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과 추행, 정신병원은 무법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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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한 한 여성이 보호사들에 의해 성폭행과 성추행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안성 ㅅ 병원에 입원했던 김미진(가명, 25, 정신장애 2급) 씨는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던 남자 보호사 김영달(가명, 59) 씨에 의해 2~3개월 간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했고, 또 다른 남자 보호사 박신재(가명, 66) 씨에 의해 성추행을 당했다.
사건은 미진 씨가 퇴원한 이후에도 김영달 씨가 잦은 연락을 취하자, 미진 씨가 어머니 박신숙(가명, 49)에게 그간 성폭행, 성추행 당한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해자인 김영달 씨와 박신재 씨는 징역 5년형, 징역 1년 6개월형의 검사 구형을 받았으나, 판결에서는 각각 징역 1년 6개월형,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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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진 씨가 입원했던 안성의 ㅅ 정신병원. ⓒ소연 기자 | ||
이를 지켜보고 있던, 미진 씨의 어머니는 “저 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외쳤다.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 기자는 김미진 씨의 집을 찾았다. 퇴원 후 집까지 찾아가 성폭행
김미진 씨는 김영달 씨의 진술이 거짓이라며 “(김영달 씨는) 병원에서만 열 번 넘게 (성폭행을) 했고, 퇴원 후에도 집에서 세 번 (성폭행) 했어요.”라고 말했다. 4층에 있는 미진 씨 병실 외에도 5층 간호사실, 심지어 옥상에까지 끌고 가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완강히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김영달 씨의 성폭행이 계속되자, 미진 씨는 간호사 두 명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말하고 도움을 구했다고.
그러나 간호사들은 미진 씨가 김영달 씨에게 받은 쪽지와 물건들을 모두 가져간 뒤, 미진 씨를 따로 불러 성폭행 당한 사실에 대해 그 책임을 병원에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했단다.
“한은진(가명) 주임님이랑 최정미(가명) 간호사님이 부르는 대로 따라 썼어요. (각서를) 다 쓰니까 이 사실을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라고 했어요.”
미진 씨가 퇴원한 8월 25일 전인 7월에 병원을 그만둔 김영달 씨는 미진 씨가 퇴원한 이후에도 전화를 해 미진 씨를 찾아갔다. “집에 있는데 계속 만나자고 전화가 오는 거예요. 안 만나주면 집에 쳐들어와서 저를 죽일 것 같고… 무서웠어요.”
성추행 해놓고 안마한 거라고?
김영달 씨 외에 김미진 씨를 성추행한 사람이 또 있었다. 바로 보호사 박신재(가명, 66) 씨다. 그는 미진 씨에게 전신마사지를 해준다며 5층 간호사실로 데려가 옷을 벗기고,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되었다.
법정에서 박신재 씨는 “늘 몸이 아픈 미진 씨를 위해 (내가) 지압과 안마를 할 줄 아니까, 전신마사지를 해줬다.”라며 “강제로 옷을 벗기고, 성기를 노출한 뒤 자신을 성추행하려 했다는 미진 씨의 진술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범행사실을 부인했다.
이에 대해 미진 씨는 “박신재 씨가 5층 간호사 실로 끌고 간 뒤 ‘마사지는 옷을 얇게 입고 해야 한다.’며 환의복을 벗게 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환의복 웃옷을 벗기는 했지만 안에 입고 있던 반팔 티와 바지는 박민재 씨가 강제로 벗겼다고. 이후 성추행이 이어졌다고 미진 씨는 설명했다.
박신재 씨의 진술에 대해 방원석 형사는 “단순안마라고 했지만, 안마자격증도 없는 사람이 옷을 벗기고 안마했다는 것에서 추행의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신장애인이니까… 괜찮겠지?
미진 씨가 입원했던 안성 ㅅ 병원은 여성 환자들이 입원하는 폐쇄병동이 4층, 남성 환자들이 입원하는 폐쇄병동이 5층에 위치해 있는데, 가해자들이 미진 씨를 성추행·성폭행한 곳은 4층, 5층, 옥상 등의 폐쇄병동이었다.
정신장애인을 상대로 한 폭행 사건이 폐쇄병동에서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 언론매체들의 잦은 보도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그렇다면 왜 정신병원 입원 환자들이 폭력 상황에 쉽게 노출되는 것일까?
