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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철도 못한 일을 박덕경이 했다?

[기자의 눈] 지체장애인협회 시도지부장 한나라당 이명박 예비 후보 공개지지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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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defined       ▲ [서울=뉴시스]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용산빌딩 MB 캠프에서 이명박 대통령 경선후보를 지지하는 한국지체장애인협회 16개 시도지회장들이 지지선언 후 이 후보와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남강호기자 kangho@newsis.com     발 빠른 줄서기 파장 불러 일으켜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연말 대선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때에 걸맞게 자칭 장애계에서 제일 큰 단체라는 지체장애인협회(이하 지장협)가 보수정당의 특정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일 지장협 박덕경 회장과 16개 시도 지부장은 한나라당 대선 예비 후보 이명박 캠프를 찾아가 “장애인들의 희망 이명박 예비 후보를 적극 지지한다.”고 선언한 후 종이학이 담긴 커다란 유리병을 선물했다고 한다.

장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지장협의 깜짝 이벤트를 보면서 참 세월 많이 변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단체 운영 예산을 자체 충당하는, 즉 자생력을 갖춘 단체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장애인 단체 현실에서 그동안 장애인 단체는 좋든 싫든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깨놓고 얘기해서 정부가 예산 지원을 중단하면 살아남을 단체가 없기 때문에 장애인 단체는 감히 정권의 반대편에 서지 못했다. 그래서 민자당을 거쳐 한나라당 중앙위원으로 있었던, 카리스마가 대단했던 지장협 장기철 전 회장조차, 속내는 어땠는지 몰라도 살아있을 때 공개적으로 한나라당 지지를 선언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걸 박덕경 현 회장이 해낸 것이다.
쾌거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지난 10년 동안 정권에서 단물 다 빼먹고 난 뒤의 배신이라고 해야 하나?

보는 사람 관점에 따라 답이 틀릴 수 있겠지만, 아무튼 분명한 건 박덕경 회장을 비롯한 지장협 시도지부장들이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그것도 한나라당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 빠른 줄서기에 나섰다는 것이고, 이게 장애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대가 없는,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공개지지는 없다고 봐야 한다. 박 회장을 비롯한 지장협 시도 지부장들이 이명박 후보를 공개지지 하면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누구나 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긴 누가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되든 말든 솔직히 상관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지장협의 이명박 후보 공개 지지선언은 과정과 절차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지지 선언의 주체 분명히 했어야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인, 지난 5월 이명박 후보가 장애아는 낙태시켜도 상관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장애인들의 거센 비난을 받은 적이 있는데, 자존심도 없이 그런 사람을 장애인 단체인 지장협이 어떻게 공개 지지하느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 그때 지장협은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을 여기서 상기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이번 지지선언이 지장협이라는 조직 이름으로 이루어진 지지선언이기 때문에 과연 지장협 전체 회원들의 동의하에 이루어진 지지선언이었느냐가 더 중요하고 그 사실 여부가 무척 궁금하다.

박 회장을 비롯한 시도지부장들은 지지선언문을 통해 분명히 지장협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말은 사실상 지장협 회원이 모두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러면 과연 전국의 지장협 모든 회원들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고 있나.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장협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지지선언이 이뤄진 절차는 지금으로부터 한 달 보름 전 쯤 박덕경 회장이 시도 협회장을 모아 놓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측에서 러브콜이 왔다. 아무래도 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즉 조직의 이름이 들어간 특정후보 지지선언 같은 중차대한 일은 최소한 총회를 개최하든지 아니면 대의원들을 모아놓고 설명 후 동의를 구했어야 하는데 이 절차가 생략된 채 공개 지지선언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지장협 측은, 지장협 자체가 회원이 한 표를 행사하는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회장과 지회장이 선출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회장과 지부장의 동의만으로도 충분히 지지선언을 할 수 있다고 얘기 하겠지만, 사정이 그렇다면 말 그대로 가족으로 표현한 전체 회원이 아닌, 회장과 시도지부장 열일곱 명의 지지선언일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설치, 오로지 이명박 후보의 공로?

또 하나 묵과할 수 없는 문제점은 지장협이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하면서 장애인 운동을 심하게 왜곡시킨 부분이다.

