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치산 뒤에 가려진 26년간의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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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정신지체인에 대한 인권 침해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함께걸음>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정신지체인의 인권 침해 사례를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다. 이번 사건 역시 ‘보호’를 명목으로 정신지체인을 데려다 임금 한 푼 주지 않고 노동을 시키고, 수급비를 마음대로 찾아 썼으며, 때때로 폭행 등의 가혹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여러 측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기존 사건들과 다른 점은 피해 정신지체인의 처우와 인권에 대한 면사무소 등의 간섭이 심해지자 가해자가 이를 막기 위해 한정치산 선고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함께걸음>이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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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이 가해자 김 씨가 사는 집, 오른 쪽이 피해자 진강 씨가 면사무소 첫 조사 당시 살던 집이다. 조사 당시 2평 남짓 한 이 집에는 때로 얼룩진 이불과 베개, 일반 사람으로서는 입을 수 없는 의류들이 쌓여 있고 차마 코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고. ⓒ 조은영 기자 | |
정신지체인, 친척에게 26년간 학대 받아
강원도 영월군에 사는 김진강(35, 정신지체 2급) 씨가 고종사촌 형인 김 아무개(60) 씨 집에 살면서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있으며 수급비를 횡령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해당 면사무소에서 알려진 것은 지난 해 7월. 농촌활동을 온 대학생과 이웃 주민들이 이들 남매의 생활에 대해 면사무소에 신고하면서부터다.
<함께걸음>이 입수한 당시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진강 씨는 김원식(61, 정신지체 3급) 씨와 함께 김 씨 소유의 허름한 별채에 기거하고 있었으며 “2평 남짓 한 공간에 때로 얼룩진 이불과 베개, 일반 사람으로서는 입을 수 없는 의류들이 쌓여 있고 차마 코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고.
또 김 씨 소유의 축사와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폭행을 당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는 이웃 주민의 증언이 기록돼 있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임금을 주기는커녕 총 100만원이 넘는 이들의 수급비도 갈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도 제기돼 있었다. 진강 씨의 여동생 순희(28) 씨는 김 씨와 같은 집에 기거하고 있었지만 처한 상황은 진강 씨와 별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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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식처럼 길렀다는 가해자의 주장과는 달리 진강 씨 얼굴에는 동상과 피부병으로 인한 상처가 나 있었고, 등과 팔 가슴 등에는 곧은 막대로 맞은 듯한 상처가 선명했다. 실제 진강 씨와 함께 생활했던 원식 씨는 “김 씨(가해자)가 일을 하는 도중이나 혹은 술을 마신 상태에서 머리나 등 가슴 등을 손이나 발 몽둥이 등으로 때린 적이 많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 조은영 기자 |
그러나 이는 1년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았다. 집은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옮겼으나 진강(35, 정신지체 2급) 씨는 여전히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소 200마리가 있는 축사와 1만4천 평 규모의 논밭을 오가며 일해야 했다.
이웃 주민들은 “김 씨네 가족은 아침에 나가도 보통 저녁 8시가 돼야 일을 마치고 들어온다.”며 “들어와도 또다시 2시간쯤 소 축사에서 일하고 10시가 돼서야 온 가족이 저녁을 먹는다.”고 말해 진강 씨가 하고 있는 노동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했다.
그러나 면사무소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지적하자 김 씨는 “가족이 버리려던 진강 씨(당시 9세)를 친척으로서 거둔 것뿐”이라고 했다. 또 “오줌똥도 못 가리는 애 데려다 17년 동안 수발하며 자식처럼 키웠다. 농사일 가르쳐서 이제 좀 쓸 만하니까 인권이네 뭐네 간섭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보호’하려고 만든 한정치산, 오히려 독으로 작용해
여기까지는 기존 정신지체인 학대 사건들과 유사하지만 이번 사건의 차이점은 가해자 김 씨가 진강 씨의 처우와 인권에 대한 면사무소 등의 간섭이 심해지자 이를 막기 위해 한정치산 선고를 신청했다는 점이다.
김 씨는 면사무소 공무원이 진강 씨 남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집에 드나들자 올해 초 법원에 진강 씨에 대한 한정치산자 선고를 신청했다. 그리고 지난 5월 22일 한정치산자 선고가 최종 확정됨으로써 진강 씨는 계약을 비롯한 모든 법률행위에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한정치산자가 됐다.
그나마 김 씨가 진강 씨의 법정후견인으로 선정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김 씨는 6월 5일 진강 씨의 법정후견인을 신청했으나 이미 진강 씨와 관련해 경찰이 조사에 들어가고 6월 4일 면사무소가 진강 씨를 김 씨와 분리해 생활시설로 이전시킨 후였다.
만약 김씨가 법정후견인이 됐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이 사건을 검토한 조창영 변호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법률위원회 위원장)는 “법정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만약 김 씨가 법정후견인으로 선정됐더라면 진강 씨 남매의 수급비를 마음대로 찾아 쓰더라도 법적 제제가 불가능할 뻔 했다.”고 설명했다.
안타까운 점은 진강 씨가 한번 한정치산자 선고를 받은 이상 이를 취소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혜영 활동가에 따르면 “한정치산자 선고를 풀기 위해서는 검사 직권으로 청구하거나 8촌 이내 혈족이 법원에 신청하면 되는데, 문제는 진강 씨가 정신지체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만 가능하다.”고. 결국 진강 씨는 김 씨로 인해 평생을 타인의 동의를 얻어서 법률행위를 해야 하는 한정치산자로 살아야 하는 형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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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사무소는 진강 씨 남매에 대해 조사한 이후 가해자 김씨에게 농사일 등의 육체노동을 시키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받았다. 그러나 이는 1년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았다. 진강씨는 면사무소가 나서서 시설로 임시이전조치하기 전까지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소 200마리가 있는 축사와 1만4천 평 규모의 논밭을 오가며 일해야 했다. 아직 진강 씨 여동생은 가해자 김 씨의 집에 남아 농사 일을 하고 있다. ⓒ 조은영 기자 |
이 사건을 검토한 법률가들은 “그런 순희 씨를 김 씨의 집에 남겨두고 진강 씨에 대한 법적 대응을 할 경우, 우선 순희 씨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며, 형사소송은 상관없지만 민사소송의 경우 법정후견인 1순위인 순희 씨가 후견인이 된 상태에서 김 씨의 영향으로 진강 씨의 민사소송을 포기할 경우 소송을 진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결국 이번 사건이 정신지체가 있는 장애우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한정치산, 금치산 제도가 악용되면 오히려 장애우의 권리를 박탈하고 법적 보호를 막는 방해물로 작용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한정치산, 금치산 선고는 보호받는 것에 비해 권리 박탈이 크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정신지체인의 행위능력에 관계없이 광범위하고 획일적으로 행위능력을 제한하고 권리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감독체계도 없이 가족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 장애계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성년후견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성년후견제는 우선 장애우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도록 개개인의 행위능력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후견의 범위를 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또 가족에 의한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가족이 이외의 사람을 후견인으로 선정할 수 있고 후견인의 권리 남용을 막기 위한 감독체계도 갖추고 있다.
현재 이와 관련해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 대표발의로 ‘성년후견에 관한 법률안’과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올라와 있고 성년후견제추진연대와 보건복지부도 관련법을 발의할 예정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법률안 제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장애계에서 성년후견제 도입을 주장한지 벌써 4년째.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는 이상, 정신지체인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법제도 마련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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