이것은 비단 폐쇄병동 공간의 폐쇄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KBS 추적 60분’과 인터뷰한 한 전직 정신병원 직원은 “(일부 직원들은) 환자들이 조금만 잘못하면 약 먹여 재우고, 묶어 놓고, (다른 사람들이) 안 볼 때 때리곤 했다. 정신장애인들의 말은 아무도 안 믿을 거라는 것을 악용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일부 동료들이 환자들을 이름이 아닌 ‘정신병자’라고 호명했고, 자신들이 행할 수 있는 권력을 사용해 그들에게 폭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신장애인을 인격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직원들이 폐쇄공간에서 장애인을 관리 감독하고, 자신의 힘을 이용해 폭력을 가해도 쉽게 범죄화되지 않는 구조다 보니 폭력의 체계가 점점 공고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정신장애인 폭력 사태가 드러났을 때 문제 해결 과정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정신장애인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다.
홍진표 (아산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폐쇄병동에서 정신장애인이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해도 법원이나 검찰, 경찰 측에서 그들의 증언을 믿지 않아 사건이 가시화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2년째 성람재단 산하 서울정신요양원 성폭행 사건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또한 최근 피해자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입증할만한 정신감정 결과를 제출하라는 법원의 지시를 받았다 한다.
지자체, 정신병원 관리감독 책임 방기
미진 씨가 성폭행 당한 사실을 말했을 때 안성 ㅅ 병원은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성폭행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김영달 씨를 ‘성폭행’이 아니라 ‘근무태만’을 이유로 해고한 것.
사건이 터진 직후에도 병원장은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줄 몰랐다고 했으며, 간호사들에게 이에 대해 들은바 없다고 발뺌했다.
정신병원은 공공기관이든 민영기관이든 1차적으로 관할 보건소에서 관리·감독하도록 되어 있다. <함께걸음>은 안성보건소 측에 이번 사건에 대해 병원 측에 행정조치 내린 것이 있는지 문의해보았다.
안성보건소 측에서는 “직원이 그만두었는데도 충원하지 않은 건에 대해서는 충원 지시를 내렸지만, 그 외의 건에서는 행정조치 할 사항이 없었다.”고 답했다. 가해자들이 형을 선고받더라도 “병원장이 가해자가 아닌 이상 직원 개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병원장의 책임을 추궁할 근거가 「정신보건법」상에는 없다.”는 게 이유였다.
정신병원의 인권침해를 예방할 프로그램 운영 여부에 대해서도 보건소 측은 “한 달에 한번 씩 직원교육을 강화하라는 지침을 내린다고 하였지만, 어디까지나 권고 사항일 뿐 진행 여부는 병원장의 선택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정신보건법」 시행규칙 제21조에 의하면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반기마다 1회이상 관할구역안의 소관 정신의료기관 또는 사회복귀시설에 대하여 운영에 관한 지도·감독을 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정신보건법」 제28조에는 시·도지사 소속 지방정신보건심의위원회 정신병원을 감독, 시정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경기도청 보건위생정책과 김혜경 씨는 “경기도에만 정신의료기관이 220개다보니 그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지방정신보건심의위원회에서 일일이 지도감독하기는 어렵다.”며 “가해자가 근무했던 병원의 원장도 그런 말을 했지만, 개인이 병원 구조의 틈을 노려 벌이는 일들을 잡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이는 지자체가 정신병원을 지도·감독할 책임을 스스로 방기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다.
의료서비스 본분 망각한 병원, 사회취약계층 도외시하는 지자체
홍진표 전문의는 “유럽 등의 선진국의 경우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의료서비스는 대부분 공공서비스로 하고 있으며, 의료서비스 중에서도 인권침해 소지가 큰 정신병원 운영의 경우,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 등에서는 사회적 취약 계층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의료서비스, 특히 정신보건의료서비스 부분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병원의 상당수가 민간이 운영하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정신병원을 공공화하는 사업을 당장 추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정신병원에서 사회적 취약계층인 정신장애인이 인권침해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예방조치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는 데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정신병원이 환자를 치료, 보호하는 의료서비스 본분을 상실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정신병원을 상대로 이를 환기하는 프로그램 또한 진행해야 한다.
현 「정신보건법」 상에 정신병원 내 인권침해 사건이 터졌을 때 병원장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조항을 첨가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신장애인을 비인격적 존재로 바라보는 인식이 만연한 상황에서 이러한 제도적 보완책이 명문화되지 않는다면 정신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의 악순환 고리는 절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정신병원 입원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조항이 존재했다면, 가해자들이 그렇게 대범하게 수시로 성폭행을 가할 수 있었을까.
미진 씨는 현재 은평시립병원에 입원해 있다. 병원에 대한 거부증세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한다. 미진 씨에게 병원은 치료가 아닌 공포의 공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정신병원 입원 환자들을 위한 인권보호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안성 ㅅ 병원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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