역시 보도에 따르면 박 회장과 시도지부장은 이명박 후보 지지의 근거로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 재직 때 장애인콜택시 제도 도입과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등 장애인 이동 편의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 대목을 보면서 웃음밖에 안 나오는 것은 지장협 박 회장과 시도지부장 외에 장애계 사람들은 그 누구도 콜택시 도입과 엘리베이터 설치를 이명박 후보의 순수한 치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령 백 번 양보해서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 재직 때 이루어진 일이기에 치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왜 이걸 전적으로 이명박 후보 공으로 돌리는 지에 대해서는 모르긴 해도 고개를 갸웃거릴 장애인들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서울시에 콜택시와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도입된 것은 이동권연대를 비롯한 장애인 단체와 중증장애인들의 수 년 간에 걸친 목숨을 건 투쟁의 결과다. 장애인들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런 이동권 확보를 위한 눈물겨운 투쟁을 지장협은 간단하게 없던 일로 해버렸다.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장애인들의 투쟁의 결과로, 최소한 장애인들의 요구로 라는 말조차 생략된 박덕경 회장 등의 지지선언문에 따르면 서울시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은 오로지 이명박 후보의 공로인 것이다.

따라서 박덕경 회장 등은 그냥 넘어갈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차제에 이 부분에 대한 분명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선은 물 건너 갔다

또 하나 안타까운 점은 이번 지장협의 이명박 후보 공개지지 선언으로 사실상 장애계의 대선과 총선 국면을 활용한 장애인 복지 확대 움직임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에게 대선과 총선 국면이 왜 중요한가, 물어볼 것도 없이 선거에 나선 후보에게 장애인 복지 공약을 강제해서 장애인들의 나은 삶을 확보하기 위한 소중한 시기가 바로 선거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입장이 다를지라도 선거철이 되면 장애계가 하나가 돼서 후보 초청 정책토론회 등을 개최한 것이 그동안의 장애계 전통이었다. 그런데 이게 올해는 가능하지 않게 됐다.

막말로 특정 후보에 줄을 선 단체가 있는 장애계와 어느 대선 후보가 장애인 복지 정책을 논하겠다고 나서겠는가.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에 아주 나쁜 선례를 지장협이 만들어 버렸다. 우려감을 더 증폭시키는 건 장애계에는 지장협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단체들도 지장협 선례를 따라 특정 후보에 줄서기 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최악의 경우 지장협 선례를 따라 장애인 단체들이 너도나도 줄서기에 나선다면 장애계는 그야말로 개판이 될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일 것이다.

때문에 적어도 장애계를 이끌어가는 장애인 단체 회장이라면 무엇이 장애인 다수를 위한 길인지 냉철하게 사고를 하고 똥인지 오줌인지는 확실하게 분간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역대 선거에서 장애인 단체들이 중립을 지킨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개별 단체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 장애인들의 이익을 우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원칙을 지장협이 깨버렸다는 점에서 진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박덕경 회장을 비롯한 지장협 지도부가 이명박 후보에 올인 했다는 것이다. 들리기는 이명박 후보에 줄을 선 장애인과 단체장이 한두 명이 아니어서, 내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는데, 지장협의 운명을 걸고 한 선택인 만큼 잘 되기 바란다.

나중에 혹시 잘못된 선택이었음이 확인되었을 경우 회피하지 않고 사과나 했으면 좋겠는데, 바랄 것을 바라야지라는 힐난을 받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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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장애우님의 댓글

장애우 작성일

단체장의 졸속행동이 어떻게 세상에서 평가할지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한숨님의 댓글

한숨 작성일

머리 터져라 싸우는 놈 따로, 정치적으로 행동하며 잇속 챙기는 이들 따로
도대체 이런 세상구조는 언제쯤이나 바뀔지 모르겠네요

소나기님의 댓글

소나기 작성일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그랬다. 권익문제연구소 지도자 2사람 성재가 장애인 이름걸어놓고 김대중이 선거운동한거는 뭐냐? 그 덕에 1사람 국회의원하고, 1사람 청와대 비서관 그리고 장관까지 한 사람들이 연구소 지도자들 아니야..10년 동안 장애인 이름으로 정권과 야합하여 단물을 빼먹은거 세상이 다 아는데...야합? 지지? 정치운동? 연구소가 다 가르쳐 준거다. 장애계를 망친거는 너희들이다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몸이 장애인이라고 정신까지 병들어서야 되겠는가...장애태아 낙태를 서슴없이 말했던 사람을 지지 하다니...단체장들 생각하고 행동합시다. 돈이면 뭐든 다 할거요 마음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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