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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난치성질환, 더 이상 외면 안된다

[기획연재] ①희귀난치성질환자 실태와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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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희귀난치성질환 선고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상 패가망신을 의미한다.
엄청난 치료비가 들어가지만 언제 나을지도 모르는데다, 이들을 바라보는 따가운 사회적 시선 때문에 육체와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은 시간문제.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해 가족이 해체되거나, 자살을 생각하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앓는 이들이 100만 명에 육박하지만 정부는 뒷짐 진 채 모든 책임을 환자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제도권에서 방치되다 시피 살아가고 있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의 삶을 <함께걸음>이 조명했다.

인터넷 등이 발달함에 따라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심하게 말하면 ‘희귀난치성질환에 걸리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안 걸리면 다행’이며 ‘결국은 증상이 악화돼 죽고 만다’는 게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다.

‘희귀질환’이란 말 그대로 질환 자체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사들조차 이 병에 대해 제대로 몰라 정확한 진단을 받기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치료제가 개발돼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난치성질환이기도 하다는 이유로 희귀난치성질환이라고 부른다.

이 희귀난치성질환은 편의상 유병 환자 수에 근거해 정해진다.
미국은 환자수가 20만 명 미만인 질병을 희귀난치성질환이라 정의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유병 환자수가 2만 명 미만인 질병으로 정의하고 있다.

희귀난치성질환자 100만에 육박, 하지만 정확한 통계치조차 없어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에 등록된 희귀난치성질환은 약 6천여 종인데 비해 국내 희귀난치성질환센터에 등록된 희귀난치성질환은 총 203종에 불과하다.
정부에서는 국내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인원을 약 30만~5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부서와 담당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정도로 수치가 분명치 않는다.

그나마 지난 2006년 희귀난치성질환센터에서 200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건강보험 자료를 바탕으로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등록된 89종(106개 질환군, 2006년 기준)에 대한 통계자료가 유일하다.
하지만 희귀난치성질병으로 등록이 안 돼 의료비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환자, 본인의 질병이 희귀난치성질환인지 몰라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신음하고 있는 이들,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알리기를 꺼려하는 이들까지 합친다면 100만 명에 육박할 거라는 게 희귀난치성질환 자조모임 한관계자의 전언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의 대상자는 ▲의료급여 2종 수급권자 ▲소득 재산 기준에 비해 본인부담 의료비가 과다한 건강보험 가입자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월 소득 361만6605원, 재산 2억72만9136원 이내(4인 가족 기준)여야 한다. 또 배기량 2500cc이상, 3천만 원 이상의 승용 승합차 소유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는 의료비 지원대상이 아니며, 해당질환에 한해 호흡 보조기, 간병비 등 비급여(비보험) 부분만 지원하고 있다.

주민등록지 관할 보건소에서 상담과 접수를 할 수 있으며 보건복지 콜센터(24시간 국번 없이 129번)를 통해서도 지원 대상 여부 등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신청은 본인과 보호자가 할 수 있으며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경우 상담을 통해 출장접수도 가능하다.

 ▲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 대상자와 선정방법

뒤늦게나마 정부는 지난 2001년부터 희귀난치성질환을 선정해 의료비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또 지난 2004년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내에 희귀난치성질환센터를 만들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턱없이 부족한 의료비 지원 예산, 그나마 예산에 짜깁기

보건복지부 질병정책팀 강인우 사무관은 “2006년 390억에서 올해는 1억 원 늘린 391억 원을 희귀난치성질환 의료지원 사업에 투입해 2만여 명에게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에서 내놓은 연도별 지원현황을 살펴보면 지원대상은 꾸준히 증가한 데 반해 예산증가는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표 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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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 예산 증가표 (표1)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를 50만 명이라고 잡으면 이 중 3.6%만이 의료비 지원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장향숙 의원실 김은 비서관은 “보건복지부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예산배정이 적은 질병정책팀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많은 액수라 볼 수도 있지만, 수많은 희귀난치성질환자를 생각하자면 생색내기에 불과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적은 예산”이라고 말했다.

