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운동의 원동력, 생활인의 목소리 사회에 알려야
본문
지난 8월 27~29일까지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장애인단체활동가 대회에서 한·일 탈시설 운동 활동가가 만나 양국의 상황에 대해 의견 나누는 소중한 자리가 마련됐다.
‘일본 장애인 차별과 싸우는 전국공동연합’의 사이토 겐조 공동대표와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의 김정하 활동가가 전국장애인단체활동가 대회 부대행사로 개최한 ‘함께걸음 렌즈로 본 시설’ 사진전을 보며 탈시설 운동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뒀다.
![]() |
||
| ▲ '일본 장애인 차별과 싸우는 전국공동연합' 공동대표 사이토 겐죠 씨. ⓒ전진호 기자 | ||
일본 정부, 시설확충 중단해
김정하 : 사이토상을 처음 만난 게 아마 2000년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 “시설에서 갇혀 있는 장애인을 리어카에 태우고 나오면서 탈시설 운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감동받았다.
사이토 겐조 : 하하. 내가 그건 이야기까지 했나.
일본의 70년대 시설 생활인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지역에서 사는 대학생들이 시설서 사는 장애인들의 생활상에 분노를 느끼며 ‘와빠(Wappo no Kai)’를 만들어 탈시설 운동을 한 게 시작이다.
김정하 : 한국은 최근에도 시설 양성화 정책으로 인한 폐해가 끊이지 않는 상황인데, 일본은 정부가 나서서 더 이상 수용시설을 짓지 않겠다고 한걸로 알고 있다. 그게 사실인가.
사이토 겐조 : 그렇다. 더 이상 수용시설을 확충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그 배경에는 지난 2003년, 지역에서 사는 장애인들에게 지원비를 주는 ‘자립지원법 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법이 제정되면서부터 더 이상 국가가 시설에 재정지원을 하지 않게 됐다.
정부 의지, 사회적 분위기 맞물려 탈시설 일궈
김정하 : 우리나라 시설의 90% 이상은 민간 법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만약 한국 정부가 그렇게 한다면 이들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일본에선 그런 반대가 없었나.
사이토 겐조 : 일본 역시 90% 이상이 민간에서 시설을 운영했기 때문에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시설 양성화의 문제점을 시설장들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반대’만을 주장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민간운영 법인과 함께 ‘지역과 시설의 소통’을 고민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정부가 ‘탈시설 방침’을 세우게 된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지난 1979년도에 제정된 양호학교(특수학교) 의무화가 큰 몫을 담당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아동은 시설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장애아동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지역에 생긴건 더 이상 장애아를 시설에서 보내지 않아도 됨을 의미했다. 그러자 1980년대 이후부터는 장애아동 시설이 늘지 않게 됐으며,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생활하면서 학교 다니는 게 일반화 됐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룹홈으로 연결 됐다.
이런 과정은 90년대 이후 성인시설에도 크게 영향을 끼쳐 대규모 수용시설을 운영하던 법인도 그룹홈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시설 증축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지역 내에서 살아가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김정하 : 기존에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대책은 마련돼 있나.
사이토 겐조 : 시설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은 시설에 있는 이들도 역시 지역으로 내보내겠다는 얘기와 같다.
시설장 입장에서도 장애인들을 시설로 내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립지원법’의 내용상 시설에서 1급 장애인이 생활하고 있으면 정부 지원이 줄기 때문에, 법인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엄청나 도저히 시설을 운영할 수 없다.
김정하 : 정말 부럽다. 그런데 시설생활인들이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거지원이 필수인데, 어떤 지원을 하고 있나.
사이토 겐조 : 5백 명 규모의 시설을 만든 것은 정부니까, 시설에서 나온 이들을 위한 그룹홈 설치나 여러 가지 대안을 마련하는 것 역시 정부가 해야 한다.
물론 각 지자체별로 ‘돈이 없어서 힘들다’는 등 다른 입장을 보이기도 하지만, 탈시설이라는 큰 흐름 자체를 거스를 수는 없으리라고 본다.
