴한 대신 대기자가 많아서 한참 기다려야 하지만.

어머니 1 : 사실 입원비만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요. 부가적으로 사식비와 간식비로 10만 원 정도 넣어줘야 하고, 면회라도 가면 먹을 거나 환자에게 필요한 걸 사가게 되는데 그렇게 하다보면 한 달에 최소 80만 원가량 들어요.
수술환자처럼 며칠 입원해 있는 것도 아니라 최소 6개월은 있어야 하는데 혜택이 너무 없어요.
지역사회에서의 삶, 편견 때문에 힘들어

강○수 : 저는 대학교 3학년 때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대학원에 진학하려 하자 교수님이 못하게 하더라고요. 억지로 대학원을 졸업한 후 박사과정에 가려 하니 ‘다른 학교에 가서 하라.’고 막았어요.

동네에서도 가족 중 정신장애인이 있다는 소문이 돌자 주변에 아무도 얼씬하지 않아 결국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이곳에서도 제가 정신장애인이란 소문이 나게 됐어요.

제 나이가 40인데, 주인아주머니가 사사건건 간섭하고 하대를 하는 거예요. 결국 계약기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가라고 해 주인 아주머니와 언쟁을 벌이게 됐어요. 그런데 계약은 제가 했건만, (나와 이야기 하지 않고) 병든 우리 어머니께 전화해서는 ‘아들한테 문제가 있다.’, ‘소란을 피운다.’고 한 거예요.

너무 화가 나서 항의표시로 TV소리를 크게 틀었는데, (제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병원에서 수갑을 채워 데려가는 거예요. 전 수갑 차고 끌려가서 공안부서에 가는 줄 알았어요.

어머니 1 : 우리 동에는 총 8가구가 살고 있는데, 수군거리는걸 느끼죠. 하지만 먼저 ‘우리 아들은 정신장애인이다.’라고 말을 못하겠어요. 사람들이 편견을 갖고 이상하게 대할 것만 같아서요.

어머니 2 : 집안사람들과도 왕래를 안했어요. 만나더라도 이야기를 안했고요. 그렇게 10년을 숨겨왔는데, 너무 고통스러워서 ‘내 딸은 이렇다는 말만이라도 하자.’ 생각하고 털어놨더니 정말 홀가분해지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놀러 올 때도 우리 딸이 정신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봐 조마조마 했었는데, 여기서 벗어나니까 해방감이 들었어요. 먼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지금은 제가 먼저 이런 일이 있어서 힘들었다고 말해요.

어머니 1 : 친구들한테는 이야기 못하겠던데요. 친구들이 ‘너희 아들 장가갈 때 되지 않았냐.’고 하면 ‘우리 아들이 이런 상황이라 결혼할 수 없다.’고 말 못하겠어요. ‘그냥 갈 때 되면 가겠지.’라고 하고 마는데, 아마 자기 아들 딸 이야기를 왜 안 할까 의아하게 생각할거예요.

능력 있어도 일할 곳도, 일할 수도 없어

강○수 : 학교를 졸업해서인지 취직은 잘됐어요. 제 딴에는 열심히 일했는데, 입사 때 정신과 진료여부를 묻는 항목을 체크한 게 소문이 나 왕따를 당했어요. ‘정신장애인’이라는 꼬리표가 끊임없이 따라 다녀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었죠.

군대생활을 하면서 남들을 해친 적도 없고, 40평생 살아오면서 담배꽁초 버려서 벌금 4만 원 낸 게 전부인데, 무슨 테러리스트나 되는 것처럼 바라보며 위험시하고, 직장생활을 못하게 하는 이런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어머니 1 : 그게 왜 거부를 하냐면, ‘정신장애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난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의욕이 떨어져 있는 상태예요. 오히려 다른 이들보다 더 순한 양인데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홍보부족 때문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해요.

유○환 : 장애인 복지카드가 있으면 직업고용 대상자가 되잖아요. 이걸 통해 취직하면 70여만 원을 받게 되는데, 그나마도 취직이 안 돼요. 설사 취업이 되더라도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세탁업 등 막일에 가까운 곳에서만 취직이 되거든요. 어떤 악덕업주들은 쥐꼬리만 한 월급마저 안주거나 조금만 준 채 노동력을 착취하고….

김○중 : 기초생활수급자면서 장애등록을 하게 되면 약 40만 원 정도 받게 되잖아요. 그런데 일을 하게 되면 수급자 대상에서 탈락돼요. 이게 잘못된 법인데, 우리도 일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줘도 부족한 상황인데 오히려 일을 한답시고 수급자 대상에서 탈락시키면 누가 일을 하겠어요.
저는 정신과 약을 비롯해 혈압 약, 신장 약을 평생 동안 먹어야 하는데, 약값도 안 되는 돈을 벌자고 직장을 구하면 수급자에서 탈락 돼 오히려 손해인데 누가 일을 하겠습니까.

어머니 1 : 우리 아이도 일을 하고 싶어 해요. 당구장에서 심부름 하는 것이라도 좋다해서 당구장 사장에게 ‘매달 10만 원 씩 드릴 테니 여기서 준 것처럼 해주고 일을 시켜 주세요.’라고 했어요. 하지만 며칠 데리고 있더니 ‘아이 때문에 신경 쓰여서 안 되겠다.’며 그나마도 못하게 하더라고요. 커피숍에서도 잠깐 일을 했는데 ‘같이 일하는 아이가 너무 힘들어 해서 같이 못 있겠다.’며 그만두게 하더라고요.

어머니 2 : 우리 애가 일할 수 있을만한 직장은 국가차원에서 지원해줬으면 좋겠어요. 이게 힘들다면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들이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부모 사업장’이라도 활성화 시켜줬으면 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건 많은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차별받지 않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다른 사람이 운영하면 여기에 적응 못하는 아이도 있지만 부모가 하면 다르잖아요.

시 단위가 아닌 구 단위에서 장소를 제공해 부모 사업장이 만들어진다면 부모들이 관리도 하며 지도도 하면서 편견 없이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성자전진호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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