희귀난치성질환의 자조모임의 한 관계자는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고려해 예산을 편성한 게 아니라 편성된 예산에 인원수를 짜 맞추다 보니 정작 지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탈락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이전에는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간병비가 지급됐다. 하지만 지금은 ‘형평성’을 이유로 들며 간병비 지급대상을 축소시켰다”며 “이런 모습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고세병 치료 약인 세레자임. 연간 약 값이 1억원에 달한다 ⓒ한국희귀의약품센터   비보험 수입 의약품 때문에 환자가계 휘청

설사 의료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의료비 지원 대상에서 빠져있는 항목이 많아 가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항목은 바로 비보험 의약품 구입비.
정부는 희귀의약품 관리를 위해 지난 1995년에 한국희귀의약품센터라는 사단법인을 설립해 희귀의약품의 수급체계를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일본, 유럽, 싱가포르 등이 세금감면, 마케팅 독점권 등을 줘 희귀의약품 연구를 지원한 결과 많은 수의 희귀의약품이 개발된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수요가 많지 않아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제약회사 연구개발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약제를 수입품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 약품가가 환자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싸다는 것이다. 때문에 희귀난치성질환 관련 단체들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보험적용 대상 약품은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희귀의약품센터에서 판매대행을 하고 있는 의약품 수는 82종. 이중 보험대상 약품은 25종에 그치고 있다.

희귀의약품에 대한 정부차원의 강한 의지가 없다보니 희귀의약품센터의 역할이 수요자의 요청에 의해 수입약품을 중계하는 ‘수입약제 거간꾼’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약품마저도 원활하게 공급 안될 때가 많아 환자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질병별 특성 고려 전혀 무시한 의료비 지원체계

질환별 특징과 상관없이 의료비 지원으로 획일적으로 지급돼 그나마 적은 예산이 적재적소에 쓰이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소한 외상에도 피부와 점막에 쉽사리 수포가 형성되는 질환인 수포성표피박리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항목은 진료비가 아닌 환부에 붙이는 파스 구입비다.
개당 5만2천원인 이 파스는 보험대상이긴 하지만 1주일에 3장만 적용된다. 모자라는 양은 비용부담 때문에 파스 대신 거즈를 구입해 붙이고 있다.

몸 일부나 전체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병인 스터지웨버 증후군은 레이저 치료가 필수다.
하지만 안면장애인으로 등록되지 않는 이상 미용성형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한번에 200만 원가량, 몇 번의 시술을 받아야할지 알 수 없는 레이저 치료를 감당할 수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들 바라보는 어두운 시선, 또 한 번 힘들게 해

이처럼 계획 없이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정부의 무성의한 서비스 체계도 문제지만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도 이들을 힘들게 한다.
스터지웨버 증후군을 앓고 있는 김 모 씨는 “외형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많은 놀림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게 된다”며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친구들 중 상당수가 우울증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터너 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을 둔 심 모씨 역시 “전염병으로 오인 받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고. 심씨는 “친척마저도 우리 아이를 두고 꼭 ‘저주받은 아이’인양 대하며 기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게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김은 비서관은 “이 같은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과 가족들이 가족해체 등 많은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이들을 위한 가족지원 정책은 전무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대부분의 환자들은 가족들에 대한 큰 자책감을 갖고 있고, 이를 견디다 못해 투병 중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간병비 지원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줄 수 있는 심리상담 등의 지원체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확한 실태조사와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한 사회적 장애 인정 필요해

이처럼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 물질적, 정신적 고통에 신음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이 고통을 덜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전문가들은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며, 시급히 필요한 게 뭔지 알아야 지원 대책이 강구될 텐데 국내 희귀난치성질환자 수가 몇 명인지 조차 파악 안 되는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희귀질병센터 박현영 팀장은 “유전성 질환이 대다수인 희귀난치성질환의 특성상 개인정보가 유출될 경우 심각한 인권침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쉽게 진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워낙 증후군이 많아 코드화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이런 입장과 달리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당사자나 전문가들 대부분은 어떤 방식이 되든 실태조사가 선행되어야만 제대로 된 지원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희귀난치성질환을 사회적 장애영역 범주로 보고 이에 준하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장애인이 겪는 차별이나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 겪는 상황이 비슷한 점을 고려했을 때 이들을 ‘사회적 장애’라는 확장된 개념으로 장애영역에 포함한다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해 많은 차별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임소연 활동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논의단계에서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도 사회적 장애인으로 보고 이들의 차별을 막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고 했으나 기존의 국내 장애개념을 뛰어넘는 사안이라 복지부 등에서 난색을 표명해 아쉽게도 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임 활동가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장애개념을 사회적 장애로까지 확장해 이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희귀난치성질환은 앞으로도 더욱 증가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희귀하기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그 수가 너무도 많고, 이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심각하다.

‘우는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것만 형식적으로 지원할 게 아니라 정확한 실태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인 대책마련만이 사회적 약자의 확대 재생산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작성자전진호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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