시설 내부 목소리,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체계 필요
![]() |
||
| ▲ 일본의 탈시설 운동 이야기를 듣고 있는 김정하 활동가. ⓒ전진호 기자 | ||
김정하 : 한국은 공익이사제를 통해 사회복지법인 내부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리를 막으려 한다. 일본은 이런 공익이사제도가 없는 걸로 아는데.
사이토 겐조 : 없다. 일본에서 이사회가 소집되는 일은 원장이 횡령을 하거나 시설 내에서 학대가 발생하는 등 불상사가 생겼을 때가 대부분이다.
이사가 나서서 시설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공익이사 도입은 무의미한 상황이다.
김정하 : 한국에서 이 제도를 하려고 했던 의도는 시설의 시작만 시설장이 했지, 모든 예산을 국가가 대니까 개인재산에 대한 공공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외부 인사가 시설 안에 들어가면 시설 변화의 한 조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이토 겐조 : 시설실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시설 생활인과 가족, 그리고 직원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목소리가 외부에 잘 전달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한 점이라고 본다.
건전한 시설의 조건은 ▲생활인이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지 ▲가족이 자유롭게 면회할 수 있는지가 기본이다. 이 두 가지만 잘 확립해도 내부 정보가 자연스럽게 외부로 나갈 수 있게 돼 시설 내 문제를 막을 수 있다.
일본은 이 두 가지를 잘 조절하는 것을 시설 개혁의 중심으로 보고 있다.
김정하 : 우리가 공익이사제를 주장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족벌운영 구조 때문에 내부의 목소리가 전혀 밖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시설장을 비롯해 사무국장, 회계 등 실권을 갖는 사람을 친인척으로 두고, 시설장과 관계 있는 사람으로 이사회를 구성해 허위문서를 작성해왔으며, 이게 대물림돼 오고 있다.
사이토 겐조 : 이사회와 별도로 인권변호사 등이 감사를 나간다던가 해서 역학관계가 만들어진다면 또 다른 개혁의 방법일수도 있겠다.
김정하 : 한국에선 시설지어 돈 벌고 땅 사고, 아들 딸 유학 보내는 게 너무도 정형적으로 일어난다.
사이토 겐조 : 일본도 예전에는 그랬다.
이를 막기 위해 시설 안에 ‘고충처리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하게 했다. 위원회는 이사 이외의 사람들로 구성한다. 여기서 나온 의견은 인권위원회와 비슷한 ‘권리옹호위원회’에 보고한다.
김정하 : 하지만 정신지체장애인은 위원회가 있더라도 이용하기 힘들지 않나.
사이토 겐조 : 체계를 만들었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주변 상황도 변화시켜야 한다. 예전처럼 시설을 운영하면 계속 운영하기 힘들겠다는 위기감을 끊임없이 심어주며 인식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김정하 :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주변상황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시설생활인이 지역사회로 나와 부당함 알리는 게 최고의 탈시설 운동
김정하 : 시설 생활인들의 권리보장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운동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사이토 겐조 : 내가 본 가장 좋은 방법은 시설 생활인들을 퇴소시켜 지역에서 생활하게 하면서 그 사람이 시설서 당한 부당한 일을 고발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972년 도쿄에 있는 중증지체장애인 시설서 생활하던 장애인들이 도청 앞에서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집회를 열어 세상에 알렸다. 이런 것들이 탈시설 운동을 촉진했다.
김정하 : 한국에서 탈시설 운동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일본의 경험에 비추어 조언을 부탁한다.
사이토 겐조 : 70년대 초반, 탈시설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우리를 괴상하게 봤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탈시설이라는 말은 아무런 거부감 없는 단어가 됐다.
20년이라는 역사를 통해서 세상이 바뀐 것이다. 자기들의 신념을 굳건하게 갖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언젠가는 변한다.
신은 우리의 편이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